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지붕」 최창학 (2020.01.29)

푸레택 2020. 1. 29. 14:04

 

 

 

 

 

● 지붕 / 최창학

 

이상한 일이었다. 죽어 저세상에 가면서도 가능하면 한겨울의 강추위는 피해 가자는 것일까. 날씨가 풀리면서 죽는 식구들이 더 많았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나 우선 햇살과 바람이 한겨울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사흘이 멀다 하고 죽는 식구가 나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식구씩 죽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이곳 백오십여 명의 식구들이 모두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오늘 새벽에도 한 식구가 죽었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앰뷸런스가 오지 않았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식구가 죽을 때는 대개 오게 되는 앰불런스가 오늘 새벽엔 왜 오지 않았는지 신혜는 알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죽은 심순자 아주머니는 신장(腎臟)이나 안구(眼球) 중 어느 것도 기증하기로 되어 있지 않은 식구이기 때문이었다.

 

새 식구가 들어올 때마다 목사님은 말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서러워 마십시오. 이 세상에 나와 어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되신다면 그 은혜를 갚을 길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재산의 하나인 신장이나 안구라도 남겨 꺼져 가는 생명을 구하고 앞을 못 보는 불행한 사람에게 광명을 주십시오"

물론 지나친 노약자에게야 권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많고 다른 병을 앓고 있더라도 신장이나 눈만은 괜찮아 보이는 식구에게는 서슴지 않고 권했다. 그러면 처음에는 주저하던 식구도 나중에 가선 감화되어 대개는 기증서약서를 써 내밀었다.

 

그러나 식구가 막 되었을 때는 물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설교를 해도 끝까지 기증서약서를 써내지 않는 식구도 없지 않았다. 오늘 새벽에 죽은 심순자 아주머니도 그런 식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이야 이제 오십대였지만 심근경색증을 않으면서 정신도 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던 그 아주머니는 목사님 아닌 그 누구에게서라도 신장이나 안구 기중에 대한 소리만 나오면 노발대발했었다.

 

"말도 꺼내지 마. 나는 못 줘, 날더러 계속 그렇게 서약서를 쓰라고 하면 나는 여기서 나갈 테여, 정말 더럽구만, 세상엔 공짜가 없다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녀, 그것 조금 먹여 주고 재워 주었다고 신장과 눈알을 내놓으라니 어이구, 생각만 해도 끔찍해라. 한번 죽는 것도 서러운데 왜 두 번씩 세 번씩 죽으라는 거여? 죽은 후에도 저세상이 있다면서, 그런 걸 떼어 주고 저세상에 가서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여?"

 

원 참, 무슨 그런 걱정을 다 하시느냐고, 천국에 가셔서 다시 태어나실 땐 깨끗한 육체를 새로 받으실 텐데 무슨 그런 걸 문제삼으시냐고, 어쩌다 봉사자사들이 건네기라도 하면, 더 펄쩍 뛰었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옛날부터 제일 큰 형벌이 무엇이었는줄 아느냐, 죽은 시체를 다시 토막내 죽인다는 말 듣지도 못했느냐. 죽어서도 육신이 온전해야 제대로 저세상에 가지, 그렇지 않아 가지곤 악귀가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걸 모르느냐라고 소리질렀다.

 

대개의 식구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높임말을 쓰는 봉사자들한테 그 아주머니는 한 번도 높임말을 쓰지 않았다. 딸이나 아들 대하듯 함부로 대했다. 그것을 다른 봉사자들은 불쾌해하기도 했지만 신혜는 그렇지는 않았다. 허물이 없어 오히려 한식구 같은 느낌을 더 주어 대하기가 편하기도 했다. 그 아주머니에게서 문득문득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었던 것도 그 때문인지 몰랐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도 집을 나가시기 직전, 실성기가 심해지셔서는 그 아주머니 못지않게 성깔이 고약했었다.

 

걸핏하면 신혜에게도 이년, 저년 욕을 해대며, 만만한 가재도구를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오빠가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에 가 어처구니없게 죽게 된 걸 엉뚱하게 신혜 때문이라고 몰아 붙이기도 했다.

