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모범 사육」 김주영 (2019.12.09)

푸레택 2019. 12. 9. 08:45

 

 

 

● 모범 사육(模範 飼育) / 김주영

 

내가 어슬렁거리면서 원장실로 들어서자, 원장은 뽀빠이처럼 캴캴 웃었습니다. 그 늑대가 우리 원아들 누구에게도 그따위 간지러운 웃음을 보내는 일은 좀처럼 얻기 힘든 영광이었으므로 나는 내심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늑대가 상냥하게 웃는다는 건 이솝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내 더러운 손까지 덥석 잡아 안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발작적인 행동에 내가 혹할 리는 없습니다. 그가 우리들께 친절하게 굴 땐 반드시 어떤 음모가 뒤에 도사리고 있었으니까요. 국회의원이란 배불뚝이 영감이 비서를 대동하고 우리들 '영세보육원'에 나타난다든지, 안경쟁이 부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체가 쳐들어온다든지, 수녀들이 방문할 때만 그는 염통에 쉬가슨 듯 칼칼 웃으며 너스레를 떨곤 하였으니까요.

'영세보육원'에 수용되어 있는 오십여 원아들치고, 이 보육원이란 것을 맨 처음 창안해 낸 그 어느 작자를 저주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도대체가 우리들이 기원하여 마지않았던 것은 과자 상자를 안고 오지 않아도 좋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는 개빽다귀 같은 성경말씀 듣지 않아도 좋으며 돼지 모가지 따는 소리로 짖어 대는 찬송가 안 들어도 좋으니 제발 그 위로 방문 따위 좀 멈추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적어도 사홀 전부터 우리들은 그 늑대에게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며 옷을 빨아 입는다, 대가리를 깎는다, 뒤꼍을 청소한다, 화단을 새로 가꾼다는 식의 철야작업에 몰려 괴롭힘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원장이 오십 명의 원아들을 다 제껴 두고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서 시방 캴캴 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갑자기 찬물에 온몸을 담근 놈처럼 뺏뻣해져 서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연신 날 보고 웃고만 있던 원장놈이 옆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원장 건너편 의자에 한 여자가 댕그라니 앉아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사십대의 여자는, 적당히 살이 찐 볼따구니에 엷은 홍조를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녀는 벌써 오래 전부터 그런 자세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던 게 틀림 없었어요. 나는 시방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담박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십대의 여자가 양잣감을 고르러 온 여자임을 보육원 생활 삼년째인 내가 모를리 있겠어요? 그런데 도저히 헤아려 낼 수 없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나로 말하면 양자를 얻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지만 그때마다 퇴짜를 맞아 온 못난 입장이란 것이에요.

그들이 내게 붙여 준 딱지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도무지 덤벙대기 잘하고 불량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같은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 집구석은 한 시간 안으로 지옥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내게서 얻어내는 그들의 결론이었어요.

나는 오직 이 보육원에서 만은 벗어나야 한다는 욕망 하나에 사로잡혀 내 모든 치부를 간교하게 도사려 보았건만 그들은 내 속에 숨어있는 그것들을 교묘하게 탐색해 내고야 말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만은 이상하게도 그 원장이 내게 특별지시를 내려 목욕을 하라는 둥 손톱 발톱을 깎으라는 등 '예 그렇습니다' 하는 따위의 고분고분한 말대답을 하라는 식의 사전지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뒤뜰에서 아이들과 흙발로 걷어차기 장난을 하고 있다가 그대로 원장실로 불려왔을 뿐이었어요.

"과연 말씀하신 대로군요!"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가 이렇게 말하면서 원장을 향해 눈옷음을 보냈습니다. 그 여자가 앉아 있는 의자의 맞은편 탁자 위에는 반쯤 마시다 둔 커다란 오렌지주스 잔이 놓여 있었더랬어요.

나는 그 유리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것은 주스를 후딱 빼앗아 마시고 달아날 시간을 언제로 잡느냐 하는 주저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이 어떤 음모로 꾸며지고 있든 그것이 내게 있어선 파리똥만큼이나 관심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런 내 기분을 대뜸 알아차린 것은 그 여자였어요.

"자, 이것 마셔, 사양 말고."

그 여자는 유리컵을 들어 내게 내밀었으나 그 순간 나는 내 치부가 그녀로부터 잽싸게 탐색되어 버렸다는 오기(傲氣) 때문에 한참이나 여자를 쏘아보았습니다.

"야, 쌤통이다 안 먹어 씨발."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금방 늑대의 호령이 내 뒤통수에 떨어졌어요.

“이놈 자식, 왜 안 먹어? 이분이 널 생각해서 그러는데?"

