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발탄 / 이범선(李範宣)
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접어 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 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시를 기다려 후닥닥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송선생님은 안 나가세요?"
이제 청소를 해야 할 테니 그만 나가 달라는 투의 사환애의 말에 철호는 다 낡아빠진 해군 작업복 저고리 호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사환애는 저쪽 구석에서부터 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먼지가 사정 없이 철호의 얼굴로 몰려왔다.
철호는 어슬렁 일어섰다. 이쪽 모서리 창가로 갔다. 바께쓰의 물을 대야에 따랐다. 두 손을 끝에서부터 가만히 물속에 담갔다. 아직 이른 봄이라 물이 꽤 손끝에 시렸다. 철호는 물속에 잠긴 두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펜대에 시달린 오른손 장지 첫마디에 콩알만한 못이 박혔다. 그 못에서 파란 명주실 같은 것이 사르르 물속으로 풀려났다. 잉크, 그것은 잠시 대야 밑바닥을 기다 말고 사뿐히 위로 떠올라 안개처럼 연하게 피어서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손가락 끝을 중심으로 차고 그 색의 농도가 점점 연해져 갔다. 맑게 갠 가을 하늘색으로 대야 가장자리까지 번져 나간 그것은 다시 중심의 손끝을 향해 접어들며 약간 진한 파랑색으로 달무리 모양 동그란 원을 그렸다.
피! 이건 분명히 피다!
철호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물속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러자 이번엔 대야 밑바닥에 한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다. 철호의 눈을 마주 쳐다보는 그 사나이는 얼굴의 온 근육을 이상스레 히물히물 움직이며 입을 비죽거려 웃고 있었다.
이마에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 밑에 우묵하니 팬 두 눈, 깎아진 볼. 날카롭게 여원 턱. 송장처럼 꺼떻고 윤기 없는 얼굴. 그것은 까마득한 원시인(原始人)의 한 사나이였다.
몽둥이 끝에, 모난 돌을 하나 칡넝쿨로 아무렇게나 잡아매서 들고, 애 속에 남겨 두고 나온 식구들을 위하여 온종일 숲속을 맨발로 헤매고 다니던 사나이.
곰? 그건 용기가 부족하다.
멧돼지? 힘이 모자란다.
노루? 너무 날쌔어서.
꿩? 그놈은 하늘을 난다.
토끼? 토끼. 그래, 고놈쯤은 꽤 때려잡음직하다. 그런데 그것마저 요즈음은 몫에 잘 돌아오지 않는다. 사냥꾼이 너무 많다. 토끼보다도 더 많다.
그래도 무어든 들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나이는 바위 잔등에 무릎을 꿇고 앉아 냇물에 손을 씻는다. 파란 물속에 빨간 노을이 잠겼다. 끈적끈적하게 사나이의 손에 묻었던 피가 노을빛보다 더 진하게 우러난다.
무엇인가 때려잡은 모양이다. 곰? 멧돼지? 노루? 꿩? 토끼?
그런데 사나이가 들고 일어선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내장. 그것이 무슨 짐승의 내장인지는 사나이 자신도 모른다. 사나이는 그 짐승의 머리도 꼬리도 못 보았다. 누군가가 숲속에 끌어내어 버린 것을 주워 오는 것이었다.
철호는 옆에 놓인 비누를 집어 들었다. 마구 두 손바닥으로 부볐다. 오구구 까닭 모를 울분이 끓어 올랐다.
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 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관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철호는 때에 절어서 마치 가죽끈처럼 된 형겊이 달린 문걸쇠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이라도 드나들 만치 엉성한 문이면서 찌걱찌걱 집혀서 잘 열리지를 않았다.