죽은 식구는 앰불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가 안구나 신장을 기증하고 화장이 되거나, 아니면 이곳 임시 묘지에 묻혔다. 식구들이 기거하는 '안식의 집' 건물 남쪽 산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묘지에 봉분 없이 알팍하게 묻혀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 하나를 품에 안았다.

 

심순자 아주머니도 그런 과정을 밝았다. 신장이나 안구를 기증하지 않고 죽은 식구들에게도 목사님은 똑같이 정성껏 기도했다. 천국이라는 낱말이 세 번, 영생이라는 낱말이 두 번 반복되는 기도였다. 봉사자들과 불편한 대로나마 기동이 가능한 식구들을 동반한 그 의식은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 걸로 시간을 많이 끌래야 끌 수도 없었다. 식구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봉사자들로선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기 몸뚱이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백오십 명이 넘는 식구들을 불과 일곱 명밖에 되지 않는 봉사자가 치다꺼리해야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일곱 명도 남자는 두 명밖에 안 되고 모두 여자여서 더 힘이 들었다. 심지어는 남자 식구들의 목욕까지 여자 봉사자들이 시켜 줘야 되었다.

 

(중략)

 

이 집에 온 후 자기에게 기둥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해온 조금선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까지 듣고 나니 신혜는 정말 암담했다. 물론 자기의 신앙이 깊지 못한 탓일지 모르나 조금선 선생님마저 떠나고 나면 이 집에서 자기가 과연 어떻게 버티어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이 집을 떠나서는 과연 어디로 가 더 이상의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그리하여 신혜는 낮이나 밤이나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올봄 들어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구질구질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후가 되어도 멎지를 않았다. 집 안에 켜켜이 굳어 있는 죽음의 냄새를 온통 들쑤셔 헤집어 놓은 그비 때문이었을까. 신혜가 이 집에 온 후 가장 큰 사건이 벌어졌다. 목욕을 시키려고 목욕탕에 부축해 데려다 놓은 한 식구가 자해(自害)를 한 사건이었다. 일종의 발작이었으나 지난번 혁명 할아버지의 발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목욕탕 타일벽에 사정없이 자기 이마를 짓찧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것이다. 봉사자들 사이에 침묵 아저씨라고 불리던 식구였다. 신혜가 이곳에 온 지 한 달쯤 된 지난 겨울 경찰서에서 데려온 사람이었다. 오십도 채 안 되어 보이는데 사지를 거의 못 쓰고 말을 못 했다. 무슨 말을 물으면 눈빛이나 표정, 고개의 끄덕임만으로 겨우 대답했다. 밥도 늘 뜨는 둥 마는 등 이제껏 내내 누워서만 지내 오다시피 했고, 똥 오줌도 받아 냈었다. 그런 그를 다른 식구들이나 마찬가지로 목욕을 시키기 위해 조금선 선생님과 함께 목욕탕에 막 데려다 놓았는데, 마침 무슨 일 때문인지 한 봉사자가 와서 목사님께서 찾으신다며 조금선 선생님을 불러 갔다. 그와 둘이 목욕탕에 남게 된 신혜는 자기가 옷을 벗기기 어색해 조금선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잠깐 밖에 나와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음 소리를 듣고 놀라 신혜가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쓰러지고 난 다음이었다. 경악하는 신혜의 소리에 봉사자들은 물론 목사님까지도 달려왔다. 숨은 아직 붙어 있었으나 워낙 쇠약해 있었던 사람이라 살아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뒤집어 살피던 목사님이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담담히 말했다.

 

"앰불런스를 부르지.”

그러나 웬일일까. 목사님으로서는 일단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봉사자들은 모두 그 말에서 신장과 안구 생각부터 한 것일까. 말은 못 하고 사지는 잘 쓸 줄 모르나 이 식구도 분명히 기증서약서에 서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일까. 봉 사자들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총무일을 맡고 있는 박해준 선생님까지도 곧바로 전화통 있는 데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신혜 역시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을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 최창학 소설가

▲ 1941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

▲ 1948년 오산남국민학교 입학

▲ 1954년 이리로 이사 이리동중, 남성고

▲ 1960년 고려대 국문학과 진학

▲ 1968년 중편「창」을 <창작과비평>에 발표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 2020.01.2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