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오월이 돌아오면 신석정,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란, 오월의 편지 도종환 (2020.04.11)

푸레택 2020. 4. 11. 18:27

 

 

 

 

 

 

 

 

 

 

● 오월이 돌아오면 / 신석정

 

5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내음새가 난다

 

그래도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울법도 하고나

 

5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5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근한 엽록소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든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오월의 편지 / 도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 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있는 그 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십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일 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 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냅니다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 가득 밀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데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 달처럼

내게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 2020/04.11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