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암사지도」 서기원 (2019.12.15)

푸레택 2019. 12. 15. 20:21

 

 

 

● 암사지도(暗射地圖) / 서기원

 

형남(亨男)이 작년 여름에 제대되어 의지할 곳이 없었던 차에 우연히 만난 옛 전우가 상덕(相德)이었다. 그들은 같은 중대에서 일년 남짓 함께 지냈었다. 중대장은 해방 직후 군대에 들어가서 육 년 만에 대위가 된 사내로, 중대원에게 훈시할 적마다,

"본관의 사병시대에는 침구를 정돈함에, 공장에서 갓 나온 벽돌을 포개어 놓듯 했는데, 귀관들은 도시 정신상태가 돼먹지 않았다."

고 기합을 넣다가, 으레,

"그럼으로 해서 귀관들은 인격을 도치(도야)해야 된다."

고 다지곤 하였다. 못살던 자가 돈푼깨나 생기면 가난뱅이 업신여기기가 도리어 심하다더니, 그 사내는 사병들에게 노예가 되기를 강요했다.

그 아래서 미술대학생인 김형남 하사와 법대생 박상덕 하사는 서로 유일의 친구가 되었다. 총알이 스스로 피해 간다는 중대장이 전사하고, 그들이 속한 소대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어, 말더듬이 어느 이등중사가 대장 대리 근무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격전도 용케 견디어 냈었다. 그래 상덕은 형남이 제대되기 반년 앞서 군복을 벗었다.

상덕은 형남에게 장차 사회에 나와 잠자리가 변변치 않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주소에다 열댓 간짜리 한식 기와집의 구조마저 그려 가며,

"네가 오면 요 방을 주지."

하곤, 대문간과 맞붙은 뜰아랫방을 빨간 오일 연필로 꼭꼭 찔렀던 것이다.

"고오마운 말씀이지. 원랜 그 사나이 첩의 집이거든, 원 집은 폭격에 폭삭 녹아 버렸지, 모조리 전멸야. 웬일인지 그 집 명의가 그 사나이 이름으로 있다가, 그 첩두 역시 돌아가셨더라 그 말씀이야. 기맥힌 유산이지."

상덕은 부친을 언제나 '그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가 웃지도 않고 그렇게 말할 때엔 형남은 가슴속이 흐뭇해지며 쾌적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 부자 사이의 따스한 체온을 느꼈고, 이를테면 애정의 역설적인 해학(諧謔)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그런 상덕이 좋았다.

그러자 형남도 군복을 벗고, 제대병에게 지급하는 곤색 광목지의 작업복에 같은 감의 작업모를 눌러쓴 채, 트럭으로 청량리를 거쳐 동대문에서 내려서 딱딱한 포장도로 위에 발을 디딘 순간, 꿈에서 상기 덜 깬 기분이라고 할까, 어쩐지 삼 년간의 군대생활이 실제 그가 체험한 것이 아닌 듯, 어릴 때 어머니 무릎에서 듣던 옛얘기처럼 까마득해지는 것이었다. 동대문 안으로 뻗은 번화한 거리가 몹시 생소하게 보였다. 먼저 그는 영등포에 있다는 숙모를 찾았으나 그의 수첩에 적힌 주소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학교 시절에 가까이 지냈던 친구의 얼굴들이 더러 눈앞에 아물거렸지만 주소도 분명치 않으려니와 그런 꼬락서니로 빌어먹으러 왔네, 할 용기가 있을 리 없음은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일이었다. 물론 상덕의 말을 잊지는 않았다. 서울의 지리는 잊어버려도 그걸 까먹있을리 없다. 내심으론, 이렇게 미친개처럼 헤매다가 마침내 뒹굴어 들어갈 곳이 바로 상덕이네거니 작정해 둔 채, 그건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고, 될 수 있는 데까지 무슨 다른 도리를 강구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수첩을 소매치기당할까 두려워하면서도 곧 찾아가지 않은 연유이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만난 것이다.

그러니 우연히 부딪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들은 손을 맞잡기 전에 껴안고 반겼다.

"야! 임마, 막바루 찾아올 것이지, 그래 될 하느라구 이 모양야! 당장 오라, 네 꼴을 보니 다 알겠다."

