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익는 산머루」 김주영 (2019.12.08)

푸레택 2019. 12. 8. 22:22

 

 

 

● 익는 산머루 / 김주영

 

일 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그녀와 동행해서 30리 이상이나 떨어진 읍내의 집을 다녀와야 했다. 30리 이상이나 되는 먼 길을 하루에 왕복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먼 산자락을 흔드는 포성을 들으면서 칠월의 뙤약별을 견뎌 내야 한다는 것도 우리들에겐 고역이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읍내의 집을 다녀오지 못하고 꼭 그녀와 내가 동행이 되어 다녀와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나고 싫었지만 그녀는 그런 까닭을 알고 있는 듯 언제나 고분고분하였다.

"순덕아."

읍내의 집으로 심부름을 보내야 할 때 그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깡마르게 갈라져 있었다.

"또 갔다 와야겠구나. 그리고 필구를 너무 걸리지 말고."

말하자면, 30리 길을 그녀 혼자 보낼 수는 없었으므로 어머니는 나를 동반자로 그녀에게 붙여 주곤 하였다.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가려면 고개를 세 번이나 넘어야 하는 산길이 있었다. 그 산을 왕복해야 할 때마다 그녀는 오르막길에선 나를 업었고, 내리막을 만나면 나를 앞세위 걸렸다. 내리막길을 만나서 길에다 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그녀는 내게 주의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똑바로 걷지 말고 옆탱이로 걸어라잉? 엎어지면 코 깬다."

그런 주의를 준 다음엔 꼭 내게 한 가지 약속을 주곤 하였다. 엎어지지 않고 계곡까지만 내려간다면 산머루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곡 하나를 건널 때마다 한두 번씩은 넘어지곤 하였으므로 나는 항상 그녀의 핀잔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촐랑대노? 좀 음전해라. 그래야 장차 큰놈이 된다."

어머니의 말버릇을 흉내내어 내게 잔소리를 퍼붓곤 했지만 잔소리가 심하면 심할수록 내게 안겨지는 산머루의 양은 많아지는 게 보통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산머루를 많이 따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만 내게 많은 잔소리를 퍼붓곤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을 읍내로 보내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어머니의 심부름이란 대개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안방 시렁 위에 있는 찬합을 가지고 오라든지,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잇돌을 이고 오라든지, 홍두깨를 가져오라든지 하는, 쭈그러든 산골 피난 생활에선 거의가 필요 없는 것들이었고 그런 물건들이 꼭 필요하다면, 이 산골 이웃에서도 말 한마디면 기꺼이 빌려 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고갯마루에서 앉아 쉴 참에 먼 산을 한참 바라보고 앉았던 그녀가 내게 불쑥 말했던 것이다.

"너 엄니처럼 야속한 여자도 없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찬합이 꼭 필요해서 우리보고 가져오라는 줄 알제?"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종알거리던 것이다.

"니 엄니 걱정은 그게 아녀, 집이 혹시 대포에나 폭격에 맞았을까 봐 그걸 보고 오라는 말씀이여, 찬합이다 홍두깨다 말하지만, 그건 말짱 헛말이고 이유는 딴 데 있는 기라,"

치마를 털고 일어서면서 그녀는 다시 말했다.

"워째, 자기 혼자서만 사변당하나, 온 나라가 뒤죽박죽인데, 이놈 자식, 집에 가서 내가 이런 말 하드락꼬 또 외어 바쳐래이? 그러문 나는 고만 죽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불평을 어머니에게 외어 바치지는 않았다. 그녀가 죽는 건 싫었다. 그것은 그녀가 따다 바치는 산머루의 양만큼이나 싫었다. 그녀가 죽으면 나는 산머루를 누구에게 따달랠 수 있을까.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죽는 건 싫어."

그녀는 언제나 내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강요하곤 했었다.

"내가 죽는 거 싫지?"

"그래."

"그러문 아가리 꼭 처닫고 있어래이."

