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탓, 고드름 김동인 (2020.05.18)

푸레택 2020. 5. 18. 22:54

● 탓 / 김동인

 

곱게 내리고 싶은 비가

거세게 창문을 내리친다

천둥소리 우르르 쾅쾅

나뭇가지 사방으로 흔들리고

먹구름 가득히 밤이 된 듯 하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거칠게 떨어지는 빗물의 모습이

무서운 영감탱이 할배 얼굴 같다

지팡이 손에 들고 뒷짐 지고는

고함치는 무서운 동네 할배 같다

곱게 내리고 싶은 비가 탓을 한다

바람 때문에 힘들다고

먹구름 때문에 날 싫어 한다고

영감탱이 할배 얼굴을 하고는

남 탓을한다

이곳에 널 데려다 준 게 바람이거늘

먹구름이 널 안고 있다가 놓아 준 것을

바람과 먹구름이 없었으면

너는 여기 떨어질 수도 없는 것을

 

● 고드름 / 김동인

 

고드름이 달렸다

구불구불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쪼르르 매달려 있다

어느 거부터 따 볼까?

제일 큰 놈을 골라 점프를 해 본다

하나만 딴다는 것이 그만

이리저리 팔만 흔들어댔다

덕분에 메달린 고드름들이 주르르

와장창 바닥에 다 떨어졌다

안 다친 게 다행이다

그래도 밤새 눈이 얼었다 녹았다

열심히 만들어진 고드름이 깨진 건

너무 아쉽기만 하다

깨진 고드름을 살펴보다 그 중에

가장 큰 걸 하나 집어들었다

와드득 한 입 깨물어 먹어본다

눈 맛이 난다

물 맛이 난다

먼지 맛이 난다

먹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맛

절대 공장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맛

고드름 맛이 난다

내일은 조심해서 꼭 제일 큰

고드름을 따야지

 

/ 2020.05.18 이천에서 봄비 김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