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새와 산, 꽃밭과 순이, 이 비 개면, 진달래, 아이들한테서 배워야 한다 이오덕 (2020.04.22)

푸레택 2020. 4. 22. 08:15

 

 

 

 

 

● 새와 산 / 이오덕

 

새 한 마리

하늘을 난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 꽃밭과 순이 / 이오덕

 

분이는 다알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맘에 든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제일 예쁘니?

채송화가 좋지?

그래도 순이는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되었던 포플러 막대기가

 

● 이 비 개면 / 이오덕

 

이 비 개면

학교 가는 고갯길엔

뻐꾹채꽃이 피고

살구나무 푸른 잎 사이

새파란 열매들

쳐다보이겠다

 

이 비 개면

산기슭 참나무 숲에서

장난꾸러기 꾀꼬리들

까불대는 금빛 목소리

차랑차랑 울려 오겠다

 

아버지는 못자리 씨를 뿌리시고

나는 쇠먹이 풀을 하러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야지

 

낫을 갈아 망태기에 넣고

동무들을 불러

뻐꾸기 울어대는 골짜기로 갈까?

아카시아꽃 환한 냇가로 갈까?

 

밤이면 별들도 눈물을 씻고

조금은 멀리 떠서 어리둥절하겠지

땅에서 울려 오는 개구리 소리에

푸른 식물들의 그 서늘한 호흡에

 

이 비 개면

흙담 위 앵두나무

짙푸른 잎사귀

그 속에 새파란 열매들

쳐다볼 수 있겠다

 

● 진달래 / 이오덕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무꾼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고개이면

너는 어디든지 피었었다

 

진달래야

너는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강산이

그리도 좋더냐?

 

찬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왼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 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 오고

낮이면 흰 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오는 산고개마다

누굴 위해 그렇게도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소리 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리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길을 넘어질 뻔하면서

두 손으로 너를 마구 따먹는 게 좋았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시들어지는

네 마음, 나같이 약하면서도

약하면서도…

 

● 아이들한테서 배워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산과 들에서, 논밭에서,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면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땅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글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태극을 그려 놓은 네모난 천에 나라가 잇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다. 이 강산이다. 이 강산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 그리고 그 풀과 나무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과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이요 겨레 사랑이다. 이것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뿌리다. 이 뿌리가 없이는 어떤 나라 사랑도 겨레 사랑도 다 헛것이고 빈말이고 속임수다.

 

그것은 다만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막히는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갇혀 있던 교실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억눌린 자리에서 풀려나 비로소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힘, 사람의 힘은 이렇게 해서 비로소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도, 온갖 어려운 일을 이겨 내는 힘도 죄다 스스로 즐겨하는 데서 생겨날 수 있다는 이 사실, 이 진리를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배워야 한다. ㅡ 이오덕

 

♤ 이오덕(李五德): 1925~2003

 

경북 청송 출생, 1943년 영덕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초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교장을 지냈다. 43년간 교직에만 전념했으나 1986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교육행정에 대한 반감으로 스스로 퇴직하였다.

 

1954년 〈소년세계〉에 동시〈진달래〉를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별들의 합창〉(1966), 〈탱자나무 울타리〉(1969) 등의 동시집을 출간하였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한국일보〉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다.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걸러내기 위해 1992년 〈우리문장 바로쓰기〉와 1995년 〈우리글 바로쓰기〉(전3권)를 집필하였다.

 

교육현장에서 쓰는 '글짓기'라는 용어를 '글쓰기'로 고쳐 쓸 것을 주장하였고, 어린이들이 쓰는 말과 글 자체를 뛰어난 문학작품이라 여겨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일하는 아이들〉(1978) 등 10여 권에 이르는 어린 제자들의 문집을 출판했다.

 

아동문학의 진로와 관련하여 기존 아동문학을 '민족의 운명이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아독존의 심리 세계만을 희롱하여 이국적인 것, 환상적인 것, 탐미적인 것, 혹은 감각적인 기교만을 존중하는 경향'(〈시정신과 유희정신〉, 1977)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시정신을 옹호했다.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1965),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 외에〈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1984),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1993), 〈우리말 바로쓰기〉(1990), 〈문학의 길 교육의 길〉 등 5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한국아동문학상(1976), 단재상(198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상(1999), 은관문화훈장(2002)을 받았다.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리면 광월리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출처] Daum 백과 발췌 / 2020.04.2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