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무정」 이광수 (2020.02.19)

푸레택 2020. 2. 19. 17:51

 

 

 

 

 

 

 

 

 

● 무정 / 이광수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려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장로의 딸 선형(善馨)이가 명년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고빙하여 오늘 오후 세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라. 이형식은 아직 독신이라, 남의 여자와 가까이 교제하여 본 적이 없고 이렇게 순결한 청년이 혼히 그러한 모양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면 자연 수줍은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확확 달며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남자로 생겨나서 이러함이 못생겼다면 못생겼다고도 하려니와, 여자를 보면 아무러한 핑계를 얻어서라도 가까이 가려 하고, 말 한마디라도 하여 보려 하는 잘난 사람들보다는 나으리라. 형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우선 처음 만나서 어떻게 인사를 할까. 남자 남자 간에 하는 모양으로, '처음 보입니다. 저는 이형식이올시다' 이렇게 할까. 그러나 잠시라도 나는 가르치는 자요, 저는 배우는 자라, 그러면 미상불 무슨 차별이 있지나 아니할까. 저편에서 먼저 내게 인사를 하거든 그제야 나도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할까. 그것은 그러려니와 교수하는 방법은 어떻게나 할는지, 어제 김장로에게 그 청탁을 들은 뒤로 지금껏 생각하건마는 무슨 묘방이 아니 생긴다. 가운데 책상을 하나 놓고, 거기 마주 앉아서 가르칠까. 그러면 입김과 입김이 서로 마주치렷다. 혹 저편 히사시가미(양갈래로 딴 머릿단)가 내 이마에 스칠 때도 있으렷다. 책상 아래에서 무릎과 무릎이 가만히 마주 닿기도 하렸다.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얼굴이 붉어지며 혼자 빙긋 웃었다. 아니 아니? 그러다가 만일 마음으로라도 죄를 범하게 되면 어찌하게. 옳다? 될 수 있는 대로 책상에서 멀리 떠나 앉겠다. 만일 저편 무릎이 내게 닿거든 깜짝 놀라며 내 무릎을 치우리라. 그러나 내 입에서 무슨 냄새가 나면 여자에게 대하여 실례라, 점심 후에는 아직 담배는 아니 먹었건마는,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입김을 후 내어 불어 본다. 그 입김이 손바닥에 반사되어 코로 들어가면 냄새의 유무를 시험할 수 있음이라. 형식은, 아뿔싸! 내가 어찌하여 이러한 생각을 하는가, 내 마음이 이렇게 약하던가 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신에 힘을 주어 이러한 약한 생각을 떼어 버리려 하나, 가슴속에는 이상하게 불길이 확확 일어난다. 이때에,

 

"미스터 리, 어디로 가는가."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쾌활하기로 동류간에 유명한 신우선(申友善)이가 대팻밥 모자를 갖춰 쓰고 활개를 치며 내려온다. 형식은 자기 마음속을 꿰뚫어보지나 아니한가 하여 두 뺨이 한번 더 후끈하는 것을 겨우 참고 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면서, “오래 막혔구려" 하고 손을 잡아 흔들었다.

"오래 막혔구려는 무슨 막혔구려야. 일전 허교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형식은 얼마큼 마음에 수치한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리며,

"아직 그런 말에 익숙지를 못해서" 하고 말끝을 못 맺는다.

"대관절 어디로 가는 길인가? 급지 않거든 점심이나 하세그려."

"점심은 먹었는 걸."

"그러면 맥주나 한잔 먹지."

"내가 술을 먹는가."

"그만두게. 사나이가 맥주 한 잔도 못 먹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자 잡말 말고 가세" 하고 손을 끌고 안동파출소 앞 청국 요릿집으로 들어간다.

"아닐세. 다른 날 같으면 사양도 아니하겠네마는" 하고 다른 날이란 말이 이상하게나 아니 들렸는가 하여 가슴이 뛰면서,

"오늘은 좀 일이 있어."

"일? 무슨 일? 무슨 술 못 먹을 일이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러한 경우에 다만 '급히 좀 볼일이 있어' 하면 그만이려니와 워낙 정직하고 나약한 형식이라, 조곰이라도 거짓말을 못하여 한참 주저주저하다가,

"세시부터 개인교수가 있어."

