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한국소설문학대계(60) 《장마》 (윤흥길, 1995년, 동아출판사)에 실려있는 《장마》를 읽었다.
■ 장마 / 윤흥길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동구 밖 어디쯤이 될까. 아마 상여를 넣어 두는 빈집이 있는 둑길 근처일 것이다. 어쩐지 거기라면 개도 여우만큼 길고 음산한 울음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일지도 모른다. 잠시 꺼끔해지는 빗소리를 대신하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짬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의 무슨 군호나 되는 듯이 난리통에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네 개들이 차례로 짖기 시작했다. 그날 밤따라 개들의 극성이 몹시도 유난했다. 그때 우리는 외할머니가 거처하는 건넌방에 모여 있었다. 외할머니의 심중에 뭔가 큰 변화가 생겨 우리는 그분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작은이모는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서로 외할머니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펴 가며 모기장베가 붙어 있는 방문 쪽으로, 얼멍얼멍한 모기장베가 가린 둥 만 둥 막고 있는 어둠 저쪽으로 자꾸 눈길을 돌렸다. 나방이인지 하늘밥도둑인지 모를 날벌레 한 마리가 아까부터 날개를 발발 떨면서 방문에 붙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 말이 틀리능가 봐라. 인제 쪼매만 있으면 모다 알게 될 것이다. 어디 내 말이 맞능가 틀리능가 봐라."
외할머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외할머니는 아침밥에 섞어 먹을 완두를 까고 있었다. 아름이나 되어 보이는 축축한 완두 줄거리를 치마폭에 잔뜩 꾸리고 앉아서 외할머니는 꼬투리를 뚝 떼어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그러나 몸에 밴 익숙한 손놀림으로 속을 우볐다. 연둣빛 얼룩이 진 길쭘한 자실이 한옆으로 비어져 나오면 그걸 손바닥에 받아 무릎맡의 대바구니에 담고 빈 깍지는 도로 치마폭 안에 떨어뜨렸다. 외할머니의 말에 뭐라고 다시 대꾸할 기회를 놓쳐 버린 어머니와 작은이모는 서로 어색한 눈짓을 나누었다. 밖에서는 다시 거세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거기에 질세라 개들이 더욱더 사납게 짖어 대었다. 빗소리가 차차로 고비에 이르더니 뒤란 장독대 쪽에서 양철이 떨어져 곤두박질하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어 놓았던 두레박일 것이었다. 방문을 흔들며 갑자기 한무더기의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그렇잖아도 위태롭게 까물거리던 호롱불을 아예 죽여 버렸다. 방 안은 졸지에 밀어닥친 어둠과 끈끈한 공기 속에 잠기고 하늘밥도둑인지 나방이인지 모를 날벌레도 날개 소리를 멈추었다. 서너 집 건너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던 우리집 워리란 놈도 그 미련한 주둥이를 벌려 처음으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했다. 사납게 짖어 대는 소리가 마을 초입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가운뎃말을 향하여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불을 키거라" 하고 외할머니가 말했다. "야가 어서 불을 키래도." 어둠 속에서 외할머니가 부시력거렸다. "무신 놈으 날씨가 이 모냥인지, 원."
내가 방구석을 더듬어 성냥을 찾아서 호롱에 불을 당겼다. 그러자 어머니가 심지를 돋우었다. 꼬불꼬불 그을음이 피어오르면서 천장에 둥근 무늬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날이 궂었어라우" 하고 어머니가 말참견을 했다.
"모든 게 날씨 탓이지요. 어머님이 그렇게 괜한 걱정을 하시는 것도 날씨 탓이에요."
작은이모도 한마디 거들었다. 시골 우리집으로 피난 내려오기 전, 외가가 서울에 있을 때, 작은이모는 그곳에서 여학교를 나왔다.
"아니다. 느덜이 모르고 허는 소리다. 이 나이 먹드락 내 꿈이 틀린 적이 어디 한번이나 있디야?"
외할머니는 고개를 설설 흔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흔들면서도 완두 까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저는 꿈 같은 거 절대로 안 믿어요. 길준이한테서 몸 성히 잘 있다고 편지 온 게 바로 엊그젠데…"
"그러문요. 요새는 전투도 없고 혀서 심심허다고 편지 끄텀머리다가 쓴 걸 어머님도 직접 보셨잖어요."
