[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마샤 메데이로스, '절반의 생' 칼릴 지브란 (2020.12.10)

푸레택 2020. 12. 10. 12:24

 

■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 마샤 메데이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열정을 피하는 사람
흑백의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
눈을 반짝이게 하고
하품을 미소로 바꾸고
실수와 슬픔 앞에서도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보다
분명히 구분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과 사랑에 행복하지 않을 때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는 사람
꿈을 따르기 위해
확실성을 불확실성과 바꾸지 않는 사람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합리적인 조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삶의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
자기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곳을 에고로 채운 사람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나쁜 운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대해
불평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묻지도 않고
아는 것에 대해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우리, 서서히 죽는 죽음을 경계하자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는 행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함을 기억하면서

― 마샤 메데이로스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전문

[감상과 해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말하듯이, 우리는 시가 예쁘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 종족의 일원들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쓴다. 마지막 작별의 자리에 당신은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그 자리에서 어떤 시를 읽어줄 것인가?

'천천히 죽어가는 사람(A Morte Devagar)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로 알려졌지만, 브라질 출신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샤 메데이로스(1961~)의 시다. 그녀가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이 시를 게재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듯하다.

폐는 계속 숨을 쉰다고 해서 강해지거나 폐활량이 커지지 않는다. 단지 조금 숨을 쉬면서 그것을 삶이라 부르는 것은 자기 합리화이다. D.H. 로렌스는 말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 자유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뛰어드는 것이다.”

그때 얼마나 많은 기쁜 순간들이 찾아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 기쁨은 성취의 기쁨만이 아니라 나를 만난 기쁨이다. 안전한 거리를 두고 삶을 살아가는 것, 어중간한 경계인으로 인생 대부분을 보내는 것은 서서히 죽는 것과 같다. ㅡ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시로 납치하다(류시화, 더숲, 2018)

■ 절반의 생 / 칼릴 지브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
절반의 재능만 담긴 작품에 탐닉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죽음을 죽지 말라
절반의 해답을 선택하지 말고
절반의 진리에 머물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말해야만 할 때 침묵하지 말고
침묵해야만 할 때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라
가장하지 말라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절반의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고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미소이며
그대가 느끼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절반의 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든다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한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절반의 삶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 칼릴 지브란, '절반의 생' 전문

[감상과 해설]

『예언자(The Propbet』의 시인이 온전한 삶, 그리고 온전한 죽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중간하게 살지 말고, 미온적으로 사랑하지 말며, 방관자적 태도로 행동하지 말라고. ‘큰 기쁨을 방해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절반의 기쁨이며, 큰 만족을 방해하는 것은 불만족이 아니라 절반의 만족이고, 성공을 방해하는 것은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것이고, 불행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은 레바논 베사레의 삼나무 계곡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독신으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정신은 일생 동안 삶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추구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케 한다.

세계적인 작문 지도 교수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일에 해당된다. 뼛속까지 느끼고, 뼛속까지 사랑하고, 뼛속까지 경험하는 것.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마음을 쏟아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는 기쁨이다. 그 기쁨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 ㅡ ‘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류시화, 더숲, 2018)

● "이른 아침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어 잠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첫 파랑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ㅡ 헨리 데이비드 소로

/ 2020.12.10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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