아가리를 꼭 처닫고 있겠다고 약속을 해준 날 같은 땐 산머루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눈시울은 벌겋게 충혈되곤 했었고 그리고 가시에 찔린 그녀의 손등에서 피가 흐르곤 하였다.

어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매질을 하곤 하였다. 심지어 다듬이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엎어져 있는 그녀의 어깻죽지와 허리께를 개 패듯 하는 수가 많았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악스럽게 계속되는 동안 그녀는 흡사 죽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엎디어 있었다. 어머니의 매질이 지쳐서 끝나고 들었던 방망이가 마당 한가운데 가서 댕가당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 얼마 후까지도 그녀는 죽은 듯이 그대로 엎디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는가 싶어 가까이 가서 흐트러진 머리채에 묻혀 있는 그녀의 볼따구니를 가만히 찔러 보곤 하였다. 그때서야 그녀는 벌겋게 부푼 눈두덩을 들어 나를 보곤 키득 웃어 버리곤 하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그녀는 행랑채에 불어 있는 대문간 방을 같이 쓰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산골 동네에 타관 피난민들이 들이닥쳐서 그만한 방한 칸을 얻어 내는 데도 아버지는 상당한 고역을 치렀었다.

그녀가 맨 처음 호되게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은 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어른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된 지 나흘째 되던 밤인가 보았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처음엔 코가 막힌 소리로 뭔가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 킁킁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몸까지 비비 틀던 그녀가 더 이상 참지를 못했던지 그냥 발악적으로 웃음 소리를 토해 내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나가던 것이다.

"헛 그것 참, 저런 저런 망할 년 봤다나."

서둘러 바지를 찾아 입으면서 아버지가 대강 그런 뜻으로 꿀 먹은 벙어리 소리로 씨부리자 바드득하고 어머니가 이를 갈았다.

"니 엄니가 날보구 하는 소리가 가관이더라. 글쎄 날보구 이년아 밤중에 잠 안 자고 무슨 지랄 하느냐 이거야. 밤중에 잠 안 자고 지

랄한 건 누군데."

그날 그렇게 호된 매를 맞고도 그녀의 웃음병은 잘 낫지를 않았다. 자는 척하고 누워 있던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웃음 바가지를 쏟아내 놓곤 그 웃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던 꼴을 나는 자주 보아 왔던 것이다.

"저런저런, 저년 큰일났어. 큰일났어."

그때마다 아버지는 주눅이 묻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어머니는 이를 바드득 갈며 뜰로 쫓아나간 그녀의 뒤를 따라 뛰어나가선 호되게 매을 치곤 하였다. 매와 웃음의 대결은 그런 식으로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웃지만 않는다면 어머니의 매가 들어질 리 없었지만 아마 그녀는 선천적으로 웃음이란 걸 참지 못하는 기질이었던가 보았다. 또 지악스럽게 가해지는 어머니의 매를 그녀는 거의 운명적으로 잘 견디어 내는 것 같았다. 너는 때려라 나는 맞아준다는 식으로 허리와 등을 어머니에게 내어 주고 얼굴을 치마폭에 감추고 엎디어 있었고 그리고 정말 죽었는가 싶어 볼따구니를 찍고 보는 내게 벌겋게 상기된 눈두덩을 들어 키들 웃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아버지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소 죽은 넋이 덮어씌운 년이다."

그런 예기치 않은 웃음 이외에 그녀가 어머니를 면전에서 거역하거나 말대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모든 불평을 털어놓았고 그리고 그 불평을 어머니에게 고해 바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녀로부터 진지하고도 극진한 보상을 받아 가는 셈이었다.

피난이 시작되기 1년 전 겨울, 눈이 지독히도 내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머니는 그녀를 우리들의 부엌 아궁이 앞에서 발견했다. 외장꾼인 아버지의 새벽밥을 짓기 위해 그날 아침 어머니는 비교적 일찍 잠을 깼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던 어머니가 갑자기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부엌바닥에 그냥 나둥그러졌었다. 마침 새벽 담배 하나를 달아 물려던 아버지가 부엌으로 내달았고 나는 어머니의 외마디소리에 소스라쳐 단잠에서 깨어났다.