기죽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그녀 손에 들려 있는 잔을 날렵하게 빼앗아 주스를 단숨에 마셔 버렸지요. 너무나 조급하게 서둘러 마셨던 나머지 새알이 들려 나는 한참이나 발을 굴러 가며 기침을 해댔습니다. 그 꼬락서니가 무엇이 그리 재미 있는지 두 사람은 깔깔 웃었습니다. 그 여자가 그때 재빨리 핸드백을 열고 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내 주걱턱에 묻은 침을 닦아 주었습니다. 침흘린 것보다는 땟국이 더많이 묻어 나온 형편이었지만 그녀는 손수건을 다시 곱게 접어서 핸드백 속에 넣었어요. 그 여자의 복숭아 속살처럼 새하얀 가슴팍에 매달린 백금 목걸이가 하늘하늘 가늘게 떨고 있었습니다. 원장이 그녀를 보고 다시 묻더군요.

"만족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데려가시겠어요."

"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해주실래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염려마세요. 그 자식은 이 보육원을 떠나지 못해서 안달이니까요."

원장, 그 늑대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용팔아!"

"왜요?"

"에 또, 너 말이야 지금 저기 앉아 계시는 분이 너의 어머니될 분이야. 뭣하면 아주머니라고 불러도 좋아. 넌 이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아주 오늘로 그 댁에서 살게 된다. 알았지?"

"알았어요."

"성격이 아주 서글서글하군요."

그 여자가 우리들의 대화에 끼여들었습니다.

"아, 이 녀석 말입니까? 늑대 같은 놈일걸요."

원장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자, 나는 기가 찼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여잔 도대체 늑대 같은 나를 데려가 어디다 쑤셔 박을 작정인지 나는 조금씩 불안해져 갔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따라가 버리기로 작정한 것은 이 보육원을 한시라도 빨리 뛰쳐나가고 싶은 욕심때문에 앞뒤 견주어 볼 겨를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 여자가 여느 때의 여자들과는 달리 생겨먹은 그대로의 나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태도에 호감이 갔기 때문이었어요. 적어도 그 여자를 따라가는 데는 아무런 계약도 조건도 강요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의 그런 태도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일어섰고 그리고 핸드백을 다시 열더니 흰 봉투를 하나 꺼내서 그 늑대에게 내밀었습니다.

원장은 방금 쥐갈비라도 뜯어먹은 난처하고 당황해 하는 낮짝이 되어 그 봉투를 받아 쥐고 왜놈들 뺨치게 굽신거렸어요.

난 그 봉투의 내용물이 뭐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것이 사례금이란 걸 열세 살이나 처먹은 내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때 내 정수리에 보드라운 그 여자의 손이 와닿았습니다.

"날 따라가자 응?"

순간,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어요. 막상 그 여자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가는 기분이 솟아올랐거던요.

"난 안 가 씨발."

내가 너무 큰 소리를 쳐버렸으므로 그녀는 내 정수리에 얹었던 손을 얼른 거두어 갔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너 정말 곤조통 부릴래?"

도대체 사회사업을 벌여서 보육원 원장을 한다는 작자가 원아를 보고 이따위 저속한 말로 공갈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진팔이, 용식이, 수진이, 호섭이, 태일이 나하고 가까운 원생들의 얼굴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므로 나는 금방 심란해져 버렸어요. 그러나 그러한 내 심중의 갈등을 그 여자는 재빨리 간파해 내는 것이었어요.

"우리집에도 너의 친구 될 아이가 둘이나 있단다. 어서 가자. 냉장고에 넣어 둔 아이스크림 먹어 봤니?"

그 여자는 원장 그것보다는 몇 배나 더 간교한 여자였어요.

 

(중략)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물쇠를 갖고 나와선 냉장고 문을 딱가닥 잠가 버리는 것이었어요. 난 몹시 신경질이 났지만 왠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러서 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처럼 목욕을 하라 성화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주인여자도 나를 볼 땐 그 상냥한 웃음을 의식적으로 거두어 갔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기분이 언짢았어요. 때로는 식탁에 앉아서 내게 충고도 하는 것이었어요.

"얘, 용팔아 식량을 조금씩 줄여야 쓰겠다. 너?"

