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독목교」 곽학송 (2020.02.07)

푸레택 2020. 2. 7. 20:00

 

 

 

 

 

● 독목교(獨木橋) / 곽학송

 

주야 연 사흘, 백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점령한 고지를 그대로 도로 적의 손에 넘겨 주는 것이 지휘관으로선 여간 괴로운 노릇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승산이 없는 전투를 작명[作戰命令]을 무시하면서까지 계속하자는 중대장 이덕호 중위의 의도를 영수는 도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딜 보아도 진흙과 바위뿐인 전략상 가치 없는 산봉우리이다. 반드시 확보하여야겠다는 작전계획이었다면 필사적인 삼백 명의 적에게 불과 일개 중대의 병력만을 배치할 리 없었고 전투 시간을 칠십이 시간으로 제한한 것만 보더라도 연대로서는 새로운 적의 압력에 위협을 느끼고 일시 적의 주력(主力)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 빤하다. 중대의 명예(그것이 곧 덕호의 명예이기도 했지만)를 위해서라면 여하한 희생도 사양치 않는 덕호인지라 더욱 영수는 잠자코 순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대장님, 이상 더 쓸데없는 희생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먼저 간 전우들의 영령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고지를 사수하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덕호는 충혈된 두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었지만 영수는,

"칠십이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한 것입니다. 무모한 전투를 계속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나온다.

어젯저녁에 비스킷 몇 알씩 씹었을 뿐인 병사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당신밖에 말할 사람이 없지 않소 하는 것만 같아 영수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대장에게 무슨 충곤가!"

"부관으로서의 의견을 말할 뿐입니다."

"부관으로서의 의견?"

"그렇습니다. 주위의 고지는 아직도 적의 수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적의 포위망 속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닥쳐"

"......"

"목숨이 아까워졌느냐, 비겁한 자식!"

"......"

이미 통신선은 연대장의 격려의 말 한마디를 남기고 두절되었다는 것이었다. 중대의 운명은 적이 반격을 시작하는 대로 결정될 것이다. 그렇게 큰소리는 했지만 중대장 역시 본의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였던 영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덕호는 몹시 괴로운 얼굴로 통하지도 않는 무전기에 다시 매어달린다. 진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새벽녘이었다.

 

중대장은 끝끝내 고집을 세웠다.

삼백여의 적이 불과 일개 중대의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한 수비하기 곤란한 이곳을 사십 명으로선 도저히 지킬 수 없으며 설사 확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금명간에 보급이 없는 한 아사할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하사관들까지 날이 새기 전에 철수하는 것이 상책이라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덕호는 네놈들까지 나를 업신여기느냐는 듯이 더욱 핏대를 세우면서 연대장의 명령 없이는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 어서 각자가 들어갈 호를 새로이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덕호의 말에 멍하니 영수의 얼굴만

바라보는 하사관들에게,

"왜 우물쭈물하는 거야, 이 못난 것들!"

하고 다시 한번 호령을 치는 것이다.

정말 누가 못났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투덜투덜 헤어지는 하사관들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있던 영수는 덕호가 돌투성인 땅을 반 길이나 팠을 그제서야 할 수 없이 삽을 들었다.

늦은 봄이라지만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하다. 영수는 겨우 엎드려도 어깨를 감출지 말지 한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주머니를 뒤져 마지막 담배꽁초를 피워 물었다. 맛이 없다. 종시 덕호의 처사가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영수는 사병들을 대하는 덕호의 태도에 얼굴을 찌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훈련기간이나 후방에서처럼 병사들에게 엄중한 군기(軍紀)를 강요하다가는 뒤총알에 얻어맞는 수도 있다지만 영수 제깐에는 그것에 겁을 집어먹어서가 아니었고 병영생활을 다년간 계속한 전투의식이 확고하다할 수 있는 사병들의 행동까지를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대(隊)의 통솔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뿐더러 유사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그들의 시가가 저락될는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의식적으로 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행동을 방임한 것이었으나 그걸 덕호는 대원들의 불평불만을 조장시키는 행위라고 나무라는 것이었. 물론 영수 자신도 덕호의 말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은 아니요, 실상 부인할 수도 없는 것이 공적 문제에 있어 부하를 대할 때 상관의 인

장을 떠나 일개의 인간을 대하는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늘 경계하면서도 곧잘 범하기는 했으나 그 결과가 공으로 나타나기는 했을지언정 작전에 지장을 주었다든가 군기를 문란시켰다든가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까닭에 덕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원들에게 어느 정도 인망이 있는 자기에 대한 일종의 시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부하에 대한 영수와 덕호의 상반되는 주관이 처음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은 재작년 가을이다.

