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갈매기」 이범선 (2019.12.13)

푸레택 2019. 12. 13. 23:50

 

 

 

● 갈매기 / 이범선(李範宣)

 

파도 소리가 베개를 때린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여느 날 같으면 벌써 나갔을 전등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 아마 이 포구(浦口)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기쁜 일이나 그렇지 않으면 슬픈 일이.

섬 안은 그대로 한집안이다. 그러기 어느 집안에든지 무슨 잔치가 있거나 또는 상사(喪事)가 생기면 이렇게 밤새도록 전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상이군인이 새색시를 맞던 날도 그랬다. 읍장님의 어머님 진갑날도 그랬다. 고아원에서 어린애가 죽던 날도 그랬고, 일전 파도가 세던 날, 나갔던 어선 한 척이 돌아오지 않던 밤도 그랬다.

훈(薰)이 피난 내려왔던 부산서 중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이 섬으로 들어온 지가 벌써 칠 년이 된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퍽도 외로웠다. 조그마한 포구에 말려 들어왔다가는 또 말아 올라오곤 하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그저 졸리기만 했다. 그래도 섬에서는 도민증이나 병적계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좋았다. 당시 부산 등지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야말로 심장보다도 더 소중하던 때였지만 어쩌다 하룻저녁 여인숙에서 묵고 가는 나그네까지도 저녁 해변에서 쉬 친구가 되어 버리는 이 포구에서는 그런 것은 있으나 없으나였다.

이제는 벌써 훈네도 피난민이 아니다. 애기를 안고 길가에 나와 섰던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제법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배에서 돌아오는 옥희 아버지나 이쁜이 오빠는,

"이거 참 오래간만에 잡은 도밉니다. 아직 살았어요.'

"꽤 큰 소라지요. 가을 들어 처음입니다."

하며 대바구니 속에서 도미나 소라를 집어 내어 훈네 집 대문 옆에 누워 있는 소바우-- 그 모양이 꼭 누워 있는 소잔등 같아서 그들은그렇게 부른다-- 위에 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칠 년. 섬에서는 한 해가 하루처럼 홀러간다. 그야말로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아무런 사건도 없다. 마디가 없다.

"왜, 선생 보기엔 좀 깨끗지 않아 보이재. 그래도 이 짠물이 이게 좋은 게라이."

바닷가에서 맛조개를 캐던 옆집 할머니가 바닷물에 손을 씻고 들어와 받아 준 어린애가 벌써 다섯 살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활.

아침 자리에 일어나 앉으면 안개 낀 포구가 유리창에 그대로 한 폭의 묵화(墨畵)다. 칫솔을 물고 마당으로 내려간다.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바둑이가 신고 선 그의 흰 고무신 뒤축을 질근질근 씹어 본다. 뒷산 동백나무 잎이 아침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어디선가 까치가 운다. 마당 한구석에 돌각담을 지고 코스모스가 상냥스레 피어 웃는다. 추석도 머지않은 거기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세 개, 다섯 개, 네 개 탐스럽게 달렸다. 빨갛게 열매를 흉내낸 감나무 잎이 하나, 누가 손끝으로 튀기기나 한 것처럼 툭 가지 끝에서 튀어난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허공에 원을 그리고 사뿐히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부엌문 앞을 돌아나오던 흰 암탉이 쭈르르 달려온다. 쿡 하고 지금 떨어진 감나무 잎을 쪼아 본다. 핏빛 면두가 흰 머리 위에서 흔들거린다.

