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칼럼] '풀만 먹는 소의 살찜' 권오길 (2020.12.08)

푸레택 2020. 12. 8. 10:48



■ 풀만 먹는 소의 살찜 / 권오길

거친 돌밭을 묵묵히 갈아매는 소처럼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는 석전경우(石田耕牛), 느릿느릿 뚜벅뚜벅 서두름이나 욕심 없이, 한발 한발 옆 눈 안 팔고 그저 묵묵하게 우직한 걸음으로 늠름하게 나아가는 우보천리(牛步千里), 눈빛은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지만 마음은 느긋하게 일보일보 내걷는 호시우보(虎視牛步)! 소를 닮으리라! 평생 주인을 위해 일해주고 나중에 몸까지 보시하는 소가 아닌가.

소는 당연히 포유강(綱), 소목(目), 소과(科)의 동물이며 소과에는 소, 들소, 양, 염소, 사슴, 고라니, 노루들이 속한다. 소과동물은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은 작고 몸통(배)이 훨씬 큰 편이며 4부위로 나뉜 반추위(되새김위)와 각질화된 딱딱한 발굽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새김위를 가진 동물을 반추동물이라 하고 발굽을 가진 동물을 유제류(有蹄類)라 하는데, 발굽이 하나인 말과 셋인 코뿔소처럼 홀수의 굽을 가진 것을 기제류(奇蹄類), 소나 돼지, 염소 같이 짝수(둘)인 발굽동물을 우제류(偶蹄類)라 한다. 야문 발굽은 돌산 같은 험한 지형에 살기 위해 적응한 장치다.

소과동물은 모두 반추동물이다. 초식동물은 성질이 양순하고 특별한 공격방어무기가 없어 언제나 힘센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 그래서 풀이 있으면 빨리 뜯어먹어 일단 위에 그득 채워 넣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서 되새김질을 한다. 아주 멋진 적응이요, 진화다! 가장 큰 제1위인 혹위(겉에서 보아 혹처럼 불룩불룩 튀어나와 붙은 이름)에 집어넣은 짚은 제2위인 벌집위로 넘어가 둥그스름한 덩어리(되새김질감)가 되고 그것을 끄르륵 트림하듯 토하여 쉰 번 이상 질겅질겅 씹어 되넘기면, 제2위를 지나 제3위인 겹주름위, 제4위인 주름위를 지나 작은창자로 내려간다.

소와 미생물은 공생한다. 반추위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반추동물에게는 없어서 안 되는 아주 중요한 함께 사는 생물이며, 혐기성세균과 원생동물이 주를 이루고 균류가 소량 차지한다. 이것들은 거의 다 혹위에 살며, 결국 혹위는 커다란 분해탱크(발효 통)로 꿈틀꿈틀 움직여(연동운동) 여물과 침과 미생물을 버무려 섞으며, 먹은 것은 여기에 9~12시간을 머문다. 드디어 세균들이 식물의 세포벽을 얽어 만드는, 소화시키기 어려운 섬유소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섬유소에서 만들어진 포도당을 또다시 세균들이 발효시켜 휘발성 지방산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이나 비타민까지 합성한다. 어쨌거나 이제 소가 풀만 먹는데도 살(단백질)이 찌고 비계(지방)가 끼는 까닭을 알았을 것이다. 물론 풀(세포)에도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소가 살찌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가 먹는 쌀밥에도 탄수화물 21%, 단백질 10%, 지방이 3% 정도 들었듯이 말이다.

외양간에 드러누워 따스한 겨울 양광을 받으며 지그시 눈 감고, 끄덕끄덕 고개질 하면서, 꿀꺽꿀꺽 여물 토해내 되새김질하는 소의 모습에서 평온함과 여유를 찾는다. 정녕 정각(正覺), 해탈이라는 올바른 깨달음을 소에서 얻지 않는가. ㅡ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출처] 경향신문 (2009.04.02)

/ 2020.12.08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