상덕은 두 손으로 형남의 목을 졸라맸다. 형남은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상덕의 집은 상상보다 넓었다. 아름드리 기둥이나 굵은 서까래, 그리고 푸르죽죽하게 칠이 벗어지긴 했지만 두툼한 현관이라든지 일견 규모 있게 꾸민 집으로 보였다. 상덕의 설명에 혹 부족이 있었다면 포탄에 지붕이 뚫어진 채로 있는 머릿방과 문간에 관한 얘기가 없다는 것쯤일까. 그뿐이 아니었다. 상덕이 여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그네를 '최형(崔兄), 하고 불렀다. 윤주(潤珠)라는 이름이라 하였다. 지난 겨울 어느 일요일 상덕이 극장에 갔었다 한다. 극장 앞에 보스턴백을 든 여인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큰 키는 못 되나 가는 몸집에 다색 코트가 썩 어울리더라는 것이다.

"영화구경 같이 합시다."

했다. 그러니까 다소 우울하게 보이던 그네 얼굴이 활짝 피며,

"네!"

하고 국민학교 아동식의 대답을 했다. 스물한둘로 헤아려지며 녹록지 않은 집안을 생각히는 옷차림이어서 놓치기가 무척 아까운 터에,

"우리집에 놀러 갑시다."

하니까, 그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대꾸가 없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왜 그런지 그런 말이 나옵니다."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살러 가는 것이라면..."

하고 그네는 낯을 붉혔다. 여간 일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도 않는 상덕도 그때만큼은 숨이 칵 막히더라는 것이다. 그네는 집을 쫓겨났었다. 부산 동무네로 갈 요령으로 정거장을 향하던 길이었는데, 새로 개봉된 불란서 영화가 보고 싶어서 한참 수중의 돈과 의논하던 참이)었다고 한다. 실은 친구집에도 가기 싫다고 한다.

"...나도 친척이란 아무도 없고, 이집 하나가 재산이지요. 게다 직업이래야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따위고, 수입은 쥐꼬리만한데 생각은 말꼬리만하구 이런 생활이래도 견딜 수 있으시면 같이 삽시다."

이렇게 된 일이라 하였다. 그네가 집에서 내쫓긴 까닭은 우정 묻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연애사건으로 짐작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애매한 놈팡이와 몇 달 살다가 채인 거겠지, 다 그런 여자 아냐?"

하고 다소 자조적인 웃음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형남은 윤주를 멸시할 수가 없었다. 그 같은 야함(野合)을 가장 비웃는 그였으나, 그네가 그런 푼수의 여자라곤 당최 곧이들리지가 않았다. 그건 윤주의 첫인상이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인데, 말을 붙이면 번번이 긴 속눈썹을 가지런히 세우고는 말끔히 쳐다보는 밝고 구김살 없는 시선 속에서 도리어그 자신이 추악하게 느껴지곤 하였다. 호감이 갔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뚜렷한 것이었지, 상덕의 아내로 예우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뭣보다도 그 자신의 일이 다급했다. 일심중학관(一心中學館)에 일주에 사홀 출강하는 상덕의 수입으론 지탱해 나갈 도리가 없었다. 형남도 제 밥값은 해야겠는데 미술대학 중퇴의 학력으론 마땅한 일자리가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두 달을 두고 온 장안을 속속들이 뒤진 끝에 어느 극장의 광고판을 그리게 된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극장 앞에 매어다는 넓은 간판화가 아니라, 번화한 네거리에서 가끔 보게 되는 소규모의 그림이긴 했지만 그걸 한 달에 네 가지 장면으로 여덟 장, 단가 오천 환에 계약이 성립되었다. 대청마루가 아틀리에가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두어 평 넓이의 캔버스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있다. 지평선까지 푸른 목장을 배경으로 미국의 카우보이와 블론드의 서부 처녀가 키스하는 장면 그림 밑에는 베니어판의 팔레트가 너덧 장, 그 위에 함부로 뒹굴고 있는 굵직한 브러시, 각색 페인트가 뒤범벅으로 녹아 마룻바닥에까지 흐르기가 일쑤다. 형남은 카우보이의 어깨에 매달린 처녀의 손가락이 신통치 않다고 느껴진다. 가는 붓을 골라 기름에 녹인다. 머릿속엔, 간판화란 첫째 선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의하는 극장 지배인의 두꺼운 아랫입술... 윤주는 화로에 숯을 피우고, 숯내가 심하면 분합문을 여닫으며 공기를 조절해 주는 것이었다. 상덕은 출근하지 않는 날엔, 거의 정오가 돼서야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기원으로 바둑을 두러 나가는 것이 일과였다. 종일 집안에 박혀 있는 형남은 자연 윤주와 접촉할 시간이 길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지없이 기꺼운 일이 되거나 아니라면 마음에 어떤 무거운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원체 숫기가 나쁜 그의 성질이, 쉽사리 농을 지껄일 줄도 모를 뿐더러, 윤주는 그의 손 닿을 곳에 있는 여인이 아니라고 다짐하고도 있었다. 애초에 그네를 아주머니! 하고 불렀더니, 그네는 하하하! 하고 사내애처럼 웃었고, 상덕은,

"임마! 아주머니가 어딨어? 우린 그런 새가 아니니까, 미스 최로 불러!"

