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자리 / 구상
ㅡ 공초 오상순 말씀 - 시인 구상 옮김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작품의 이해와 감상
1
1950년대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뒷골목에 '청동다방'이란 문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다방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매일이다시피 찾아오는 한 허름한 손님이 있었다. 차를 팔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손님이랄수도 없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다방을 찾아오는 이분에게 그 다방에서 배려하여 다방 한켠에 아예 전용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었다.
담배를 무던히도 좋아해서 입에서 담배를 뗄 줄 모르는, 오죽했으면 호까지 공초(空超), (실제로 꽁초라고 많이 불렸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고 물욕과 번뇌를 초탈한 시인(詩人). 이분이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님이다.
이분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청동다방'을 찾았다. 헌데 공초 오상순 님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의례히 성심껏 악수를 하면서, 늘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란 말을 했다. 그러고는 갖고 있던 사인북을 펼쳐 글을 쓰라고 했다. 무슨 글이든지...
1962년 6월 3일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님이 오랜 병상에서의 투병 생활을 마감하고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 하나 없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남겨진 유일한 유산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사인북에다 받아 놓은 글을 책으로 엮어 낸 '청동산맥'이란 책이다.
'청동다방' 시절 오상순님께 찾아오는 문인 중에 한분이 선생의 임종을 지켜 드렸는데, 그분이 詩人 구상(具常) 님이다. 평소에 공초(空超) 선생께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신 말씀과 뜻을 시로 적은게 바로 구상 님의 '꽃자리'란 시다.
청동다방에는 전후 분단의 한국을 보러 온 노벨상 수상작가 '펄벅'이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녀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이 담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청동다방을 방문했을 때 '사슴' 담배를 사왔다고 한다. 오상순 시인은 펄벅에게도 "한마디 해라"라며 청동산맥 노트를 내밀었고, 펄벅은 "어둡다고 불평을 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는 명언을 써 놓고 갔다고 한다.
'꽃자리'는 공초 오상순 시인이 평소 사람을 만날 때 하던 축언(祝言)을 구상 시인이 풀이하여 詩로 써서 1992년 시집 '꽃삽'에 실은 것으로 경우에 따라 오상순 시인의 詩로도, 구상 시인의 詩로도 소개되고 있다.
2
오상순은 1920년대 '폐허'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인생의 허무를 주로 노래했다. 본관은 해주, 호는 공초(空超)·선운(禪雲). 성해(星海)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목재상을 운영하던 아버지 태연(泰兗)의 4남 1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나 효제국민학교를 거쳐 1906년 경신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귀국한 뒤로 한동안 전도사로 교회 일을 맡아보았는데, 이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성서와 철학책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김억·남궁벽·황석우 등과 친하게 지냈다. 1921년 종교를 그리스도교에서 불교로 바꾸고 조선중앙불교학교·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학교를 그만둔 뒤로는 8·15해방 때까지 방랑 생활을 했다. 그의 방랑벽과 담배를 하루에 20갑 넘게 피우던 습관은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1945년 서울로 돌아와 역경원 등을 전전하다 조계사에서 지냈으며, 1963년에 죽은 뒤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었고, 시 '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 방랑의 마음 / 오상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ㅡ '동명'에 발표 (1923)
▲ 작품의 이해와 감상
1
이 시는 일제 치하라는 현실의 질곡을 벗어난 이상향을 그리워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향은 ‘망망한 푸른 해원’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에’ 그리는 바다이다. 현실의 모든 고뇌로부터 떠난 자유와 안식의 바다이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 깊은 바닷소리’는 내 몸 속으로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지만, 그곳으로 갈 수 있었던 ‘때를 잃고’, 다만 끝없는 그리움으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발돋움하고 /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는 그 바다는 시인이 식민지라는 민족적 고통을 안고 꿈꾸는 곳으로, 결국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젊은 시인의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영혼이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푸른 해원’과 같은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루 200개비의 줄담배를 피우며 일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공초 오상순은 변영로와 함께 『폐허』 동인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는 등 숱한 기행(奇行)으로 화제를 뿌렸던 시인이다. 그는 평생을 이 작품의 제목처럼 ‘방랑의 마음’으로 전국을 떠돌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의 일탈’로 영위하려 하였다.
