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칼럼] '목련꽃은 왜 북쪽으로 필까' 권오길 (2020.12.08)

푸레택 2020. 12. 8. 09:10



■ 목련꽃은 왜 북쪽으로 필까 / 권오길

비목에 수액이 흐르고 석불에 피가 흐른다는 봄이 왔구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 '목련화'의 노랫소리가 흥얼흥얼 귀청을 두드린다.

봄, 봄이 온다.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못 알아본다고 하던가. 아무튼 한 송이 목련꽃을 피우기에 얼마나 아리고 시린 겨울이 있었던가. 그 차가움을 겨우내 머금고 있었기에 목련꽃은 더욱 곱고 아름답다. 남녘엔 이미 목련이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 했을 터다. 이렇게 잎보다는 꽃을 먼저 피우는 것들에는 목련을 위시하여 산수유, 진달래, 철쭉, 개나리들이 있다. 녀석들은 지난해 봄부터 꽃눈, 잎눈 만들기에 들어가 늦은 가을에 이미 꽃봉오리를 완성해 놨다. 유비무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뒷걱정이 없다! 은은하고 따스한 봄기운이 뜰 안에 돌아치면 당장 꽃을 피우겠다는 심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핀 뒤에야 꽃이 피니 복사꽃, 배꽃 등이 그렇다.

목련나무에 살금살금 가까이 가서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살펴보자. 한눈에 봐도 꽃눈(花芽)과 잎눈(葉芽)이 또렷이 구분된다. 새끼손가락만한 통통한 꽃눈이 끝마디에 조롱조롱 달려있고 그 아래에는 코딱지만 한 잎눈이 달려있다. 꽃눈은 보드라운 솜털이 꽉 둘러싸고 있고 잎눈은 밋밋한 비늘눈이 덮고 있으니, 둥그스름하고 큰 것에는 봄꽃이, 마른 듯 길쭉한 것에는 연두색 봄눈이 들어있다. 봄이 와서 피어날 꽃들이 이미 벌써 우듬지(나무의 꼭대기 줄기)에 매달려 있다니!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선연한 목련 꽃망울들을 보라. 이파리 하나 없이 나무 하나 가득 주먹만 한 하얀 꽃이 수북이 매달렸다. 그런데 꽃송이들이 하나같이 북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다른 나무의 꽃이나 잎사귀들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목련꽃들은 죄다 반대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괴이한 일이다. 하여, 선현들이 이 꽃을 북향화(北向花)라 했다. 북향화에는 두 종류(변종)가 있다. 하나는 노래 가사의 '백목련'이고, 다른 하나는 '자주목련'이다. 자주목련도 물론 고개 방향이 백목련과 같다. 꽃잎이 자주색이고 피는 시기가 한 열흘쯤 늦는 것이 다르다.

그러면 왜 목련꽃은 다른 것들과 다르게 목을 북으로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꽃이나 잎이 해 쪽으로 굽는 것은 해를 받는 쪽의 생장호르몬(옥신)인 햇빛에 파괴되어 그 쪽이 성장(세포분열) 속도가 느리고 응달 쪽이 빠른 탓이다. 그런데 목련꽃은 반대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과학도 자연에 숨어있는 비밀을 다 알지 못한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고 한다. 목련화도 너무 일찍 핀 놈은 다치는 수가 있다. 특히 건물 벽 쪽 가까이 붙어있는 것은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 훨씬 빨리 피어나니 그만큼 당하기 쉽다. 모름지기 첫길은 언제나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어쨌거나 오는 봄을 한껏 즐길 것이다. 이 화사하고 찬란한 봄을 몇 번 맞이하고 죽을지 나도 모른다. ㅡ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경향신문 (2009.03.05)

/ 2020.12.08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