"다아 소용없는 소리다. 느이 애비가 죽을 때만 혀도 나는 사날 전에 벌써 알어채렸다. 이빨이 아니라 그때는 손구락이었지만. 꿈에 엄지손구락이 옴싹 빠져서 도망가 버리드라."
또 그놈의 꿈얘기.
물리지도 않나 보다. 새벽잠에서 깨면서부터 줄곧 외할머니는 그놈의 꿈애기만 늘어 놓고 있었다. 점심때가 지나고 해질녘이 되어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듯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가 거의 빠져 합죽해진 입두덩을 끊임없이 달싹이면서 자기 신변으로 몰려오는 어떤 불길한 기운이 있음을 거듭거듭 예언하는 것이었다. 위아래를 통틀어 겨우 일곱 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무쇠로 만든 커다란 족집게가 입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기중 실하게 붙어 있던 이빨 하나를 우지끈 잦뜨려 놓고 달아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악몽에서 깨어 정신을 수습한 다음 외할머니가 맨 처음 한 일은 손으로 더듬어 이를 낱낱이 점검해 보는 그것이었다. 그리고나서 작은이모더러 거울을 가져오래서 눈으로 다시 한번 개수를 확인했다. 그래도 미심쩍었던지 나중에는 나를 얼굴 가까이 불러 다짐을 거푸 받았다. 딱하게도 아무리 들여다봐야 이는 일곱 개 그대로였다. 더구나 어금니 대용으로 외할머니가 애지중지해 온 아래쪽 송곳니는 온전히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송곳니가 제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분의 생각은 이미 현실을 떠나 꿈 쪽에만 머물고 있었다. 딸들도 사위도 못 미더워했고, 바늘귀를 잘 맨대서 이따금 칭찬해 주던 외손자의 시력에도 이젠 의심을 품었다. 거울 같은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는 입 안에까지 직접 들어가 개수를 확인해 보고 나온 당신의 손가락마저도 신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그놈의 꿈얘기만 늘어놓으며 외할머니는 긴 여름 나절을 보냈던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외삼촌을 들먹인 사람은 어머니였다. 부주의하게도 어머니의 입에서 육군 소위를 달고 일선 소대장으로 나가 있는 외삼촌 이름이 불쑥 튀어나오자 외할머니는 갑자기 축 늘어진 양쪽 볼에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작은이모가 조심성이 없는 어머니를 나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넘겨 버렸다. 노인양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별수없다고 생각을 바꾸었는지 작은이모도 오래지 않아 외삼촌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이름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놈의 꿈얘기는 여전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부터는 입장들이 뒤바뀌어 위로하는 사람과 위로받는 사람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할머니 말씨는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더욱 암시적이 되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띠기조차 했다. 반면에 어머니와 이모는 까닭없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일껏 까려고 가져다 놓은 완두 줄거리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기만 했다. 결국 일감은 외할머니 앞으로 떠넘겨지고, 어머니와 이모는 심란스럽게 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중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난리를 겪고도 용케 살아 남은 동네 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극성맞은 그 포효로 마을을 휩싼 어둠의 장막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몸에 익은 손놀림으로 완두 꼬투리를 후벼서 자실은 대바구니에, 그리고 빈 깍지는 치마폭 안에 정확히 갈라 놓았다. 우리집 지천꾸러기 워리란 놈이 전에 없이 사납고 우람찬 소리로 짖어 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발소리를 저벅거리며 이웃집 담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셋은 될 것이었다. 물구덩이라도 잘못 디뎠는지 흙탕을 튀기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날씨를 심하게 탓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렸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 밤중에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마을을 활보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북으로 물러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빨치산들이 읍내 경찰서를 습격하고 불을 지를 만큼 어수선한 때였다. 예의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웬만큼 긴한 용무가 아니고는 해가진 뒤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지금 누구네 집을 찾아가고 있을까. 대관절 무슨 짓을 하려고 밤길을 떼뭉쳐 다니는 것일까. 어머니가 작은이모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이모는 어머니한테 손을 내맡긴 채 모기장베가 엉성히 가리고 있는 어둠 속 저쪽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안방 마루 밑에서 워리란 놈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중략)
