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들풀 이영춘, 들꽃의 노래 정연복, 작은 들꽃 조병화 (2020.04.09)

푸레택 2020. 4. 9. 10:58

 

 

 

 

 

 

● 들풀 / 이영춘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바람 센 언덕을 가 보아라

들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슴 떨고 있는 언덕을

 

굳이 거실이라든가

식탁이라는 문명어가 없어도

이슬처럼 해맑게 살아가는

늪지의 뿌리들

때로는 비 오는 날 헐벗은 언덕에

알몸으로 누워도

천지에 오히려 부끄럼 없는

샛별 같은 마음들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늪지의 마을을 가 보아라

내 가진 것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한 순간

 

● 들꽃의 노래 / 정연복

 

유명한 이름은

갖지 못하여도 좋으리

 

세상의 한 작은 모퉁이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몰라봐도 서운치 않으리

 

해맑은 영혼을 가진

오직 한 사람의

 

순수한 눈빛 하나만

와 닿으면 행복하리

 

경탄을 자아낼 만한

화려한 꽃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소박한 꽃과 향기로

살며시 피고 지면 그뿐

 

장미나 목련의 우아한 자태는

나의 몫이 아닌 것을

 

무명(無名)한

나의 꽃, 나의 존재를

 

아름다운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리

 

● 작은 들꽃 / 조병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 2020.04.0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