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 걷기 영양 건강 산책

[풀꽃산책] 서울식물원의 늦가을 풍경.. 낙우송, 양버들, 수양버들, 물푸레나무 (2020.11.02)

푸레택 2020. 11. 2. 22:59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주세요

낙우송, 양버들, 물억새, 수양버들, 물푸레나무

● 물푸레나무 사랑 / 나병춘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40년이 걸렸다
물푸레나무는 길가에 자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얼마나 바랬을까

중학교 생물 선생님은 허구한 날
지각을 일삼는다고 회초리를 후려쳤는데
그것이 물푸레나무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늦가을 도리깨질할 때마다
콩, 녹두, 참깨를 털어내면서도
그게 물푸레나무라 얘기해주지 않았다

아버지 선생님 탓은 안 할란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들꽃을 사랑한다면서도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이렇게 오래토록 지각하였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이 땅의 시어미들은 며느릴 호되게 다그치면서도
그 풀꽃 이름들 하나 하나 이쁘게 부르면서
넌 잡초야, 구박하지 않았다

● 물푸레나무 / 박정원

사랑이여
그대가 물푸레나무인 줄 몰랐다
물푸레― 라고 숨죽여 읊조리면
그대 우러르는 먼 산이
시 한편 들려주고
돌아보는 뒷모습이
그림 한 장 남겨줬다
물푸레나무 아래서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듯이
사랑이여
나는 그대가 사랑인 줄 몰랐다
웃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치어다볼 때마다
정강뼈 아래 물빛을 온통
물푸레로 물들이던
사랑이여
물푸레 옆에서 물푸레를 몰랐다
점점 내가 물푸레로 번져가는 것을 몰랐다
물푸레 물푸레 되뇌기만 하면서
맑은 물 한 종지 건네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 김명인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이 겉옷을 걸어두고
물관부를 따라가 우듬지 개울에서 멱을 감는지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
물푸레나무 그늘 쪽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한낮을 내려놓고 저녁 나무가
어스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머리를 빗질하려고 문밖으로 나와 앉은
그윽한 바람의 여자와 나는 본다
밤의 거울을 꺼내들면
비취를 퍼 올리는 별 몇 개의 약속,
못 지킨 세월 너무 아득했지만
내 몸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 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도 얼비치던 그 여자의 푸른 모습,
나무가 거기 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
나무를 걸어놓았던
흔적이 있던 그 자리에
나무 허공이 떠다닌다, 나는
아파트를 짓느라고 산 한 채가 온통 절개된
개활지 저 너머로 본다
유난한 거울이 거기 드리웠다
금세 흐리면서 지워진다

●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 이향아

여러 가지가 함께 좋을 때
그러나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할 때
나는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꼭 하나만 골라야 하므로 무수한 것을 외면해야 할 때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으므로 어중간한 자리에서 길을 잃을 때
나는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하나의 길을 걸어서 인생을 시작하는 일
한 사람과 눈을 맞춰 살아가는 일
그리하여 세상이 허망하게 달라지는 일
눈 감고 벼랑에 서는 일 두려워 나는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여럿 가운데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죽여야 하는 때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길고 낯선 이름
더듬거리는 나를 웃으려는가
잘라낼 수 없는
몰아낼 수 없는
돌아서 등질 수 없는 아픔을
지조 없다 하려는가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나 끝끝내 너 하나를 버리지 않아
이제는 안심하고 잠들 수 있겠다

● 옛날과 물푸레나무 / 황금찬

이제는 옛날, 그보다도 먼 내 어린시절 누리동 하늘 숲속에 외딴 초막이 내가 살던 옛집이다. 그 집 굴뚝머리에 몇 십 년이나, 아니 한 백 년 자랐을까 큰 물푸레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불며, 비가 올 때면 나뭇잎 쓸리는 소리와 비 듣는 가락이 흡사 거문고 소리 같아서 우리는 그 나무를 풍악나무라고 했다. 늦여름이나 장마철이 되면 낮은 구름이 자주 그 나무 위에 내려앉곤 했다. 물푸레나무는 덕이 많고 그래 어진 나무다. 어린이 새끼손가락 보다도 가는 물푸레나무는 훈장 고선생님의 손에 들려 사랑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 농기구의 자루가 되어 풍년을 짓기도 했다. '화열이'가 호랑이 잡을 때 쓴 서릿발 같은 창자루도 물푸레나무였고 어머님이 땀으로 끌던 발구도 역시 그 나무였다. 물푸레나무 굳센듯 휘어지고 휘어져도 꺾이지 않고 다시 서는 어느 충신과 효도의 정신이며 성현의 사랑이다 나에게 이 물푸레나무의 이름을 다시 지으라고 한다면 나는 성현목이라고 이름하리라 물푸레나무- 

■ 아낌없이 내어 주는 물푸레나무

염색제로 쓰이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꽃과 열매로 혹은 나무껍질로 염색을 합니다. 그런 나무들 중에는 물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가 있습니다. 예전에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이 나무의 껍질로 염색을 하였습니다. 청색이 도는 회색 승복이 스님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의 공이 컸습니다. 이름하여 '물푸레나무' 물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라고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입니다. 개화기는 4~5월이며 열매는 날개가 달린 시과(翅果)입니다. 물을 들일 때 쓰이는 나무라 하여 '수청목' 또는 '수정목'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자라는 물푸레나무가 북유럽 켈트족의 '우주목'으로 신화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식물들은 지구의 위도를 따라 고르게 서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물푸레나무의 껍질은 약으로 사용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눈을 밝게 하고 핏발이 서고 아픈 것을 낫게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서도 눈병으로 크게 고생을 하셨는데 그때 쓰인 약이 물푸레나무의 껍질인 '진피'였을 거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푸레나무는 탄력이 있어서 예전에는 도리깨 등 농기구를 만드는데 사용했으며, 소품 가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물푸레나무로 만든 책상과 식탁은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나무의 탄력을 이용하여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물푸레나무 가지로 설피라는 것을 만들어 신발 위에 신기도 했지요. 예종 때에 형조판서였던 강희맹은 곤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버드나무나 가죽나무가 때려도 아프지 않아 죄인들이 자백을 하지 않는다고 물푸레나무로 바꾸어 달라는 상소를 임금께 올렸다고 합니다. 물푸레나무의 탄력으로 인한 아픔이 다른 나무에 비해 강도가 높았던 것이지요. 전설의 4번 타자 이승엽은 탄력이 뛰어난 물푸레나무로 만든 야구방망이만 사용했다고 하니 이승엽 선수도 나무의 특성을 잘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들은 타인을 위해 제 한 몸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 깃들어 사는 개체들이 수백 종(種)이라고 합니다. 먹이와 집으로, 치료제와 생활용품으로 제 몸을 희생하면서 많은 개체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불평하지도 않고 노동이 과하다고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묵묵히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그런 나무들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지구가 지탱해 온 것 같습니다.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봅니다.

/ 시인, 숲해설사 장병연

/ 2020.11.02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