이야기를 다 마치고 외할머니는 불씨가 담긴 그릇을 헤집었다. 그 위에 할머니의 흰머리를 올려놓자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에 놀라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올렸다. 외할머니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때까지 움쩍도 하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던 그것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나무 가지를 친친 감았던 몸뚱이가 스르르 풀리면서 구렁이는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린 다음 구렁이는 꿈틀꿈들 기어 외할머니 앞으로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길을 터주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로 뒤를 따라가며 외할머니는 연신 소리를 질렸다. 새막에서 참새떼를 쫓을 때처럼 "숴이! 숴이!"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뼉까지 쳤다. 누런 비늘 가죽을 번들번들 뒤틀면서 그것은 소리 없이 땅바닥을 기었다. 안방에 있던 식구들도 마루로 몰려나와 마당 한복판을 가로질러 오는 길다란 그것을 모두 질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꼬리를 잔뜩 사려 가랑이 사이에 감춘 위리란 놈이 그래도 꼴값을 하느라고 마루 밑에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짖어 대고 있었다. 몸뚱이의 움직임과는 여전히 따로 노는 꼬리 부분을 왼쪽으로 삐딱하게 흔들거리면서 그것은 방향을 바꾸어 헛간과 부엌 사이 공지를 천천히 지나갔다.
"숴이! 숴어이!"
외할머니의 쉰 목청을 뒤로 받으며 그것은 우물 곁을 거쳐 넓은 뒤란을 어느덧 완전히 통과했다. 다음은 숲이 우거진 대밭이었다.
"고맙네, 이 사람! 집안일은 죄다 성남님한티 맬기고 자네 혼자 몸띵이나 지발 성혀서 먼 걸음 펜안히 가소, 뒷일은 아모 염려 말고 그냥 펜안히 가소, 증말 고맙네, 이 사람아,"
장마철에 무성히 논이난 죽순과 대나무 사이로 모습을 완전히 감추기까지 외할머니는 우물 곁에 서서 마지막 당부의 말로 구렁이를 배웅하고 있었다. 이웃 마을 용상리까지 가서 진구네 아버지가 의원을 모시고 왔다. 졸도한 지 서너 시간 만에야 겨우 할머니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서너 시간이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서너 달에 해당되는 먼 여행이었던 듯 할머니는 방 안을 휘이 둘러보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갔냐?"
이것이 맑은 정신을 되찾고 나서 맨 처음 할머니가 꺼낸 말이었다. 고모가 말뜻을 재빨리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제는 안심했다는 듯이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할머니가 까무러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고모가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외할머니가 사람들을 내쫓고 감나무 밑에 가서 타이른 이야기,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감나무에서 내려오게 한 이야기, 대밭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종일관 행동을 같이하면서 바래다 준 이야기... 간혹 가다 한 대목씩 빠지거나 약간 모자란다 싶은 이야기는 어머니가 옆에서 상세히 설명을 보충해 놓았다. 할머니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솟는 눈물 방울이 훌쭉한 볼고랑을 타고 베갯잇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할머니는 사돈을 큰방으로 모셔 오도록 아버지한테 분부했다. 사랑채에서 쉬고 있던 외할머니가 아버지 뒤를 따라 큰방으로 건너왔다. 외할머니로서는 벌써 오래 전에 할머니하고 한다래끼 단단히 벌인 이후로 처음 있는 큰방 출입이었다.
"고맙소.'
정기가 꺼진 우묵한 눈을 치켜 간신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는 목이 꽉 메었다.
"사분도 별시런 말씀을 다... "
외할머니도 말끝을 마무르지 못했다.
"야한티서 이얘기는 다 들었소 내가 당혀야 헐 일을 사분이 대신 맡었구랴. 그 험헌 일을 다 치르노라고 얼매나 수고시렀으꼬"
"인자는 다 지나간 일이닝게 그런 말씀 고만두시고 어서어서 뭐이나 잘 추시리기라우."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맞잡은 채 두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 아직도 남아 있는 근심을 털어놓았다.
