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화동 시대의 꿈
(보성고 56회 선배님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어제(2007년 12월4일)는 여의도에 있는 미디어포커스라는 회사에 가서 DVD 녹화와 녹음을 하고 왔습니다. 이 DVD는 고등학교 졸업 41주년과 회갑을 맞이한 동문들의 연말 송년회에서 시연을 하고 나누어 줄 것입니다.
생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준비해 간 원고를 읽자니 진땀이 났습니다. 중 고교 시절 웅변을 했고 시인이 된 뒤에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시 낭송도 했었지만 막상 무비카메라 앞에 서니 말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아래의 글이 그 원고입니다.
‘혜화동 시대의 꿈’
보성고 졸업 40년, 인생 60년
보성고 56회 동문 친구들이여!
우리가 1966년 1월 춘원 이광수 선생의 글에 이상준 선생이 곡을 붙인 교가를 제창하고 학교를 졸업하던 41년 전 그날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100년 전통의 자랑스러운 보성은 지금 송파구 방이동에 있지만, 우리가 꿈과 희망, 설렘 속에서 인생의 봄날을 보낸 곳은 혜화동 1번지, 아니 동문 모두의 마음 속 추억의 동산에 영원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동산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우정과 사랑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보성이라는 두 글자, 그리고 56이라는 따뜻한 숫자를 보거나 생각하면 어느새 아득히 먼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청춘의 피 돌기가 시작됩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럽던 교사(校舍), 교실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있던 ‘실력으로 실천하자, 책임을 완수하자, 솔직한 성격을 갖자’라고 붓글씨로 쓰여 있던 교훈, 봄이면 탐스럽게 피어나던 보성의 꽃 목련화, 학교 울타리를 뒤덮던 샛노란 개나리가 오래된 영화의 필름처럼 돌아갑니다.
어느 해 봄날 어느 반에서는 2층 창 밖의 우윳빛 목련 꽃에 취한 나머지 그 꽃을 따려다 아래로 곤두박질친 친구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운동장 옆 큰 바위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쉼터이자 사색의 공간이었습니다. 중학교 신입생들이 고등학교를 거쳐 등교하다가 화장실 창문에서 나오는 담배 흰 연기를 보고 놀라 교무실로 뛰어가 불이 났다고 했던 해프닝도 있었지요. 인경문학의 밤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강당을 가득 메운 여고생들이 전통의 맥을 잇는 보성문학의 서정과 정취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성만이 두발이 자유로웠고, 교복 왼쪽 가슴에 이름표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일직과 숙직, 주번제도가 없었으며 교무실도 학과별로 배치했고 출ㆍ퇴근이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보성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친다는 자긍심이 남달랐습니다. 이 같은 전통사학의 자율정신은 우리 보성인의 몸에 평생 배어 있습니다.
강정룡 교장 선생님과 김덕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문상 손동인 김명현 김계곤 김한수 홍상유 선생님 등 고3시절 담임은 물론 당대의 유명 화가 이마동 님, 설악산인 김종권 님, 박질리가 애칭이던 박일환 님, 미소가 아름다웠던 유도인 김덕수 님, 나바론 김영택 님, 짱구 이창구 님, 아티스트 유영필 님, 할아버지 김영현 선생님 등 은사님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보성중학 시절 무턱 유경상 선생님은 영어를 처음 배우는 1학년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무턱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십여 개의 회초리가 모두 부러져야 직성이 풀리셨습니다. 키가 크다고, 잘 웃는다고, 숙제 안 해왔다고, 스펠링이 틀렸다고 매일 종아리 맞던 일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우리는 어느 학교 출신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으며 행복한 가정도 이뤘습니다. 공무원, 직장인, 외교관, 교수, 교사, 의사, 언론인, 은행원 등 평생직장에서 나이테를 넓혀온 우리는 50대 후반이 되면서 현직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지금은 은퇴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세파에 부대끼다 보니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동문도 있고, 오랜 세월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외국으로 이민간 동문들은 그곳에서 어렵사리 지경(地境)을 넓혀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즐기게 된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지난 세월 동안 자주 혜화동 1번지 교정에 다녀오듯, 타국에 있는 친구들은 모국을 생각하면 모교와 동문들이 그리울 것입니다.