조반이 끝나면 훈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국민학교 이학년인 딸의 손목을 끌며 대문을 나선다.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들길이다. 오른편은 발밑이 그대로 바다이고 왼편은 깎아지른 벼랑이다. 그들은 바위 틈에 핀 들국화가 내려다보이는 밑을 천천히 걷는다. 바둑이가 따라오며 흰 수건에 싸든 딸애의 도시락을 쿵킁 맡아 본다. 아내와 다섯 살짜리 아들 종(鐘)은 대문 옆 소바우 잔등에서 있다. 꼬불꼬불 돌길을 더듬어 가는 그들은 C자형으로 된 포구 중앙에 다 가도록 빤히 보인다. 그러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하자면 그들이 포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동안을 거기 그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아내와 아들 종이 사이에는 말없는 가운데 약속이 생겼다. 그들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 돌길을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오면 아내와 종은 바둑이를 앞세우고 문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침마다 그들을 따라 나서는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은 정해져 있다. 훈네 집에서 거리에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쯤에 단 한 채 아주 초라한 오막살이가 있을 뿐이다. 그 오막살이에는 노인 거지가 세 사람 살고 있다. 훈네는 그들을 신선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느 여름방학에 서울서 놀러 왔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훈의 동생이 지어 주고 간 이름이다. 가 세 노인은 할 일이 없다.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지낸다. 그래 신선이다. 나이는 육십이 거의 다 되었을 듯한 동년배들인데 그 인상은 각각이다.

신선 일호라는 서(徐)노인, 머리칼, 눈썹 그리고 긴 수염 할 것 없이 은빛으로 센 노인이 키가 크다. 신선들 중에서는 제일 풍채가 좋다. 그리고 신선 이호, 박(朴)노인. 이 노인은 머리를 중 모양 박박 깎았다. 얼굴이 둥근 이 박노인은 항상 군복을 걸치고 있다. 신선 삼호, 김(金) 노인. 신선 중에서는 제일 인품이 떨어진다. 곰보다. 턱에 꼭 염소 같은 수염이 난 이 신선 삼호는 구제품 회색 신사복 저고리를 입었다.

인상은 어쨌든 그들은 다 신선 별호를 탈 만한 데가 있다. 걸식은 해도 그들은 결코 떼를 쓰는 법이 없다. 또 자기네 사이에 무슨 정해진 바가 있는 듯, 같은 집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법도 없다. 훈네 집에 늘 오는 것은 신선 일호, 서노인이다. 아침에 오는 수도 있고 저녁에 들르는 날도 있다. 이즈음 훈의 아내는 서노인을 위하여 밥을 넉넉히 짓지는 않았지만 줄 밥이 남지 않는 날이면 걱정을 하게 쯤은 되어 있다. 그런데 바둑이도 이 서노인을 알아본다. 청결검사를 나왔던 순경이 총을 멘 채 질겁을 해 달아날 만치 사나운 바둑이면서도 서노인은 짖지 않는다.

아침마다 훈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이 바로 이 신선들이 살고 있는 오막살이 앞이다. 앞을 지나다 서노인에게 목도리를 한번 내보이고는 돌아선다. 서노인은 바둑이와만 사귄 것이 아니다. 언젠가 사흘 동안이나 서노인이 들르지 않은 때가 있다. 이상하다고들 했다. 그날은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막살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 노인이 다 있었다. 신선 삼호 김노인은 윗목에 벽을 향하고 앉아 거기 기둥에 박힌 못에다 실코를 걸어 놓고 무엇에 쓰자는 것인지 그물을 뜨고 있고, 이호 신선 박노인은 문께로 나앉아 고무신 뒤축을 깁고 있고, 서노인은 아랫목에 벽을 향해 누워 있다. 서서 다닐 때보다도 더 큰 키다. 죽은 사람처럼 뻔친 그의 무릎 위에서 다람쥐가 한 놈 앞발로 얼굴을 닦고 있다.

"서노인이 어디 편찮은 모양이군요."

그제야 박노인이 늙은 호박 같은 머리를 든다.

"네, 체해 가지고 한 사날."

그는 한번 서노인을 돌아본다.

그날 저녁 국민학교 이학년인 딸과 종과 바둑이가 우유죽 그릇을 들고 오막살이로 갔다.

"불쌍하더라!"

돌아온 딸애가 제법 국민학교 이학년답게 낯을 찌푸린다.

"불쌍하더라!"

꼭 같은 어조로 종이 따라 한다.