했다.

"아주머닌 어감이 나빠요."

하며, 윤주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하는 상덕의 말에서 짐짓 오해를 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 뒤로 형남은 될수록 그네의 인칭을 부르지 않으려 했고, 또한 얼마간 그러노라니 그네와의 얘기 때엔 아예 인칭을 빼버려도 넉넉히 통할 수 있게끔 교묘한 화술에 익숙해진 것이다.

 

(중략)

 

돌이켜보면 윤주를 부르려다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마는 일이 간혹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전처럼 그네를 미스 최로 부르기가 거북해서가 아닌 것이었다. 아침 나절에 양칫물이나 세숫물을 받으러 부엌 안을 들여다볼 때의 일인데, 흉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어찌 보면 성적인 자극을 주는 엷은 핏줄이 윤기가 지르르 흐르는 그네의 눈망울에 엉클어져 선 것을 보게 되자 간밤에 상덕의 품에 안겼을 그네를 머리에 아니 그릴 수가 없는 것이며, 그 순간엔 윤주의 이름이 나오다가도 막히는 것이었다.

형남이 다시 사창굴에 드나들게 된 일을 윤주의 눈망울이 그랬다고 그네에 뒤집어씌우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하다. 군대에서도 한 달에 한 차례쫌 휴가를 얻으면, 전선에서 백여리 후방인 도읍지로 상덕과 함께 '배설(排泄)'하러 달리던 그였기에 새삼 마음에 걸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윤주 때문에 욕정이 도발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상덕은 사창굴에 가지 않는다.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상덕이 부러웠다. 상덕의 말 그대로 값싼 소주 몇 잔에 소용(小勇)을 얻어 콧노래를 홍얼거리며 창녀를 물색하고 나서, 지극히 기계적인 동작을 끝마치고, 비위가 느글느글한 자기 협오를 자꾸만 되씹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틀에 짜인 일련의 절차에 싫증이 날 대로 난 것이었다. 그런 밤이면 자학의 충동을 어쩔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침내는 선반 위에 꽂힌 원색판 화집을 꺼내어 뒤지는 것이었다. 브라크나 루오를 보는 것이 못 견딜 괴로움이었다. 보기 싫어하는 두 눈 앞에 떨리는 손이 용서없이 현란한 원색 화면을 펴놓는 것이었다. 미술대학에 다닐 때의 야망과 제작의 의욕과 스스로가 도취되던 휘황한 이미지는 죄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이젠 귓전을 스치는 박격포 탄소리와 전우의 단장(斷腸)의 비명, 그리고 여인의 나체와 욕지기나는 간판화의 원색... 모두가 뒤섞여 머릿속을 맴돌며 어지럽게 하는 것일까. 클레의 화집을 폈다. '태양과 달', 태양의 걷히어 가는 붉은 꼬리를 달의 회고 가냘픈 손목이 꼭 붙들고 있었다. 아니 태양이 제 몸은 가라앉으면서도 손바닥을 모아 달을 고이 떠받치고 있는 듯도 하다.

"자니?"

굵은 사내 목소리였다. 형남은 소스라쳐 화집을 덮어 빵구석에 뛰어 놓았다. 방문이 열리고 상덕의 네모진 얼굴이 방 안의 전등불에 반사했다. 부신 눈을 껌벅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의 딱 벌어진 어깨 너머로 그믐달이 파랗게 투명한 유리 수조(水槽) 안의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고 있었다. 상덕은 화집에 짧은 눈총을 주고,

"...너 그럴 것 없다. 그러지 말구 최형과 자란 말야! 일주일에 한 번만 더두 말구 그러란 말야! 그쯤이 그중 건강에 좋지, 나야 이젠 싫증이 났지만 너와 보조를 안 맞출 수도 없으니 난 토요일로 정하지. 너 일요일로 정하려무나. 그런 데 마구 다니다간 큰변 난다."

했다. 이를테면 윤주 공유설(公有說)이다. 형남은 당황항했다.

