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낙화 정호승, 그 오월에 곽재구,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2020.04.11)

푸레택 2020. 4. 11. 18:29

 

 

 

 

 

 

 

 

 

 

 

 

 

● 낙화 / 정호승

 

섬진강에 꽃 떨어진다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

매화꽃 떨어진다

지리산

어느 절에 계신 큰스님을 다비하는

불꽃인가

불꽃의 맑은 아름다움인가

섬진강에 가서

지는 매화꽃을 보지 않고

섣불리

인생을 사랑했다고 하지 말라

 

● 그 5월에 / 곽재구

 

자운영 흐드러진

강둑길 걷고 있으면

어디서 보았을까

낯익은 차림의 사내 하나

강물 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염색한 낡은 군복 바지에

철 지난 겨울 파커를 입고

등에 맨 배낭 위에

보랏빛 자운영 몇 송이 꽂혀

바람에 하늘거린다

스물 서넛 되었을까

여윈 얼굴에 눈빛이 빛나는데

어디서 만났는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한 형제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

뜨거운 눈인사를 한다

그 5월에 우리는 사랑을 찾았을까

끝내 잊었을까 되뇌이는 바람결에

우수수 자운영 꽃잎들이 일어서는데

그 5월에 진 꽃들은

다시 이 강변 어디에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풀잡맹이들로 피어났을까

피어나서 저렇듯 온몸으로 온몸으로 봄 강둑을

불태우고 있을까

돌아보면 저만치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굽이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자운영 꽃들만 숨가쁘게 빛나고

 

●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송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 2020.04.11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