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무사와 악사」 홍성원 (2020.01.14)

푸레택 2020. 1. 14. 17:47

 

 

 

 

 

● 무사와 악사 / 홍성원

 

김기범(金基範)이 죽었다. 58세.

사망 시간은 4일 오후 8시로 되어 있고, 사인(死因)은 교통사고에 의한 뇌진탕으로 되어 있다. 시체는 사고 조사차 현재 S병원의 시체 안치실에 보관되어 있다.

사망 소식을 알려 온 사람은 대동피혁(大同皮革)의 젊은 사장인, 박채경(朴彩景)의 남편 손중호(孫重浩)다. 결혼 때 그들의 주례까지 서주고도 나는 처음 손중호의 전화를 받고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제자인 박채경의 이름을 듣고야 나는 그가 4년 전에 채경과 결혼한 그녀의 신랑임을 알아본 것이다.

 

손중호의 연락에 의하면 김기범은 공교롭게도 그의 차에 치어 숨졌다고 한다. 사고 직후 경찰과 함께 손중호는 김기범을 싣고 가까운 병원으로 직행했다. 외상(外傷)이 별로 심하지 않아 그들은 이 정도의 상처라면 응급처치 정도면 완쾌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기범은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다. 범퍼에 받혀 졸도했을 때 그는 머리를 포도에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켰던 것이다.

경찰은 김기범의 사망이 확인되자 즉시 손중호의 자가용차 운전수를 백차에 실어 본서로 연행해 갔다. 그리고 사망자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경찰은 손중호의 입회하에 김기범의 소지품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망자의 몸에서는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46만 원에 달하는 거액의 현금과 더불어, 경찰은 김기범의 안주머니에서 나의 명함 한 장만을 유일한 유품으로 찾아내었을 뿐인 것이다.

 

찾아낸 명함이 내 것임을 알자 손중호는 적지않이 놀라고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는 나와는 두세 차례밖에 만난 일이 없지만 아내인 채경을 통해서는 나를 간접적이나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인전(同人展)을 비롯한 세 차례의 개인전 때문에 채경은 결혼 후에도 수시로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곤 했던 것이다.

내 명함이 유일한 단서여서 손중호는 즉시 내게로 전화를 결어 왔다. 나는 형광등을 신용할 수 없어 밤에는 일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색감을 제대로 가려 내기가 곤란하여 밤에는 붓을 빨거나 책을 보는 따위의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낸다. 손중호가 전화를 걸어 왔을 때도 나는 유화용 끈끈한 붓들을 휘발성이 강한 신나에 빨고 있었다. 물감으로 손이 더럽혀져 있어서 나는 그때 수화기를 걸레로 싸서 들었던 것 같다.

 

이쪽의 이름을 밝혔는데도 상대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가 재차 이름을 밝히자 상대는 그제야 더듬거리듯 입을 열었다.

"선생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전 손중호라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말이 없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둔이다.

"실렙니다만 어떻게 전화를 거셨는지요?"

"그보다 선생님 혹시 박채경이란 사람을 기억하시겠습니까?"

"예, 그 사람은 잘 압니다. 내 제자였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제 첩니다. 결혼 때 선생님께서 저희들의 주례를 맡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소? 그렇다면 혹시 대동피혁의..."

"예, 맞습니다. 제가 바로 대동피혁의 손중호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50세가 되면서부터 나는 약 백여 쌍의 결혼식을 주재해 왔다. 그림을 그리고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해서 주로 여자 쪽 제자들이 나를 곧잘 청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불려 가서 주례만 섰을 뿐 나는 그들 중 삼분의 이는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제자 쪽은 대강 이름들을 기억하는데 그 상대 쪽은 누가 누군지 실물을 보고도 통 기억이 없는 것이다. 손중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내 박채경은 내가 퍽 아끼던 제자다. 결혼 후에도 전람회 관계로 지주 찾아오는 그녀여서 나는 채경과는 딴 제자와는 달리 아주 깝게 지내면서도 그녀의 남편인 손중호와는 결혼 후 겨우 두 번인가 만났을 뿐이다. 사업에 쫓겨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이라 나는 제자인 채경을 통해서만 짬짬이 그의 안부를 건성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내가 간신히 자기를 알아보자 손중호는 새삼스레 깍듯이 인사를 닦았다. 그 동안 바빠서 찾아뵙지 못한 것을 사죄하고, 근간의 선생님의 안부는 아내를 통해 잘 알고 있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사가 대강 끝나자 손중호는 좀더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내게 뜻밖의 질문을 던져 왔다.

