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 (2019.12.10)

푸레택 2019. 12. 10. 18:26

 

 

 

● 나무들 비탈에 서다 / 황순원

 

이건 마치 두꺼운 유릿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느낌이로군. 문득 동호는 생각했다. 산 밑이 가까워지자 낮 기운 여름 햇볕이 빈틈없이 내리부어지고 있었다. 시야는 어디까지나 투명했다. 그 속에 초가집 일여덟 채가 무거운 지붕을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전혀 전화를 안 입어 보이는데 사람은 고사하고 생물이라곤 무엇 하나 살고 있지 않는 성싶게 주위가 너무 고요했다. 이 고요하고 거침새 없이 투명한 공간이 왜 이다지도 숨막히게 앞을 막아서는 것일까. 정말 이건 두껍디두꺼운 유릿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느낌인데, 다시 한번 동호는 생각했다. 부리를 앞으로 향한 총을 꽉 옆구리에 끼고 한 발자국씩 조심조심 걸음을 내어디딜 때마다 그 거창한 유리는 꼭 동호 자신의 순간순간 짓는 몸 자세만큼씩만 겨우 자리를 내어줄 뿐, 한결같이 몸에 밀착된 위치에서 앞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절로 동호는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2미터쯤 간격을 두고 역시 총대를 옆구리에 낀 채 앞을 주시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던 현태가 이리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농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려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호는 모른 체했다. 잠시나마 한눈을 팔았다가는 지금 자기가 가까스로 헤치고 나가는 이 밀도 짙은 유리가 그대로 아주 굳어버려, 영 움쪽달싹 못 하게 될 것만 같았다.

첫 집에 도달하기까지 불과 40미터 안팎의 거리건만 한껏 멀어만 보였다. 수색이 시작되자 관심과 주의가 그리 옮겨지면서 동호는 지금까지 받아오던 압박감에서 적이 풀려났다. 수색대 조장인 현태가 손짓으로 대원 세 명에게는 집 둘레를 경비하게 하고, 자신은 병사 한 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보통때는 느리고 곧잘 익살을 부리던 현태가 전투태세로 들어가면 동작이 일변하여 야무져지고 민첩해지는 것이다. 어느새 바람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는 문을 책 열어젖히면서,

「꼼짝 말어!」

나지막하나 속힘이 들어있는 목소리다.

몇 해나 묵은 창호지인지 검누르게 얼룩이 지고, 군테군데 낡은 헝겊조각으로 땜질을 한 문짝이 열려진 곳에 드러난 컴컴한 방안,

「손 들구 나와!」

밖에서 경비하던 세 사람까지 한순간 숨을 죽인다. 그러나 컴컴한 방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현태가 총구를 들이밀며 재빨리 방 안을 살핀다. 빈 집이다. 그렇건만 부엌과 뒷간까지 뒤진다. 그전 살던 사람들이 가난한 살림살이나마 급작스레 꾸려가지고 간 흔적만이 남아있다. 다음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현태는 번번이 바람벽에 등을 붙이고 문짝을 잡아 젖히면서, 꼼짝 말어! 손 들구 나와!를 빠짐없이 외치곤 했다. 그러는 농안 밖에서 경비를 보던 동호는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어쩐지 현태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딴 세계의 일같이 생각됐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비현실적인 시간 속에 서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병사 하나가 안마당에 떨어져있는 감자알을 주워 얼른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것이 더 가까운 현실 같았다.

그러나 이들 수색대의 신경을 긴장시킬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무전기를 메고 경비를 보고 있던 윤구가 어떤 집 뒷간 옆 잿더미에서 낯설은 통발이 한 짝을 발견한 것이었다. 바닥이 닮아 구멍이 나고 운두가 해진 신발짝이었다. 첫눈에도 그것은 마을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집 저집 잿간에서 닭털이며 돼지털이며 개털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뼈만은 그 중 넓은 한 집 마당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져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음식을 먹고 간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마을사람들이 아닌 외부사람들이 단시간에 어지럽히고 간 어수선함이 아직 남아있었다. 쉬파리가 들끓는 뼈다귀의 빛깔이 그다지 검게 변색되지 않은 걸로 미루어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대원 다섯 명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면을 한번 둘러보았다. 앞은 골짜기를 따라 옥수수와 고구마밭이 있는 길품한 벌을 사이에 두고 높고 낮은 구릉이 가로질렀고, 뒤는 좀전에 자기네가 넘어온 중허리 위쪽에 희뿌연 바위로 뒤덮인 산이 올려다보였다. 그러는 그들의 눈앞에는 변함없이 낮 기운 여름 햇살이 내리부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새삼스레 주위가 너무 고요하다는 걸 느꼈다. 이 괴괴한 어느 지점에서 혹시 누가 자기네를 줄곧 감시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어떤 말 못할 압박감이 엄습해왔다. 동호는 다시금 엄청나게 두꺼운 유릿속에 자신이 들어가있다는 느낌에 억눌려야만 했다. 이 유리가 저쪽 어느 한 귀퉁이에서 부서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새 없이 몽땅 조각이 나고 말 테지. 그리고 무수히 날이 선 유릿조각이 모조리 몸에 들어박힐 거라. 동호는 전신에 소름이 끼쳐 몸을 한 번 떨었다.