 

다음날이다.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종이 마루로 달려 나와,

"아버지 아버지, 나 다람쥐 있다."

하며 구두도 미처 벗기 전에 훈의 손을 끈다.

낮에 서노인이 오래간만에 집엘 들렀더란다. 한 손에는 언제나 끌고 다니는 꼬불꼬불한 가무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또 한 손에는 이쁜 다람쥐를 한 마리 쥐고.

"이거나 애길 줄라고."

서노인이 일년을 방 안에서 키웠다는 다람쥐는 아주 길이 잘 들어 있다. 놓아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구 사람의 목덜미로 기어올라서는 오물오물 가슴팍으로 파고든다.

그로부터 종은 훈의 방에서 부지런히 공초를 까서 빈 캐러멜감에 넣었고, 그런 다음날 저녁이면 서도인이 그 캐러멜갑을 도토리로 가득히 채워다 종에게 돌린다.

"먹진 못하는 거야. 다람쥐 주란 말야."

 

이 조그마한 포구에도 다방이 한 집 있다. 이름이 '갈매기'다. 다방이라야 왜인이 살다 간 목조건물 이층을, 피난 온 젊은 부부가 약간 뜯어고친 것이다.

훈은 때때로 이 다방엘 들른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훈이 선 지점은 바로 정확하게 포구 중앙 지점인 것이다. 거기서 훈은 한참 바다를 바라본다. 호수처럼 동글한 포구 한가운데는 경찰서 수상 경비선이 하얀 선체를 한가히 띄우고 있고, 왼쪽 시장 앞에는 돛대 끝에 빨간 헝겊을 단 어선이 네 척 어깨를 비비고 머물렀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두 대의 흰 등대. 그 등대 허리에 가는 수평선이 죽 가로 그어졌다. 바로 그의 발밑에서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을 폈고, 그 선에서 다시 또 하나의 바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찔하니 높이 피어 올랐다.

훈은 오른편으로 눈을 돌린다. 벼랑 밑 돌길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포구를 엇비슷이 가로건너 거기 빤히 집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반짝거리는 산을 지고 바로 물가에 선 아담한 기와집, 선생들이 감나무장 #E)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마당에는 흰 빨래가 걸렸고, 돌각담 밖에 채소밭 가운데는 쭈그리고 앉은 아내 앞에 선 빨간 스웨터가 빤히 보인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보는 날이면 훈은 곧잘 집과는 반대방향인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집엘 다녀서 나오는 것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우체국 앞을 지난다. 빨간 포스터를 보면 새삼스레 편지를 띄워 보고 싶어진다. 중국집을 지나 여인숙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다방 '갈매기'가 있다.

장기판만한 널쪽에 흰 페인트로 쓴 '갈매기'라는 서툰 간판 밑을 끼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충계가 삐격삐걱 소리를 낸다. 거기 베니어판으로 만든 문을 득 연다. 대개 다방문은 밀거나 당기게 되어 있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다방 '갈매기'의 문은 왜식 그대로 옆으로 열게 되어 있다.

다방 안 대개 비어 있다. 손님이 없다는 뜻만이 아니다. 주인마저 없는 때가 많다.

 

(중략)

 

"배를요? 제가 색소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무언가 그리운 게 아닌가요?"

"이 섬에서 나서 이 섬에서 자란 앤걸요.뭐."

"그렇지만 저 콜럼버스같이."

"콜럼버스같이?"

여인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스푼으로 남편의 찻잔을 젓고 있다. 보동한 손이 여원 손을 들어다 찻잔을 쥐어 준다.

 

나흘 있으면 추석이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거세다. 집채 같은 파도가 와와 소리를 지르며 밀려든다. 방파제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가허옇게 거품이 되어 둥대 꼭대기를 넘는다. 훈네 집 앞 돌길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겼다. 포구 안에는 쫓겨 들어온 어선들이 서로 어깨를 부비고 있다. 포구 가장자리에도 파도가 한 길은 넘게 한길 위로 추어 오른다.