"선생님 혹시 요 근자에 누군가에게 명함을 주신 일이 없으십니까?"

예기치 않은 질문이어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명함이라면 나는 지니고만 다닐 뿐 좀체로 남에게 주지 않는다. 그림이나 그리고 가끔씩 대학에나 나가는 처지여서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명함을 쉽게 건네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군? 밤중에 갑자기 명함 얘기는 왜 꺼내나?"

"실은 제가 큰 사고를 저질렀는데 뜻밖에도 피해자 몸에서 선생님의 명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중략)

 

"참 헌데 그 사람이 서울에는 무슨 일로 올라갔더랬소"

"저두 그것만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 말씀두 없이 어느 날 그냥 온데간데없이 떠나섰습니다. 왜 떠나셨는지, 행선지가 어딘지 전 도무지 들은 일이 없습니다."

"허지만 당신은 그 사람을 찾아서 서울까지 다녀오지 않았소? 행선지두 몰랐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서울에 있을 거라구 생각한 거요?"

"그건 순전히 제 짐작이었을 뿐입니다. 얼마 전부터 선생님께선 거동이 약간 수상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서울 말씀을 하시길래 혹시 서울이 아닐까 하구 막연한 짐작으로 올라가 본 것입니다."

"서울에 갈 거라는 말이 있었소?"

"건재를 단골루 내는 집이 있어서 일년이면 제가 두세 번씩 꼭꼭 서울루 올라가군 했더랬죠. 헌데 금년엔 무슨 생각이 드셨든지 나 대신에 당신께서 올라가시겠다구 하더군요. 몇 년을 살아두 그런 얘기가 없던 분이라 나는 그때 그 말씀을 듣구 적지않이 놀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 서울에 올라가 보니 당신께서 정말 건재상에 들러 돈을 찾아 갖구 가셨더군요."

"아 미처 그 말을 못 했군. 그 돈은 바로 내가 보관하고 있소이다. 이번에 서울 올라가면 그 돈은 즉시 우편으로 부쳐드리리다. 헌데 방금 근자에 들어 거동이 약간 수상하다구 말한 것 같은데 어떤 거동이 수상했는지 구체적으루 말해 줄 수 없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왠지 자주 역정과 짜증을 내시더군요. 그리구 전에는 걸핏하면 마을루 내려가셨는데 두 달 전부터는 외출두 않으시구 줄곧 방 안에만 들어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구 계셨습니다. 말씀을 걸어두 대답을 않구 심지어는 환자가 찾아와두 아프시다는 핑계루 내다보지두 않으셨습니다."

"그래 당신 생각에는 그 까닭이 뭐 같습디까?"

"까닭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한숨 쉬듯이 혼자말씀을 지껄이시기는 하셨는데, 그것두 나로서는 통 모르는 소리였습니다."

"지껄인 말들이 대강 어떤 것들이었소?"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자주 지껄이신 말씀은, 미련한 짓 이젠 고만하구 옳게 살구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옮게 산다?"

"예"

