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수필산책] 「나무」 이양하 (2020.03.30)

푸레택 2020. 3. 30. 20:19

 

 

 

 

 

 

 

 

 

 

 

 

 

 

 

● 나무 / 이양하

 

나무는 덕(德)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分數)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厚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 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보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짝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울고 돌 우는 동지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나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또 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잡이 친구다. 자기 마음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쏘삭쏘삭 알랑대고 어떤 때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역시 자기 마음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홍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 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는 진심으로 동정하고 공감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그러나, 나무는 친구끼리 서로 즐긴다느니보다는 제각기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더 힘을 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묵도하는 것으로 일삼는다. 그러길래, 나무는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있다. 그리고 온갖 나뭇잎이 욱은 숲을 찾는 사람이 거룩한 전당에 들어선 것처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자연 옷깃을 여미고, 우렁찬 찬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보고 흔히는 자기소용(自己所用) 닿는 대로 가지를 쳐가고 송두리째 베어가고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은 도리어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간 재목이 혹 자길 해칠 도끼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 작가 소개

이양하(李敭河, 1904~1963) : 수필가, 영문학자, 평남 강서 출생, 평양고보, 일본 제3고등학교, 동경 제국대학 영문과 동 대학원 졸업, 연희전문 교수, 서울대 문리대 교수, 그의 수필은 개인적이면서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나 객관적이면서 경구적(警句的)인 수필을 쓴 김진섭과 한국 수필의 쌍벽을 이루고 인포말에세이의 대표를 이룸. 명사적이면서도 생활 주변에 관심을 두어 국화인 무궁화의 본성과 그 의미를 보여준 <무궁하>, 연회전문교수 재직시 뒷산에 올라 가 신록을 예찬한 〈신록예찬> 등 주옥과 같은 작품이 수록된 《이양하 수필집》이 있다. <나무>는 그의 대표작임.

 

♤ 작품 해설

이 글은 나무를 통해 인간이 배워야할 나무의 몇 가지 미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수필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란 어디까지나 인간과 관련을 맺고있는 대상이며, 그 대상의 속성이야말로 인간에게서 필자가 회구하는 속성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은 도입부분이 없이 직접 나무의 덕을 예찬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첫번째는 나무는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각각의 나무는 제나름의 여건 속에서 충실한 삶을 살다가 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무는 고독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이며, 이 상태를 나무는 어떠한 안달도 없이 꿋꿋하게 견디어 내는 인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나무는 자신의 식물성으로 말미암아 친구가 없으나 자연 전체를 친구로 삼아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편리에 따라 금방금방 가까운 사람을 갈아치우는 세태와 비교할 때 나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나무는 천명을 안다는 것이다. 천명을 앎으로써 삶의 애련에 연연해 하지 않고 기꺼이 자연의 거대한 질서에 순종함으로써 겸허한 삶의 내면을 표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끝으로 자신의 바람이 나무에 있는 한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는 전혀 상관없음을 밝힘으로써 어느새 필자 스스로도 나무와 같은 경지의 한켠에 도달해 있음을 넌지시 제시함으로써 끝을 맺고 있다.

 

현대인의 가벼운 삶을 통찰하고 그와는 대조적인 대상인 나무를 통해 존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간다는 점에서 이 글은 잘 쓰여진 수필이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전체적인 구성이 나무로부터 유추하여 인간의 특정한 단면을 제시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는 구체적이나, 유추 일반이 지닌 특정한 한 측면만을 드러낼 수 있을 뿐, 다른 측면들은 철저하게 가려진다는 한계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물론 그 한계는 독자들의 깊은 사색을 통해 채워져야 함은 당연한 사실이다.

 

♤ 이 글이 나무의 속성으로 제시한 것을 인간의 속성으로 대치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 먼저 나무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늘 욕망에 사로잡혀 허덕이는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나무가 고독하다는 것은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자신에로의 침잠이 사람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며, 나무가 친구가 없다는 것은 특정한 기호에 따라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변의 사람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운명의 커다란 흐름에 편안하게 몸을 맡겨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 첫 번째 단락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성어는 무엇인가?

- 안분지족(安分知足)

 

[출처] 《고교생이 알아야 에세이》 발췌

 

/ 2020.03.30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