이틀 후에야 파도는 갔다. 수평선이 더 가깝다. 지구가 그 회전을 멈추기나 한 것같이 고요하다.

훈은 학교로 나갔다. 파도로 해서 돌길이 말이 아니다. 소방서 앞 한길 가운데 떡돌만치나 큰 바위가 밀려 올라와 있다. 포구 가장자리의 큰길은 홍수를 치르고 난 뒤 같다.

훈은 학교 사환애에게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다방 '갈매기'의 부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파도가 무섭던 날 밤 밖에 나왔던 다방 주인이 잘못하여 물에 휩쓸려 들어가자 그를 구한다는 게 그만 부인마저 빠졌단다.

훈은 수업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눈을 창 밖의 바다로 띄웠다. 그때마다 훈은 꼭 꺼안고 물로 뛰어드는 젊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던 것처럼 또 이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의 진상을 모른다.

 

추석날 오후다. 훈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일찍 서노인이 들렀다. 새 옥양목 적삼을 입었다.

"선생님, 아들이 왔습네다."

믿도끝도없는 말이다. 훈은 통 알 수가 없다.

"아들이 왔습네다!"

재차 아들이 왔노라고 하는 서노인의 늘어진 눈시울에 눈물이 글썽 괸다.

"아들이라니요?"

"네, 아들이 있습네다."

훈은 서노인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 젊은 군인이 군모를 벗어 들고 서 있다. 눈이 서글서글 큰 군인은 발을 모두어 서며 꾸벅 절을 한다. 작업복 깃에 육군 대위 계급장이 반짝 한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훈은 그저 서노인과 군인의 얼굴만 번갈아 본다.

"전연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면목 없다는 듯이 또 한번 머리를 숙인다.

단둘이 살다 아들이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어 나갔더란다. 후에 돌아가 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아무도 서노인의 행방은 모르더란다. 그 후 찾기도 무척 찾았단다. 그러나 그건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적이 바로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섬의 경비를 맡아 파견된 아들이 배에서 내려 지프차를 타고 상 앞 다리를 건너던 때란다. 길에 사람들이 꽉 모여 섰더란다. 차를 세웠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졌다는 것이다. 아들은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어쩐지 횡사한 시체를 꼭 들여다보게 된 그였다. 그린데 그건 젊은 부부의 시체더란다. 그는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그 어떤 엷은 실망을 느끼며 돌아섰단다. 그때 바로 앞에 그는 기적과 마주 섰더란다.

"참 잘됐습니다. 잘됐습니다."

훈은 그저 잘됐다고만 한다.

그 길로 서노인은 떠났다. 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의 부대로 가는 것이다.

큰길에까지 배웅을 나간 훈과 종과 또 박노인과 김노인이 늘어선 앞에 지프차 뒷자리에 올라앉은 서노인은 얼빠진 사람 모양 말이 없다.

"그럼, 또 곧 찾아뵙겠습니다."

군인이 거수경례를 한다. 영문을 모르는 종은 아까부터 군인만 빤히 쳐다본다. 부르룽 엔진이 걸린다. 군인이 운전수 옆자리에 올랐다. ㅇ마악 차가 움직이는 때다. 서노인이 황급히 목을 차 밖으로 내민다.

"선생님! 애기 잘 있어라. 다람쥐 도토리는 뒷산에... 아니 산엔 가지 마. 그러구 박노인, 김노인..."

지프차가 언덕길을 넘어간다. 돌아서는 종의 스웨터 양호주머니에는 정말 알이 든 캐러멜이 한 갑씩 꽂혀 있다.

 

땅거미가 내리깔리자 등대에 불이 켜졌다. 오른쪽에는 빨강 등. 왼쪽에는 파랑 등. 긴 물댕기가 가물가물 움직인다. 달이 뜬다. 그 청홍 두 개의 등 바로 가운데로 수평선에 달이 끓어 오른다. 멀리 아주 멀리 금빛 파도가 훈의 가슴을 향해 달을 굴려 온다.

