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윤흥길 (2019.12.08)

푸레택 2019. 12. 8. 00:13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윤흥길

 

워낙 개시부터가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어긋져 나갔다. 많이 무리를 해서 성남에다 집채를 장만한 후 다소나마 그 무리를 봉창해 볼 작정으로 셋방을 내놓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 내외는 세상에서 그 쌔고쌘 집주인네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장 질이 좋은 부류에 속할 것으로 자부하는 한편, 우리집에 세들게 되는 사람은 틀림없이 용꿈을 꾸었을 것으로 단정해 버렸고, 이와 같은 이유로 문간방 사람들도 최소한 우리만큼은 질이 좋기를 당연히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는 어쩐지 처음부터 자꾸만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복 차림으로 학교까지 찾아온 이순경이 주민등록부에 우리의 동거인으로 기재되어 있는 안동 권씨에 관해 얘길 꺼냈을 때 내가 느낀 배반감은 절정에 달했다.

 

"... 조금도 부담감 같은 걸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매일 무슨 보고 형식을 취할 것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건 아니니까요. 약간 특별한 동태가 보일 때, 가령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든가 좀 이상한 손님이 찾아왔다든가 쌀이나 연탄이 떨어져 굶는다든가 갑자기 많은 돈이 생겨서... "

부담감이란 것에 대해 이순경은 매우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것은 갖고 싶다고 가져지고 갖기 싫다고 안 가져지는 그런 임의의 선택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은 스스로 원해서 어떻게든 가져 보려고 안달할 정도의 그런 기호물은 절대 아니었다.

"나더러 이제부터 당신 밀대 노릇을 하라는 얘깁니까?"

"무슨 그런 거북한 말씀을!"

우리 학교 담당인 학사 출신의 이순경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한 다음 곧장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선생님 앞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친절한 이웃이 돼 주십사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권씨의 동태를 일일이 사직당국에 고자질해야만 권씨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군요."

"그렇다마다요" 하고 말하면서 이순경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밀대니 고자질이니 하는 말은 우리 쑥 빼기로 합시다. 두고 보면 오선생님도 알게 됩니다. 권씨에 관계되는 한 그런 말들이 얼마나 적절치 못한 표현인가를 말입니다. 오선생님한테 권씨네가 지나치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닙니까? 혹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닙니까?"

"뭐 벌써부터 미워할 것까지야 있을까마는... "

"쌀이 떨어졌는지 연탄이 떨어졌는지도 살펴보고 말입니다, 힘 닿는 대로 그 사람을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도무지 제가 표면에 나설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물론 권씨를 고용하는 기업주 쪽 탓도 있죠. 사찰 대상자를 즐겨 고용하는 기업은 없을 테니까요. 허지만 그것보다는 권씨 자신이 더 큰 문젭니다. 자신이 법에 따라서 내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못 견디는 체질입니다. 내 전임 담당자 때는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사당하고 있다는 걸 일단 눈치만 채고 나면 직장도 생활도 심지어는 처자식까지도 다 포기해 버리는 성미죠. 숫제 드러누워서 며칠씩이고 굶고, 밥 대신 허구헌 날 깡술만 들이켠다거나 짐승처럼 난폭해져 가지고 발광 그 직전까지 갑니다. 그렇게 착하고 양순한 사람이 말입니다. 이제 제 말뜻을 이해하셨을 줄 믿습니다. 제 임무를 감쪽같이 수행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만 주신다면 오선생님은 어김없는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 경찰관 입장을 떠나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권씨를 사랑합니다. 가능하다면 그를 돕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마 불원간에 오선생님도 그렇게 되고 말 겁니다. 부디 친절한 이웃이 돼주십사고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내가 권씨를 사랑하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차라리 듬뿍 사례금을 얹어서 다른 누구로 하여금 나 대신 그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애당초 우리 내외가 방을 내놓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인정보다는 현금이 그리워서였다.