OO을 목표로 맹진격을 개시한 연대의 우익을 담당하고 ××에 진출하였을 때 마침 그곳 태생인 고급하사관 한 명이 일 킬로폼 떨어진 집에까지 다녀왔으면 하는 말투이기에 영수로서는 후방부대와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진격을 중지하게 되어 시간 여유가 있어서라든가 몇 년 동안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그 하사관의 심정을 짐작하여서가 아니라 외출을 금한다는 특별한 명령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두 시간 이내에 틀림없이 돌아오라고 일러 보낸 것이 말썽이 되었다.

주인도 없는 최일선지구에선 사병들의 외출을 묵인하는 것이 상례라기보다도 일일이 감시한달 수도 없는 노릇이요, 실상 그날도 몇 시간씩 무단외출한 사병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나 전투기간에 귀가시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덕호는 선임장교의 입장에서 영수를 책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하사관이,

"소대장님겐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제가 무단외출한 것입니다."

하고 영수를 민망하게 여기는 것이 더욱 괘씸하였던지 중대장 앞에서까지 김소위는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몰아세웠다.

이 판국에 가족들과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요, 몇 해 만에 자기가 자라난 옛 마을이나마 바라보자는 그 하사관의 심정을 용납할 수 없다면 평양을 통과할 때 이 소위는 왜 십 리나 떨어진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느냐고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영수는 속으로 웃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후부터는 늘 부하를 대하는 덕호의 태도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물론 덕호의 말이 잘못이라 할 까닭은 없었다. 영수가 오늘까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덕호 역시 제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영수는 기계적인 그러한 태도가 반드시 군기를 확립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를 지나면 도리어 역효과를 나타내는 수가 없지 않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덕호는 단순히 자기 개인에 대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될 때 그로 인하여 대원들의 정신적 부담이 과중해진다면 자기의 지도이념에 배치되는 까닭에 부하에 대한 태도를 변경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괴로울 뿐이며, 오늘만 하더라도 덕호와 자기 사이에 사감적 대립이 추호도 개재하지 않았더라면 좀더 좋은 방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허전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침 햇빛과 함께 고지에는 제법 생생한 흙내가 풍기는 듯했지만 영수는 사십 개의 그 구덩이가 자신들이 묻힐 묘혈(墓穴)같기만 하였다. 영수의 호(壕)가 제일 초라하다. 정말 자기는 여기에 묻히는 것이 중대와 중대원과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타당하다고 그렇게 영수는 생각한다.

 

(중략)

 

덕호의 얼굴은 어제 아침 고지에서 잔여(殘餘) 중대원에게 우리는 먼저 간 전우들의 영령을 위해서라도 고지를 사수해야 한다고 외치던 바로 그때의 표정이다.

영수는 점점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직도 김소위는 나를 오해하고 있어! 이제 내가 목숨이 아까워서 이러는 줄 아나! 부하 전부를 잃은 내가 뻔뻔스럽게 더 살겠다구 이러는 줄 아나? 연대장을! 사수명령을 내린 연대장을 만나기 전엔 정말 나는 죽을 수가 없어..".

덕호는 무섭게 얼굴을 찌푸린다.

영수는 머리통을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명했다. 고지 사수명령이 덕호의 의사가 아니고 연대장의 의명(依命)이었다는 사실이 영수에게는 놀랍고 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덕호는 갑자기 너그러워지며 말을 계속한다.

