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오월이 오면 신석정, 창밖은 오월인데 피천득, 감나무 있는 동네 이오덕 (2020.04.10)

푸레택 2020. 4. 10. 19:15

 

 

 

 

 

 

● 오월이 돌아오면 / 신석정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래도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울 법도 하고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근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 창밖은 오월인데 / 피천득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미(美)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아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도 너도 고행의 딸

 

● 감나무 있는 동네 / 이오덕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두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꾹이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 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 2020.04.1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