 

권씨네가 우리집 문간방으로 이사 오던 날은 그 풍경이 가관이다 못해 장관이었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게으른 아침을 먹는 중인데 댕동 소리가 났다. 아내가 나가서 대문을 열어 보더니 무척이나 놀라는 기척이 안방에까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보고 나서 나는 아내의 호들갑을 이해했다. 나 역시 어지간히 놀랐던 것이다. 웬 아낙네 하나가 자기 몸무게만큼은 나갈 커다란 보통이를 머리에 인 채 땀을 뻘뺄 흘리면서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대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아홉 살쯤 먹어 보이는 계집애 하나가, 다시 그 계집애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세 살 가량의 사내애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일가의 가장은 가파른 언덕길 저 아래에다 보통이를 내려놓은 채 숨을 돌리면서 마악 담배를 꺼내 무는 참이었다. 나를 보더니 사내는 일껏 입에 물었던 담배를 도로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퍽으나 힘에 겨운 동작으로 보퉁이를 들어 어깨에 메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짐 무게에 압도되어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근근이 언덕배기를 올라오고 있는 그 사내가 우리집에 세들기로 된 권씨임에 틀림없다면, 그는 예정보다 나흘이나 앞당겨 사전에 주입이 우리의 양해도 구함이 없이 일방적이며 기습적으로 이사를 단행하는 셈이었다. 사내가 금방이라도 짐에 눌려 쓰러질 것만 같았으므로 나는 빼앗다시피 보퉁이를 받아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짐은 아주 가벼윘다. 북데기만 요란했지 실은 느슨하게 묶어진 이불 보따리였다. 다소 겁을 먹은 눈으로 애들이 나를 깊숙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애들은 배가 불룩한 비닐가방 따위를 양손에 나눠 든 채 무척 힘든 표정이면서도 잠자코 잘들 견디고 있었다. 아내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힘을 거들어 보퉁이를 받아 내릴 생심도 못 하면서 저울질하듯이 언제까지고 권씨 부인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권씨는 키가 작았다. 보통키 정도밖에 안 되는 나지만 그래도 권씨에 비기면 거인이나 다름없었다. 슬리퍼를 걸치고 나온 내 발만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권씨는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내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삿짐은 차로 옵니까?"

"아닙니다."

그는 피로에 지친 눈을 들어 자기 아내의 머리에서 시작하여 아이들 손을 거쳐 이제 방금 내가 대문간에 부려 놓은 보통이에 이르는 기다란 활을 그렸다.

"이게 전부 답니다."

멋쩍은 듯이 그는 어설프디어설프게 웃었다. 보자기 바깥으로 비죽비죽 내민 것으로 보아 권씨의 아내가 이고 온 짐은 취사도구일 것이다 그게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었다면 결국 쌀을 익히고 빨래하고 그리고 깔고 덮는 데 쓰는 몇 점 세간이 이삿짐의 전부인 셈이었다. 아무리 셋방으로 나도는 살림이라지만 그쯤 되고 보면 해도 너무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동안에 사내는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더니 다른 쪽 다리 바짓자락에다 구두코를 쓰윽 문질렀다. 이어서 이번엔. 발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먼지가 닦여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를 내려다보면서 비로소 그는 자기 구두코만큼이나 해맑은 표정이 되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틀림없이 재고정리 바겐세일 바람에 하나 주워 걸쳤을, 지그재그 무늬의, 때 이르고 유행 지난, 후줄근한 여름옷과는 영 안 어울리게 그의 구두는 제법 신품이었고 알맞게 길이 난 호사품이었다.

 

"아무래두 약속이 틀려요."

내외 둘만이 되었을 때 아내가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먼젓번 살던 방을 오늘 꼭 비워야만 할 형편이었다잖아. 약속이 틀려도 별수 없지. 그리고 어차피 안 쓰는 방이니까 나흘쯤 앞당겨 들어왔대서 뭐... "

"그게 아네요."

"걱정 마. 수일 내로 마저 다 챙기겠다고 약속했어. 자기네도 사람인데 설마 절반만 내고 입 싹 씻진 않을 테지."

"계약금 받을 때만 해도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들이 여간 뻔뻔하지 않아요. 이십만 원이면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내놓은 줄 자기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까 잘 알 거예요. 그런데 단돈 십만 원만 쥐고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불쑥 쳐들어오다니, 생각할수록 괘씸하다니까요. 그런 기본적인 약속마저 어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담엔 무슨 약속인들 못 어기겠어요. 당신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나머지 전셋돈 받아 내는 거 당신이 책임지세요.

