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황동규, 봄날은 간다 정일근, 봄날은 간다 기형도, 고향만리 조명섭, 미사의 노래 조명섭 (2020.04.26)

푸레택 2020. 4. 26. 11:34

 

 

 

 

 

 




●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 황동규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미아리 점쟁이집 고갯길에 피었습니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파주 인천 서부전선 능선마다 피었습니다

백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방배동 부잣집 철책담 위로 피었습니다

철쭉꽃이피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상상봉 구름 밑에 피었습니다

라일락꽃이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 후문 뒤에 피었습니다

유채꽃이피었습니다

서귀포 앞 남마라도 산록에 피었습니다

안개풀꽃이피었습니다

망월리 무덤 무덤에 피었습니다

망초꽃이피었습니다

동두천 생연리 봉순이네 집 시궁창에 피었습니다

수국꽃이피었습니다

순천 송광사 명부전(冥府殿) 그늘에 피었습니다

칸나꽃이피었습니다

수도육군통합병원 화단에 피었습니다

백일홍꽃이피었습니다

태백산 탄광 간이역 침목가에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꽃이피었습니다

봉천동 판자촌 공중변소 문짝 앞에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경북 도경 국기 게양대 바로 아래 피었습니다

그러나

개마고원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영변 약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은율 광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마천령산맥에 백두산 천지에

그렇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무-슨-꽃-이-피-었-는-지

무슨꽃이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나는 못보았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 봄날은 간다 / 정일근

 

벚꽃이 진다, 휘날리는 벚꽃 아래서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더라, 그런 늙은 유행가가 흥얼거려진다는 것,

내 생(生)도 잔치의 파장처럼 시들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늘어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경축 제40회 진해 군항제 현수막이 보인다

40년이라, 내 몸도 그 세월을 벚나무와 함께 보냈으니

쉽게 마음 달콤해지거나 쓸쓸해지지 않는다

 

이 나무지? 벚나무 아래서 그녀와 만나는 것을 지켜본 옛친구는

시들한 내 첫사랑을 추억한다, 벚나무는 몸통이 너무 굵어져버렸다

동갑내기였던 그녀의 허리도 저렇게 굵어졌을 것이다

 

담배를 피워 물고 친구는 지나가는 말로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던 유씨와 류씨 성을 가진 친구들의 뒤늦은 부음을 전한다

친구들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떠올랐으나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류씨 성을 가진 친구는 나와 한 책상을 썼는데... 잠시 쓸쓸해졌으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이제 그둘은 이 별에 없다

벚나무 아래서 만났던 첫사랑 그 소녀도 없다

터질 것처럼 뛰는 가슴을 가졌던 열일곱 나도 없다

 

돌아보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꽃이 날린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일 뿐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봄날은 간다

시들시들 내 생(生)의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소읍小邑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宿醉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 봄날은 간다 / 작사 손로원, 작곡 박시춘, 노래 최백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고향만리 / 작사 유호, 작곡 박시춘, 노래 조명섭


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산천 가는길이 고향산천 가는길이
절로 보인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땅에 홀로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주어 우는거냐 몰라우는거냐
기다리는 가슴속엔 기다리는 가슴속엔
고동이 운다

날이 새면 만나겠지 돌아가는 배
지난 날 피에 맺힌 피의 조각을
바다위에 뿌리면서 나는 가리다
물레방아 돌고도는 물레방아 돌고도는
내 고향으로


● 미사의 노래 / 작사 작곡 이인권, 노래 조명섭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슴에 안고서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오
저 멀리 니코라이 종소리 처량한데
부엉새 울지마라 가슴 아프다

두 손목 마주잡고 헤어지던 앞뜰엔
오늘도 피었고나 향기 높은 다리아
찬 서리 모진 바람 꽃잎에 불지마라
영광의 오실 길에 뿌려보련다

가슴에 꽂아주던 카네이션 꽃잎도
지금은 시들어도 추억만은 새로워
당신의 십자가를 가슴에 껴안고서
오늘도 불러보는 미사의 노래


/ 2020.04.26 편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