"부관에게는 미안했소. 고지를 사수하라는 연대장의 명령을 부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었소. 그러나 그 책임은 부관에게도 있는 것이오. 부관은 진실로 나를 상관으로 여긴 적이 한 번이나 있었소?"

울상까지 짓는다.

"......"

영수는 할 말이 없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덕호의 입만 바라본다.

"물론 그래서 연대장의 작명을 부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소. 이번 전투는 나를 지나치게 괴롭혔소. 수백 회의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이번처럼 처참한 전투는 처음이오. 김소위도 알다시피 우리는 백 명에 가까운 부하를 잃지 않았소? 거기에다 또 사수명령... 공중을 날아온 연대장의 음성을 나는 참말로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었던 것이오. 무전기를 부수고 싶었던 것이오..."

덕호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몇 번 뚜드리고 나서,

"무모한 명령을 내린 연대장을 이 발만 생생하다면 난 당장 달려가서 가만 두지 않았을 게요. 내 부하 전부를 잡아먹은 그놈을, 이 발만 성하다면 난 당장 달려가서 죽여 버렸을 게요... 김소위! 명령이다! 어서 나를 연대까지 데려다주오."

하고 바위 위에 쓰러진다.

영수는 공연히 덕호를 미워한 지금까지의 자기의 행동을 뉘우칠밖에 없었으며, 자기 따위는 비할 수도 없는 덕호의 부하에 대한 심원한 사랑 앞에 스스로 머리가 수그러지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이번 전투가 영수에게 준 어떤 새로운 자극은 너무나도 맹랑한 것이었다.

당장 달려가서 연대장을 죽여 버리겠다는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덕호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는 이기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사십 명의 생명을 죽이고 수백 수천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면 연대장으로선 사수명령을 내리는 것이 타당했다고 그렇게 생각한 영수는 자기가 덕호를 원망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사수명령을 내린 연대장을 원망하는 덕호를 차라리 경멸할밖에 없었으며 덕호를 미워한 자기의 마음속에 불순한 '티'가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연대장을 만나기 전엔 죽을 수 없다는 덕호의 마음속에도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지도 않다면 자기나 덕호의 그러한 관념은 조금도 누구를 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아무심(無我無心)으로 기계처럼 상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병들의 태도가 참다운 군인의 본분이며 어떡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요, 또한 그러한 태도만이 인간과 인간사회를 위할 수 있다면 덕호와 자기는 인간을 배반한 범죄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제 중대장의 명령이 위신을 상실하였다 하더라도 역시 중대장의 명령대로 중대장을 등에 업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고 결심한 영수는 연대장에 대한 중대장의 원망이 순간적인 착각이기를 바라면서 중대장의 창백한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적의 사격은 한층충 더 치열해지고 또 한 방의 조명탄이 외나무 다리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 곽학송 소설가

▲ 1927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

▲ 1945년 용산 철도고등학교 졸업

▲ 1953년 《문예》에 「독목교」로 추천 완료

▲ 1956년 장편 「철로」 간행

▲ 1969년 「제주도」로 도의문화저작상 수상

▲ 1985년 문화훈장 수상

▲ 1992년 숙환으로 별세

 

● 전쟁 속에 강요된 자기 동일성 비판 / 김외곤(문학경론가)

 