"무슨 소리야? 기본적인 약속마저 안 지키는 그런 사람을 고른 건 바로 당신이잖아?"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인 줄 누가 알았나요. 감쪽같이 속이려구 뎀비는 데야 도리 있어요? 인제 두구 보세요. 우릴 속인 게 한 가지 더 드러날 거예요."

"건 또 무슨 뜻이지?"

 

(중략)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서 우리집 동준이놈을 얻을 때처럼 줄담배질로 네 댄가 다섯 대째 붙이고 나니까 울음 소리가 들렸다.

"고추예요, 고추!"

수술을 돕던 원장 부인이 나오면서 처음 울음을 듣는 순간에 내기 점쳤던 결과를 큰 소리로 확인해 주었다. 진짜 보호자를 상대하듯이 원장 부인이 내게 축하를 보내 왔으므로 나 역시 진짜 보호자 입장에서 수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에 나는 강보에 싸여 밖으로 나오는 권기용 씨의 차남을 대면할 수 있었다. 제 어미 배를 가르고 나온 놈답지 않게 얼굴이 두툼한 것이 속없이 잘도 생겼다. 제왕절개라는 말이 풍기는 선입감에 딱 어울리게시리 목청이 크고 우렁찼다. 병원 건물을 온통 들었다 놓는 억세디억센 놈의 울음 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동준이놈을 낳던 날의 감격 속으로 고스란히 빠져들어 갔다.

 

우리집에 강도가 든 것은 공교롭게도 그날 밤이었다. 난생 처음 당해 보는 강도였다. 자꾸만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귀찮다고 뿌리쳐도 잠자코 계속 흔들었다. 나를 깨우려는 손의 감촉이 내 식구의 그것이 아님을 퍼뜩 깨닫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빨간 꼬마 전구 불빛 속에서 복면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똑바로 내 멱을 겨누고 있는 식칼의 서슬도 보았다. 술냄새가 확 풍겼다. 조명 빛깔을 감안해서 붉은 빛을 띤 검정 계통의 보자기일 복면 위로 드러난 코의 일부와 눈자위가 나우 취해 있음을 나는 재빨리 간파했다.

"일어나, 얼른 일어나라니까."

나 외엔 더 깨우고 싶지 않은지 강도의 목소리는 무척 낮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멱을 겨눈 식칼이 덜덜덜 위아래로 춤을 추었다. 만약 강도가 내 목통이라도 찌르게 된다면 그것은 고의에서가 아니라 지나친 떨림으로 인한 우발적인 상해일 것이었다. 무척 모자라는 강도였다. 나는 복면 위의 눈을 보는 순간에 상대가 그 방면의 전문가가 못 됨을 금방 알아차렸던 것이다. 딴에 진탕 마신 술로 한껏 용기를 돋웠을 텐데도 보기 좋을 만큼 큰 눈이 착하게만 타고난 제 천성을 어쩌지 못한 채 나를 퍽 두려워하고 있었다. 술로 간을 키우지 않고는 남의 집 담을 못 넘을 정도라면 강력 범행을 도모하는 사람으로서는 처음부터 미역국이었다.

"일어날 테니까 칼을 약간만 뒤로 물려 주시오."

강도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놔, 얼른 내노라니까."

내가 다 일어나 앉기를 기다려 강도가 속삭였다.

"하라는 대로 하죠. 허지만 당신도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일이 수월할 거요."

잔뜩 의심을 품고 쏘아보는 강도를 향해 나는 덧붙여 말했다.

"집 안에 현금은 변변찮소. 화장대 위에 돼지저금통하고 장롱 서랍 속에 아마 마누라가 쓰다 남은 돈이 약간 있을 거요. 그 밖에 돈이 될 만한 건 당신이 알아서 챙겨 가시오."

강도가 더욱 의심을 두고 경거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시험삼아 조금 신경질을 부려 보았다.

"마누라가 깨서 한바탕 소동을 벌여야만 시원하겠소? 난처해지기 전에 나를 믿고 일러 주는 대로 하는 게 당신한테 이로울 거요."