딸애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넣었나 보다. 무슨 드라마의 끝인가 기차가 들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 누나, 이거 기차지?"

"그래."

"기차는 배보다 커?"

"그럼! 바보."

"배보다 빨라?"

"그럼!"

"연락선보다도?"

"그럼!"

"경비선보다도?"

"그럼! 바보야."

"누난 기차 타봤어?"

"그럼!"

두 살 때 피난길에 화물차 꼭대기를 탄 제가 무슨 그때 기억이 있다고 그래도 뽐낸다.

"나도 기차 타봤음!"

훈은 밖에 어두운 마루에 앉아 애들의 대화를 들으며 담배를 꺼내 문다.

"콜럼버스같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바둑이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다. 어느새 달은 꽤 높이 솟아 올랐다. 가는 구름이 둥근 추석 달에 가로 걸렸다. 어디선가 색소폰의 그 목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집시의 달.

훈은 맞은쪽을 건너다본다. 언제나 빤히 불이 켜져 있던 그 이층 창문은 캄캄하다. 어쩐지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다시 달을 향해 선다. 밤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갈매기가 두 마리 훨휠 달을 향해 저 앞으로 날아간다.

(『표구된 휴지』, 관동출판사, 1976)

 

☆ 이범선(李範宣) 소설가

▲ 1920년 평남 안주군에서 태어남

▲ 1938년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졸업

▲ 1949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 1958년 '갈매기'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1961년 '오발탄'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 1970년 '청대문집 개'로월탄문학상 수상

 

● 전후 리얼리즘의 외로운 명맥 / 하정일(문학평론가)

 

전후문학(戰後文學)에서 이범선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그 독특성이란 그가 리얼리즘의 명맥을 이은 드문 작가 중의 하나라는 점에 있다.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인 손창섭, 장용학, 김성한, 오상원 등의 문학세계를 보면 쉽게 확인되듯이 당시의 주류는 비(非)리얼리즘 문학이었다. 이렇게 된 일차적인 이유로는 주요 리얼리즘 작가들의 월북으로 남한 문학의 헤게모니를 '순수문학' 진영에서 쥐게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리얼리즘적 전통의 이러한 단절은 전후작가들로

하여금 '순수문학'이나 모더니즘을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다. 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세례 또한 리얼리즘 문학이 힘을 잃게 만든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삶의 우연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는 필연성과 객관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과 근원적으로 배치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실존주의에 깊이 침윤된 전후작가들이 리 얼리즘에서 멀어진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했다.