"영어?"

"응."

"어떤 사람인데 개인교수를 받어?"

형식은 말이 막혔다. 우선은 남의 폐간을 꿰뚫어볼 듯한 두 눈으로 형식의 얼굴을 유심하게 들여다본다. 형식은 눈이 부신 듯이 고개를 숙인다.

"응, 어떤 사람인데 말을 못 하고 얼굴이 붉어지나, 응?"

형식은 민망하여 손으로 목을 쓸어 만지고 하염없이 웃으며,

"여자야."

"요- 오메데토오(아- 축하하네), 이이나즈케(약혼한 사람)가 있나 보네그려. 음 나루호도(그러려니). 그러구도 내게는 아무 말도 없던단 말이야, 에, 여보게" 하고 손을 후려친다.

형식은 하도 심란하여 구두로 땅을 파면서,

"아니야, 저, 자네는 모르겠네. 김장로라고 있느니.

"옳지, 김장로의 딸일세그려? 응, 저, 옳지, 작년이지. 정신여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명년 미국 간다는 그 처녀로구먼, 베리 굿"

"자네 어떻게 아는가?"

"그것 모르겠나. 이야시쿠모(적어도) 신문기자가. 그런데 언제 엥게지먼트를 하였는가"

"아니오. 준비를 한다고 날더러 매일 한 시간씩 와달라기에 오늘처음 가는 길일세."

"아따, 나를 속이면 어쩔 터인가."

"엑"

"히히, 그가 유명한 미인이라대, 자네 힘에 웬걸 되겠나마는 잘 얼러 보게, 그러면 또 보세" 하고 대팻밥 벙거지를 벗어 활활 부채를 하며 교동 골목으로 내려간다. 형식은 이때껏 그의 너무 방탕함을 허물하더니 오늘은 도리어 그 파탈하고 쾌활함이 부러운 듯하다.

 

(중략)

 

126

형식과 선형은 지금 미국 시카고대학 사년생인데 내내 몸이 건강하였으며- 금년 구월에 졸업하고는 전후의 구라파를 한번 돌아 본국에 돌아올 예정이며, 김장로 부부는 날마다 사랑하는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벌써부터 돌아온 후에 할 일과 하여 먹일 것을 궁리하는 중.

병욱은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자기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독일 백림에 이태 동안 유학을 하고, 금년 겨울에 형식의 일행을 기다려 시베리아 철도로 같이 돌아올 예정이며, 영채도 금년 봄에 동경 상야음악학교 피아노과와 성악과(聲樂科)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아직 동경에 있는 중인데 그 역시 구월경에 서울로 돌아오겠다. 더욱 기쁜 것은, 병욱은 베를린 음악계에 일종 이채(一種二彩 )를 발하여 명성이 책책하다는 말이 근일에 도착한 베를린 어느 잡지에 유력한 비평가의 비평과 함께 기록된 것과, 영채가 동경 어느 큰 음악회에서 피아도와 독창과 조선춤으로 대갈채를 받았다는 말이 영채의 사진과 함께 동경 각신문에 게재된 것이라. 듣건대 형식과 선형도 해마다 우량만 성적을 얻었다 한다. 삼랑진 정거장 대합실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던 세 처녀가 이제는 훌륭한 레이디가 되어 경성 한복판에 떨치고 나설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다.

신우선은 그로부터 일절 화류계에 발을 끊고 예의 전심, 일변 수양을 힘쓰며 일변 저술에 노력하여 문명이 전토에 떨쳤으며 더욱이 근일 발행한 「조선의 장래」는 발행한 이 주일이 못 하여 사판(四版)에 달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더욱 깊고 넓게 되며, 붓은 더욱 날가롭게 되어 간다. 한 가지 걱정은 아직 술이 너무 과함이나, 고래로 동양 문장에 술 못 먹는 사람이 없으니, 그리 책망할 것도 없을 것이라. 지금은 유명한 대팻밥 모자를 벗어 버리고 백설 같은 파나마 모자를 쓰며 코 아래는 고운 카이젤 수염까지 났다.