한차례 길게 심호흡을 뽑은 다음 강도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이부자리를 돌아 화장대 쪽으로 향했다. 얌전히 구두까지 벗고 양말 바람으로 들어온 강도의 발을 나는 그때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염려를 했는데도 강도는 와들와들 멀리는 다리를 옮기다가 그만 부주의하게 동준이의 발을 밟은 모양이다. 동준이가 갑자기 칭일거리자 그는 질겁을 하고 엎드리더니 녀석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이었다. 녀석이 도로 잠들기를 기다려 그는 복면 위로 칙칙하게 땀이 밴 얼굴을 들고 일어나서 내 위치를 힐끔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은 채 강도의 애교스런 행각을 시종 주목하고 있던 나는 살그머니 상체를 움직여 동준이를 잠재울 때 이부자리 위에 떨어뜨린 식칼을 집어 들었다.

"연장을 이렇게 함부로 굴리는 걸 보니 당신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만합니다."

내가 내미는 칼을 보고 그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나는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면서 칼을 받아 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는 겁에 질려 잠시 망설이다가 내 재촉을 받고 후다닥 달려들어 칼자루를 낚아채 가지고 다시 내 멱을 겨누었다. 그가 고의로 사람을 찌를 만한 위인이 못 되는 줄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에 나는 칼을 되돌려준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식칼을 옆구리 쪽 허리띠에 차더니만 몹시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 되었다.

"도둑맞을 물건 하나 제대로 없는 주제에 이죽거리긴!"

"그래서 경험 많은 친구들은 우리집을 거들떠도 안 보고 그냥 지나치죠."

"누군 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나? 피치 못할 사정 땜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강도를 안심시켜 편안한 맘으로 돌아가게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대개 그렇습디다. 가령 식구 중에 누군가 몹시 아프다든가 빚에 몰려서"

그 순간 강도의 눈이 의심의 빛으로 가득 찼다. 분개한 나머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떨면서 그는 대청마루를 향해 나갔다. 내 옆을 지나쳐 갈 때 그의 몸에서는 역겨울 만큼 술냄새가 확 풍겼다. 그가 허둥지둥 끌어안고 나가는 건 들림없이 갈기갈기 찢어진 한줌의 자존심일 것이었다. 애당초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내 방법이 결국 그를 편안케 하긴커녕 외려 더욱더 낭패케 만들었음을 깨닫고 나는 그의 등을 향해 말했다.

"어렵다고 꼭 외로우란 법은 없어요. 혹 누가 압니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아끼는 어떤 이웃이 당신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을지?"

"개수작 마! 그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그는 현관에 벗어 놓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구두를 보기 위해 전등을 켜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일었으나 나는 꾹 눌러 참았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선 다음 부주의하게도 그는 식칼을 들고 왔던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엉겁결에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의 실수를 지적하는 일은 훗날을 위해 나로서는 부득이한 조처였다.

"대문은 저쪽입니다."

문간방 부엌 앞에서 한동안 망연해 있다가 이윽고 그는 대문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대문에 다다

르자 그는 상체를 뒤틀어 이쪽을 보았다.

"이래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누가 뭐라고 그랬나. 느닷없이 그는 자기 학력을 밝히더니만 대문을 열고는 보안등 하나 없는 칠흑의 어둠 저편으로 자진해서 삼켜져 버렸다.

 

나는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냥 지쳐 놓기만 하고 들어오면서 문간방에 들러 권씨가 아직도 귀가하지 않았음과 깜깜한 방 안에 에미에비 없이 오뉘만이 새우잠을 자고 있음을 아울러 확인하고 나왔다. 아내는 잠옷 바람으로 팔짱을 끼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무것도 아냐."

잃은 물건이 하나도 없다. 돼지저금통도 화장대 위에 그대로 있다. 아무것도 아닐 수밖에, 다시 잠이 들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수술 보증금을 대납해 준 사실을 비로소 이야기했다. 한참 말이 없다가 아내는 벽 쪽으로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뗄 염려는 없어, 전셋돈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군요?"