"탈없이 잘 가기나 혔는지 몰라라우."
"염려 마시랑게요. 지금쯤 어디 가서 펜안히 거처험시나 사분 댁 터주 노릇을 되퇴히 허고 있을 것이요."
그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대번에 기운이 까라져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스로 할머니가 잠들기를 기다려 구완을 맡은 고모만을 남기고 모두들 큰방을 물러나왔다.
그날 저녁에 할머니는 또 까무러쳤다. 의식이 없는 중에도 댓 숟갈 흘려 넣은 미음과 탕악을 입 밖으로 죄다 토해 버렸다. 그리고 이튿날부터는 마치 육체의 운동장에서 정신이란 이름의 장난꾸러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숨바꼭질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의 연속이었다. 대소변을 일일이 받아 내는 고역을 치러 가면서 할머니는 꼬박 한 주일을 더 버티었다. 안에 있는 아들보다 밖에 있는 아들을 언제나 더 생각했던 할머니는 마지막 날 밤에 다 타버린 촛불이 스러지듯 그렇게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긴 일생 가운데서, 어떻게 생각하면,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러고도 놀라운 기력으로 며칠 동안이나 식구들을 들볶아 대면서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할머니에겐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에 넘치던 시간이었었나 보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내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모든 걸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황혼의 집』, 문학과지성사, 1994)
☆ 윤흥길(尹興吉) 소설가
▲ 1942년 전북 정읍군에서 출생
▲ 1958년 이리동중학교 졸업
▲ 1961년 전주사범 졸업
▲ 1968년 신춘문예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 당선
▲ 1973년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77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 1983년 한국창작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 화해 지향성의 문학 / 천이두(원광대 교수)
1968년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라는 작품으로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한 윤흥길의 작가활동은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뭇 왕성해진다.「황혼의 집」(1970)을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장마」, 「제식훈련 변천 약사」,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등 뛰어난 단· 중편들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확고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힌다. 한편 197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장편작가로서의 영역을 확대하여 「묵시의 바다」, 「순은의 넋」, 「완장」, 「에미」, 「밟아도 아리랑」 등등 숨한 작품들을 생산해 오고 있다.
왕성한 작가활동과 병행하여 그의 제재 역시 상당한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가령 r황혼의 집」, 「기억 속의 들꽃」 같은 작품에서는 작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분히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 「집」, 「장마」,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등도 어린 시절의 일을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어린 목격자의 시선을 통하여 참담했던 시대상황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천착해 가고 있는 작품도 있다. 가령, 오늘날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의 문제를 다룬 「순은의 넋」, 그리고 자식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인의 문제를 다룬 「옛날의 금잔디」 등이 그것이다. 폭력배의 생태 내지 그 후일담을 다루고 있는 「비늘」, 이산가족의 참담한 생태를 다루고 있는 「무제」등도 이 계열에 드는 작품이라 하겠다.
당대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다분히 회화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엉뚱하게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병적 자존심의 소유자의 행적을 다분히 회화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등을 비롯하여 제식훈련의 변천 과정을 진술하면서 다름아닌 당대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군사문화를 풍자하고 있는 「제식훈련 변천 약사」, 「날개 또는 수갑」, 그리고 완장 하나 두르고 거들먹거리는 한 시골뜨기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현실 속에 완강히 뿌리박혀 있는 독재주의적 잔재를 풍자하고 있는 「완장」 등이 그것이다. 도시 소시민의 생태를 희화적으로 그리고 있는 「말로만 중산층」, 「달국 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시골 농가에 상황을 설정하여 그 가족들의 삶의 궤적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는 「밝아도 아리랑」 같은 작품도 있다.