1 전쟁의 속성과 정통주의적 전쟁관

전쟁이란 하나의 정치적 집단이 자신의 이념이나 논리를 다른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그 행위는 매우 극단적이어서 상대방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의도를 관철하려 한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계속하여 그 요구를 거부하면 결국 목숨을 빼앗는 방법으로 자신의 의도를 실현시킨다. 이를 최근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면, 전쟁이란, 한 주체가 자기 동일성(self identity)을 타자(other)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이다. 또한 그것은 타자가 지닌 그 나름의 존재성, 곧 타자성(othemess)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1950년대 전후 작가들에게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다음의 정통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가운데 정통주의란 전쟁을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두 세력이 서로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가운데 전쟁이 일어난다. 즉 자기 동일성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두 개의 배타적인 동일성이 충돌하여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대다수의 민중들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전쟁의 와중에 휩쓸렸다고 간주된다. 민중들은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의 전후 작가들 가운데 다수가 이러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며, 프랑스에서 유입된 실존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소설들은 사악한 이데올로기 집단과 무고한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하여 전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후자의 비참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의 대표적인 예로 하근찬을 들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수난 이대」를 보더라도,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농촌의 순박하고 평범한 농민이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에 휩쓸리면서 이러한 인물들이 커다란 고통을 당한다. 주인공이 순박하면 순박할수록 그들이 겪는 수난과 비참상은 더욱 부각된다. 이데올로기 내지 권력과 순박한 인물을 대비시켜 전쟁의 비참상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경향은 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아직 그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전후의 작가들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다룰 또 한 사람의 전후 작가인 곽학송은 이런경향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작가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타자성을 배제한 채 자기 동일성을 타자에게 강요하는 인물과 자기의 삶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의 존재성, 곧 타자성을 인정해 주는 인물 사이의 심리적 대립과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에 대한 탐구가 작품의 중심적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곽학송은 작가생활의 처음부터 전쟁의 의미에 대한 탐색이라든가 전쟁의 비참상의 부각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한 측면에서 발생하는 다소 철학적인 문제를 자신의 중심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행한 다음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전쟁은 단지 배경일 따름이다. 즉 "시간은 반드시 6·25동란으로 설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다만 인간의 본성이란 전쟁과 같이 절박하고 격동하는 시간에 보다 더 여실하게 탄로된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전쟁소설이 아니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인간 사이의 동일성과 타자성의 관계에 대한 천착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명령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측면의 발견

곽학송이 다루고자 했던 인간 사이의 동일성과 타자성의 문제는 주인공을 둘러싼 외적 상황이나 사건의 묘사보다는 대체로 인물들의 내면심리 내지 의식의 묘사에 집중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타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자기 동일성을 강요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올 타자로서 인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의식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행동이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 행동은 단지 의식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공의 내면을 통해 앞서 말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문예》지에 추천된 「독목교」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는 같은 소위였다가 일 계급 진급하여 중대장이 된 이덕호 중위와 그의 부관으로 임명된 김영수 소위라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같은 부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소유자이다. 중대장인 이 중위는 군대의 규율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상관의 명령은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부하들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으면서 언제나 자신의 명령에 부하들이 따라 줄 것을 요구한다. 즉 그는 타자성을 배제하고 자기 동일성을 강하게 내세우는 인물인 것이다. 이런 성격은 작품의 배경이 군대라는 깁단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더욱 부각된다. 이에 비해 부관인 김소위는 앞서 말한 바처럼 일방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주장하는 이중위를 비판하면서 부하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곧 자기 의식 속에 타자성을 용인하는 인물인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격 차이는, 하나의 목표점을 향하여 맹진격을 개시하여 어떤 지역에 진출한 후 잠시 진격을 멈추었을 때 마침 그곳 태생인 고급 하사관 한 명을 일 킬로쯤 떨어진 집에 다녀오도록 김소위가 외출을 보내 줌으로써 벌어진 일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당시는 소위였던 이덕호는 명령을 어기고 외출을 보내 준 김소위를 책망하고 나아가 당시 중대장을 위시한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무안올 준다. 이덕호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생각하는 바에 어긋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른바 자기 동일성을 강하게 내세우는 인물이었으므로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그 자기 동일성은 전쟁과 군대라는 상황으로 인하여 명령의 형태를 띠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소위는 부하들의 마음을 이해하여 주는 장교이다. 그가 하사관을 외출시킨 것은 전쟁통에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없는 노릇이고 몇해 만에 자기가 자라난 옛 마을이나마 바라보자는 하사관의 심정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타자의 처해 있는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의 동일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조적인 성격의 두 사람은, 삼백 명의 적에게 포위된 채, 일개 중대 병력으로 백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점령한 고지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상부로부터의 명령이었던 칠십이 시간을 버티는 것은 이미 끝났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이중위는 철수할 생각을 않고 계속 고지를 지키려 한다. 이러한 처사에 대해 김소위는 그것이 명예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사양하지 않는 이중위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자 중과부적으로 아군은 밀리어 대부분의 병사들은 절벽을 뛰어내려서 후퇴를 하게 된다. 김소위 역시 결국에는 절벽을 뛰어내리게 되는데, 절벽 아래의 덤불 속에 숨어 있는 그에게 부상당한 이중위가 기어 들어온다. 거기에서 김소위는 고지를 사수하려는 것이 중대장의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상당한 이중위는, 무모한 명령을 내려 자신의 부하를 죽게 만든 연대장을 찾아가 복수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소위는 타자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그 자신이 편견으로써 중대장을 대했음을 알게 되고, 자기 동일성만 내세우는 줄 알았던 이중위가 자기보다도 훨씬 더 부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많은 수의 자기 부하를 죽였다는 이유로 연대장을 미워하는 이중위를 보면서 연대장 또한 이중위의 중대원 사십 명의 생명을 죽이고 수백 수천의 연대원의 생명을 살리려고 작전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연대장은 그들보다 훨씬 부하들, 즉 타자의 처지를 깊이 헤아린 셈이다. 결국 타자를 인정한다고 스스로 믿었던 김소위는 그런 믿음(자기 동일성)에 매몰된 채 타자인 이중위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다가, 중대장인 이중위가 자신보다 더 타자를 인정하고 또 연대장이 중대장보다 더 타자를 인정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나아갈 길은 묵묵히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곽학송의 초기 대표작 「독목교」는 명령이라는 일방적인 자기 동일성과 인간적인 면을 고려하는 타자성의 용인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대립적으로 제시하면서 명령이라는 일방적 자기 동일성의 강요 속에도 역시 타자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자신은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믿으면서 이중위도 자기처럼 타자성을 인정하기를 바라는 김소위의 생각이 역시 타자를 배제하는 측면을 가진 자기 동일성의 일종이었음을 보이면서, 타자성을 인정하는 논리 속에도 자기 동일성이 내재되어 있을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동일성과 타자성의 문제는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쟁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속성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강요하는 것인만큼 다음의 소설에서도 곽학송은 계속하여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장편소설이자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공고히 해준 「철로」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독목교」에서처럼 전투 현장이 아니라 전쟁하의 일반 민중들의 삶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소재를 바탕으로 동일성과 타자성의 문제를 한층 극단적인 경우로 이끌어 가면서 그것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로」는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 실존을 문제삼는 소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4 맺음말