어떤 새로운 움직임만이 이 벅찬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남은 집을 마저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섯째 집에서 그들의 긴장을 한층 자극시키는 일이 생겼다. 현태가 역시 바람벽에 바짝 등을 붙이고 문짝을 홱 잡아젖히면서, 꼼짝 말어! 했을 때 방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났던 것이다. 눈에 확 빛을 띤 현태가 고갯짓으로 이쪽에 신호를 하고 나서 단호한 목소리로,

「손 들구 이리 나와!」

밖에서 경비하던 사람들도 일제히 문이 젖혀진 컴컴한 구멍으로 총부리를 돌려대고 좌우에서 죄어들어갔다.

「얼른 못 나와?」

그러고도 잠시 후에야 파랗게 질린 여인의 얼굴이 어두운 문가에 나타났다가 흠칫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이게, 빨랑 못 나와?」

현태의 음성이 더 모질어졌다. 그러고도 다시 잠시 후에야 여인이 질린 얼굴에 입술을 호들호들 떨면서 맨발째 토방으로 내려섰다. 서른이 좀 넘어 보였다.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 나와!」

여인이 뾰족한 턱을 가늘게 떨면서 두어 번 머리를 가로저었다. 재빨리 현태가 방 안을 살폈다. 어두운 방안 아랫목에 어린 것이 때묻은 포대기를 덮고 잠이 들었는지 꼼짝 않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여기 왔던 군인이 뙤놈들야? 인민군 새끼들야?」

「조선 사람들예요...」

「언제 왔다 언제 갔지?」

「어제 밤중에 왔다... 오늘 새벽 어둬서 갔어요.」

「얼루?」

여인이 가늘게 떨리는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몇 놈이나 되지?」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쉰 명... 백 명...」

이런 산골 여인의 수에 대한 관념이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젊은 남정네들은 그 사람들이 데리구 가구... 여기 있다간 죽는다는 바람에 죄다 피하구...」

「왜 같이 안 갔소?」

현태의 음성이 약간 부드러워졌으나 시선만은 그냥 날카롭게 여인의 눈 속을 쏘아보고 있었다. 여인이 몇 번이고 눈을 깜박여 현태의 시선을 피하면서 떨리는 고개를 방 안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어린것이 말라비틀어진 팔을 포대기 밖에 내놓은 채 여전히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그 입과 코와 눈 언저리에 파리가 까맣게 붙어있었다.

「저런 걸 업구 나갔다간... 길에서 죽일 거 같애서...」

여인의 말소리는 목 안으로 기어들었다. 남은 두 빈 집을 마저 수색하고 나서 동네 한가운데 있는 우물물을 제각기 수통에 넣어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대낮에 다섯 명이나 산마루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산허리께 나무숲을 지나 팔부 능선쯤 되는 바위 그늘에다 자리를 잡았다. 우선 중대본부에 보고를 해야 했다. 휴전회담이 시작된 지 이년 째나 끌어오는 이즈음 각 전선에서는 산발적인 탐색전이 계계속될 뿐, 이렇다 할 대규모의 전투는 없던 차에 이렇듯 적이 한 부락민을 모두 피난시켰다는 것은 설사 그것이 이른바 허실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근의 색다른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중략)

 

「자, 떠나보지.」

그리고 현태가 동호를 향해,

「뭘 등신처럼 그렇게 바라보구 있어?」

마을 쪽을 내려다보고 있던 동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동호의 색다른 시선을 느낀 현태는,

「왜 또 그런 눈으루 사람을 보는 거야? 꼭 무슨 드러운 물건이나 보는 것 같은 그 아니꼬운 눈초리루」

「어제 그 여잘 어떡 했어?」

「자식, 그걸 가지구 그러는 거야? 그렇게 알구 싶다면 애기하지, 내가 내려가니까 그 여잔 되레 낮처럼은 놀라지 않드라, 그리구 별루 항거하는 빛두 없구, 그런데 말야, 일어나 나오려는데 손을 와 잡지 않겠어? 그 손이 뭣을 말하는지 알았지. 무서우니 같이 있어 달라는 거야. 허지만 될 일야? 해치워버렸지. 어제 일은 그뿐야.」

며칠 뒤, 휴전협정을 앞두고 꼭 두 주일 전인 1953년 칠월 열사흗날 밤 열시. 적은 중동부전선 30마일에 걸쳐 십오만이란 대병력을 투입시켜 가지고 총공격을 개시해 왔다. 휴전 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남쪽으로 점령지역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화천의 구만리 발전소를 탈취해보려는 속셈인 듯했다.

그때 동호네가 소속해 있는 부대는 '저격능선' 동방에 포진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적은 미 제6군단 관하의 수도사단 정면을 뚫고 침공하다가 수도사단이 철수하고 미 제3사단과 교대하자 이번에는 그 주력부대를 국군 제2군단 정면으로 돌리면서 동쪽으로 나와 중동부전선의 6사단과 8사단을 포위코자 하였다.