그는 또 우리의 고유어를 되살려 쓰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거의 잊혀져 있거나 완전히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분위기 짙은 우리말들이 그의 소설 공간 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보리깜부기 같은"이니, "암냥해서"니 하는 토속어가 적절한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가 하면, “길래"니 "이아침받다"니 하는, 오늘날 사어가 되어 버린 우리의 고유어들이 그의 문맥 속에서는 생기 있게 되살아나고 있다. 외래어가 거침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생각할 때, 그리고 작가는 무엇보다도 모국어를 소재로 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윤홍길이 지속하고 있는 이러한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이라 하겠다.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윤홍길은 한국 사실주의를 충실히 계승한 자가라 할 수 있다. 대현실적 자세에 있어서 그는 염상섭이나 박태원 같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작가에서 볼 수 있는,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련의 사실주의 작가들이 곧잘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評判性)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래의 사실주의 작가들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그의 작중현실이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종래의 사실주의가 곧잘 드러내는 평판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은, 그의 소설 공간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지극히 당돌한 환상적 요인이 장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요인은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당돌하고도 충격적인 것이다. 이런 충격적 요인이 투입됨으로써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은 갑자기 전혀 차원이 다른 상징의 세계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게 된다. 윤흥길 문학의 이런 묘미를 음미해 보기 위해 「비늘」이라는 중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략)
어린애다움을 기반으로 하여 공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 이른바 동화라 할 수 있을진대, 김대장과 치과 의사는 분명 이 순간 성낙준을 비롯한 고장 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른 동화의 주인공으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윤홍길의 작품 가운데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연작 단편들이 있다. 윤홍길의 문학세계에는 분명 이런 동화적인 면이 있다.
「황혼의 집」, 「장마」 등을 비롯한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동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작중의 관찰자 내지 화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령 「장마」에서 감나무에 기어오르는 구렁이를 매개로 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의 극적인 화해,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에서 미친 여인과 부모 잃은 애기와의 만남 등은 그런 예라 할 것이다. 어른이 작중의 화자로 되어 있는 「비늘」을 비롯한 많은 작품의 경우에도 루카치의 이른바 '문제적 개인'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인물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동화적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가령 「무제」 에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농도 짙게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고모부와 번번이 '무제'라는 오식을 범하는 문선공의 관계, 「꿈꾸는 자의 나성」에서의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LA행 비행기편을 전화로 알아보고 다니는 사내와 '나'와의 만남, 그리고 「비늘」에서의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극적인 만남 등은 그런 예라 할 것이다.
어떻든 이런 동화적 요인이 작중의 범속한 일상현실의 흐름 속에 투입됨으로써 흐릿하던 작중현실은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실마디를 풀게 된다.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만남을 계기로 하여 이제껏 고장 사람들에게 짐승으로 여겨져 오던 김대장은 비로소 유순한 어린애 같은 정체를 드러내게 되며, 성낙준을 비롯한 고장 사람들은 왜소하고 겁많은 편견의 소유자로 밝혀지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윤홍길의 문학이 간직하는 소중한 매력의 하나라 할 것이다.
(중략)
사복경찰판이 빨치산으로 간 사람의 조카를 꼬여서 그 빨치산의 행적을 추궁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먹음직스런 향기가 풍기는' 이상스런 과자를 사이에 두고 교활한 어른과 배고픈 어린이 사이에 벌이는 줄다리기의 그것이다. 작자는 이 장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침으로써 그 이상의 어떤 추상적인 방향으로 문장이 일탈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점은 나이 어린 소년의 그것이다. 작중의 모든 액션은 이 소년의 시선이 미칠 수 있는 한도 밖으로 일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작품의 작중 현실의 시간과 그것을 진술하고 있는 시간 사이에는 뚜렷한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망설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받아서 좋을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될 것인가를 결정짓지 못해서였을까. 혹은... ' 하는 화자의 진술로서도 알 수 있듯이 화자인 '나'는 지금 자신의 과거사실을 회상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작중의 모든 액션은 철없는 어린이의 시점 안에 국한되어 진술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또 상당히 많은 시간적 거리를 둔 시점에서 진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중의 액션과 화자 사이에는 이중적인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기에 펼쳐지는 장면 자체는 지극히 가혹한 비극성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화자의 진술은 그러한 비극성에 대한 하등의 언질을 누설함이 없이 그 자체의 구체성만을 드러내고 있다.