아내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누웠다. 우리집에 들어왔던 한 어리숙한 강도에 관해서 나는 끝내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까지 권씨는 귀가해 있지 않았다. 출근하는 길에 병원에 들러 보았다. 수술 보증금을 구하러 병원문 밖을 나선 이후로 권씨가 거기에 재차 발걸음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다음날, 그 다음다음날도 권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그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그리고 본의는 그게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내 방법이 매우 졸렬했음도 이제 확연히 밝혀진 셈이었다. 복면 위로 드러난 두 눈을 보고 나는 그가 다름아닌 권씨임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밝은 아침에 술이 깬 권씨가 전처럼 나를 떳떳이 대할 수 있게 하자면 복면의 사내를 끝까지 강도로 대우하는 그길뿐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병원에 찾아가서 죽지 않은 아내와 새로 얻은 세 번째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현관에서 그의 구두를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이 뒤늦게 후회되었다. 문간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차갑게 일깨워 준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떤 근거인지는 몰라도 구두의 손질의 정도에 따라 그의 운명을 예측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구두코가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닦여져 있는 한 자존심은 그 이상으로 광발이 올려져 있었을 것이며, 그러면 나는 안심해도 좋았던 것이다. 그때 그가 만약 마지막이란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새끼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가로막는 그것이 그에게는 대체 무엇으로 느껴졌을 것인가.

 

아내가 병원을 다니러 가는 편에 아이들을 죄다 딸려 보낸 다음 나는 문간방을 살샅이 뒤졌다. 방을 내준 후로 밝은 낮에 내부를 둘러보긴 처음인 셈이었다. 이사 올 때 본 그대로 세간이라곤 깔고 덮는데 쓰이는 것과 쌀을 익혀서 담는 몇 점 도구들이 전부였다. 별다른 이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구태여 꼭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찾자면 그것은 구두일 것이었다. 가장 값나가는 세간의 자격으로 장롱 따위가 자리잡고 있을 꼭 그런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받는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닦인 것이 여섯 켤레, 그리고 먼지를 덮어쓴 게 세 켤레였다. 모두 해서 열 켤레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일곱 켤레를 골라 한꺼번에 손질을 해서 매일매일 갈아신을 한 주일의 소용에 당해 온 모양이었다. 잘 닦여진 일곱 중에서 비어 있는 하나를 생각하던 중 나는 한 켤레의 그 구두가 그렇게 쉽사리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권씨의 행방불명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되도록 침착해지려 노력하면서 내게 이웃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누차 장담한 바 있는 이순경을 전화로 불렀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문학과지성사, 1994)

 

☆ 윤흥길(尹興吉) 소설가

▲ 1942년 전북 정읍군에서 출생

▲ 1958년 이리동중학교 졸업

▲ 1961년 전주사범 졸업

▲ 1968년 신춘문예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 당선

▲ 1973년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77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 1983년 한국창작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 화해 지향성의 문학 / 천이두(원광대 교수)

 

1968년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라는 작품으로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한 윤흥길의 작가활동은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뭇 왕성해진다.「황혼의 집」(1970)을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장마」, 「제식훈련 변천 약사」,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등 뛰어난 단· 중편들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확고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힌다. 한편 197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장편작가로서의 영역을 확대하여 「묵시의 바다」, 「순은의 넋」, 「완장」, 「에미」, 「밟아도 아리랑」 등등 숨한 작품들을 생산해 오고 있다.

 

왕성한 작가활동과 병행하여 그의 제재 역시 상당한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가령 r황혼의 집」, 「기억 속의 들꽃」 같은 작품에서는 작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분히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 「집」, 「장마」,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등도 어린 시절의 일을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어린 목격자의 시선을 통하여 참담했던 시대상황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천착해 가고 있는 작품도 있다. 가령, 오늘날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의 문제를 다룬 「순은의 넋」, 그리고 자식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인의 문제를 다룬 「옛날의 금잔디」 등이 그것이다. 폭력배의 생태 내지 그 후일담을 다루고 있는 「비늘」, 이산가족의 참담한 생태를 다루고 있는 「무제」등도 이 계열에 드는 작품이라 하겠다.

 

당대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다분히 회화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엉뚱하게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병적 자존심의 소유자의 행적을 다분히 회화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등을 비롯하여 제식훈련의 변천 과정을 진술하면서 다름아닌 당대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군사문화를 풍자하고 있는 「제식훈련 변천 약사」, 「날개 또는 수갑」, 그리고 완장 하나 두르고 거들먹거리는 한 시골뜨기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현실 속에 완강히 뿌리박혀 있는 독재주의적 잔재를 풍자하고 있는 「완장」 등이 그것이다. 도시 소시민의 생태를 희화적으로 그리고 있는 「말로만 중산층」, 「달국 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시골 농가에 상황을 설정하여 그 가족들의 삶의 궤적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는 「밝아도 아리랑」 같은 작품도 있다.