열나흗날 동호네 부대는 부득이 금성강 남안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흰 여름 구름이 꽤 센 동남풍에 불려 높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전례없는 적의 격심한 포격으로 인해 일어나는 포연과 합쳐지면서 차차 하늘이 낮아졌다. 유엔군 전폭격기가 느닷없이 구름과 포연 사이를 누비면서 적의 돌출부에 폭탄을 퍼부었다. 작렬하는 포탄과 폭탄이 지심을 뒤흔들어 귀를 먹먹하게 했다. 쉴새없이 세찬 폭풍이 모래먼지와 초연을 싣고 전쟁마당을 휘몰아쳤다. 그 속을 적은 인해전술로써 완강히 진격해 왔다.

윤구가 가무잡잡한 얼굴에 근심스런 빛을 띠고 다가오더니,

「어젯밤 꿈자리가 고약해.」했다.

꿈에 배가 퉁퉁 부어올라 의사에게 가 보였드니 임신 만삭이 됐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두 오늘 일수가 사나울 것 같애.」

현태가 대신 소대장에게 말하여 이날 윤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전쟁터에서 그 전날 밤 꿈자리가 아주 좋지 않으면 그날 전투에는 참가시키지 않는 수가 있었다. 웬일인지 전날 밤꿈자리가 나쁜 사람은 대개 전사하는 예가 많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전투에 참가하기 싫어서 거짓 꿈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전쟁마당에서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도리어 거짓 꿈이야기를 했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관념이 박혀있었다. 그만큼 전쟁터에서는 모두 순수한 심정이 된다고 할 수 있었다.

 

(중략)

 

현태가 화천 구만리발전소 야전병원에서 삼주일간의 치료를 받고 돌아왔을 때는 그의 소속부대는 '소토고미' 라는 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소토고미는 화천 북방 이십리, 휴전선 최전방인 추파령 남방 삼십리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었다. 현태는 군용 트럭에서 내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동란 전에는 38선 이북이었던 이곳은 작년에 현태네가 두 번째로 밀고 올라왔을 때 이미 안쪽 산 밑에 있던 민가는 거의 잿더미로 화해있었다. 그것이 휴전협정이 성립된 지 열흘도 못 되어 여기저기 판잣집이 들어서고, 현재도 집을 세우고 있는 데가 두셋 눈에 띄었다.

한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여다뵈는 곳에 부대가 있었다. 훅혹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황톳길을 한 손으로 배낭을 든 채 부대를 향해 걸어 들어가느라니까,

「거 현태 아나?」

하는 소리가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저쪽 막사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병사들 속에서 손을 쳐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동호였다. 이쪽에서도 좀 높은 소리로 대꾸를 했다.

「그 동안 시 많이 썼나?」

연대본부에 들러 원대 복귀신고를 마치고 나서 동호 있는 데로 갔다.

악수를 하면서 동호는,

「이젠 이렇게 잡구 흔들어두 괜찮아?」

「괜찮다뿐야.」

현태가 손아귀에 힘을 주어 동호의 작은 손을 아프리만큼 꽉 잡아보였다.

「다행이군, 곰배팔이 되지 않나 걱정했드니. 그래 첨 얼마 동안은 밥두 떠먹지 못해 간호 장교가 먹여줬다면서? 병원에서 먼저 돌아온 누가 그러드라. 그 꼬락서닐 한번 봤드라면 가관이었을 텐데.」

「말 말어. 정말 첨엔 상처가 덧나 혼났어. 근데 참, 윤구 그 친구는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여기 있지.」

「그래? 난 그날 밤 잘못된 줄만 알았는데.」

「그때 포로가 돼서 끌려가다가 도망쳐 왔어.」

「흥, 그 친구 존 경험했군. 그래 지금 어딨어?」

「오늘 아침 통신 관계루 연락할 일이 있어서 화천에 가는가 보드군. 지금 네시니까 이제 돌아올 때두 됐어.」

현태를 아는 병사들이 하나 둘 몰려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영내에는 처음 보는 병사가 적지 않았다.보충돼 온 병사들이었다. 휴전을 앞둔 전투에서 동료들이 많이 죽었다는 걸 현태는 재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가는 동안 모여 선 전우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어리어졌다. 그러나 그 그늘 안쪽에는 역시 지금 자기는 살아있다는 희열의 빛이 번져있음을 부인살 수가 없었다. 누가 그걸 그르다고 할 수 있으랴. 그저 서로가 다른 사람의 눈에 그것이 띄지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중략)

 

현태가 둘러앉은 동료들의 반함 뚜껑에다 새로 술을 나눠 따랐다.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동료에 대해 어두운 그늘을 나타내고 그 밑에 번지는 자기네들의 삶에 대한 회열을 삼가 숨긴다는 것은 하나의 인정에서 오는 예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어낸 예의니만큼 언제고 산 사람들에 의해 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남자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흔히 술이란 것이 매개가 되어 이를 깨어버리는 수가 많았다.

