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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조선 역병에 맞서다, 허준박물관.. 동의보감과 허준 (2020.11.10)

푸레택 2020. 11. 10. 20:33

■ 동의보감과 의성(醫聖) 허준을 만나다

◇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

따뜻한 햇살이 풀잎에 내려앉는 늦가을 오후, 집을 나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을 찾았다. 9호선 마곡나루역에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가양역에서 내렸다. 가양역 1번 출구에서 허준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는 길을 허준테마거리라 부르는데 그곳에는 허준 선생의 동상을 비롯하여 명언을 아로새긴 색색의 캐릭터들이 세워져 있다. 그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가니 허준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 건물이 보인다. 코로나19 단계 격상으로 문을 닫았다가 마침 다시 전면 개방하여 관람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큐알코드 확인을 한 후 입장했다. 먼저 3층으로 올라가서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실부터 관람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조선, 역병에 맞서다 라는 주제로 두 달간 국립중앙박물관 순회전(2020.10.06~12.06)이 열리고 있었다. 3층 전시실은 허준기념실과 동의보감실을 비롯하여 약초약재실, 의약기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허준의 출생과 내의원 활동, 동의보감에 관한 기록들을 볼 수 있으며 약초 약재 체험 활동도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불청객처럼 불쑥 나타나 우리 일상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처럼 조선시대에도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특히 조선을 습격한 역병 두창(痘瘡)에 관한 기록들이 당시의 가슴 아픈 실상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날 천연두라 부르는 두창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인데 조선시대 때 창궐했다. 두창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거나, 겨우 살아남아도 얼굴에 마마자국을 천형처럼 달고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아픔이 온전히 느껴진다. 전염병에 대한 변변한 예방법도 치료제도 없던 그 시대에 그래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염병의 공포를 이겨내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의지가 느껴졌다.

두창과 함께 홍역(紅疫)에 관한 기록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천연두를 두창, 홍역을 마진(痲疹)이라고 했다. 당시 수많은 영유아들이 이런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버려진 아이들도 많았다고 하니 그 참혹한 실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두창과 홍역은 초기 증상이 비슷해 구별이 힘들었는데 허준 이후 두창과 홍역을 구분하는 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홍역은 조선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홍역으로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때 영유아 사망률이 30%를 넘었고 그즈음은 홍역이나 또다른 전염병으로 집집마다 어린 아이를 잃는 경우가 많아 출생신고도 늦게 하는 가정이 많았다고 한다.

많이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지만 16세기 초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중남미 아메리카로 전파된 천연두와 홍역으로 95%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로 인하여 찬란했던 잉카(Inca) 제국, 아즈텍(Aztec) 문명, 마야(Maya) 문명도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5월 8일 천연두 완전 퇴치를 선언했다. 천연두는 인간이 싸워 이긴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된 것이다.

개인사(個人史)로 먼 옛날의 일이지만 우리집 나의 둘째 누나도 홍역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홍역을 앓지 않은 둘째 동생을 보며 홍역은 죽어서도 한다는데... ” 걱정하시며 빨리 가볍게 앓고 지나가기를 기원하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 경북 군위 첩첩산골에 사셨던 셋째 이모님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전염병 홍역으로 어린 자식 아들과 딸들 다섯을 줄줄이 잃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역을 치렀다 라는 말은 곧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었다는 뜻이 된 이유를 알 듯 하다. 요즘이야 웬만한 전염병은 어릴 때 예방접종으로 항체를 형성하여 면역력을 갖게 되었지만 예방접종이나 항생제 투여를 제때에 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손쓸 겨를도 없이 귀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항생제의 발견과 백신의 개발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최대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허준(許浚)은 조선 중기에 내의원에서 선조의 어의(御醫)로 활동하면서 동의보감을 펴내 우리나라 의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분이다. 허준은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서자로 태어났지만 차별받지 않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경전과 사서 등에 밝았다고 한다. 허준의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허준이 어떤 계기로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내의원에 들어가 양예수 등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였으며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이듬해 당상관의 반열에 올랐다.

