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감나무 있는 동네 이오덕, 충족되지 않은 상태의 즐거움 정현종, 청혼 조기영 (2020.04.20)

푸레택 2020. 4. 20. 22:56

 

 

 

 

 

 

 

 

 

 

 

● 감나무 있는 동네 / 이오덕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둣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 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그 아름다운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 충족되지 않은 상태의 즐거움 / 정현종

 

무슨 욕망이든

충족되지 않은 상태는 즐길 만하다

그 상태는

충족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또 불만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이상하게 술렁거리고

항상 시작하고 있는 것 같고

시간이 무슨 싹과도 같이 느껴지는

그런 상태의 소용돌이 속에 있게 한다

 

충족되지 않은 상태의 즐거움이여

 

♤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광진을 당선인의 남편 조기영 시인이 쓴 청혼시(詩)가 재조명받고 있다. 조 시인은 고 당선인과 결혼 전 희귀병인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어, 고 당선인에게 이별을 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 당선인은 조 시인의 이별을 거절하고 계속 만남을 이어갔다고 전해졌다. 이후 조 시인은 고향 정읍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이후 서울로 돌아와 다음과 같은 청혼시(詩)를 보냈다고 한다.

 

다음은 조 시인의 청혼시(詩) 전문.

 

● 청혼 / 조기영

 

외로움이

그리움이

삶의 곤궁함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작은 옥탑방에도

그대를 생각하면

까맣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내 마음은

이마에 꽃잎을 인 강물처럼 출렁거렸습니다

 

늦은 계정에 나온 잠자리처럼

청춘은 하루하루 찬란하게 허물어지고

빈 자루로 거리를 떠돌던

내 영혼 하나 세워둘 곳 없던 도시에

가난한 시인의 옆자리에

기어이 짙푸른 느티나무가 되었던 당신

 

걸음마다 질척이던 가난과 슬픔을 뒤적여

밤톨같은 희망을 일궈주었던 당신

슬픔과 궁핍과 열정과 꿈을 눈물로 버무려

당신은 오지 않는 내일의 행복을 그렸지요

그림은 누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눈이 시렸을뿐

 

수많은 기억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흩날려버릴 먼 훗날

어려웠던 시간 나의 눈물이

그대에게 별빛이 되고

나로 인해 흘려야 했던 그대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다시 별빛이 될 것입니다

 

가을을 감동으로 몰고가는 단풍은

붉은 마음과 헛됨을 경계하는

은행의 노란 마음을 모아

내 눈빛이 사랑이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의 마음속으로 숨어버린 그 날 이후

내 모든 소망이었던 그 한마디를 씁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푸른 하늘에

구름을 끌어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쓰며

천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날들입니다

 

[출처] 아주경제신문 2020.04.20

 

/ 2020.04.2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