소토고미 부대는 최전선과 불과 삼십리 상거밖에 되지 않는 지역이라 오전중에는 내무교육과 야외교장실습, 그리고 오후에는 막사보수니 환경정리니 하여 일요일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휴전 협정에 따른 포로교환이 끝난 구월 중순께부터는 일요일엔 희망자에 따라 외출 허가를 주었다. 대개 외출 허가를 받은 축이 가는 곳은 주머니가 허락하는 대로 술집 아니면 위안소였다. 휴전협정이 되기가 바쁘게 군인 상대의 약삭빠른 장사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은 색시있는 술집이 늘고, 공인된 위안소 외에도 창녀 몇 명씩을 거느린 포주들이 여럿 들어앉게 되었다. 별반 안주없이 먹는 소주나 막걸리에 취하면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구와 말썽을 부리기가 일쑤요, 위안소나 창가에 드나들게 마련인 것이었다. 알코올의 홍분과 계집의 체취에서 그들은 자기네의 삶에 대한 희열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 나가볼까? 대장이 보내준 돈이 아직 좀 남았어.」

용하게 일요일마다 동호와 윤구의 외출증까지 끊어가지고 오는 현태가 이날도 이렇게 말하면서 외출할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현태가 야전병원에 있을 때 부친한테서 용돈이 왔던 것이다. 동란 전에는 비누 원료인 우지를 수입하여 꽤 큰 기업체를 만들었다가 전쟁통에 다 날려버린 현태의 부친이 이번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설탕을 가지고 사업체를 재건하고 있었다.

어떤 판자술집에 들러 술이 엔간히 취한 현태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코 앞에 대고 맡아보는 시늉을 하면서,

「암만해두 이 돈에선 당분 냄새가 나. 이걸루 쓴 술만 사 먹는다는 건 어울리지가 않는 것 같애.」

그러고는 윤구를 향해,

「자, 이제 우린 점호를 받으러 가 봐야지.」

다음에는 동호에게로 눈을 돌리며,

「넌 또 이걸루 캬라멜이나 사갖구 들어가 씹으면서 달콤한 시나 써라.」

백 환짜리 몇 장을 동호 앞에 던지고는 윤구와 함께 술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 윤구는 언제나 아무 말 없이 현태가 하자는 대로 좇는다. 제 돈안 들이고 적당히 얻을 수 있는 쾌락을 마다고 할 필요는 없다는 태도다.

동호는 자기의 여성에 대한 결벽성을 현태가 야유를 하면서도, 굳이 자기네가 가는 곳에 끌고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그는 담배 한 갑을 사 피워 물고 대대 뒤 등성이로 올라갔다. 막사 보수에 쓰일 재목과 겨울 준비 장작으로 베어낸 소나무 그루터기에 풀을 뜯어 송진을 가리고 걸터앉으면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조용히 잠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는 이날도 숙이의 영상을 더듬고 있었다.

 

(중략)

 

현태가 유심히 동호의 얼굴을 은 아닌 듯 동호의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지금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닌 듯 동호의 코에서 뿜어지는 허연 김이 좀 잦은 것 같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

「내가 보기엔 말야, 이번 동란에 나왔던 젊은이들은 죄다 피해자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건 말야. 모든 젊은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면 우리 주변의 친구만 두구봐두 그렇잖어? 우선 그 사고뭉치 김하사가 그렇구, 또 그 선우상사가 그렇구, 그리구 」

먼젓 차례의 동초 둘이 좌우쪽에서 이리로 다가왔다. 교대시간이 넘었나 보다. 동호와 현태는 동초들이 온 쪽을 향해 각각 헤어졌다. 하늘에는 얼음을 부스러뜨려 뿌린 듯한 차가운 별들이 박혀있었다. 그 아래 눈 덮인 땅이 별빛에 희뿌옇게 드러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차츰 그 빛을 잃어가다가 나중에는 어둠과 뒤섞여지고 마는 것이었다.

현태는 유리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동호가 술병을 메쳐 깨뜨려버린 모양이다. 자식, 오늘 기분 상한 일이 있었나 보군. 꽤두 숙맥이지. 그러나 흰 파카를 입은 동호의 그림자는 이미 눈빛과 하나이 되어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현태는 다시 앞을 살피며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는 왜그런지 여기가 금연 지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동호가 시체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쯤 뒤에 다음 차례 초병교대가 있었을 때였다. 밤이라 검게 뵈는 피가 흰 눈 위에 꽉 얼어붙어 있었다. 왼쪽 손목의 동맥을 끊은 것이었다. 오른손 옆에 술병 깨진 유릿조각 하나가 눈에 얼마큼 파묻혀 있었다. 그 얼굴이 눈처럼 희었다.

시체를 맞들어 내무반 앞에 올려다 화톳불을 피우고 밤샘을 했다. 동호의 몸에서는 돈 천여 환과 봉투 하나가 나왔다. 아까 내무반을 나오면서 호주머니에 틀어박아 넣었던 봉투였다. 겉봉에 장숙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병 하나가 호기심에 편지 알맹이를 뽑아보려 했다. 그것을 현태가 빼앗아 자기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제일차로 학도병 제대가 있은 것은 산골짜기에 눈석임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사월 초순께였다. 먼저 윤구에게 제대증이 나왔다. 일률적으로 입대 연월 순에 따라 제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각 계급별로 먼저 입대한 사람부터 제대가 됐다.

윤구가 부대를 떠나는 날, 상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온 그는 현태에게,

「그럼 가는대루 곧 편지하지.」

하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희색을 띠면서 작별의 말을 했다.