허준은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갈 때 어의로 선조 옆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 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호종공신이 되었다. 선조의 명을 받아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편찬에 착수하였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 어의로서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바로 풀려나 광해군의 어의로 활동하면서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1610년 완성된 이 책은 총 25권 25책으로 당시 국내외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했다.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 등 5편으로 구성된 백과전서(百科全書)로서 오늘날까지 애용되고 있다. 동의보감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때 허준과 동의보감을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대장금이 역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라고 하는데 드라마 허준도 그에 못지 않게 인기가 좋았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허준의 스승으로 소설이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류의태(柳義泰)라는 사람은 완전 허구의 가공 인물이며, 정작 허준의 스승은 드라마에서 허준과 경쟁관계인 라이벌로 나오는 양예수라는 것이다. 또한 소설과 드라마 속에는 허준이 스승 류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고 나오는데 이것도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얘기라고 한다. 허준은 해부와 수술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제자 허준을 위해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도록 한 살신성인의 스승이었다는 류의태는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류의태라는 인물 자체가 문헌과 기록에 없는 가짜 인물이다. 비록 소설이고 드라마지만 역사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류의태는 허구의 가공 인물이지만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유이태라는 실존 인물이 있다. 실존 인물 유이태(劉以泰·1652~1715)는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펼쳤다고 한다. 그는 허준보다 약 100여 년 후의 인물로 천연두·홍역에 대한 의학서인 마진편을 남겼다. 고향인 거창을 떠나 산청군 생초면 신연마을로 와서는 돈도 밝히지 않고 신분도 상관없이 아픈 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경남 산청에는 실존인물인 명의 유이태는 간 곳 없고 드라마 속 허구의 인물 류의태에 대한 홍보가 넘쳐난다고 한다. 류의태 동상과 가묘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사람들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 왜곡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각인된 사고는 정작 진실된 이야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허준박물관을 안내하는 분이 3층 전시관을 관람한 후 옥상에 있는 약초원도 둘러보라고 귀띔해 주신다. 약초원에는 수백 가지 약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늦가을이라 꽃도 다 지고 나무도 잎을 떨구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봄 파릇파릇한 새싹이 다시 돋아날 약초원을 기대해 본다. 옥상정원에는 북한산과 한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다. 멀리 백운대와 만경대, 문수봉, 보현봉이 아스라이 보이고 도봉산도 눈에 들어온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도 볼 수 있으며 눈을 한강으로 향하면 방화대교와 가양대교의 멋진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멀리 산기슭에도 공원 정윈수에도 거리 가로수에도 가을이 찾아와 푸른 잎들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변하고 있다. 식물학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단풍나무로 꼽은 복자기나무가 빨갛게 물들고 있다. 하늘 드높은 가을, 온 산과 들의 나무들은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인간 세상사 아는지 모르는지 붉게 노랗게 물들어가며 잎을 떨구고 추운 겨울을 준비한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을 책갈피에 꽂아 넣어두었던 아련한 추억 속 동심이 아름답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코로나로 지쳐가는 이 수상한 시절이 빨리 끝나고 평범한 일상의 삶을 되찾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구암 허준 선생의 명언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 의원들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으며 원천을 캐지 않고 지류만 찾는 것이니, 병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구암 허준의 '동의보감' 중에서)

/ 2020.11.10(화) 가을 저녁에, 김영택


△ 허준박물관 가는 길
° 지하철 9호선 가양역 1번 출구(도보 10분)
5호선 발산역 3번 출구(버스 6630, 6657)
° 버스 6631, 6643, 6645, 6712, 652, 972번

△ 관람 및 요금 안내
° 평일 하절기(3~10월) 10:00~18:00
동절기(11~2월) 10:00~17:00
° 토, 일, 공휴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 요금 어른(19~64세) 1,000원
초·중·고 학생 및 군경 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