그 여자는 정색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짐작하건대 어른들은 석 달 동안 녀석들과 쌓아 놓은 정분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초조하고 불안해졌습니다. 나는 계속 이 집에 파문혀 살고 싶었습니다. 도망을 친대도 이런 집구석은 아마 얻어걸릴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집에 눌러 있자면 이 집에서 내 존재의 필요성을 느낄 때뿐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매우 교묘하고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집에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는 명분을 찾아내는 일이 그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두 녀석을 다시 옛날의 계집애들의 형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녀석들은 지금까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해왔고, 내가 앞서서 걸어가면 그들은 다소곳이 내 뒤를 따라왔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들을 다시 계집애들처럼 만들자면 내 자신이 계집애들처럼 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녀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쯤 되면 집 뒤꼍으로 가서 갖가지 소꿉장난감들을 늘어놓고 쪼그리고 앉아 이건 대추, 이건 곶감, 이건 아이스크림 하면서 종알거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녀석들은 복습과 예습을 마치고 나서야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녀석들은 내가 하는 일은 뒷짐을 지고 서서 구경만 할 뿐 얼른 그 소꿉놀이에 말려들지는 않았습니다.

"야, 너들은 같이 안 놀래?"

"얘, 용팔아, 너 그게 무슨 짓이니? 계집애들처럼?"

녀석들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서서 이렇게 나를 힐책하는 것이었어요.

"이 새끼들! 같이 안 놀래 정말?"

나는 눈꼬리에 잔뜩 풀을 멕이고 그 녀석들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무런 동요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깨의 힘이 점점 아래로 빠져 내려가는 허탈감이 왔습니다. 그 중 한 녀석이 제 동생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얘, 진수야! 우리 태권도 연습하러 갈래?"

"그래, 가자구 저건 빼구."

그들은 앞뜰로 쭈루루 달려가고 말더군요. 정말 기가 찼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맛있는 콩자반과 쇠고기 장조림과 주스와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나는 그들이 멀리할수록 근 열홀 동안이나 그들을 설득하고 회유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내 노력들은 시간이 갈수록 우매할 뿐이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꿉장난에도 그네타기에도 새에게 모이를 주는 일에도 전연 관심이 없었고 그러한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내 꼬락서니를 저들 어머니에게 일러바치곤 손가락질하며 마음껏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비밀스런 눈초리를 내게 배치했고 나는 무너져 내리는 듯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녀석들은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끼리 뜰에서 어울려 놀다가 심심하다 싶으면 이젠 대문 밖의 골목에까지 진출해서 동네 아이들을 유도해서 병정놀이를 즐기곤 땀을 밸뻘 홀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옛날엔 쌍둥이라고 놀리던 동네 아이들이 너무나 건강해지고 때로는 쌍말로 거침없이 지껄여 대는 쌍둥이 형제들에게 짓눌려 녀석들의 유도에 묵묵히 따라 주는 모양이었어요. 적어도 석달 전만 해도 두 녀석들은 동네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대문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한 아이가 옛날처럼 여기곤 놀려 대다가 두 녀석이 함께 엉겨붙어 실컷 패주는 바람에 나머지 아이들은 끽소리 못 했대나 봐요. 녀석들은 어느 사이에 동네에서 손꼽히는 악돌이였습니다.

나는 소파에 묻혀 낮잠을 자거나, 그네에 올라타고, 그걸로 긴 하루 해를 오직 혼자서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소꿉장난이나 하고 노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뒤껄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바로 내 등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한 우람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난 맨 처음 그 목소리를 향해 돌아볼 겨를도 없이 까무러칠 듯 놀라 버렸습니다. 집 안에서 그렇게 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올 리도 만무하였지만 그 목소리는 잊혀져 가려는 내 심층의 한쪽 끝을 발딱 일으켜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나는 가까스로 숨을 돌리고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거기엔 '영세보육원'의 원장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어요. 그 순간 나는 잽싸게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훨씬 빨리 원장이 팔짱 낀 손을 풀어 내 어깨와 견골께를 덥석 껴안아 잡고 말았습니다. 내가 원장에게 끌려 앞뜰로 나왔을 때, 난 그 집의 두 여자가 현관 밖에 나와 서 있는 걸 보았습니다.

주인여자가 원장에게 말했습니다.

"갤 오래 두었다간 우리집 애들을 다 버리겠어요. 하루 왼종일을 계집애 짓거리만 하고 돌아간다니깐요. 원장님이 직접 확인하셨을 테죠?"

원장이 그녀를 향해 넙죽 절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사모님, 이 녀석 데리고 가겠습니다."

나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원장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골목 저켠에서 때마침 이 집구석의 아이들이 소리 맞춰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야- 돌격 앞으로!"

 

☆ 김주영(金周榮) 소설가

▲ 1939년 경북 청송군에서 출생

▲ 1952년 진보국민학교 졸업

▲ 1959년 대구농림고등학교 졸업

▲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 1970년 '여름사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힘

▲ 1971년 '휴먼기'로 월간문학 신인상 받고 문단 데뷔

▲ 1984년 '객주'로 제1회 류주현문학상수상

▲ 199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