작중현실과 화자 사이에 이와 같은 이중적인 간격이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요컨대 당대현실에 대한 작자 자신의 대웅자세가 엄격히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6· 25라는 비극적 사태에 대한 이 작가의 대응자세가 엄격히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 윤홍길과 6.25라는 비극적 사태 사이에는 이중적인 정서적 여과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의 6. 25를 제재로 한 문학이 그의 선배작가인 1950년대 작가들의 이른바 전쟁(전후)문학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1950년대의 전쟁(전후)문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픔의 문학이요 뜨거운 분노의 문학이었다. 전쟁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이냐 죽음이냐를 결단케 하는 절박한 현장이었다. 이 가혹한 현장에 대웅하지 않으면 안 된 당대작가들은 언제나 삶이냐 죽음이냐, 흑은 적이냐 우군이냐의 양자택일의 고비에 놓여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문장은 항상 뜨겁게 고조된 톤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은 6. 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에 대하여 냉정한 관조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대결자 내지 심판자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소설이 대체로 객관적 관찰자의 문학이 아니라 직선적 호소의 문학으로 기울었던 것도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소설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4·19와 5·16을 고비로 하여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소설은 제재의 면에서나 작가적 자세의 면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특히 어린 나이에 6.25를 겪은 작가들의 6·25를 보는 시각에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게 6·25는 이미 당사자로서 체험한 6·25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라 어린 목격자로서 겪은 6.25이다. 윤홍길의 「장마」는 어린 목격자의 눈으로 관찰되어진 6· 25 문학이며, 이런 성격의 문학으로서 백미라 할 만한 작품이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는 「장마」의 후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장마」의 모든 상황은 어린 목격자인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다. 말하자면 6· 25의 모든 요인들이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이 집안에서의 6·25는 아들이 빨치산으로 들어간 친할머니와 아들이 국군으로 가서 전사한 외할머니 사이의 팽팽한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대결의 양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태가 빚어졌다. 밤중에 돌아온 빨치산 삼촌을 아버지가 나서서 자수시키려던 일이 외할머니의 본의 아닌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 버린다. 게다가 앞서 인용한 장면에서와 같이 '나'는 수사관의 꼬임에 빠져 삼촌이 다녀간 일을 다 실토해 버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붙들려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오는 사태까지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두 할머니의 대결양상이 극한으로 치닫는 판에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 아들이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말한 날, 아들은 오지 않고 난데없이 큰 구렁이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감나무에 기어오르는 바람에 친할머니는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으로 믿고 실신한다. 이때 외할머니가 나서서 반갑지 않은 이 손님을 정중히 뒷산으로 배송(拜送)하는 데 성공하며, 이를 계기로 하여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다같이 아들 잃은 늙은 어머니답게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구렁이의 등장은 「비늘」에서 김대장과 치과 의사의 한밤중의 만남과 같이 작중현실에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작중의 일상적 차원을 환상적이고 상징적 차원으로 비약시키는 요인으로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 구렁이의 등장을 고비로 하여 두 할머니 사이에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화해의 양상은 1950년대의 6.25문학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어린 목격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6· 25문학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빨치산에게 남편과 어린 자식을 살해 당하고 미쳐 버린 여인이, 우익 쪽 사람들에 의하여 부모(부역자 가족)를 잃은 젖먹이 어린것을 소란중에 살려 내어 팅텅 불은 자기 젖을 물려 주는 행위가 작품의 전환점이 되고 있는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역시 「장마」의 연장선상에서 읽올 수 있는, 어린 목격자에 의하여 그려진 화해 지향의 6.25문학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자수간첩의 참혹한 후일담을 그리고 있는 「무제」 역시 윤홍길의 화해 지향의 6· 25문학의 한 변주(variation)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자수를 한 고모부는 남에서 얻은 망나니 아들한테 모진 구박을 당한다. 이런 괴로움의 반동심리로 이북에 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만날 날은 기약이 없고 세월은 흐르는 속에 아들의 얼굴, 아들의 이름마저 차츰차츰 잊혀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고모부의 어두운 짝이라 할 수 있는 문선공 봉씨 또한 신기루를 찾아 사막을 헤매는 목마른 나그네이다. 그들의 목마름이란 요컨대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 이산의 아픔인 것이다. 이산의 아픔이 이처럼 뼈저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그만큼 만남의 소중함을 역으로 강조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장마」,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의 한 변주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에 있어서 미친 여인의 품에서 자란 어린이, 그 어린이가 자란 뒤에 화자에게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라고 묻고 있다. 부역자의 자식으로, 남편과 자식을 빨치산한테 살해당하고 미쳐 버린 여인의 품에서 자란 기구한 성장의 궤적을 지닌 이 사람이야말로 그런 질문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통일의 신기루는 언제쯤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그것이 다름아닌 윤홍길 문학의 신기루라 하겠다.