「그 가정교사했던 집으루 간대지? 잘됐어. 복많은 친군 달러.」

윤구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부집에서 자랐던 것인데 그 숙부네마저 6. 25때 폭격에 몰살을 당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였다. 그랬던 것이 사변 전 가정교사로 있었던 집에 연락을 했더니 마침 전에 가르친 애의 동생을 또 좀 와 봐달라는 기별이 얼마 전에 왔던 것이다.

윤구가 들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끈을 죄면서,

「동호 그 친구가 살았음 나보다 먼저 제대가 되는 건데,」

담배에 라이터를 켜다 말고 현태가,

「아 참, 그 친구 애인한테 보내는 유설 내가 갖구 있는데 주소가 적혀있지 않으니 어떡허지?」

윤구가 입가에 쓴옷음을 떠올리며,

「자식, 혼이 나갔던 모양이지, 주소를 다 잊어먹게.」

「하기야 그 친구의 경우 유서 같은 계 문제될 건 없지, ...그럼 서울서 만나세.」

「에잇, 인제서야 이놈의 생활두 끝났군.」

현태가 담배에 라이터를 켜대면서 천천히 말했다.

「이젠 우리두 우리의 생활을 가져야지.」

 

(중략)

 

숙이가 이마를 들었다. 땀이 촉촉히 배어있었다.

「안색이 좋잖으신데요?」

「아뇨, 괜찮어요. 먹을 물이 어디 있죠?」

윤구가 부엌으로 가 대접에 물을 떠가지고 왔다. 이날 집에는 윤구 혼자뿐이었다. 심부름하는 소년과 노인은 닭 줄 아카시아잎을 치러 나가고 없었다.

냉수를 마시고 난 숙이는,

「닭털이 하두 눈에 부셔서 그만... 그동안 많이 확장을 하셨네요.」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입과 이마의 땀을 찍어냈다.

윤구는 다시 한 번 이 여자가 자기를 찾아온 용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현태가 술집 색시와의 사건으로 형무소에 수감된 지가 이미 석 달이나 지난 이제 그네가 자기를 찾아온 까닭을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혹 그동안의 현태의 소식을 알까 해서 온 것일까. 공판 때 방청석에서 바라본 현태는 전에없이 이발을 깨끗이 하고, 안색도 수감되기 이전보다 오히려 건강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검사의 공소 사실을 그는 일일이 시인했다. 나중 검사는 피고의 심리상태로 보아 타인의 자살행위에 대한 방조나 교사를 넘어서 하나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로 간주한다고 하면서, 더구나 앞으로 청소년간에 만연돼가고 있는 이러한 사회독소를 엄중히 방지하는 의미에서라도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논고 끝에 무기징역의 구형을 했던 것이다.

「주위가 참 조용해 좋네요.」

「그렇지두 않습니다. 요샌 주위에 집들이 많이 들어서서.」

이렇게 겉도는 말만 주고받았다.

그네가 이날 윤구를 찾아오기까지는 실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생각과 싸운 끝에 겨우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집에나 직장에 있을 수 없게 되어 찾아나선 길이긴 하나, 그러나 정작 와놓고 보니 좀체로 마음에 먹었던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숙이는 다시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꼭꼭 누르고 나서 마음을 다져먹은 듯,

「사실은 선생님께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그리고 눈을 내리깔며,

「얼마 동안만 여기 좀 와 있을 수 없을까요?」

윤구는 숙이의 말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을 내리깐 숙이의 얼굴에서 약간 핏기가 걷히는 듯하더니 두손으로 백을 꼭 쥐면서,

「지금 저 임신중이에요.」

그제서야 윤구는 모든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숙이의 몸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앉음새가 거북해 뵈는 것도 같았다.

윤구의 시선을 느낀 숙이는 백을 안는 듯 앞을 가리면서 나지막하나 똑똑한 음성으로,

「첨엔 몇 번이나 처리해 버리려구 맘 먹었는지 몰라요.」

윤구는 숙이가 안고 있는 백에 시선을 주며,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야 거처할 만한 데가 돼야지요.」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알아요. 그저 해산 때까지만 있게 해주시면 더는 페를 안 끼치겠어요. 여기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어든 돕겠어요. 밥짓는 일 같은 거라두... 헛간 구석에라두 아무렇게나 하나 들이면 안 될까요? 고만한 돈은 남는 방이 없으면 갖구 있어요.」

윤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끼내어 물부리에 꽂았다.

「왜 그 친구한테 잠자쿠 계셨나요?」

「그땐 그일 저주했어요. 그렇다구 이제와서 그이와 타협하겠다는 뜻은 아네요.」

윤구는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바엔 그 친구네 집에 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가지구 조처를 받으시는 게.」

숙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럴 생각은 꿈에두 없어요. 어떻게든 제 힘으루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겠어요.」

「네, 그건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알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사정을 말하면 저편에서두 모른다구는 하지 않을 젭니다.」

「그 말씀은 더 말아주세요. 이미 제 맘에 작정이 된 거니까요.」

윤구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글쎄요,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일을 그 친구 집에서 알게 된다면 되레 여기 계신 게 피차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동안 저는 남모를 피해를 받아온 사람입니다. 더 이상 누구 일로 해서 말썽을 내구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윤구는 마음 한구석으로 미란의 일이 현태와 전연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그 친구 집에 직접...」

「알겠어요.」

잠시 숙이는 숨을 가누고 나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비로소 윤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선생님이 받으신 피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큰 의미에서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씨두 그 중의 한 사람이라구 봅니다. 그리구 저두 또 그 중의 한 사람인지 모르구요.」

「네... 그런 생각에서 그 친구의 애를 낳아 기르시겠다는 겁니까?」

그네는 윤구에게 주던 시선을 한옆으로 비키면서,

「모르겠어요. ...어쨌든 제가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그럼 실례했습니다.」

숙이는 가만히 대문께로 몸을 돌렸다.