1996년 봄 모교교정에서 열린 졸업 30주년 홈커밍데이에 시인이 된 동문은 이런 시로 재 상봉의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연어들의 귀가>
친구야! 여기는 오대양의 연어들이
떼 지어 모여드는 남대천의 고향집
보고 싶던 얼굴 위에 쌓인 세월이 하얗다
밤하늘의 별처럼 시인들이 많아도
어떻게 만남의 이 기쁨 노래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 그리는 화가들이 모여서도
어떻게 우리의 이 표정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친구야! 오늘은 무지개 빛 울타리 안에서
혜화동시대의 꿈을 다시 꾸는 날이다
담쟁이 휘감기던 보금자리 앞에는
올 봄처럼 백 목련이 해마다 꽃을 피웠지
그 날 연습한대로 아직 날지 못했어도
우리 손잡고 다시 먼 바다로 나가자
친구야! 오늘은 모두 시인되는 날이다
나는 죄가 많아 성경 다 읽은 뒤에야
시인 촌으로 가는 배 뒤따라 가려 했는데
아니야, 너희들을 만났으니 시를 써야 해
오늘은 30년을 기다려온 봄 소풍 가는 날
여기는 우리들의 즐거운 '보성나라'
친구야! 한 폭 두 폭 그린 너의 인생 수채화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투명하구나
10년 수레 다시 여러 바퀴 돌아도
56회 우리들의 고향집은 '어머니 나라'
넉넉한 그늘, 손짓하는 바람, 인경소리
삼각산이여! 한강의 깊음이여! 보성의 연어들이여!
56회 동문 친구 여러분!
우리가 이제 인생의 노을이 내려 비치는 언덕에서 뒤돌아보니 지난 41년간 고인이 된 동문 친구들이 18명이나 됩니다. 서울대 법대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진 노재후 동문이 가장 먼저 우리 곁을 떠났고 구 홍, 김형택, 박두현, 서병태, 서신원, 서재인, 손동길, 신현백, 양세길, 윤여강, 이광선, 이현재, 임병우, 장지균, 조성우, 한상균, 한효성 동문 등이 산업현장에서 또는 불의의 교통사고와 지병 등으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구 홍 동문을 위한 10주기 추모 시비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친구들이 마련한 시비에는 구 동문의 <점> 이라는 시가 새겨졌습니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어찌어찌 하여 여기 하나
태초의 빛으로부터 흘러 흘러 여기 한 사람의 점
다시 억겁의 시간 흐르고 또 흘러
그 점 하나 영원을 비행하리
구 홍 동문은 그가 남긴 시처럼 지금도 영원을 날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동문 여러분!
2006년 가을 어느 날 우리들이 한강 잠실 쪽 선착장 식당에서 ‘한강의 물의 깊음이 우리의 뜻’인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졸업 40주년을 자축한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보성 개교 10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해서 긍지의 보성 100년을 마음에 품고, 보성 도약의 100년을 기원했었지요. 그날의 슬로건처럼 우리는 민족을 담은 백 년의 전통이 자랑스럽고, 세계를 품는 보성의 미래가 탄탄해서 마음 든든합니다. 앞으로 우리 비록 몸은 늙어가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기쁨과 평화, 행복만을 곁에 두면서 살아갑시다.
회갑을 맞은 친구들이여! 우리 모두 석양이 아름답게 비치는 집 석가헌(夕佳軒)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마음속 고향, 보성은 영원할 것입니다. 보성 56회도 영원할 것입니다.
[출처] 보성고 56회 선배님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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