"너,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임마! 춘천서 교대루 놀던 일을 잊었니? 놀랄 일이 어디 있어."

"그런 여자와 미스 최가 같단 말이냐?"

형남은 공연히 목이 메었다.

"다를 게 뭐 있어! 생각해 봐. 최형이 내 뭐란 말야, 내가 뭐 그 애 하구 평생 살겠다던가? 너를 기껏 생각해서 하는 제안이다."

하긴 상덕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풀이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치에 닿는 소리는 못 된다는 얼굴로,

"그렇지만 미스 최가 들어줄 리가 있니?"

했다.

'그게 될 말이냐? 하려던 것이 그처럼 비루한 질문이 되었다.

"그런 여잔데 별수 있니? 건 네가 너무 순진해서 개를 비싸게 보는 거야. 글쎄 내 말대루 해봐! 지금 네 요구를 거절할 까닭이 없다. 여자란 사는 본능밖엔 없는 거다."

상덕은 추근추근 설득하는 것이었다.

 

(중략)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윤주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낱말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떼어 놓는. 그런 말이었다. 아비가 뉜지. 알지도못하고, 아니 알려 하지도 않고 나간단 말인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고 형남은 그네를 힐난하고 싶은 충동이 북받쳐 올랐으나,

"내 것이란 생각뿐이에요. 거야 틀림없이 두 분 중에 한 분이 애 아버지겠죠. 허지만 그건 두 분이 다 아애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과 마찬기지예요. 확실한 건 내 것이란 것뿐이거든요. 당신들엔 아무 권리가 없어요."

하는 윤주의 어감 속에는 상식이나 논리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무서운 집념이 도사려 앉은 것을 느끼며 힘없이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최형! 그럼 시방 당장 나갈 수 있다, 그 말이지?"

상덕이 허리춤에 손을 넣고 앞가슴을 폈다.

"그러잖아도 나가요!"

"미스 최! 잘 생각해 봐! 무턱대구 덤비지 말구."

형남은 이젠 웬일이지 눈앞에 벌어지는 사태에 흐뭇한 충족감을 스스로 즐기며 말했다. 그네는 온갖 일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진다! 밤이 다 됐다!"

상덕이 그네의 뒷모습에 덮어씌우듯 소리쳤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그런 윤주의 침묵은 형남으로 하여금, 미구에 그네와 헤어질 애처로움을 도리어 사무치게 하였다. 형남은 그때까지도 끝내 저버릴 수 없었던 한 오라기의 낙관이, 설마 그렇게까지 나설 수야 없겠지 하는 자위가 이젠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것을 깨달았다. 윤주는 바보다. 천치다. 애를 밴 채 어딜 나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나냐. 애를 낳고 싶단 말이야? 그럼 낳으라지, 이 집에서 나으라지, 내가 아비 노릇 하지, 난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윤주가 낳는 애의 아비 노릇을 하지, 아니 어쩜 정말 내 앤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상덕보다도 윤주를 사랑하고 있는 그만큼 내 애일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 정말 내 앤지도 모르지... 마룻바닥에 한 손을 짚은 채 형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대청 천장엔 전등이 켜졌다. 윤주가 휜 블라우스에 곤색 플레어를 입고 안방에서 나왔다. 손에는 예의 보스턴백을 들고 있었다.

"저녁이나 차려 드리고 작별하려고 했지만 무정도 해라... 호호호 당장 나가라는 걸 할 수 없죠, 뮈."

윤주는 우정 노여움을 탄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구두끈을 매고 난 그네는 앙코르에 답례하는 발레리나의 시늉으로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머리를 꾸벅 하더니 돌아서 버리는 것이었다.

"애비 없는 앨 어쩔라구 그러지?"

상덕이 이지러진 얼굴로 말했다.

"죽이든 살리든 내 맘대로 하니까요!"

두어 발짝 거닐다가 돌아서며 윤주는 쏘아붙였다.

"미스 최! 이봐."

형남이 다급히 말문을 열려는데,

"그만두세요, 애 아버지가 분명했던들 난 하자는 대로 했을지 몰라요 모르시겠어요? 두 분 다 아버진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굿 바이! 신사 여러분들이여!"

그리고는 덥석덥석 사내걸음으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기까지의 동작이 너무도 멋들어진 호흡이어서 중간에 형남이 가로지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굿바이! 신사 여러분들이여!' 하는 그네의 익살에서 형남은 뜨거운 울음 같은 것이 목청에 치솟았다. 뼈이걱! 대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제기랄 잘됐다! 잘됐어!"