1960 오월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1995년 재판)

 

☆ 황순원 소설가

▲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 출생

▲ 1934년 숭실대학교 졸업

▲ 1939년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 1940년 첫 창작집 《늪》 간행

▲ 1955년 「카인의 후예」로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

▲ 1961년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예술원상 수상

▲ 1966년 「 일월」로 3.1문화상수상

▲ 1985년 《황순원 전집》 전 12권 간행

 

● 파탄의 시대와 구원의 가능성 /김병익(문학평론가)

 

▲ 구시대의 피폐한 절망 의식에서의 탈출

황순원이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사상계》에 연재하고 단행본으 로 출판한 1960년은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4.19가 성취되던 해였으며 40대 중반에 이른 작가의 창조적 정력이 절정으로 표출되던 시기였다. 그때가 4.19였다는 것은 10년 전에 발발된 한국 전쟁과 그것이 야기시킨 광범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혼란이 이제는 극복되어야 할 단계에 다가와 있으며, 그 와중에 좌절과 무기력에 빠진 젊은 세대들의 상실된 의식을 탈피할 새로운 어떤 변화가 대기

중에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시기가 작가 황순원의 문학적 이력에 중심기가 된다는 것은 그 이전의, 그러니까 <별과 같이 살다>와 <카인의 후예>에서 역사적 현실과 더불어 살아오던 전기(前期)의 세계에서 이후의 <일월>,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에서 개인적 현실을 응시하는 후기의 세계와의 접점에서 역사와 인간, 전체와 개인간의 미묘한 갈등적 만남을 극적으로 포착할 계기를 그가 획득할 수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는, 환언하면, 전반적인 차원에서는 50년대적 상황을 정리하고 이른바 전후의식(前後意識)을 처리할 과제를, 그 개인적 차원에서는 역사에서 인간으로의 시선의 전이를 이룰 과정을, 이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수행한 것이다. 물론 황순원이 4.19의 역사적 충격에 도취하거나, 작가적 시선의 변화가 그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신에 변모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구시대의 피폐한 절망적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조심스럽게나마 분명히, 이 소설에서 드러내고 있으며 "전·후기의 그의 창작 세계의 변모는 역사 속의 개인 창조에서 개인을 통한 사회 변화의 확인이란 점으로 구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듬해 예술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또한 6.25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소설이란 점은 여기서 마땅한 의미로 지목되어야 할 것이다. 사반세기가 지난 이제 이 소설의 역사적 의미는, 전쟁과 전후의 가혹한 현실을 우리가 비로소 정면으로 부닥쳐 그것을 적어도 의식의 영역에서 극복할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현태와 동호의 존재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 그 자체이지만, 이 상처를 들쑤셔 그것을 바로 우리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순간, 우리는 50년대적 세계를 뛰어넘을 계기를 찾아내게 된 것이며 그것이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다시 바라보게 될 근거가 되는 것이다.

 

▲ 두꺼운 유리 속의 삶

「이건 마치 두꺼운 유리 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느낌이로군.」-<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시적 표제를 가진 이 소설은 그 첫 문장을 이같은 유명한 시적 비유로 시작한다. 뜨거운 여름 한낮, 마을 정찰 임무를 수행중인 동호가 그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극도의 긴장을 느끼며 내뱉은 독백으로 묘사하는 이 정황은 동호와 그의 전우 현태 등의 치열한 전투중의 정막 일순일 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이 시기에, 무의미하다기보다 파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민족 상잔의 전쟁 속에 던져진 사람들의 공통된 한계 상황이다. 작가는 이들을 '두꺼운 유리 속'에 갇혀진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데, 보다 큰 비극은, 이 갇혀진 상황에 압착된 조건이 깨어지면서, 그러니까 그 유리가 깨어지면서 그 파편 조각이 우리의 몸 속에 들어와 박혀 고통스러운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 동호는 그것을 예감하며 「전신에 소름이 끼쳐 몸을 떨게」 된다. 「이 유리가 저쪽 어느 한귀퉁이에서 부서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새 없이 몽땅 조각이 나고 말 테지. 그리고 무수히 날이 선 유리 조각이 모조리 몸에 들어박힐 거라.」 휴전되기 몇 달 전의 격렬한 마지막 전투부터 동호가 자살하기까지를 제1부로 한 이 소설의 전반부는 그 '무수히 날이 선 유리 조각' 에 직접적으로 목숨을 벤 희생의 기록이며, 제대하고 돌아온 현태가 무기력과 절망의 나날 끝에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되는 것으로 마감되는 제2부의 후반부는 몸에 박힌 유릿조각으로 고통당하는 수난의 기록이다. 황순원의 6.25는 그러므로 이 두 개의 연계된 영역으로 비극적이다. 제1부의 주인공이 되는 동호에 시선을 집중시킴으로써 추적되고 있는 비극은 전쟁에 짓눌림으로써 우리에게는 순결과 꿈을 사일하고 말았다는 절망적인 자기 파멸의 인식이며, 현태의 일상과 파국적 사건을 그리고 있는 제2부의 비극은 그 절망으로부터의 소생 불가능성에 대한 자기소멸의 의식이다. 이 소설의 이중적 시점과 대조적인 성격 설정의 정교한 구성은 6.25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이중적 인식의 치밀한 방법적 표면을 이룬다. 동호의 파멸은 전쟁이 모든 것을, 아름다운 꿈과 순결을, 시와 사랑을, 인간성과 희망을 모두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드러내며, 현태의 소멸은 그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남성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한계적 의식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 비탈에선 나무들