침묵이 흐른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겨 맞은편 벽에 걸린 당귀(當歸)라는 약봉지를 바라본다. 기범의 말을 빌리면, 오일규가 죽은 후 그는 살맛이 없어 이 산골로 숨어든 것이 된다. 그러나 십 년 넘게 소문 없이 숨어 산 이곳에서, 그는 다시 수염을 밀고 가발을 쓰고 옛날의 도회지로 조심스레 외출을 시작했다. 그는 대체 이번에 나와서는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갈 셈이었을까? 아니 이번에는 무엇이 그를 이 산골에서 다시 도시로 내몬 것일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미련한 짓 이젠 고만하고 옳게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이다. 그에게 미련한 짓이란 우리에게는 옳은 짓이다. 그리고 그가 옮게 살고 싶다고 한 것은 분명 우리에게는 불길한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요즘에야 다시 세상에 나오기로 결심한 것일까? 세상은 그를 초청한 일이 없다. 그리고 그의 악담처럼 내가 보기로는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썩을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더구나 일규가 이미 죽어 버렸으니 그에게는 맞겨를 상대조차 없는 셈이다. 기범은 그러나 다시 외출을 시작했고, 무언가 이 세상에 자기의 몫이 남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의 몫이 무엇인가는 내게는 끝내 풀 길 없는 수수께끼다. (1995년 수정본)

/ 「무사와 악사」 홍성원

 

☆ 홍성원 소설가

▲ 1937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

▲ 1950년 경기도 수원 매산국민학교 졸업

▲ 1953년 수원북중학교 졸업

▲ 1956년 수원농고 축산과 졸업. 고려대 영문학과 입학

▲ 1958년 고려대 영문학과 3년 중퇴

▲ 1976년 단편 「무사와 악사」 한국문학에 발표

▲ 1985년 현대문학상 수상

▲ 1992년 이산문학상 수상

 

● 되새김질의 의의와 방법 / 이경호(문학평론가)

 

홍성원의 작품들을 읽으면 초식동물의 되새김질이 연상된다. 네 개나 되는 위로 먹이를 삼켜 저장했다가 다시 뱉어 내 튼튼한 어금니로 저작해 소화시켜 내는 초식동의 되새김질은, 상상력과 언어를 먹이로 다루는 작가라면 누구라도 품어 안아야 할 습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설에서 줄거리의 구성을 비롯하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그리고 개개의 장면묘사에 이르기까지 초식동물의 철저한 되새김질로 언어의 질감을 만들어 내는 작품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문학의 대중성이 논의되고 그에 따른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1980년대 이래로 그러한 작품들의 수는 더욱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어금니로 철저하게 씹어 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앞니나 송곳니로 거칠게 찢어낸 먹이의 상태 같은 내용물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편보다 중편이나 장편의 분량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의욕이 그러한 결과를 빚어 내고 있다는 변명을 해볼 수도 있을편이나 장편을 선호하게 된 독서계의 취향을 거칠고 느슨한 작품의 짜임새에 대한 인정으로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업작가가 많아진 문학환경이 오히려 창작에 대한 장인 근성을 희석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그런 점에서 심각하게 되짚어 볼 만하다. 글쓰기와 글읽기의 하향적 평준화가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원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60년대 이래로 전업작가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다. 글쓰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1990년대보다 엄청나게 열악했 1960년대부터 오직 소설쓰기만으로 보람을 얻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는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면서도 프로 근성을 발휘하여 일정한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의 역량을 보여 주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프로 근성은 초식동물의 철한 되새김질을 고집하는 자세이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의 철저한 되새김질은 그의 작업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게 하고, 어떠한 소설의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우선 그의 작품 속에 형상화되어 있는 현실의 모양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무엇보다도 가파르거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ㅇ현실의 상황을 그려 내고 싶어한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관심은 그의 강인한 남성적 기질이나 뚝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강인한 남성적 기질이나 뚝심은 생래적인 것이겠지만, 형제를 많이 거느린 가난한 집안에서 일찍부터 가장으로서의 가파른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했던 조건 속에서 강화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뚝심은 가파른 생활의 현실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존재의 강력한 남성적 의지를 태동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그의 문학세계에서도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에 대처하는 움직임의 모든 가능태를 포착하려는 욕망을 일깨우게 된다. 그의 철저한 되새김질은 한편으로는 움직임의 모든 방향을 끈질기게 탐색하려는 자세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움직임의 모양을 생생하게 묘사하려는 자세를 낳게 된다. 사실상, 움직임의 방향을 탐색하고 움직임의 모양을 묘사하려는 태도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움직임의 여러 가능성이 철저하게 모색되지 않고는 움직임의 생생한 묘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관은 팽팽한 상황 속의 움직임을 남성의 열린 시선으로 파악해 묘사하는 자리에서 성립하게 된다.

