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명자꽃 만나면 목필균, 고모 생각 권기택, 책 김현승 (2020.04.07)

푸레택 2020. 4. 7. 17:33

 

 

 

 

 

● 명자꽃 만나면 / 목필균

 

쑥쑥 새순 돋는 봄날

명자야 명자야 부르면

시골티 물씬 나는 명자가

달려 나올 것 같다

 

꽃샘바람 스러진 날

달려가다가 넘어진 무릎

갈려진 살갗에 맺혀진 핏방울처럼

마른 가지 붉은 명자꽃

촘촘하게 맺힌 날

 

사랑도 명자꽃 같은 것이리라

흔해 빠진 이름으로 다가왔다가

가슴에 붉은 멍울로

이별을 남기는 것이리라

 

명자야 명자야

눈물 같은 것 버리고

촌스러운 우리끼리 바라보며

그렇게 한 세상 사랑하자

 

● 고모 생각 / 권기택

 

오늘도

고모님께서 말씀하신다

널 얼마나 이뻐했는지 모른다고

 

난 아무 기억이 없다

 

언제부턴가

나도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널 얼마나 귀여워 했는지 모른다고

 

조카녀석도 기억이 없다

 

● 책(冊) / 김현승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 듯

조심스러이 책을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

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城)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영혼의 무덤들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 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

 

/ 2020.04.07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