황주 김병국은 십만여 주의 대상원을 지었다. 작년에 봄서리로 적지 아니한 손해를 보았으나 금년에는 상엽이 매우 충실하다 하니 다행이며, 병국의 조모는 불행히 사랑하는 손녀를 보지 못하고 작년 여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병국의 부인도 이제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내외의 금실도 전 같지는 아니하다던지.

형식의 주인 하고 있던 노파의 집에는 의학 전문학교 학생들이 있는데, 구더기 있는 장찌개와 담뱃대는 지금도 전같이 유명하나 다만 차차 몸이 쇠약하여져서 지금은 약수에도 다니지 못한다. 그러나 보는 사람마다 형식의 말을 늘 한다.

영채의 '어머니'는 집을 팔아 가지고 평양 어느 촌으로 내려가서 양자를 들여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진실한 예수교 신자가 되어서 편안히 천당길을 닦는다. 우선에게서 영채가 죽지 않고 동경에 갔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울었다 함은 우선의 말이다. 그 후에 영채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하였으며 '어머니'도 자기가 진실히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영채도 예수를 잘 믿으라는 말과 졸업하고 오거든 곧 자기의 집으로 오라는 말을 편지마다 하고 혹 옷값으로 돈도 보내 주며 추장, 암치 같은 것도 보내어 준다.

한 가지 불쌍한 것은 형식이가 평양에 갔을 적에 데리고 칠성문으로 나가던 계향이가 어떤 부잣집 방탕한 자식의 첩이 되어 갔다가 매독을 올리고, 게다가 남편한테 쫓겨나기까지 하여 아주 적막하게 신고함이니, 아마 형식이가 돌아와서 이 말을 들으면 매우 슬퍼할 것이다. 그 어여쁘던 얼굴이 말못되게 초췌하여 이제는 누구 돌아보아 주는 이도 없게 되었다.

 

혹 독자 여러분이 기억하시는지 모르거니와 형식이가 사랑하던 이희경 군은 아까운 재주를 품고 조세하였고, 얼굴 컴컴하던 김종렬 군은 북간도 등지로 갔다는데 이내 소식을 모르며, 배학감은 그 후에 교주와 충돌이 생겨 지금은 황해도 어느 금광에 가 있다는데 아직도 철이 나지 못한 모양이라 하니 가엾은 일이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은, 칠성문 밖 형식이가 돌부처라 하던 그 노인은 아직도 건강하여 십여 일 전부터 뒷마루에 나와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감투가 전보다 더 낡아졌을 뿐.

나중에 말할 것은 형식 일행이 부산서 배를 탄 뒤로 조선 전체가 많이 변한 것이다. 교육으로 보든지 경제로 보든지, 문학 언론으로 보든지, 모든 문명 사상의 보급으로 보든지 장족의 진보를 하였으며 더욱 하례할 것은 상공업의 발달이니, 경성을 머리로 하여 각 대도회에 석탄 연기와 쇠마치 소리가 아니 나는 데가 없으며 연래에 극도에 쇠하였던 우리의 상업도 점차 진흥하게 됨이라.

아아, 우리 땅은 날로 아름다워 간다. 우리의 연약하던 팔뚝에는 날로 힘이 오르고 우리의 어둡던 정신에는 날로 빛이 난다. 우리는 마침내 남과 같이 번적하게 될 것이로다. 그러할수록에 우리는 더욱 힘을 써야 하겠고, 더욱 큰 인물... 큰 학자, 큰 교육가, 큰 실업가, 큰 예술가, 큰 발명가, 큰 종교가가 나야 할 터인데, 더욱더욱 나야할 터인데 마침 금년 가을에는 사방으로 돌아오는 유학생과 함께 형식, 병욱, 영채, 선형 같은 훌륭한 인물을 맞아들일 것이니 어찌 아니 기쁠가. 해마다 각 전문학교에서는 튼튼한 일꾼이 쏟아져 나오고 해마다 보통학교 문으로는 어여쁘고 기운찬 도련님, 작은아씨 들이 들어가는구나! 아니 기쁘고 어찌하라.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

《매일신보》, 1917.01.01~06.14)

 