그의 문학이 가파른 생존의 현실과 맞닿아 있고, 그런 현실에 대처하는 남성적 의지를 보여 주면서도, 그런 현실을 열린 시선으로 파악하고 묘사하려는 자세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실참여문학이 나아간 방향과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특징을 간직하게 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실참여문학이 가파른 시조의 현실을 주로 남성의 투쟁적 세계관으로 그려 보인다는 점에서 홍성원의 문학도 그런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그의 문화은 가파른 생존의 현실을 개인의 열린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속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집단의 윤리적 규범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는 현실참여문학의 속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가파른 삶의 현실이 집단의 윤리적 규범이나 이데올로기에 쉽사리 종속되어 버릴 때, 그 삶의 현실을 구성하는 다양한 상황의 모양이 정직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단편소설을 가장 왕성하게 발표하고, 현실참여문학이 가장 활발난 흐름을 보여 주던 1970년대 중반에 발표한 「혼들리는 땅」이란 빼어난 중편소설은 그러한 그의 관점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이 작품은 소재나 상황설정에서는 1970년대의 현실참여문학과 다른 모양을 보여 주지 않는다. 낙후된 시외 버스터미널을 운영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뜨내기와 부랑자들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집단화된 입장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계급적 입장으로 나뉘어 갈등과 대립을 엮어 낼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는 결국 그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집단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파른 현실의 상황 속에서 제각기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 방향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무력하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절실하고 지극한 삶의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방향은 정치적 실천의 효용성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진실을 암시해 준다. 개인적인 삶의 진실 속에는 비겁함과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용기와, 분노와 그리움과 슬픔 같은 마음가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인 삶의 진실은 비겁함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분노와 용기를 끌어안는 모습만을 결론으로 보여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홍성원이 팽팽하게 긴장된 현실의 상황 속에서 움직임의 모든 방향과 모양을 철저하게 탐색하고 묘사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움직임의 모든 방향과 모양은 결국 개인이 끌어안아야 하는 삶의 진실을 지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략)

 

홍성원의 소설쓰기에 대한 되새김질은 전쟁소설과 역사소설이라는장르를 통해서 가장 강화되어 온 것처럼 보인다. 「남과 북」과 「먼동」 같은 대하소설을 통하여, 그의 남성적인 기질과 판단은 전쟁의 상황과 역사의 파란만장한 위기상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입장이 되어 팽팽한 마찰을 빚어 내고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확장되고 깊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승자와 패자가 마련하는 삶의 자리와 생각의 자리를 추상화시키지 않고, 구체적인 무늬로 아로새길 수 있는 문학의 모양을 탐색해 왔다. 그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그는 무수히 많은 대결의 상황을 떠올렸다. 대결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문학의 되새김질을 통하여 끊임없이 가려내고 싶어한 삶의 모양은 오히려 대결을 준비하고 대결을 치러 내는 과정 속에 스며들어 있는 수많은 개인의 몸과 마음가짐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결의 결과보다 대결을 준비하고 치러 내는 개인들의 몸과 마음가짐을 주목하려는 그의 문학적 입장 속에 역사와 삶의 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진실은 역사와 삶의 이상을 남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 이는 현실의 결과로서만 파악하지는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자세에서 생겨난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그는 자신의 문학선집 서문에서 '역사가 옳은 일 쪽을 편들지 않음을 아는 지금'이라는 고백을 한 바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1990년대 중반에 그는 그런 고백의 입장을 철회할 것인가? 역사의 진실이 반드시 결과의 명분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는 그에게 이러한 현실의 변화가 역사와 삶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가 문학에 대한 되새김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삶의 진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새롭게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한 열림은 항상 새로운 대결을 준비하고 치러 내는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되새김질은 끝없는 대결의 장을 준비하고 치러 낼 수 있는 용기를 삶의 가장 진실된 자세로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 홍성원 소설 해설 발췌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1995년) 발췌


/ 2020.01.14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