2
낭만적, 관념적, 명상적,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詩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오랜 동양적 이상을 표현한 시다. 이 詩는 두 편으로 된 연작시로서, 1923년 18호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를 쓸 무렵, 시인은 금강산 신계사 등 전국 사찰을 전전하며 방랑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때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대표작이다. 바다와의 합일을 통해 자유와 생명을 갈구하는 젊은 날의 이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대자연과의 합일이 주관적인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때로 한정된 현실로부터 벗어나 어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그 곳은 실재하는 곳일 수도 있고,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동경의 마음은 더욱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시의 자아 또한 그런 동경의 대상으로서 '바다'를 설정해 놓고 있다. 바다는 막힌 데 없이 망망하게 터져 있으며 풍성한 물결이 출렁거리는 곳이기에 현실의 한정된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방랑하는 자아의 영혼은 마침내 바다와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통해 바다는 다가오고, 그 향기마저 코에 서린다고 한다.
3
오상순(吳相淳, 1894.8.9 -1963.6.3)
은 1894년 서울 출생으로, 호는 공초(空超). 너무나 많은 담배를 피웠던 관계로 흔히 꽁초로 불린다. 경신학교(儆新學校)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남궁 벽(南宮璧)·염상섭(廉想涉)·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이 되고 처음으로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후 《폐허》를 통하여 계속 작품을 발표했는데, 초기 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4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 1930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동국대학교 전신)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과 담배연기, 고독 속에서 보냈다. 주요작품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 50여 편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공초 오상순 시선집',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이 있다.
그는 1920년대 초의 퇴폐주의 풍조 속에서 허무적이고 어두운 폐허를 그의 시사상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태초, 허무, 폐허, 태고 등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여 원초의 상태에 대한 향수를 가졌었다. 공초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허무는 개인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 지식인들 전체의 아픔으로 와 닿는 것이다. 만년에는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면서 허무를 초극하여 생명의 신비를 예찬한 철학적 단상으로 나타난다.
■ 첫날밤 / 오상순(吳相淳)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華燭洞房)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닷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이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 ……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久遠)의 성모(聖母)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孕胎)고
침침히 깊어간다.
ㅡ 1950년 3월호 잡지 '백민'에 수록
▲ 작품의 이해와 감상
1
이 시의 '첫날밤'은 속세 인간사의 남녀 관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를 종교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시상이 집결된 대목은 "아야 ……야!"로서 태초 생명의 비밀이 터지는 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ㅡ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2
시인 오상순(吳相淳, 1894~1963). 고독을 달래려 술은 못하면서도 나타나는 공초 오상순, 수요일날 석양이면 어김없이 들어서는 마해송을 비롯해
이명온, 정봉화, 김정태, 박인환, 이덕진, 이진섭,
정영교, 조능식, 이순재, 김호성, 차태진, 김은성,
백영수, 문일영, 박계주, 송지영, 오소백, 선우휘,
조덕송, 김용호, 천경자, 이봉상, 승정균, 조애실,
임긍재, 박고석, 김광식, 정한숙, 전광용, 정한모,
유두연, 왕학수, 조지훈, 김종문, 이진희, 이봉래,
김영주, 윤용하, 이완석, 한홍택, 김중희, 김수영,
양기석, 조영암, 양명문, 윤고종, 김창섭, 박서보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렵도록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고 밤이면 밤마다 포엠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술이 취하면 박인환과 차태진은 카운터 위까지 올라가 춤을 추다시피 기염을 토하는가 하면, 이덕진과 이규석은 팔을 걷어붙이고 싸움이나 할듯이 두리번거리며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청춘이다, 청춘. 멋지고 흥겨워야지."
카운터 위에 올라 기염을 토하는 두 사람을 향해 공초 오상순은 젊음이 부럽다고 술잔을 높이 들어 찬사를 보내고 나서 다시 담배를 피워 물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포엠 마담은 담배 두 갑을 사다 오상순에게 선사한 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그 정이 고마워서 인사를 올리면,
"여기를 한번 다녀가면 그래도 파적(破寂)이 되니까 오지. 가족들과 즐기다 가는 것 같아서."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잠시 감돌다 사라지면 또 눈을 감는 것이었다.
ㅡ 이봉구, '명동, 그리운 사람들' 中에서
/ 2020.12.10 편집 택..
youtu.be/V8mr-TIpMdg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재필에세이] 세상사는 이야기.. H에게- 자연예찬 (2020.12.11) (0) | 2020.12.11 |
---|---|
[명시감상] '시간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 샘 레벤슨 (2020.12.11) (0) | 2020.12.11 |
[명시감상]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마샤 메데이로스, '절반의 생' 칼릴 지브란 (2020.12.10) (0) | 2020.12.10 |
[명언한마디] '설렘이 없다면', '진정한 여행',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질문들' (2020.12.10) (0) | 2020.12.10 |
[명시감상] '공휴일' 김사인, '1년' 천양희, '가을날' 정희성, '가을에' '원시' 오세영 (2020.12.09) (0) | 2020.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