 

그는 또 우리의 고유어를 되살려 쓰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거의 잊혀져 있거나 완전히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분위기 짙은 우리말들이 그의 소설 공간 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보리깜부기 같은"이니, "암냥해서"니 하는 토속어가 적절한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가 하면, “길래"니 "이아침받다"니 하는, 오늘날 사어가 되어 버린 우리의 고유어들이 그의 문맥 속에서는 생기 있게 되살아나고 있다. 외래어가 거침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생각할 때, 그리고 작가는 무엇보다도 모국어를 소재로 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윤홍길이 지속하고 있는 이러한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이라 하겠다.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윤홍길은 한국 사실주의를 충실히 계승한 자가라 할 수 있다. 대현실적 자세에 있어서 그는 염상섭이나 박태원 같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작가에서 볼 수 있는,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련의 사실주의 작가들이 곧잘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評判性)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래의 사실주의 작가들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그의 작중현실이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종래의 사실주의가 곧잘 드러내는 평판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은, 그의 소설 공간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지극히 당돌한 환상적 요인이 장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요인은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당돌하고도 충격적인 것이다. 이런 충격적 요인이 투입됨으로써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은 갑자기 전혀 차원이 다른 상징의 세계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게 된다. 윤흥길 문학의 이런 묘미를 음미해 보기 위해 「비늘」이라는 중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략)

 

어린애다움을 기반으로 하여 공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 이른바 동화라 할 수 있을진대, 김대장과 치과 의사는 분명 이 순간 성낙준을 비롯한 고장 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른 동화의 주인공으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윤홍길의 작품 가운데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연작 단편들이 있다. 윤홍길의 문학세계에는 분명 이런 동화적인 면이 있다.

 

「황혼의 집」, 「장마」 등을 비롯한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동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작중의 관찰자 내지 화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령 「장마」에서 감나무에 기어오르는 구렁이를 매개로 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의 극적인 화해,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에서 미친 여인과 부모 잃은 애기와의 만남 등은 그런 예라 할 것이다. 어른이 작중의 화자로 되어 있는 「비늘」을 비롯한 많은 작품의 경우에도 루카치의 이른바 '문제적 개인'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인물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동화적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가령 「무제」 에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농도 짙게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고모부와 번번이 '무제'라는 오식을 범하는 문선공의 관계, 「꿈꾸는 자의 나성」에서의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LA행 비행기편을 전화로 알아보고 다니는 사내와 '나'와의 만남, 그리고 「비늘」에서의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극적인 만남 등은 그런 예라 할 것이다.

 

어떻든 이런 동화적 요인이 작중의 범속한 일상현실의 흐름 속에 투입됨으로써 흐릿하던 작중현실은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실마디를 풀게 된다.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만남을 계기로 하여 이제껏 고장 사람들에게 짐승으로 여겨져 오던 김대장은 비로소 유순한 어린애 같은 정체를 드러내게 되며, 성낙준을 비롯한 고장 사람들은 왜소하고 겁많은 편견의 소유자로 밝혀지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윤홍길의 문학이 간직하는 소중한 매력의 하나라 할 것이다.

 

(중략)

 

사복경찰판이 빨치산으로 간 사람의 조카를 꼬여서 그 빨치산의 행적을 추궁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먹음직스런 향기가 풍기는' 이상스런 과자를 사이에 두고 교활한 어른과 배고픈 어린이 사이에 벌이는 줄다리기의 그것이다. 작자는 이 장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침으로써 그 이상의 어떤 추상적인 방향으로 문장이 일탈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점은 나이 어린 소년의 그것이다. 작중의 모든 액션은 이 소년의 시선이 미칠 수 있는 한도 밖으로 일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작품의 작중 현실의 시간과 그것을 진술하고 있는 시간 사이에는 뚜렷한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망설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받아서 좋을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될 것인가를 결정짓지 못해서였을까. 혹은... ' 하는 화자의 진술로서도 알 수 있듯이 화자인 '나'는 지금 자신의 과거사실을 회상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작중의 모든 액션은 철없는 어린이의 시점 안에 국한되어 진술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또 상당히 많은 시간적 거리를 둔 시점에서 진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중의 액션과 화자 사이에는 이중적인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기에 펼쳐지는 장면 자체는 지극히 가혹한 비극성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화자의 진술은 그러한 비극성에 대한 하등의 언질을 누설함이 없이 그 자체의 구체성만을 드러내고 있다.

