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수필산책] 「화초」 이효석 (2020.03.30)

푸레택 2020. 3. 30. 15:53

 

 

 

 

 

 

 

 

 

 

● 화초(花草) / 이효석

 

꽃가게에서 꽃을 사들고 거리를 걸으면 길 가던 사람들이 누구나 다 그 꽃묶음을 부럽게 바라본다.

 

나는 사람들의 그 눈치를 아는 까닭에 꽃을 살 때에는 반드시 넓은 종이에 묶음을 몽땅 깊게 싸도록 꽃주인에게 몇 번이고 거듭 청한다. 그러나 요사이는 종이가 귀해서 길거리의 꽃장수는 물론이요, 큼직한 꽃가게에서도 전에는 파라핀지나 그렇지 않으면 특비의 포장지에다 싸 주던 가게에서도 신문지를 쓰게 되었고 그것조차 넓은 것을 아껴서 좁은 토막 종이로 대신하게 되었다.

 

아무리 잘 싸달리라고 졸라도 대개 꽃송이는 밖으로 내 드리우게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자연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전차를 타도 보도를 걸어도 사람들은 염치 없이 꽃묶음에 눈을 보낸다. 아이들은 그 한 가지를 원하기까지 한다. 꽃을 사람에게 보임이 조금도 성가시거나 꺼릴 일은 아닌 것이나 번거로운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됨이 결코 유쾌한 일은 못된다. 고집스런 눈을 받을 때에는 귀찮은 생각조차 든다.

 

그러나 이는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은 꽃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기를 좋아하고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그 아름다움에 무의식중에 눈을 끌리우게 되고 염치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까닭으로이다.

 

꽃을 좋은 줄 모르고 짓밟아 버리고 먹어 버림은 돼지뿐이다. 돼지는 꽃을 사랑할 줄 모른다. 돼지만이 꽃을 사랑할 줄 모른다. 세상의 뭇 예술가여 안심하라. 사람들은 누구나 꽃을 사랑할 줄 알고 아름다운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이 천성은 변할 날이 없을 것을 단언하여도 좋다. 돼지에게까지 꽃을 알리려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며 그 노력이 실패되었다고 슬퍼할 것도 없는 것이다.

 

대조(大朝)의 × ×씨가 하룻밤, 꽃묶음을 들고 찾아왔다. 처음 방문이라 선물로 가져왔던 모양이었다.

해바라기, 간드랭이, 야국(野菊), 야란(野蘭) 등의 길게 꺾은 굉장히 큰 한 묶음이다.

 

신문인이라 신문지 쯤 아낄 것 없다는 듯이 사면전폭(四面全幅)에 싼 것이나 오히려 종이가 좁다는 듯 꽃은 화려한 반신을 지폭(紙幅)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을 심을 화병은 세상에 없을 법하다. 회령자기(會寧磁器)인 조그만 물빛 항아리를 내다가 꽂으니 그 화용(華容)이 거의 창의 반면을 차지하게 되었다.

 

"뜰의 것을 꺾어 왔답니다."

나는 그 말에 놀랐다. 그의 집 뜰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나 그도 도회인이라 가게에서 오히려 사들여야 할 처지에 뜰 어느 구석에서 그 많은 꽃을 아끼지 않고 꺾어 냈단 말인가. 그 흐뭇한 가지가지의 꽃을 꺾어낼 때 조금도 아까운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원 저렇게 많이 꺾어 내다니."

"워낙 흔하게 피어 있으니까요."

그때 방에는 조그만 화병에 코스모스와 천차초(天車草)의 한 묶음이 꽂혀 있었으니 물론 거리에서 사온 것이었다. 집에는 코스모스, 천차초뿐이 아니라 프록스, 샐비어, 금잔화, 백일홍, 봉선화 등이 피어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한 송이도 꺾어 내기를 아껴한다. 병에 꽃은 것은 대개 밖에서 사온다. 아이들이 꽃 한 송이를 다쳤다고 얼마나 호되게 꾸짖고 책망하는지 모른다.