☆ 이광수 소설가

▲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

▲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 수학

▲ 1906년 대성중학교 입학

▲ 1910년 정주 오산학교에서 교편 잡음

▲ 1915년 와세다대학 고등예과에 편입

▲ 1917년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

▲ 1950년 북으로 피랍

 

● 이광수와 소설 「무정」의 자리 / 권영민(서울대 교수)

 

1 하나의 전제

한국문학사에서 이광수의 행적만큼 그렇게 한 문학인의 생애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남겨 놓은 작품들은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되었고, 그것들에 대한 평가 또한 상당 수준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문학세계에 대한 논의는 그가 남겨 놓은 순한 작품들의 목록보다도 훨씬 다채로우며, 그가 보여준 삶과 그 변모과정보다 더 많은 우여곡절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누군가 춘원에 대해 무슨 말을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이광수의 문학이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적인 문학의 성립을 주도하고 다는 식의 역사적인 평가는 이미 대다수의 문학사가들에 의해 용인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 「무정」이 근대소설의 첫 장을 열고 있다는 사실도 소설사 연구가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조명되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시작된 1930년대 후반 이후, 대부분의 문학연구서가 거의 반복적으로 이러한 평가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광수의 문학을 다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논의 자체가 결국 문학사의 영역에서 학문 자체의 체계화를 위한 정리작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광수의 문학에 대한 논의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이광수가 쓴 수많은 작품들은 오늘의 문학의 현장성을 벗어나 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학사 연구의 영역에서 그에 대한 연구와 비판이 언제나 당대의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필수적인 전제가 가로놓여 있다. 다시 이광수를 논의한다는 것은 이광수의 문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을 논했던 모든 연구작업들에 대해서까지도 함께 재론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전제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이광수로부터 시작되어온 근대문학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이광수에 대한 논의가 새삼스러운 것임에도 연구사적인 의미들 지니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중략)

 

3 소설 「무정」의 자리

이광수의 「무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과연 한국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소설로 자리잡고 있는가? 소설 「무정」은 그 이전 신소설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모두 소설 「무정」의 문학사적인 가치를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다.