따라서 이들은, 동호 스스로가 이미 날카롭게 꿰뚫어본 것처럼 「이번 동란에 나왔던 젊은이들은 죄다 피해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랑하는 애인 숙이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자살하고야 만 동호 자신이나, 한때 아버지 회사에서 정열적으로 일하다가 문득 전투중에 한 아낙을 강간하고 그 모자를 살해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모든 의욕을 잃고 술로 무위도식하다가 끝내 작부 계향이를 자살하게 하는 현태 자신만이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가 '비탈에 선 나무' 로서 시대의 비극에 피해자가 된 것이다. 동호를 자살로 몰고 간 창녀 옥주는 남편의 전사 통지를 받고 실신하면서 뱃속의 애기를 지운 상처를 뱃가죽에 안고 있으며, 현태를 파탄으로 이끈 계향이도 전쟁중에 월남하여 평양댁의 강요로 몸을 팔아야 하는, 그래서 '백치 같은' 차디찬 무표정의 여인이 되어야 했다. 가장 현실적이고 그래서 전쟁과 포로의 위기를 벗어나며 제대 후에도 양계장을 잘 꾸려나가는, 결코 절망을, 따라서 구원도 느낄 수 없는 윤구까지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목사였던 부모의 피살 장면을 잊기 위해서 (혹은 되살리기 위해서) 폭음을 계속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선우상사도 바로 그 전쟁의 직접적인 회생자가 된다. 이 선우상사가 진단하고 있는 이 시대의 신의 부재는 그것의 직접적인 뜻에서보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의 세계상에 대한 시사로써 매우 주목된다. 제대를 앞둔 어느 날 현태·동호·윤구 등이 사업가·시인·은행가로서의 미래상을 한가롭게 그려보는 말들을 듣고서 선우상사는, 그 미래의 모습을 합치면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가 될 것으로 보고 이렇게 평한다.

 

(...) 옛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묵시를 받아 예언을 했지만 현대의 예레미야는 그렇지가 않어, 그는 이렇게 외치는 거야. 하나님이란 있는 것두 아니구 없는 것두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있기두 하구 없기두 한 것이다. 있다구 믿는 사람에겐 있구 없다구 생각하는 사람에겐 없는 것이다. 누구나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자유가 있다. 모든 게 사람에게 달렸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지배하는 건 아니다 (...) 이렇게 말야.

 

'신은 죽었다'는 낡은 명제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의 지배를 중단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절망적인 자유가 주어졌으며, 우리 모두가 희생자밖에 될 수 없는 데서 그 자유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파멸로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는 불길한 예언이 선우상사의 이 말에는 깊숙하계 숨겨져 있는 것이다. 과연, 현태는 이 부조리한 자유에 또다시 회생되고 있음을 고백한다.

 

자유가 너무 많은 데서 오는 과잉 상태가 아니구 자기에게 주어진 자율 처리하지 못해 생기는 과잉 상태 말야, (...) 이런 상태에 한번 빠지는 날엔 어떻게 되는지 알어? 수령에 빠진 짝야, (...) 자기가 거기 빠졌다구 자각했을 땐 이미 목까지 빠져들어간 뒤니까.

 