 

작중현실과 화자 사이에 이와 같은 이중적인 간격이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요컨대 당대현실에 대한 작자 자신의 대웅자세가 엄격히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6· 25라는 비극적 사태에 대한 이 작가의 대응자세가 엄격히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 윤홍길과 6.25라는 비극적 사태 사이에는 이중적인 정서적 여과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의 6. 25를 제재로 한 문학이 그의 선배작가인 1950년대 작가들의 이른바 전쟁(전후)문학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1950년대의 전쟁(전후)문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픔의 문학이요 뜨거운 분노의 문학이었다. 전쟁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이냐 죽음이냐를 결단케 하는 절박한 현장이었다. 이 가혹한 현장에 대웅하지 않으면 안 된 당대작가들은 언제나 삶이냐 죽음이냐, 흑은 적이냐 우군이냐의 양자택일의 고비에 놓여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문장은 항상 뜨겁게 고조된 톤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은 6. 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에 대하여 냉정한 관조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대결자 내지 심판자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소설이 대체로 객관적 관찰자의 문학이 아니라 직선적 호소의 문학으로 기울었던 것도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소설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4·19와 5·16을 고비로 하여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소설은 제재의 면에서나 작가적 자세의 면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특히 어린 나이에 6.25를 겪은 작가들의 6·25를 보는 시각에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게 6·25는 이미 당사자로서 체험한 6·25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라 어린 목격자로서 겪은 6.25이다. 윤홍길의 「장마」는 어린 목격자의 눈으로 관찰되어진 6· 25 문학이며, 이런 성격의 문학으로서 백미라 할 만한 작품이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는 「장마」의 후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장마」의 모든 상황은 어린 목격자인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다. 말하자면 6· 25의 모든 요인들이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이 집안에서의 6·25는 아들이 빨치산으로 들어간 친할머니와 아들이 국군으로 가서 전사한 외할머니 사이의 팽팽한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대결의 양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태가 빚어졌다. 밤중에 돌아온 빨치산 삼촌을 아버지가 나서서 자수시키려던 일이 외할머니의 본의 아닌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 버린다. 게다가 앞서 인용한 장면에서와 같이 '나'는 수사관의 꼬임에 빠져 삼촌이 다녀간 일을 다 실토해 버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붙들려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오는 사태까지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두 할머니의 대결양상이 극한으로 치닫는 판에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 아들이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말한 날, 아들은 오지 않고 난데없이 큰 구렁이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감나무에 기어오르는 바람에 친할머니는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으로 믿고 실신한다. 이때 외할머니가 나서서 반갑지 않은 이 손님을 정중히 뒷산으로 배송(拜送)하는 데 성공하며, 이를 계기로 하여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다같이 아들 잃은 늙은 어머니답게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구렁이의 등장은 「비늘」에서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한밤중의 만남과 같이 작중현실에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작중의 일상적 차원을 환상적이고 상징적 차원으로 비약시키는 요인으로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 구렁이의 등장을 고비로 하여 두 할머니 사이에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화해의 양상은 1950년대의 6.25문학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어린 목격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6· 25문학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빨치산에게 남편과 어린 자식을 살해 당하고 미쳐 버린 여인이, 우익 쪽 사람들에 의하여 부모(부역자 가족)를 잃은 젖먹이 어린것을 소란중에 살려 내어 팅텅 불은 자기 젖을 물려 주는 행위가 작품의 전환점이 되고 있는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역시 「장마」의 연장선상에서 읽올 수 있는, 어린 목격자에 의하여 그려진 화해 지향의 6.25문학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자수간첩의 참혹한 후일담을 그리고 있는 「무제」 역시 윤홍길의 화해 지향의 6· 25문학의 한 변주(variation)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자수를 한 고모부는 남에서 얻은 망나니 아들한테 모진 구박을 당한다. 이런 괴로움의 반동심리로 이북에 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만날 날은 기약이 없고 세월은 흐르는 속에 아들의 얼굴, 아들의 이름마저 차츰차츰 잊혀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고모부의 어두운 짝이라 할 수 있는 문선공 봉씨 또한 신기루를 찾아 사막을 헤매는 목마른 나그네이다. 그들의 목마름이란 요컨대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 이산의 아픔인 것이다. 이산의 아픔이 이처럼 뼈저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그만큼 만남의 소중함을 역으로 강조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장마」,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의 한 변주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에 있어서 미친 여인의 품에서 자란 어린이, 그 어린이가 자란 뒤에 화자에게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라고 묻고 있다. 부역자의 자식으로, 남편과 자식을 빨치산한테 살해당하고 미쳐 버린 여인의 품에서 자란 기구한 성장의 궤적을 지닌 이 사람이야말로 그런 질문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통일의 신기루는 언제쯤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그것이 다름아닌 윤홍길 문학의 신기루라 하겠다.