이범선은 이처럼 리얼리즘의 전통이 붕괴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리얼리즘의 명맥을 보존함으로써 이후 리얼리즘 문학이 재생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이범선이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던 내적 요인으로는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서민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이것은 이범선 문학을 관통하는 중심적 문제의식인 동시에 리얼리즘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이로써 이범선이 왜 리얼리즘의 기율에 충실할 수 있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요컨대 이범선의 문제의식이 그를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범선의 문학세계가 리얼리즘만으로 착색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학마을 사람들」이나 「갈매기」 등은 서정적 단편소설로 리얼리즘의 세계외는 거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소설세계는 리얼리즘적 단편소설과 서정적 단편소설로 나누어긴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경향은 시기적으로 구분된다기보다는 거의 혼효되어 있는데, 이는 이범선이 양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 혹은 갈등했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양자가 철저히 대립적인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리얼리즘적 단편소설과 서정적 단편소설 사이에는 어떤 공통항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일종의 보편적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범선의 보편적 휴머니즘은 때로는 서민의 소외된 삶에 대한 깊은 동정으로, 때로는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냉소로, 심지어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편적 휴머니즘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보편적 휴머니즘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것은 현실을 추상화시켜 모순의 역동적 운동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보편적 휴머니즘이 종종 이상주의와 비관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범선의 소설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서정적 단편소설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그러나 보편적 휴머니즘이 리얼리즘과 결합할 때 그것은 강력한 비판적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이 거기에 해당한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서정성의 본질이 원래 이것이거니와 그런 점에서 이범선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모티프는 가령 「갈매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사 발령을 받아 들어온 남도 어느 섬에서의 일상을 잔잔한 톤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평범한 섬생활을 통해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의 원형을 보여 준다. 물론 섬에도 갈등과 아픔이 존재한다. 다방 주인 부부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나 6.25로 아들과 헤어진 어느 거지 노인의 서글픈 생애가 그것이다. 하지만 다방 주인 부부의 죽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미화되며, 거지 노인의 서글픈 삶은 아들과의 만남으로 끝이 난다. 다시 말해 섬에서의 갈등이나 아픔은 해결로 귀착되는 갈등이나 아픔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섬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해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이상향이 비현실의 세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어쩐지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독백하는 것이다. 섬을 떠나면 기다리는 것은 해결될 수 없는 갈등과 아픔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이상향의 세계를 떠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섬이 잃어버린 이상향, 즉 농경과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비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섬은 실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를 표상하는 일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이 목가적인 전원 문학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한 서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이상향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긴장의 정도는 매우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학마을 사람들」은 돋보인다. 요컨대 「학마을 사람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학을 매개로 상징적으로 그려 내는 데 나름대로 성공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정적 상징인 학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한 마을의 파탄이라는 서사적 갈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 「갈매기」의 갈등이 서정적 해결을 지향하고 있는 데 비해 「학마을 사람들」의 갈등은 서사적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서사적 갈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성을 환기시켜 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사를 심정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데 그침으로써 서정적 주관성의 세계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역사의 심정적 이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운명론적 인식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역사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 인간의 주체적 실천이 아니라 학의 방문 여부인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학만 있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여느 해에 그렇게도 영험하던 학의 생각이 몹시도 간절하였다. 이런 때면 학은 늘 하늘과 그들 사이에 있어 주었었다. 「학마을 사람들」

 

학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발상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체적 선택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민족사를 운명에 종속시킨 채 학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게다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이다. 이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심정적 이해와 결합하여 우리 근현대사의 객관적 실상을 상당 부분 은폐시키고 있는데,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개입이 문학에서 갖는 위험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학마을 사람들」이나 「갈매기」 등의 서정적 단편소설은 사라진 이상향과 전도된 현실 사이의 간극과 긴장을 강조함으로써 전후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 준다.

 

이범선의 서정적 단편소설과는 달리 리얼리즘적 단편소설들은 전후의 경제적 궁핍상과 그것이 몰고 온 비극을 엄정하게 그려 냄으로 심적 모순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당대의 사회는 이범선 개인의 한계라기보다는 역사의 한계에서 기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당시는 역사 진보의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가능한 길은 부정성의 본질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

「오발탄」은 한 월남 가족의 비극적 삶을 통해 전후 경제의 파탄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전후 경제의 파탄상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월남민들의 경우 그 궁핍상은 생활 터전의 상실이라는 조건까지 겹쳐 더욱 심각했다고 할 수 있다.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사회적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전형적 소시민 '철호', 가족의 극한적 궁핍을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해결하려다 마지막 순간 '양심선'에 걸려 구속된 영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공주 노릇을 하는 '명숙', 가난한 삶에 함몰되어 과거의 재기와 발랄함을 잃어버리고 결국엔 애을 낳다 죽고 마는 아내, 그리고 이북에서의 풍족한 생활과 남한에서의 극한적 궁핍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려 '가자' 소리만 되풀이하는 어머니-- 이들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신음하는 당대 민중들의 전형이다. 철호가 어떻게 보면 희화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냉철하게 추적하면서 「오발탄」은 한 가족의 비극이 단지 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극임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이러한 삶의 모순이 반드시 끝장나야 함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강조한다.

 

"가자!"