아래가 잔뜩 잡힌 채 비틀어진 문 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미치면 목소리마저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어머니의 조용하고 부드럽던 그 목소리가 아니고, 찡쨍하고 간사한 게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철호의 얼굴에 걸레 썩는 냄새 같은 것이 확 풍겨 왔다. 철호는 문 안에 들어선 채 우두커니 아랫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박물관에서 미라를 본 일이 있었다. 그건 꼭 솜 누리기에 싸놓은 미라였다. 흰 머리카락은 한 오리도 제대로 놓인 것이어었다. 그대로 수세미였다. 그 어머니는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마치 딸꾹질처럼 일정한 사이를 두고, 가자 가자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해골 같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찡찡한 소리가 나오는지 이상하였다.
철호는 윗방으로 올라가 털썩 벽에 기대어 앉아 버렸다. 가슴에 커다란 납덩어리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정말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눈을 꼭 지리 감으며 애써 침을 삼켰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철호는 저녁때 일터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야 알아듣건 말건 그래도 어머니 지금 돌아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곤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것마저 안 하게 되었다. 그저 한참 물끄러미 굽어보고 섰다가 그대로 윗방으로 올라와 버리는 것이었다.
컴컴한 구석에 앉아 있던 철호의 아내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담요바지 무릎을 한쪽은 꺼멍, 또 한쪽은 회색으로 기웠다. 만삭이 되어서 꼭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배를 안은 아내는 몽유병자처럼 철호의 앞을 지나 나갔다. 부엌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벙어리는 아닌데 아내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
철호는 누가 꼭대기를 쿡 쥐어박기나 한 것처럼 흠칫했다. 바로 옆에 다섯 살 난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철호는 어린 것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웃어 보이려는 철호의 얼굴이 도리어 흉하게 이지러졌다.
"나아, 삼춘이 나이롱 치마 사준댔다."
"응."
"그리구 구두두 사준댔다."
"응."
"그러면 나 엄마하고 화신구경 간다."
"..."
(중략)
철호가 방 안에 들어서자 아내는 그 어린애의 빨간 신발을 모두어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아 철호에게 들어 보였다.
"삼촌이 사왔어요."
유난히 살눈썹이 긴 아내의 눈이 가늘게 웃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아내의 웃음이었다. 자기가 미인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지 오랜 아내처럼 또 오래 보지 못하여 거의 잊어버려 가던 아내의 웃는 얼굴이었다.
철호는 등잔이 놓인 문턱 가까이 가서 앉으며 아내의 손에서 빨간 어린애의 신발을 받아 눈앞에서 아래위를 살펴보았다.
"산보 갔었소?"
거기 등잔불을 사이에 두고 윗방을 향해 앉은 철호의 동생 영호(英浩)가 웃으며 철호를 쳐다보았다.
"언제 들어왔니."
"지금 막 들어와 앉는 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호는 아직 넥타이도 끄르지 않고 있었다.
"형님!"
새삼스레 부르는 동생의 소리에 철호는 손에 들었던
발을 아내에게 돌리며 영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두 한번 살아 봅시다. 제길, 남 다 사는데 우리라구 밤낮 어린애의 신 이렇게만 살겠수. 근사한 양옥도 한 채 사구, 장기판만한 문패에다 형님의 이름 석 자를, 제길 장님도 보게 써서 대못으로 땅땅 때려 박구 한번 살아 봅시다."
군대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넘도록 아직 직업도 못 잡은 영호가 언제나 술만 취하면 하는 수작이었다.
"그리구 이천만 환짜리 세단차도 한 대 삽시다. 거기다 똥통이나 싣고 다니게. 모든 새끼들이 아니꼬워서. 일이야 있건 없건 종일 빵빵 울리면서 동리를 들락날락해야지. 제길, 하하하."
478 이범선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앉은 영호는 벌겋게 열에 뜬 얼굴을 하고 담배 연기를 푸 내뿜었다.
"또 술 마셨구나."