곽학송은 「철로」이후 계속 전쟁과 분단상황에 관심을 기울여 「김과 리」를 쓰고, 1970년대에는 당시에 활발했던 남북대화를 소재로 하여 「배족」을 쓰기도 한다. 「김과 리」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심하지 않았던 전쟁 전의 삼괄선에서 각각 남과 북의 장교로 근무하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 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소주와 통조림을 바꾸어 먹기도 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둘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적인 정을 쌓아 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한 번씩 살려내 주기도 하는데, 남의 김은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북의 이를 이후 파업현장이나 데모현장에서 잠깐씩 맞닥뜨릴 따름이다. 그러다가 이가 강원도 양구에서 뱃사공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은 거기로 낚시를 가게 된다. 그리하여 둘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게 적이었지만 계속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자기 동일성의 강요가 갖는 위험성을 처음부터 배제한 작품이다. 「독목교」 이래의 주제가 발전되어 변화된 양상을 보이는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전쟁과 분단을 배경으로 하여 그 속에서 자기 동일성과 타자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룬 곽학송의 작품세계를 거칠게나마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후 세대의 대부분의 작가가 보였던 정통주의에 입각한 전쟁의 비참상을 부각시키는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단지 배경으로 또는 거대한 자기 동일성의 논리로 작용할 뿐 작품의 주제는 보다 관념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관념적 경향은 오상원의 행동주의와도, 장용학의 알레고리적 수법과도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이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강요되는 자기 동일성의 논리가 지닌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작품 경향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역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룬 것에 틀림없으므로, 그 역시 1950년대의 전후 문학의 공통적인 특징인 실존주의의 테두리에 포함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 2020.02.07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