이렇게 내뱉는 상덕의 말이 형남에겐 무슨 짐승의 울음 소리로 들렸다.

"미스 최! 최! 미스 최!"

형남은 양팔을 허위적거리며 맨발로 뛰어내리자 그대로 대문간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전야제』, 책세상, 1988)

/ 「암사지도」, 서기원

 

☆ 서기원 소설가

▲ 1930년 서울 서대문구 송월동에서 출생

▲ 1948년 서울대 상대 입학

▲ 1960년 '오늘과 내일'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1961년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동인문학상 후보상

 

● 허무와 환멸 혹은 풍자와 냉소 / 구재진(문학평론가)

1 머리말

우리 문학사에서 전후문학이 가지는 위치는 독특하다. 6.25라는 전쟁 체험을 근간으로 하는 전후문학은 역사와 이념의 문제를 다루었던 식민지시대의 문학이나 해방공간의 문학과는달리 개인과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와 이념이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임에 반해서 개인과 실존은 현대를 사는 세계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1950년대 문학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후문학의 특수성은 곧바로 전후문학의 한계로 연결된다. 1950년대, 즉 전쟁이라는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던 전후문학은 4·19 이후 1960년대라는 새로운 역사적 상황 앞에서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추상화하고 한국 상황의 세계사적인 보편의 차원으로 사고하고자 하였던 작가들은 1960년대의 가장 한국적인 상황 앞에서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후문학이 가지는 이러한 특질은 소위 전후세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더욱 잘 드러나는데 그 중 장용학, 손창섭 등은 알레고리나 아이러니 등 특유의 미학을 구성함으로써 전후문학을 대표하고 있다. 서기원 역시 전후세대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56년에 「안락사론」과 「암사지도」를 통해서 등단하였으며 그의 전후소설들은 소위 '아프레게르'적인 모랄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 더이상 그러한 경향을 소설로 쓸 수 없었던 서기원은 자신의 독자적인 소설 영역을 개척하게 된다. 서기원이 새로운 소설세계로서 선택한 것이 역사소설의 세계인데 그 분기점을 이루는 것이 「혁명」(1964~1965)이다. 그는 「혁명」이후 「김옥균」, 「조선백자 마리아상」, 「왕조의 계단」 등의 역사소설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서기원의 작품은 전쟁 체험과 전후의 상황을 그림으로써 소위 아프레게르적인 모랄을 추구한 전기 소설과, 역사소설이나 풍자소설 들을 통해서 사회와 역사라는 문제를 다룬 후기 소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 환멸과 허무, 그리고 역설의 미학

1950년대의 전후소설들에서 전쟁 체험이란 원체험과도 같은 것이다. 당시의 소설들은 그 어느 것도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염상섭이나 황순원과 같은 소위 구세대 작가들에게 있어서나 전후세대 작가들에게 있어서나 예외는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은 당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염상섭이 「취우」에서 전쟁을 일상성의 차원에서 형상화하고 한갓 지나가는 소나기로 비유했다 할지라도, 황순원이 많은 단편들을 통해서 전쟁으로 인하여 더욱 빛을 발하는 휴머니즘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소설세계를 이어 나갔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전쟁이 커다란 무게로 다가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무게는 전후세대 작가들에게 더욱 컸을 것인데, 식민지시대와 해방이라는 역사를 경험한 구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전쟁과 견줄 만한 역사의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전쟁은 그대로 무너짐이었고 전쟁이 '무엇을' 무너뜨렸는가보다는 전쟁이 '무너뜨렸다'는 사실 자체만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당대의 전후세대 자가들에게 한국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과 동일시되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무너짐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다.