고학으로 고생고생 다니던 대학 삼학년에서 군대에 들어갔다가 나온 영호로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 직업을 잡지 못하는 것은 별도리도 없는 노릇이라 칠 수도 있었지만, 이건 어디서 어떻게 마시는 것인지 거의 저녁마다 이렇게 취해 들어오는 동생 영호가 몹시 못마땅
한 철호의 말이었다.
"네, 조금 했습니다. 친구들이..."
그것도 들으나마나 늘 같은 대답이었다. 또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칠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술 좀 그만 마셔라."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연히 마시게 되는걸요."
"글쎄 그러니까 그 어울리는 걸 좀 삼가란 말이다."
"그럴 수도 없구요. 하하하."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저 그렇게 어울려서 술이나 마시면 뭐가 되나"
"되긴 뭐가 돼요. 그저 답답하니까 만나는 거구, 만나면 어찌어찌하다 한잔씩 하며 이야기나 하는 거죠 뭐."
"글쎄 그게 맹랑한 일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형님, 그런 친구들이라도 있다는 게 좋지 않수. 그게 시시한 친구들이라 해도. 정말이지 그놈들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 뻔했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외팔이, 절름발이, 그런 놈들. 무식한 놈들. 참 시시한 놈들이지요. 죽다 남은 놈들. 그렇지만 형님, 그놈들 다 착한 놈들이야요. 최소한 남을 속이지는 않거든요. 공갈을 때릴 망정, 하하하하. 전우 전우."
영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향해 후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철호는 그저 물끄러미 영호의 모습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영호는 여전히 천장을 향한 채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목의 넥타이를 앞으로 잡아당겨 풀어 늦추어 놓았다.
"가자" 아랫목에서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영호는 슬그머니 아랫목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영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중략)
그렇게 얼마를 걷던 철호는 거기에 또. 치과 간판을 발견하였다. 역시 이층이었다.
"안 될 텐데요."
거기 의사도 꺼렸다. 철호는 괜찮다고 우겼다. 한쪽 어금니를 마저 빼었다. 이번에는 두 볼에다 다 밤알만큼씩 한 솜덩어리를 물고 나왔다. 입 안이 찝찔했다. 간간이 길가에 나서서 피를 뱉었다. 그때마다 시뻘건 선지피가 간덩어리처럼 엉겨서 나왔다.
남대문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서 서울역이 보이는 데까지 왔을 때 으스스 몸이 한번 떨렸다. 머리가 띵하니 비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에 번쩍 거리에 전등이 들어왔다. 눈앞이 한번 환해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는 어찌 된 셈인지 좀전에 전등이 켜지기 전보다 더 거리가 어두워졌다. 철호는 눈을 한번 꾹 감았다 다시 떴다. 그래도 매한가지였다. 이건 뱃속이 비어서 그렇다고 철호는 생각했다. 그는 새삼스레 점심도 저녁도 안 먹은 자기를 깨달았다. 뭐든가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수한 설렁탕 생각이 났다. 입 안에 군침이 하나 가득히 괴었다. 그는 어느 전주 밑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침을 뱉었다. 그런데 그건 침이 아니라 진한 피였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또 한번 오한이 전신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다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속히 음식점을 찾아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울역 쪽으로 허청허청 걸었다.
"설렁탕"
무슨 약 이름이기나 한 것처럼 한마디 일러 놓고는 그는 식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또 입 안으로 하나 찝찔한 물이 괴었다. 철호는 머리를 들었다. 음식점 안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머리가 아찔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 밖으로 급히 걸어 나갔다. 음식점 옆 골목에 있는 시궁창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울컥 하고 입 안에 것을 뱉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위가 어두워서 그것이 핀지 또는 침인지 알 수 없었다. 철호는 저고리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일어섰다. 이를 뺀 자리가 쿡 한번 쑤셨다. 그러자 뒤이어 거기에 호응이나 하듯이 관자놀이가 또 쿡 쑤셨다. 철호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큰길로 나왔다 마침 택시가 한 대 왔다. 그는 손을 한번 흔들었다.