어머니를 방으로 업어다 누이고 냉수를 얼굴에 끼얹고 하는 동안에도 부엌 아궁이에다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 있는 그녀는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아버지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가서 그 돼지발 같은 억센 주먹으로 정수리를 세 번이나 쳐서야 그녀는 죽은 사람 깨어나듯 끼르륵 하고 목구멍에 괸 숨을 삼키며 어름어름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년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서 뱃심 좋게 잠을 자?"

거렁뱅이라는 걸 알아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체통과 거드름이 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추워서요."

그녀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면서 아직동잠기가 가시지 않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략)

 

나는 느닷없이 소리질렀다. 국을 퍼올리던 어머니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누나가 어떤 남자하고 잤어."

그녀가 어떤 남자와 수작했던 것을 내가 어떻게 해서 '잤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는지 내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인석아. 그게 무신 소리여?"

"누나가 웬 남자하고 잤어."

"이놈이 무슨 새따먹을 소리고?"

"난 봤단 말이야."

내 말뜻을 어머니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지악스럽게 먹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건너다보았다.

"필구야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될수록 그녀에게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묻는 아버지 말에 대답했다.

"웬 남자하고 자니깐 그 남자가 닭을 갖다 주데."

그 순간, 어디선가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았던 그녀가 국그룻 앞으로 폭삭 고꾸라졌다.

"이년 바른대로 대, 이 화냥년이 무슨 짓을 했길래 필구가 이런 말을 하노?"

"요 양탕구야. 그 에미에 그 새끼구나. 고걸 못 참어서 그래 금방 외어 바치나?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도 나는 저주와 낭패로 일그러지던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유래를 볼 수 없었던 지독한 매질을 어머니로부터 당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엎드려서 그냥 맞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때리지 말아요. 나도 이젠 다 컸어요. 필구 같은 애새끼를 낳아도 낳는단 말이여. 그렇게 지악스럽게 사람 패지 말어요."

"이년이 시방 머라 카제."

"당신도 죄 받을 끼요. 전생에 무신 죄를 지었길래 이러지요?"

그날 밤 그녀는 집을 쫓겨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말렸으나 어머니의 흥분은 대단했었다. 그런 화냥년을 집에 두고 한솥밥을 먹을 수 없다고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티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버티었다.

"홍 내가 갈 데 없으까 봐."

"그래 이년아. 갈보 같은 년이 어딜 못 가겠노? 화냥년이 화냥놈을 따라가지 어딜 가."

“제발 그만 못 둬들."

아버지가 지성껏 뜯어말렸으나, 한덩어리가 된 두 여자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겨우 어머니의 손끝에서 풀려난 그녀는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이 난중에 사람을 어디로 쫓아내."

아버지가 소리질렀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그녀를 용서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생일잔치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 그녀가 집을 쫓겨나간 뒤 어머니는 남아 있던 닭죽을 퍼다가 거름더미에다 버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버리면서 팩팩 토하는 시늉을 하였다.

어머니의 홍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홍분이 가라앉으면서 중얼중얼하는 잔소리로 변했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기까지 그녀는 종내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그녀가 간다면 도대체 어디로 갈까, 낮에 만났던 그 사내를 찾아간 걸까. 아니면 혹시 못에라도 빠져 죽은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도 나는 좀처럼 그녀의 말대로 '아가리를 따발린' 것을 후회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었던가 하면 내가 그녀를 배반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나를 배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내가 함께 지켜 오던 그 비밀의 덩어리와는 전연 색깔이 다른 비밀이었었고 그 비밀을 지키고 있기엔, 어린 내가 그런 비밀을 말없이 간직해 나가기엔 너무나 엄청나고 큰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의 성을 무너뜨린 건 내 편이 아니고 그녀 편이 먼저였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었다. 우리들의 소담스런 영역을 박차고 우리들에게서 떠나 버리는 만용을 획책한 건 분명 그녀가 먼저였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는 심한 허탈에 빠졌고 그리고 잠이 오질 않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 그녀가 내게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우리들이란 어휘가 주는 농밀한 연대감만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는 그날 새벽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한여름이었으므로 우리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자고 있었다. 그때 잠결로 어렴풋하게 뭔가가 내 볼따구니를 꼬집는 것 같아 나는 눈을 떴다. 바깥의 희미한 밤빛을 배경으로 꾸부리고 서 있는 것이 그녀라는 걸 나는 얼른 알아보았다.