서기원의 초기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모티프가 바로 이 '무너짐'이다. 무너짐의 구체적인 내용은 작품에 따라서 모랄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실존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무너짐' 그 자체는 초기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암사지도」,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박명기」등은 모두가 이러한 '무너짐'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서기원의 처녀작에 해당하는 「암사지도」는 상덕, 형남, 윤주를 통해서 전후의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다. 법대생이었던 상덕과 미술대학생이었던 형남은 재학중 입대하였다가 제대 후에 상덕의 아버지가 남긴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 집에서 상덕이 우연히 알게 된 윤주라는 여자와 셋이서 기묘한 동거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 강사를 하던 상덕이 실직을 하면서 형남의 영화간판 작업으로 생활을 하던 중 상덕이 '윤주 공유설'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형남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러던 중 윤주가 임신을 한다. 이에 상덕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형남은 어정쟁한 태도를 보이자, 윤주는 집을 나간다. 이 작품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미 '어떠한 가치체계도 인정하지 않는, 마비된 윤리의식을 가진 젊은이들로서, 생활의 타성과 본능에 의해 삶을 영위해 가는, 전쟁으로부터 깊은 정신적 상처를 받은 불행한 인물들'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상덕이나 형남이나 윤주는 모두 전쟁으로부터 정신적 상처를 입고 삶에 대한 뚜럿한 의욕 없이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을 윤리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설명하고 평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설명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윤리의식이라는 표면적인 현상 이면에는 전쟁 대 일상 즉 생활이라는 대립구도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즉 전쟁으로 인하여 얼마나 철저하게 일상이 부서져 버리고 생활이 왜곡되어 버렸는가 하는 문제가 이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 무너져 버린 현실을 이들이 기거하는 집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름드리 기둥이나 굵은 서까래, 그리고 푸르죽죽하게 칠이 벗어지긴 했지만 두툼한 현판이라든지 일견 규모 있게 꾸민 집으로 보였다. 상덕의 설명에 혹 부족이 있었다면 포탄에 지붕이 뚫어진 채로 있는 머릿방과 문간에 관한 얘기가 없다는 것쯤일까. 「암사지도」

 

과거에는 단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제는 포탄에 지붕이 구멍이 뚫어져 버린 집은 바로 이들의 삶을 말해 준다. 이미 야망도 의욕도 잃어버린 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집과 같다. 이들은 이미 전쟁터에서 박격포탄을 쏘던 군인들이 아니며 중학교 강사든 영화간판 그리는 일이든 무엇이든지 일을 해서 생활을 꾸려야 하는 생활인인 것이다. 전쟁은 이들의 생활의 기반을 무너뜨렸고 가족을 앗아갔고, 생활의 기반과 함께 이들이 윤리의식도, 삶의 의욕도 무너뜨려 버렸다. '윤주 공유설'도 형남이 생계를 꾸리게 되면서 제기된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삶의 형태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인한 것이기 이전에 전쟁으로 인해서 상실된 생활의 기반, 다시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일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기원은 전쟁을 한갓 소나기에 비유한 염상섭과는 대척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암사지도」가 전쟁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생활과 일상이 무너져 버리고 아울러 윤리의식마저 거부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 성숙한 밤의 포옹」은 실존 자체의 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이 문제적인데 실존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란 생활이나 일상의 위기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대하여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나'는 애인 상회의 폐병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체 없이 탈영을 한다. 그러나 산에서 무고한 여자를 죽인 바 있는 나는 탈영 이후에도 상희를 찾아가지 못한다. 그리하여 내가 찾아간 곳은 사창가이다. 그곳에서 선구를 만나 나는 그의 쓰레기통 같은 방에서 그와 함께 살게 된다. 선구는 진숙이라는 창녀와 연애를 하며 무위도식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나는 자신의 파멸이 이미 구제될 수 없는 지경임을 느끼며 자살을 감행하지만 깨어나고, 나는 상희를 만나기 위해 중심을 잡을 수조차 없는 몸을 움직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리고 삶에의 의욕조차 상실해 버린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져 자학과 나태 속에서 무위도식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즉 스스로를 더욱더 무너뜨림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실존을 확인한다. '나'와 선구가 일종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에 빠져 있음은 바로 그들이 의미를 들 수 있는 것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유일한 나의 저항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그 밖엔 반항할래야 대상이 없어.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세상인가. 누구에게 무얼 어떻게 반항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일선에선 동족끼리 서로 죽이고, 도시에선 식욕과 성욕과 그리고는 허영밖엔 남지 않았어. 오줌이라도 이런 데 누지 않는다면 다른 축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나.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내가 처음 선구의 방에 갔을 때 침대 밑에 꽉 들어찬 오줌 든 맥주병을 보고 놀라자 선구가 한 말이다. 나는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그 나름으로의 오만함과 파격적인 생활태도에 대한 긍지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구는 자신의 비정상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선구의 말 속에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염오와 환멸이 담겨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며 혐오스러울 때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오히려 자존심을 지켜 나가는 모습,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부정과 환멸의 표현이다. 그것이 선구와 나의 모습이다. 자신이 상희와 같은 어떤 여인을 죽였다는 생각에 상희를 만나지 못하고, 선구의 집에 머물며 자학적인 삶을 견뎌 내는 나의 모습은 철저하게 망가짐으로써만 정화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실상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유인지도 모른다'는 나의 말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컨대 전쟁터는 전쟁터대로, 후방은 후방대로 이미 인간적이거나 윤리적인 모든 것이 허물어진 상황, 어떠한 가치도 보존될 수 없는, 부정성으로 꽉 채워진 상황에서 나와 선구가 택한 삶의 방식은 자신을 모욕함으로써 실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계에 대한 부정과 환멸이 자아에 대한 혐오로 전이되면서 이러한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역설의 결과는 무엇인가? 자신을 모욕함으로써 실존을 확인한 그들의 삶이 나아갈 바는 어떤 것인가?