철호는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택시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해방촌."
자동차는 스르르 속력을 늦추었다. 해방촌으로 가자면 차를 돌려야 하는 까닭이었다. 운전수는 줄지어 달려오는 자동차의 사이가 생기기를 노리고 있었다. 저만치 자동차의 행렬이 좀 끊겼다. 운전수는 핸들을 잔뜩 비틀어 쥐었다. 운전수가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핸들을 틀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S병원으로 가."
철호는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운전수는 다시 획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운전수 옆에 앉아 있는 조수애가 한번 철호를 돌아다보았다. 철호는 뒷자리 한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한국은행 앞 로터리를 돌고 있었다. 그때에 또 뒤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X경찰서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철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죽었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x경찰서 앞입니다."
철호는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나 곧 또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 버렸다.
"아니야, 가."
"x경찰섭니다, 손님."
조수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고 말했다.
"가자."
철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아저씨네."
"취했나?"
운전수가 힐끔 조수애를 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철호는 점점 더 졸려 왔다. 다리가 저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철호는 또 한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의 교통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번 조수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철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따르르롱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홍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를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 신호등의 파랑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표구된 휴지』, 책세상, 1989)
/ 오발탄, 이범선(李範宣)
☆ 이범선(李範宣) 소설가
▲ 1920년 평남 안주군에서 태어남
▲ 1938년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졸업
▲ 1949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 1958년 '갈매기'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1961년 '오발탄'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 1970년 '청대문집 개'로월탄문학상 수상
● 전후 리얼리즘의 외로운 명맥 / 하정일(문학평론가)
전후문학(戰後文學)에서 이범선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그 독특성이란 그가 리얼리즘의 명맥을 이은 드문 작가 중의 하나라는 점에 있다.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인 손창섭, 장용학, 김성한, 오상원 등의 문학세계를 보면 쉽게 확인되듯이 당시의 주류는 비(非)리얼리즘 문학이었다. 이렇게 된 일차적인 이유로는 주요 리얼리즘 작가들의 월북으로 남한 문학의 헤게모니를 '순수문학' 진영에서 쥐게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리얼리즘적 전통의 이러한 단절은 전후작가들로 하여금 '순수문학'이나 모더니즘을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다. 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세례 또한 리얼리즘 문학이 힘을 잃게 만든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삶의 우연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는 필연성과 객관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과 근원적으로 배치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실존주의에 깊이 침윤된 전후작가들이 리 얼리즘에서 멀어진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했다.
이범선은 이처럼 리얼리즘의 전통이 붕괴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리얼리즘의 명맥을 보존함으로써 이후 리얼리즘 문학이 재생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이범선이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던 내적 요인으로는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서민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이것은 이범선 문학을 관통하는 중심적 문제의식인 동시에 리얼리즘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이로써 이범선이 왜 리얼리즘의 기율에 충실할 수 있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요컨대 이범선의 문제의식이 그를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범선의 문학세계가 리얼리즘만으로 착색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학마을 사람들」이나 「갈매기」 등은 서정적 단편소설로 리얼리즘의 세계외는 거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소설세계는 리얼리즘적 단편소설과 서정적 단편소설로 나누어긴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경향은 시기적으로 구분된다기보다는 거의 혼효되어 있는데, 이는 이범선이 양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 혹은 갈등했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양자가 철저히 대립적인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리얼리즘적 단편소설과 서정적 단편소설 사이에는 어떤 공통항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일종의 보편적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범선의 보편적 휴머니즘은 때로는 서민의 소외된 삶에 대한 깊은 동정으로, 때로는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냉소로, 심지어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편적 휴머니즘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보편적 휴머니즘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것은 현실을 추상화시켜 모순의 역동적 운동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보편적 휴머니즘이 종종 이상주의와 비관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범선의 소설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서정적 단편소설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그러나 보편적 휴머니즘이 리얼리즘과 결합할 때 그것은 강력한 비판적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이 거기에 해당한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서정성의 본질이 원래 이것이거니와 그런 점에서 이범선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모티프는 가령 「갈매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사 발령을 받아 들어온 남도 어느 섬에서의 일상을 잔잔한 톤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평범한 섬생활을 통해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의 원형을 보여 준다. 