윤홍길의 화해 지향성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그리고 「꿈꾸는 자의 나성」 등 현실풍자적인 분위기가 짙은 일련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아흡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의 주인공은 단적으로 말해서 그 자신의 말과 같이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위인들이다. 대학까지 나온 터에 못마땅한 현실에 저항을 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오고, 그러노라니 자꾸 인생의 응달쪽으로만 뒤처지게 되어 마침내는 우연히 만난 늙은 창녀와 동반자살까지 기도하다가 실패한 끝에 비로소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주어진 삶과의 싸움에서 패배만 거듭하던 그는 죽음이라는 그되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삶과의 화해에 성공하는 것이다.
「꿈꾸는 자의 나성」에서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LA행 비행기면을 전화문의하는 사내 역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사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자기 고향과의 화해에 당도한다. 그에게 LA는 일종의 신기루이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그 신기루를 포기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서로 죽이고 죽는 물고기의 생태를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이다. 즉, 서로 물고 뜯고 하다가 외톨이가 된 연후에 후회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처를 빚기 전에 서로 화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먼 타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고향에 뿌리박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지혜를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시기와 곡해로 아웅다웅하는 나를 비롯한 손대리 강과장 등 모든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것이라 하겠다.
윤홍길의 문학이 보여 주는 또하나의 속성은 당대현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하여 풍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면이다. 「제식훈련 변천 약사」, 「날개 또는 수갑」, 「빙청과 심홍」, 「완장」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제식훈련 변천 약사」에는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그때마다 제식훈련의 동작이 여러 가지로 달라져 왔는데, 이러한 제식훈련의 변천 양상은 결국 당대의 통치이념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추리하고 있다. 그 추리하는 문장의 돈이 다분히 풍자적이다. 그 풍자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다듬아닌 낭내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통치방식이다. 간편하고 능률적인 업무수행을 위하여 제복을 입도록 하라고, 이는 대다수 사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결정된 일이니 절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사원들에게 통고하는 어느 회사 사장의 모습을 통하여 군사문화의 한 특징인 획일주의를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 「날개 또는 수갑」이다. 완장을 팔뚝에 둘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보려는 한 시골 저수지 관리인을 통하여 뿌리깊은 관료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완장」도 풍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빙청과 심홍」에서는 돌발적인 사고로 화상을 입었을 뿐인 한 병사를 전우애가 넘치는 영웅으로 조작해 냄으로써 영달을 누리려는 군 지휘자와 그와 결탁한 언론의 타락상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말로만 중산층」, 「달국 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분히 풍자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앞서 작가 윤흥길은 차분하고 면밀한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입장은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들과 본격적인 삼인칭 시점에 입각한 작품들에서, 그리고 당대현실을 풍자적으로 조명한 작품에서 동일하게 관철되어 있다. 이 점에서 윤홍길의 풍자는 가령 조세희 같은 작가의 그것처럼 래디컬하지 않다. 쉽게 말해서 조세희의 풍자가 어떤 실천적 전략을 기반으로 한 그것인 데 반하여 윤홍길의 그것은 작중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빚어지는 풍자이다. 이 점에서 그의 풍자는 오히려 해학에 가깝다. 소시민의 생태를 풍자한 일련의 작품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윤홍길은 주로 장편소설 쪽에 주력하게 된다. 「에미」, 「밟아도 아리랑」 등은 근래에 거둔 그의 탁월한 성과라 할 것이다. 이런 장편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여러 속성들이 종합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 윤흥길은 이제야 중후한 무게를 지닌 작가로 정립되었다. 그는 이미 이룩한 성과 못지 않게,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성과를 앞으로 이룩할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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