 

xx씨가 꽃을 사랑하지 않을 리는 만무한 것이요, 사랑하니까 선물로도 가져온 것임은 아는 것이나 흔하게 피어만 있으면 그렇게 듬뿍 꺾어낼 수 있는 것인지 어쩐지 나는 그의 그 대도(大度)의 아량이 부러워 견딜 수 없다. 한꺼번에 그렇게 듬뿍 꺾어 내고도 아까워 하지 않는다니!

 

내가 만약 수백 평의 뜰이 있어 그 속에 백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고 치더라도 나는 동무에게 선사할 때 거리에서 사가면 사갔지 뜰의 것을 꺾어낼 상 부르지는 않다.

 

나는 욕심쟁이인 것일가. 인색한 것일까.

 

♤ 작가 소개

이효석 (李孝石, 1907~1942) : 강원도 평창 출생. 소설가. 지금의 서울대학교인 경성제대 재학중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 이상 · 박태원 등과 함께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 평양숭실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 그의 문학세계의 본령은 본질적으로 반신문적이고 반도시적. 그는 초기의 '동반자 작가'로서의 문학적인 실패와 파탄을 자연 회귀의 문학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문학적 능력을 발휘하였음. 도시는 그에게 분열과 공포의 갈등 및 배신, 데카당스의 대명사였고 따라서 그의 문학은 본질적으로 도시적 분열과 자연적 화해의 문제에 귀착됨.

 

그의 초기 소설은 도시의 빈민층과 상류사회와의 격화된 갈등과 대비를 통한 사회적 모순의 고발, 또는 '도회의 배반받은 모든 불행한 사람'들인 노동자와 기생들의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제시함. 그러나 <노령근해>, <상록>, <북국사신>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관능적, 성적 인간 본능의 폭로에도 관심을 집중하였고, 단편 <돈>, <수탉>이후부터는 동반자적 입장의 작품보다는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작품 창작에 전념하였음.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은 인간과 자연과의 융합과 화해의 구조를 통해서 혈연적인 연기(緣起) 관계의 암시 등 짜임새가 두드러진 작품임. 그리하여 그의 예술파적인 성향을 대변해 주는 한 정점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음.

 

♤ 작품 해설

1940년 8월 《인문평론》, 9월 《조광>, 1947년 9월 《신천지>에 실린 이 수필은 도시의 분열된 생활 속에서 자연과의 화해를 추구한 작가 이효석의 세계관을, 그의 체험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을 살펴 보면, 필자는 꽃을 들고 갈 때,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은 반면, 그 시선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반가움을 느낀다. 어느날 × x씨가 뜰의 꽃을 꺾어 왔다면서 엄청나게 큰 꽃묶음을 선물로 주었다. 필자는 자신으로서는 감히 꺾을 수 없을 정도의 꽃을 아낌없이 꺾어다 준 그의 대도(大度)를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성격을 되돌아본다.

 

이 글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서정적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하는 작가의 소설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잔잔한 애틋함을 느끼게 해준다. 단, 소설이 허구적인 것임에 반해, 이 글은 작가의 체험을 그대로 서술하고 느낀 바를 솔직이 써내려감으로써, 소설보다 그 세계관이 명쾌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글의 구체적인 내용은 크게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야말로 예술의 근본적인 존재 가능성임을 앞부분에서 피력하고, 이어서 누군가에게서 정원에서 꺾어 온 한 묶음 꽃을 선물로 받은 것,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상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내면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감상이다.

 

여기에서 작가 이효석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서정적 인식이 돈보인다. 그러나 실상 문제는 정원에서 자란 꽃들을 꺾는 것과 꽃집에서 꽃을 사는 일이 그렇게 확연하게 구별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효석은 이러한 동일성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며, 그것이 곧 이효석 작품의 아름다움이자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 작가는 도시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강조하면서 화초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내세운 이유가 무엇일지 작가의 문학세계와 결부시켜 설명하라.

- 도시의 삭막하고 소외된 삶 속에서, '화초'라고 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생활의 기쁨을 얻고자 하였기 때문에.

 

♤ 작가가 꽃을 엄청나게 많이 꺾어다 준 ×x씨의 인품에 감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 × ×씨 역시 자신만큼이나 아름다움을 사랑하므로 꽃을 아낄 텐데도, 상대방을 위해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인격의 넉넉함에 감격하였다.

 

[출처] 《고교생이 알아야 에세이》 발췌

 

/ 2020.03.3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