 

자네는 다만 살기 위한 목적이 없을 뿐이니까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죽어야 할 이유조차도 발견할 수가 없어.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부대를 도망쳐서 이 도시에 도착한 그 길로 상희를 만났던들 다시 사람으로 변신할 기회가 생겼을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감조차 마비된 나는, 나를 향해서 밀려오는 시간의 감촉과 예감마저 마멸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첫 번째는 자신의 애인인 진숙이 동반자살을 제의하자 이에 냉소하며 선구가 나에게 한 말이고, 두 번째는 나의 서술이다. 선구는 다만 실존의 확인에 머물고 있을 뿐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세계에 대한 환멸과 자신에 대한 비하, 이것이 그것으로서 끝나 버린다면 그것은 일종의 니힐리즘이 될 수밖에 없다. 니힐리즘이란,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정신상태이다. 니힐

리즘의 본질인 허무감이 중심의 상실, 무와의 조우, 권태로부터의 탈출 불능, 적합한 생활철학의 결여 등이라면 '죽어야 할 이유조차 발견할 수 없는' 선구야말로 이러한 허무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다르다. 선구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오만한 긍지를 가지는 반면, 두 번째 인용문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장에서 죽인 여자에 대한 환영과 그에 대한 죄의식 속에서 자포자기한 삶을 살지만 한편으로는 그와는 다른 삶, 즉 '사람으로의 변신'을 열망하고 있다. 그 열망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택한 방식이 바로 자살이다. 그 자살은 자기 비하를 통한 실존의 확인이 가져온 자기 혐오로 인한 것으로서 '사람으로 변신'하여 상희를 만나고 싶은 열망의 강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깨어나서 상희의 집을 향해서 비틀거리며 가게 된다. 그것은 내가 전장에서 죽인 여자에 대한 죄의식, 모든 의식이 마비된, 스스로를 모욕하는 삶의 모습에서 기인하는 허무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이다. 즉 서구가 세계의 부정성을 강조하면서 니힐리즘을 내세우고 있다면 나는 그 부정성 속에서도 긍정적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살이야말로 그러한 긍정성에의 회구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이며 상희를 찾아가는 결말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결국 「이 성숙한 밤의 포옹」은 전장과 후방의 대비를 통해 전후세계의 부정성을 그려 냄과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권태, 그리고 허무를 그려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니힐리즘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실존적 위기와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여 주기도 한다. 결국 세계의 부정성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아의 회복을 열망하는 것이다.

 

이 작품과 같은 해에 발표된 「박명기」는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을 왜곡시켰으며, 한 가족을 파멸시켰는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성숙한 밤의 포옹」에서는 세계에 대한 부정과 환멸이 그려진 반면, 「박명기」에서는 그러한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쟁통에 실명한 나는 중풍 걸린 아버지, 이들의 생계를 돌보는 나이 찬 여동생 진숙 등과 함께 살아간다. 전란중에 형이 총살당하게 되었을 때 나는 명령에 의해서 총검으로 형을 찔러 죽였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진숙이 자신의 삶에 대한 회망을 모두 포기한 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에 가슴 아파하던 나는 마침내 아버지의 숭늉에 약을 타서 아버지를 죽게 한다. 이 작품은 전후의 한 가족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오상원의 「부동기」나 이범선의 「오발탄」과 비견될 만하다. 그러나 동일하게 일가의 비극을 그리고는 있으나 각각의 작품이 나타내는 중심내용은 상이하다. 「박명기」는 ‘형을 죽였다'는 것과 '실명하였다'는 두 사실 사이에서 고통을 겪는 나를 중심으로 해서 전쟁으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된 젊은이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이나 환멸, 그리고 허무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인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만하다.

