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 / 이오덕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무꾼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고개이면
너는 어디든지 피었었다
진달래야
너는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강산이
그리도 좋더냐?
찬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왼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 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 오고
낮이면 흰 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오는 산고개마다
누굴 위해 그렇게도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소리 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리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길을 넘어질 뻔하면서
두 손으로 너를 마구 따먹는 게 좋았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시들어지는
네 마음, 나같이 약하면서도
약하면서도…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들길에 풀꽃 하나 심었습니다 / 배월선
길에는
언젠가 한번을 꼭 보았을 것 같은
꽃들이 가득합니다
앞을 보고 지나가도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나를
그대도
물끄러미 다정한 눈길로 보아주네요
수많은 꽃중의 꽃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그대일지도 모르겠지만
언제고 그 언제고 내게 다가올 그날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데도
그대와 나는 그냥 스쳐가게 두어야겠지요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라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나는 그대에게
이름 석자 알고 지내는 사이라기에
맘속 풀꽃 하나 들길에 심었습니다
/ 2020.04.2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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