 

윤홍길의 화해 지향성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그리고 「꿈꾸는 자의 나성」 등 현실풍자적인 분위기가 짙은 일련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아흡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의 주인공은 단적으로 말해서 그 자신의 말과 같이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위인들이다. 대학까지 나온 터에 못마땅한 현실에 저항을 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오고, 그러노라니 자꾸 인생의 응달쪽으로만 뒤처지게 되어 마침내는 우연히 만난 늙은 창녀와 동반자살까지 기도하다가 실패한 끝에 비로소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주어진 삶과의 싸움에서 패배만 거듭하던 그는 죽음이라는 그되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삶과의 화해에 성공하는 것이다.

 

「꿈꾸는 자의 나성」에서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LA행 비행기면을 전화문의하는 사내 역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사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기 고향과의 화해에 당도한다. 그에게 LA는 일종의 신기루이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그 신기루를 포기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서로 죽이고 죽는 물고기의 생태를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이다. 즉, 서로 물고 뜯고 하다가 외톨이가 된 연후에 후회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처를 빚기 전에 서로 화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먼 타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고향에 뿌리박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지혜를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시기와 곡해로 아웅다웅하는 나를 비롯한 손대리 강과장 등 모든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것이라 하겠다.

 

윤홍길의 문학이 보여 주는 또하나의 속성은 당대현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하여 풍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면이다. 「제식훈련 변천 약사」, 「날개 또는 수갑」, 「빙청과 심홍」, 「완장」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제식훈련 변천 약사」에는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그때마다 제식훈련의 동작이 여러 가지로 달라져 왔는데, 이러한 제식훈련의 변천 양상은 결국 당대의 통치이념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추리하고 있다. 그 추리하는 문장의 돈이 다분히 풍자적이다. 그 풍자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다듬아닌 낭내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통치방식이다. 간편하고 능률적인 업무수행을 위하여 제복을 입도록 하라고, 이는 대다수 사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결정된 일이니 절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사원들에게 통고하는 어느 회사 사장의 모습을 통하여 군사문화의 한 특징인 획일주의를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 「날개 또는 수갑」이다. 완장을 팔뚝에 둘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보려는 한 시골 저수지 관리인을 통하여 뿌리깊은 관료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완장」도 풍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빙청과 심홍」에서는 돌발적인 사고로 화상을 입었을 뿐인 한 병사를 전우애가 넘치는 영웅으로 조작해 냄으로써 영달을 누리려는 군 지휘자와 그와 결탁한 언론의 타락상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말로만 중산층」, 「달국 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분히 풍자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앞서 작가 윤흥길은 차분하고 면밀한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입장은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들과 본격적인 삼인칭 시점에 입각한 작품들에서, 그리고 당대현실을 풍자적으로 조명한 작품에서 동일하게 관철되어 있다. 이 점에서 윤홍길의 풍자는 가령 조세희 같은 작가의 그것처럼 래디컬하지 않다. 쉽게 말해서 조세희의 풍자가 어떤 실천적 전략을 기반으로 한 그것인 데 반하여 윤홍길의 그것은 작중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빚어지는 풍자이다. 이 점에서 그의 풍자는 오히려 해학에 가깝다. 소시민의 생태를 풍자한 일련의 작품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윤홍길은 주로 장편소설 쪽에 주력하게 된다. 「에미」, 「밟아도 아리랑」 등은 근래에 거둔 그의 탁월한 성과라 할 것이다. 이런 장편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여러 속성들이 종합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 윤흥길은 이제야 중후한 무게를 지닌 작가로 정립되었다. 그는 이미 이룩한 성과 못지 않게,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성과를 앞으로 이룩할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