 

1960년에서 1961년에 발표된 「전야제」는 서기원의 전후단편들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하나의 장편으로 탄생한 경우이다. 전술한 작품들에서 나타났던 세계에 대한 부정과 환멸은 물론이고 「암사지도」,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박명기」 등에서 결말 부분에 언뜻언뜻 비추었던 긍정적 가능성과, 「오늘과 내일」에서 나타났던 극한상황에서도 살아있는 모랄의 문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전야제」는 대조되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학도병으로 전장에 나간 성호이며, 다른 하나는 결핵에 걸려 입대하지 않고 기피하고 있는 영규이다. 채소위라는 학도병 출신 장교의 심부름으로 원성에 온 성호는 영규를 만나고 채소위의 여동생 지숙에게 돈을 전해 준다. 귀대한 후 성호는 채소위의 연락병이 된다. 전투가 계속되던 어느 날 적의 야습으로 인해서 성호는 인민군의 포로가 된다. 사회주의적인 교양을 주입당하고 땅파기를 강요당하는 포로생활에 염증을 느낀 성호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영규를 찾아간다. 한편 지숙을 자주 만나며 사랑을 느꼈던 영규는 성호야말로 지숙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계속되는 전쟁의 와중에서 성호와 지숙은 함께 피난길을 택한다. 성호는, 병세가 악화되어 피난을 포기한 영규와 그의 어머니에게 함께 가지고 설득한다.

이 작품은 성호를 중심으로 하면서 전장의 상황을 밀도 있게 그려나가는 한편, 영규를 중심으로 하여 전쟁의 와중에서도 후방에서 전개되는 사랑과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전장은 대개의 전후소설이 보여주는 싸움터의 맹목과 권태에서 더 나아가 그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대립과 반목 그리고 갈등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전쟁이 일반적인 '전쟁'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동족끼리 싸운 특수한 전쟁'으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호는 설사 침략의 전쟁일망정, 다른 민족과 싸우고 있는 현실이라면 자기 희생의 벅찬 감동을 갈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영규는 우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홀로 다른 민족과 싸워 본 사실(史實)이 없다고 단정했다. 전쟁은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지만, 승패를 초월해서 자기를 투신할 수 있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고 영규는 얼굴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 모두가 뒤집힌 시뻘건 눈으로 적개심과 중오에 미쳐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전쟁이 우리에겐 한 번쯤 필요하다! 인구의 반이 죽어 없어지는 패전이라 할지라도 그런 전쟁을 한 번쯤 겪지 않는 한 참된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고 영규는 말했다. 「전야제」

 

이는 한국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과 동일시하면서 '무너짐' 자체만을 그려 내고자 하였던 그의 전후단편들과는 달리 한국전쟁 그 자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고 무너뜨리는 전쟁으로부터, 즉 개별성을 동반하지 않은 보편성의 차원에서의 전쟁으로부터, 동족상잔의 비극, 그래서 젊은이 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는 한국전쟁의 개별성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간 모습이다. 작가 자신이 참전의 경험이 있고 그로부터 허무와 환멸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는 점에서 대개의 작품이 다분히 경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면 「전야제」에 와서는 그 경험을 객관화하고 평가하며 정리하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엿보인다. 초기 소설의 문제의식이 이 소설에서 집약되고 정리된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초기 소설의 핵심을 이루던 '전쟁으로 인하여 무너진 인간상'의 제시라는 주제는 「전야제」와 「박명기」에 와서 양상을 달리하면서 전쟁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해 보려는 시도, 그리고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정사실화하고 그로부터 다시 출발하려는 시도 등을 보인다. 그것이 각각의 작품에서 긍정성의 회구, 즉 모랄과 연결되어 있음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전야제」의 결말이나 「박명기」의 결말은 이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 이후에도 「반공일」 등의 작품들로 연결된다. 「반공일」에서 나타나듯이 전후에도 전쟁의 조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 속에서 이제는 소시민이 되어 버린 전후 세대들의 모습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일은 전쟁의 후일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이건 격동기의 이후에는 후 남이 있게 마련이지만 「반공일」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소시민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4 맺음말

서기원은 지금도 소설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여자의 다리」라는 장편을 발표한 바 있다. 그것은 다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떠한 평가를 받았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사가 변화하듯이 한 작가의 소설도 변화하게 마련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역사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세월이 흐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전후의 좌절과 허무를 그린 소설에서 역사소설로 새롭게 번모하였듯이 그의 소설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특히 전후소설에서 보여 준 날카로운 심리묘사와 역설의 미학이 다시 한번 작품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서기원 소설 해설 발췌

☆ 한국소설문학대계 (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