물론 섬에도 갈등과 아픔이 존재한다. 다방 주인 부부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나 6.25로 아들과 헤어진 어느 거지 노인의 서글픈 생애가 그것이다. 하지만 다방 주인 부부의 죽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미화되며, 거지 노인의 서글픈 삶은 아들과의 만남으로 끝이 난다. 다시 말해 섬에서의 갈등이나 아픔은 해결로 귀착되는 갈등이나 아픔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섬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해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이상향이 비현실의 세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어쩐지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독백하는 것이다. 섬을 떠나면 기다리는 것은 해결될 수 없는 갈등과 아픔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이상향의 세계를 떠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섬이 잃어버린 이상향, 즉 농경과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비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섬은 실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를 표상하는 일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이 목가적인 전원 문학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한 서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이상향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긴장의 정도는 매우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학마을 사람들」은 돋보인다. 요컨대 「학마을 사람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학을 매개로 상징적으로 그려 내는 데 나름대로 성공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정적 상징인 학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한 마을의 파탄이라는 서사적 갈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 「갈매기」의 갈등이 서정적 해결을 지향하고 있는 데 비해 「학마을 사람들」의 갈등은 서사적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서사적 갈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성을 환기시켜 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사를 심정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데 그침으로써 서정적 주관성의 세계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역사의 심정적 이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운명론적 인식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역사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 인간의 주체적 실천이 아니라 학의 방문 여부인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학만 있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여느 해에 그렇게도 영험하던 학의 생각이 몹시도 간절하였다. 이런 때면 학은 늘 하늘과 그들 사이에 있어 주었었다. 「학마을 사람들」
학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발상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체적 선택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민족사를 운명에 종속시킨 채 학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게다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이다. 이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심정적 이해와 결합하여 우리 근현대사의 객관적 실상을 상당 부분 은폐시키고 있는데,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개입이 문학에서 갖는 위험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학마을 사람들」이나 「갈매기」 등의 서정적 단편소설은 사라진 이상향과 전도된 현실 사이의 간극과 긴장을 강조함으로써 전후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 준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과는 달리 리얼리즘적 단편소설들은 전후의 경제적 궁핍상과 그것이 몰고 온 비극을 엄정하게 그려 냄으로 심적 모순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당대의 사회는 이범선 개인의 한계라기보다는 역사의 한계에서 기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당시는 역사 진보의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가능한 길은 부정성의 본질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
「오발탄」은 한 월남 가족의 비극적 삶을 통해 전후 경제의 파탄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전후 경제의 파탄상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월남민들의 경우 그 궁핍상은 생활 터전의 상실이라는 조건까지 겹쳐 더욱 심각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사회적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전형적 소시민 '철호', 가족의 극한적 궁핍을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해결하려다 마지막 순간 '양심선'에 걸려 구속된 영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공주 노릇을 하는 '명숙', 가난한 삶에 함몰되어 과거의 재기와 발랄함을 잃어버리고 결국엔 애을 낳다 죽고 마는 아내, 그리고 이북에서의 풍족한 생활과 남한에서의 극한적 궁핍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려 '가자' 소리만 되풀이하는 어머니-- 이들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신음하는 당대 민중들의 전형이다. 철호가 어떻게 보면 희화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냉철하게 추적하면서 「오발탄」은 한 가족의 비극이 단지 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극임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이러한 삶의 모순이 반드시 끝장나야 함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강조한다.
"가자!"