소설 「무정」은 다음과 같이 그 줄거리를 요약해 볼 수 있다. 이형식은 동경 유학을 하고 돌아와 경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식인 청년이다. 그는 개화된 집안에서 신학문에 눈을 뜬 선형에게 영어 개인교수를 하면서 그녀와의 결합을 회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무렵에 이형식 앞에 박영채가 나타난다. 박영채는 소년 시절 형식에게 큰 도움을 준 은인 박진사의 딸이다. 형식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고아로서, 박영채의 아버지 박진사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서 기거했던 적이 있다. 박진사는 형식의 사람됨을 보고, 성년이 되면 자기 딸 영채와 혼인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진사가 개화운동 관계로 체포되어 가세가 기울자, 형식은 그 집을 나와 영채와 헤어진다. 박진사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후, 기생으로 전락한 영채는 헤어진 형식을 다시 만나고자 사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그녀는 7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고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형식은 뜻밖에 나타난 영채로 인해 고심에 싸이게 된다.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신여성 선형에 대한 호감과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옛 여인 영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모두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의 구조가 극복되는 것은 형식의 적극적인 의지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다. 형식이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영채는 기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배학감에게 정조를 유린당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자 한다. 그녀는 이형식에게 보내는 긴 유서를 남기고 서울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영채는 그녀가 결심한 대로 자살에까지 이르지 않는다.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경 유학생 병욱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의 삶과 사랑의 참뜻을 심어 준다. 영채는 병욱의 말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병욱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살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형식은 영채의 유서를 보고 평양에까지 영채를 찾아 나섰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결국 선형과 결혼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형식과 선형, 영채와 병욱 등이 모두 다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이 소설의 끝장면에서이다. 유학을 떠나는 이들이 모두 같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홍수를 만나자, 기차에서 내려 즉석에서 수재민 돕기 자선음악회를 함께 얼게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각각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 「무정」의 줄거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개인적 운명의 양상이다. 그것은 이형식과 박영채로 대별되는 두 사람의 개이적인 삶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형식의 경우, 그는 고아의 신세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돌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사고 있다. 그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장면은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용케도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 시절에는 박진사의 도움으로 성장하였고, 또다른 은인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경성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었으며, 김장로의 호의로 그의 딸과 결혼하여 다시 미국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고아 출신인 이형식이 경성학교 영어교사로서의 신분적 상승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개화라는 사회변동의 배경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봉건적인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 개화와 신교육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사의 신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변동 사회의 한 반영에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형식의 신분상승의 과정은 지극히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의 출신 성분도 제대로 알 수 없고, 그의 존재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가족관계도 모두 무시되어 있다. 게 다가 그가 구시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명 개화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조차도 소설의 이야기 속에 거의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형식은 소설의 세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배경과는 동떨어진 개별적이고도 예외적인 인물로 취급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사고와 행동 자체가 전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이형식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갈등은 영채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난 일시적인 방황뿐이다. 그러나 그 고뇌와 갈등도 사실은 형식의 의지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영채 스스로 이 갈등의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풀어지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형식은 거의 무의지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소설에서의 근대적인 인물로서의 성격화의 수준 자체가 미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영채의 경우는 이형식의 무의지적인 성격과 대별된다. 그녀는 개화운동과 관련되어 감독에 들어간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스스로 몸을 팔아 기생이 되었고, 이형식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오랜 기간을 기다리 기도 한다. 그리고, 이형식이 이미 다른 여성과 혼약의 단계에 이른데다가, 자신의 순결마저 잃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자 한다. 물론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그녀는 병욱의 충고를 받아,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본 유학을 결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박영채의 변모과정은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붕괴와 개인의 몰락이라는 개화공간의 사회적 변동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문명 개화와 신교육의 가치가 모든 사회적인 요건 가운데 최선의 것으로 내세워짐으로써, 그러한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개화 지상주의적인 요소까지 곁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채는 구시대의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 속에서 운명적으로 회생을 감수해야 했고, 새로운 문명개화의 이념을 붙잡게 됨으로써, 재생의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박영채의 운명의 전환 역시 병욱이라는 인물의 매개적인 역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녀의 변모가 자기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러한 각성된 자기 인식에 근거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도 보여 주지 못한다. 그녀가 택한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명 개화와 신교육은 가능성의 세계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며, 작가에 의해 긍정되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근대소설은 개인의 운명을 드러냄에 있어서 개개의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일정한 사회의 본질적 특수성을 드러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소설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보여 준다.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이 지니는 본질적인 의미를 제시하여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개인의 운명을 빌려서 구체적으로 체현되기도 하며, 개인의 삶의 모습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전체적으로 형상화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소설로서 확립되기 위해서는 그 내재적인 요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양상을 전체적으로 포착해 내는 소설의 형식은, 자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서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진기한 이야깃거리로 내용을 꾸려 나갔던 서사문학의 양식이 그 설화적 속성을 벗어나 소설형태의 성립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발견이 요청된 시기이다. 그리고, 민족적 자기 인식과 그 주체적 확립이 가능하지 않은 식민지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개인의 발견과 그 해방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각과 각성에서 출발할 때 민족 전체의 주체적인 자기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유교적 관습과 선동사회의 규범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며, 숙명론적인 인생관에서 벗어나 자기 삶과 운명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에서 자아의 각성과 사랑의 문제를 중요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이 지니는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여 스스로 문학의 교시적인 기능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자기 존재의 인식과 그 확대를 내세운 것으로서, 개인의 체험세계를 중시하는 소설의 요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의 세계를 개인의 삶의 세계와 연관지어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모두 소설이 그 예술적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문학의 한 장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신소설의 시대에 널리 쓰였던 소설이라는 용어가 장르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 포괄적인 서사문학 양식 전반을 지시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소설에 대한 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설을 독자적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요구하는 원리와 규범을 모두 승인한다는 뜻이 되며, 소설에 대한 논의도 바로 그 독자적인 원리와 규범을 중심으로 전개시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광수의 「무정」에서 그러한 소설적 관심이 구체화되어 근대소설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지향했던 '정의 만족'이 전통적인 규범과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테마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성적인 자기 각성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무정」은 개인을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개인적 자아가 근거할 현실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새로이 도래할 문명 개화의 시대로서 근대사회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개화 공간의 말미에 자사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하략)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 2020.02.1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