▲ 선택과 책임

현태가 말하는 자유란 사르트르처럼 선택을 취할 수 있는 긍정적 자유가 아니라 선택마저 포기됨으로써 완전히 무의지 속으로 함몰 될 수밖에 없는 부정적 자유다. 그 자신 이 방기된 자유의 제물이 되거니와, 현태의 이에 잇단 자문자답은 자유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이 전쟁에 있음을 확인시킨다. 물론 그는 전쟁터에 서서 「죽음과 맞선 순간 순간에 잃어버린 나 자신을 도루 찾구 싶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다시 전투 속으로 던져지면 자기 자신을 도로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히 자기를 잃어버린 곳이 전쟁터임을 밝히는 반어일 것이다. 동호가 전쟁터에서 꿈과 사랑과 시를 잃은 것처럼 현태야말로 전투 속에서 발휘되던 용기와 결단과 능력을 바로 거기서 상실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동호에게 죽음을 몰아오고 현태를 무능력과 권태의 자기 소멸로 몰아온 과잉된 자유' 란 이들과 이들을 둘러싼 모두가 '피해자' 란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피해자' 의식에는, 선택이 포기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택에 전제될 책임이 존재할 수 없다. 동호가 자살 직전에 숙이에게 남긴 유서가 아무런 글자도 최어있지 않은 백지였다는 것이 그렇다. 그에게는 선택과 책임, 동기와 결과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현태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호의, 모두가 피해자라는 말을 회상하며 자기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숙이를 범하고 계향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가해 행위는 피해의 영역에서 그 피해를 확인시키는 역설의 행위일 뿐이다. 숙이는 그녀의 「그 하찮은 꿈의 세계를 헤어나지 못해 그 친구(동호) 종내 질식해 죽구 만」 것에 대한 책임을 결코 알 수 없었던 상태였으며 계향이의 자살은 「무의미한 생활의 연속,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죄악,이란 「막다른」 벼랑에서 더 이상 자살할 힘까지 상실해버린 자기 소멸감 속에서 방기된 상태로, 권고된 것이다. 그러므로 숙이가 현태에게, 「도대체 책임이란 말부터 당신네들과는 상관없는 말이 아닌가요? 자기 자신에게서두 피할려구 하는 사람들이...」 라고 비난하며 「당신네들은 (...) 동호 씨나 당신이나 모두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예요」라고 단정하는 것은 적어도 일면의 진실을 품고 있다.

그것이 '일면의 진실' 이라는 것은 그녀가 이 전쟁의 '피해자들이' 책임과 구원을 포기하고 있다고 본 점에서는 당연히 옳았지만, 진정한 구원과 전면적인 책임이란 그같은 수난과 절망, 파멸과 소멸을 통해서만이 얻어진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피해자' 임을 자각하고 그 피해적 상황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됨을 깨닫게 될 때에서야 이 진실을 터득한다. 그녀는 현태가 자살 방조의 혐의를 시인하고 (따라서 그 '책임'을 수락하고) 무기형의 구형을 받게 되기까지의 근원적 원인을 아마도 이해했을 것이며, 그의 씨를 그녀가 갖게 되어 그 애기를 낳낳아 기르겠다고 결단을 갖게 되면서, 그러니까 그녀 역시 피해자 편에 섬으로써 그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취하게 된 것이다. 「(...) 큰 의미에서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 씨두 그 중의 한 사람이라구 봄니다. 그리구 저두 또 그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르구요.」이 깨달음에 이어, 이소설은 숙이의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단원을 이룬다.

「모르겠어요. (...) 어쨌든 제가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 고통을 통해 얻은 구원과 새로운 희망

작가 황순원의 마지막 희망은 아마도,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하겠다고 결의하는 숙이와, 그녀가 현태에게서 받은 생명에 걸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이미, 죽음의 싸움터로 애인을 보내면서도 순결과 꿈을 지키며 자살한 애인의 유서를 순수한 의식(儀式)을 거쳐 펼쳐 보려는 낭만적 순정을 지닌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애인의 자살과 자기를 범한 남자의 파멸을 보았고, 그 파탄들이 전쟁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그리고 그녀 자신이 그 피해자들과 같은 열에 서 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수난을 통해 구원으로' 의 사도 바울직 진실을 작가는 이 여인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이 품은 새로운 생명이 과연, 현태가 앞서 주장한 것처럼, 인류가 멸망으로부터 구원될 '전정(剪定)한 나무' 가 될 것인가. 작가와 함께 우리 독자도 그가 그럴 수 있기를 회망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될 수 있건 없건간에, 그것은 새로운 생명인 한 우리의 희망의 적(的) 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 그 자체가 새로움으로 해서 우리의 미래가 열리는 것이며 경외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순원은 이후의 우리가 반드시 낙관적일 수 없다는 실재적인 가능성을 비춰주고 있다. 또 하나 살아남은 윤구가 그로서, 작가에게 열정없는 피의적 인물로 그려진 이 현실주의적 인물이 이 소설에서 덤덤하게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 생활하는 것이다. 이 인물은 황순원의 이후의 <일월>,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에서 변형된 인물로 다시 나타나 급속한 사회 변화에 얹혀 제 구실을 맡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그것이 이루어진 1960년을 돌이켜보면서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소설은 50년대의 아프레게르적 상황과 의식을 수난의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조명하여 그것에서 극복될 어떤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우리 자신의 초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옥주의 뱃가죽에, 현태의 팔뚝에 남은 상처처럼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날씨가 음침스럽기만하면 욱신거리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원·이문구·윤흥길·김원일·전상국으로부터 김성동·이문열·이창동에 이르기까지, 현태의 동생이거나 아들일 법한 새로운 세대들의 6.25 문학과 그것들이 끊임없이 다시 씌어지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통해 구원을, 새로운 생명을 통해 희망을 구해야 한다. 이 희망과 구원에는 생명에의 존경심과 순수한 세계에의 꿈이 서려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수난의 시대의 문학함의 의미일 것이다. - 황순원의 문학적 생애와 그의 작가적 기여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면, 그의 절정기의 대표작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6.25를 극복하는 데서뿐 아니라 지금, 이곳의 상황을 뛰어넘기 위한 데에서도 중요한 인식의 지침이 될 것이다.

/ 황순원의 문학세계 해설 발췌

☆ 한국문학대표작선집 (1995년,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