철호는 또 한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의 교통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번 조수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철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따르르룽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발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차는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디건 가긴 가야 하는' 1950년대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비유이다. 여기서 '가자'라는 외침은 소설 전체에 걸쳐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됨으로써 삶의 비극성과 변화의 절박성이라는 주제의식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발탄」은 '부정적 전망'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 준다.
한편 「오발탄」은 철호 일가의 비극이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매우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1950년대 문학의 전반적 성격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통찰은 소중하다.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조리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오발탄」
이처럼 「오발탄」은 칠호 일가의 삶이 한 사회계급의 삶의 일부이며, 그 계급의 삶은 사회적 생산관계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즉 철호 일가의 극한적 궁핍이 사회적 생산관계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오발탄」은 철호 일가의 비극적 삶의 사회적 연관을 짚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1950년대의 경제적 궁핍상을 월남 가족의 삶을 통해 추적함으로써 분단 문제에까지 소설적 지평을 확대시키기도 한다. 장용학 같은 작가들도 분단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그것을 비역사적 수준으로 추상화시켜 버린 데 반해, 이범선은 분단 문제를 일상의 구체적 삶 속에서 추적함으로써 추상성의 함정을 벗어난다.
아직까지는 분단 문제가 중심 주제가 아니라 소설적 배경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분단 소재 작품들과 대동소이하지만, 「오발탄」은 분단 문제를 어떤 측면에서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접점인 분단모순에 대한 총체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은 분단 체제와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1950년대의 상황에서는 무리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오발탄」의 등장인물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계의 압도적 힘에 함몰되어 버린 존재들이다. 이들은 현실의 논리와 질서에 순응할 뿐 거기에 저항하는 법이 없다. 영호가 그 점에서는 약간 예외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그 역시 결국엔 '양심선'이라는 현실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이러한 순응적 인물들로 작품이 구성될 경우 자칫하면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오발탄」은 그 같은 함정에서 벗어나 오히려 부정적 전망이란 형식으로 변혁의 당위성 혹은 필연성을 제시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인물들이 구체적 삶과의 상호 연관 가운데서 유기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철호 일가의 비극이 구체적 삶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개인사를 넘어 공동체의 역사로까지 상승할 수 있었고,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철호 일가의 비극이 조명됨으로써 1950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인물 묘사의 치밀성과 절제력은 인물의 전형성을 강화시켜 주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생생한 현실성을 제공해 주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발탄」은 소설문학에서 리얼리즘에의 충실이 얼마나 긴요한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이범선의 소설세계를 서정적 단편소설과 리얼리즘적 단편소설로 나누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범선 문학의 본령이 리얼리즘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서정적 단편소설의 경우 사라진 이상향과 전도된 현실 사이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 나가려는 작가의 진지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실상을 왜곡하거나 이상화시키고 있는 데 비해,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서민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천착을 통해 경제적 궁핍화와 자본주의적 사물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은 비판적 리얼리즘 전통의 외로운 계승자라할 수 있다. 특히 전후문학의 반(反)리얼리즘적 경향을 고려할 때 이범선의 소설사적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그의 소설들이 당대 사회의 총체적 형상화에는 이르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한계는 모순들의 중층적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 기인한 결과인데, 이와 관련하여 이범선이 우리 근대문학의 풍부한 리얼리즘적 전통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또한 소설 곳곳에 알게 모르게 배어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도 현실의 총체적 인식을 부분적으로 방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체험으로부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도 원인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범선이 노골적인 반공주의자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개인적 한계인 동시에 역시사적 한계이다. 분단이 고착화되고 파시즘적 독재가 횡행하는 한편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진보적 운동의 전통마저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서 삶의 총체적 연관을 인식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소설세계는, 루카치의 용어를 빌리면, '더 이상 아님(no longer)'의 시대에 나아갈 수 있는 한 최대치를 보여 준다. 그 이상은 1980년대 이후의 문학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이범선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양자를 이어 주는 디딤돌이었다고 있을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 (1995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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