"나와!"

내가 잠을 깬 걸 알자, 그녀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그러나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이 나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요 양탕구야 빨리 나와."

그녀는 다시 작은 소리로 다그쳤다. 나는 못내 내키지 않는 듯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밖으로 나온 내 한 손을 이끌고 도둑고양이처럼 뜰을 가로질러 골목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의 치마폭이 밤이슬에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골목 밖으로 나를 끌고 나간 그녀는 제법 커다란 보자기 하나를 내게 안겨 주었다. 난 그것이 무엇인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녀는 집을 쫓겨난 그 길로 산머루를 따러 갔던 모양이었다. 밤이슬을 맞으며 새벽까지 그녀는 산머루를 따모은 것이었다. 보자기를 받아 쥐자 그녀는 나를 덜렁 들어서 등뒤에 업었다.

"요 양탕구야. 내가 없으면 누가 니한테 산머루 한 응큼이라도 따다 바치겠노. 그 에미에 그 자식이지. 글쎄 요 자발없는 사내야, 하룻밤만 참았드래도 아저씨 닭다리 하나는 온전하게 묵었을께 아이가,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냐, 피난중에 먹들 못해서 피골이 상접한 걸 니도 눈까리가 있으면 보면 알제. 내가 그놈이 좋아서 그 짓을 한 줄 아나? 우리가 잡을 수 없는 닭을 잡아 준다니까 내가 그 놈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라."

그녀는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손을 코 언저리로 가져가서 콧물을 팽 풀어서 담장에다 닦았다. 그녀는 무거워지는 나를 다시 한번 추스려 업었다.

"니가 아모리 자발없어도 하룻밤 정도는 참아 줄 줄 알었다. 닭고기가 소화돼서 똥 된 다음에사 내가 몰매를 맞고 쫓겨나도 무슨 원한이 있겠노. 그것도 아저씨 생일날 아이가. 아저씨한테 면목이 없구나."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골목 어귀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너네 엄니보고 또 날 만났다는 소리 하지 마러, 요 양탕구야. 원수끼리 워찌 한솥밥을 묵고 살겠노. 이게 다 신령님 뜻이다. 원수끼리 붙었다가 오늘 밤으로 헤어지라는 뜻인 기라, 그날이 바로 오늘인 기라. 니가 신령님 대신으로 그런 말을 외어 바치게 했는 기라. 니 죄도 아이고 내 죄도 아잉 기라. 신령님의 뜻인 기라. 너 엄니 같은 사람과 헤어지는 거사 괜찮지만 원수도 아닌 니하고 헤어진다는 기 가슴아파서 내가 니를 다시 찾아왔는 기라. 요 양탕구야. 그럼 인자는 어서 들어가. 어서. 밤이슬 맞으면 감기 걸린다. 어서 들어가."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아마 그녀는 우리들이 오늘 낮에 만났던 그 사내를, 그 뜻모를 사내를 찾아가는 지도 몰랐다.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골목길을 저만치 벗어나서 새벽의 미명 속으로 회끄무레하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산머루 보자기를 안은 채 바라보았다. 멀리 윗동네 어디쯤에서 첫새벽 닭이 쾌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 김주영(金周榮) 소설가

▲ 1939년 경북 청송군에서 출생

▲ 1952년 진보국민학교 졸업

▲ 1959년 대구농림고등학교 졸업

▲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 1970년 '여름사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힘

▲ 1971년 '휴먼기'로 월간문학 신인상 받고 문단 데뷔

▲ 1984년 '객주'로 제1회 류주현문학상수상

▲ 199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