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진달래 이오덕,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들길에 풀꽃 하나 심었습니다 배월선 (2020.04.22)

푸레택 2020. 4. 22. 09:23

 

 

 

 

 

 

 

 

● 진달래 / 이오덕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무꾼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고개이면

너는 어디든지 피었었다

 

진달래야

너는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강산이

그리도 좋더냐?

 

찬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왼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 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 오고

낮이면 흰 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오는 산고개마다

누굴 위해 그렇게도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소리 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리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길을 넘어질 뻔하면서

두 손으로 너를 마구 따먹는 게 좋았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시들어지는

네 마음, 나같이 약하면서도

약하면서도…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들길에 풀꽃 하나 심었습니다 / 배월선

 

길에는

언젠가 한번을 꼭 보았을 것 같은

꽃들이 가득합니다

앞을 보고 지나가도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나를

그대도

물끄러미 다정한 눈길로 보아주네요

 

수많은 꽃중의 꽃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그대일지도 모르겠지만

언제고 그 언제고 내게 다가올 그날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데도

그대와 나는 그냥 스쳐가게 두어야겠지요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라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나는 그대에게

이름 석자 알고 지내는 사이라기에

맘속 풀꽃 하나 들길에 심었습니다


 / 2020.04.2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