철호는 또 한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의 교통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번 조수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철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따르르룽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발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차는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디건 가긴 가야 하는' 1950년대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비유이다. 여기서 '가자'라는 외침은 소설 전체에 걸쳐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됨으로써 삶의 비극성과 변화의 절박성이라는 주제의식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발탄」은 '부정적 전망'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 준다.

한편 「오발탄」은 철호 일가의 비극이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매우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1950년대 문학의 전반적 성격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통찰은 소중하다.

 

세상에는 이런 세 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하니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조리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오발탄」

 

이처럼 「오발탄」은 칠호 일가의 삶이 한 사회계급의 삶의 일부이며, 그 계급의 삶은 사회적 생산관계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즉 철호 일가의 극한적 궁핍이 사회적 생산관계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오발탄」은 철호 일가의 비극적 삶의 사회적 연관을 짚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1950년대의 경제적 궁핍상을 월남 가족의 삶을 통해 추적함으로써 분단 문제에까지 소설적 지평을 확대시키기도 한다. 장용학 같은 작가들도 분단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그것을 비역사적 수준으로 추상화시켜 버린 데 반해, 이범선은 분단 문제를 일상의 구체적 삶 속에서 추적함으로써 추상성의 함정을 벗어난다.

아직까지는 분단 문제가 중심 주제가 아니라 소설적 배경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분단 소재 작품들과 대동소이하지만, 「오발탄」은 분단 문제를 어떤 측면에서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접점인 분단모순에 대한 총체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은 분단 체제와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1950년대의 상황에서는 무리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오발탄」의 등장인물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계의 압도적 힘에 함몰되어 버린 존재들이다. 이들은 현실의 논리와 질서에 순응할 뿐 거기에 저항하는 법이 없다. 영호가 그 점에서는 약간 예외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그 역시 결국엔 '양심선'이라는 현실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이러한 순응적 인물들로 작품이 구성될 경우 자칫하면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오발탄」은 그 같은 함정에서 벗어나 오히려 부정적 전망이란 형식으로 변혁의 당위성 혹은 필연성을 제시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인물들이 구체적 삶과의 상호 연관 가운데서 유기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철호 일가의 비극이 구체적 삶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개인사를 넘어 공동체의 역사로까지 상승할 수 있었고,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철호 일가의 비극이 조명됨으로써 1950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인물 묘사의 치밀성과 절제력은 인물의 전형성을 강화시켜 주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생생한 현실성을 제공해 주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발탄」은 소설문학에서 리얼리즘에의 충실이 얼마나 긴요한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이범선의 소설세계를 서정적 단편소설과 리얼리즘적 단편소설로 나누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범선 문학의 본령이 리얼리즘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서정적 단편소설의 경우 사라진 이상향과 전도된 현실 사이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 나가려는 작가의 진지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실상을 왜곡하거나 이상화시키고 있는 데 비해,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서민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천착을 통해 경제적 궁핍화와 자본주의적 사물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은 비판적 리얼리즘 전통의 외로운 계승자라할 수 있다. 특히 전후문학의 반(反)리얼리즘적 경향을 고려할 때 이범선의 소설사적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그의 소설들이 당대 사회의 총체적 형상화에는 이르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한계는 모순들의 중층적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 기인한 결과인데, 이와 관련하여 이범선이 우리 근대문학의 풍부한 리얼리즘적 전통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또한 소설 곳곳에 알게 모르게 배어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도 현실의 총체적 인식을 부분적으로 방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체험으로부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도 원인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범선이 노골적인 반공주의자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개인적 한계인 동시에 역시사적 한계이다. 분단이 고착화되고 파시즘적 독재가 횡행하는 한편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진보적 운동의 전통마저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서 삶의 총체적 연관을 인식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범선의 소설세계는, 루카치의 용어를 빌리면, '더 이상 아님(no longer)'의 시대에 나아갈 수 있는 한 최대치를 보여 준다. 그 이상은 1980년대 이후의 문학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이범선의 리얼리즘적 단편소설은 양자를 이어 주는 디딤돌이었다고 있을 것이다.

/ 한국소설문학대계 (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