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야의 정담(鼎談) / 신상웅
서장(序章)
국립묘지, 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묘역(墓域)에 묻힌 영혼의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이 땅이 한 민족의 영욕(榮辱)을 침묵 속에 말하고 있는 자리일까. 아니 그보다도 저들은 분명코 할당받은 스스로의 유택(幽宅)에 누워 평안히 잠들고 있는 것일까...
박민욱(朴珉郁)은 어느 날 우연히 거기 무덤의 바다 위에 외톨로 서서 끝없이 계속되는 의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물다섯 해 남짓한 세월을 흘려 보내는 동안 어느새 이 거대한 묘지를 만들어 버린 인간의 악의가 거기 서려 있었고, 분단이라는 이름의 쌍두마차에 깔려 팻말뿐인 빈 무덤을 남기고 간 무서운 눈망울들이 거기 뚜릿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군묘지로 불렸듯이 한 국가의 영광보다는 욕됨을 훨씬 더 쉽사리 나타내는 이 묘지는 차라리 그 많은 원혼(寃魂)들이 도사려 앉은 자리라고나 해야 할 것이었다.
민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햇빛이 부시는 구릉을 훑어 나갔다. 하얀돌들이 구룽마다를 빈틈없이 뒤덮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는 잠시 동안 그 많은 비석들이 한꺼번에 뿌리를 뽑고 일어나 마치 시위대처럼 소리 높이 외치면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민욱은 머리를 떨고 돌아섰다.
너무 말쑥하고 밝은 탓일까. 안으로 들끓는 오열도 좀체 눈물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민욱은 어딘가 섬뜩한 예감에 쫓기기까지 하면서 굳이 한 묘역을 향해 줄달음질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여기 묻혀 있다니."
민욱은 여기서 녀석을 만나게 되기를 예감하기라도 한 것 같은 자책감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갓 깎아 세운 돌들이 선 곳으로 달려갈 때 이미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작 녀석의 이름과 계급과 군번을 한자 한자, 그리고 반복해서 재확인하면서는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고 할까, 빗나가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는지 몰랐다.
어느새 파릇파릇 잔디가 자라고 있는 한 뼘의 땅을 지켜 서자 피를 빨며 자라 퍼렇게 독기 서린 풀잎에서 비린내가 확 풍기는 것 같았다. 민욱은 돌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와 이마를 맞대고 바싹 다가 앉는 순간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우린 끝까지 지켜 서 있지 않으면 안 돼."
녀석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천연스런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두꺼비 등때기같이 얼어터진 손으로 솜털이 보숭보숭한 얼굴을 연거푸 쓸어 내리면서 하던 말이었다.
제1장 야간복병(夜間伏兵)
"더럽게 춥구나."
서준학(徐駿鶴)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민욱은 목을 뽑아 내다보았다. 눈에 덮인 능선들이 회뿌옇게 눈 아래로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나서 옆에 앉은 윤경(尹炅))의 옆구리를 쿡 쑤셨다. 녀석은 그때까지도 머리를 처박은 채 꿍꿍 신음 소리마저 내고 있었다. 몸서리치는 오한 속에 앉아서도 그는 졸음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나?"
"백두산꺼정, 모르겠다, 앞에 계신 하사관인데 물어 보아라."
셋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차는 다시 또 다른 고지를 덜미 잡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차츰 그들의 농지거리가 사실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눈에 덮인 작전도로라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사단 사령부가 있는 거진(巨津)을 떠난 지 세 시간은 충분히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야 민욱아, 수색중대라는 데가 정말 특과 맞나?"
준학이 별안간 생각났다는 듯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민욱이라고 그걸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가봐라. 이렇게 떨면서 찾아간 보람이 있을 거다."
그는 대꾸를 하면서 사단 보충대 서무계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 윤경이 그의 이런 기미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버럭 화를 냈다.
"특과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특과야, 이런 첩첩산중으로 기어 들어가면서두 정신을 못 차리니, 가보면 알조지. 그 병장새끼, 사람 우롱했어."
사단 보충대 김병장은 그들에게 특명지를 나눠 주기 전에 그랬었다. 다른 사병들은 맨날 땅 파고 나무 하러 다니는데 빵빵 군번들이 운수 터져 특과 잡았다고 말이다. 쇠고기에다 닭 잡아먹는 수색중대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병장은 꼬리를 달았었다.
"허지만 정말 수색중대 떨어지고 싶으면 알아서들 해. 특명지는 얼마든지 다시 긁을 수 있으니까."
세 사람은 보충대 내무반 한쪽 구석으로 모여 서서 의논했다.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이 구석창에 처박혀 심란한 가슴을 쓸어 내렸을까. 5분 동안의 숙의 끝에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입 싹 씻고 일체 신경쓰지 않기로 지금까지 그들은 똑같은 수법의 그런 유혹을 너무 많이 받아 왔었다. 더 이상 농락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은 재삼 강조되고도 남았다. 그들은 지원입대를 위해 지구 병사구사령부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 마각을 체험했었던만큼 그 뒤로야 말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잔재와, 아직은 식어 버리기에 너무 시간이 없는 6.25의 화약 냄새 속에 병사의 일과란 고달프기만하던 때였으니까. 더구나 졸지에 비인간적이고 포학한 폭력만으로 다져진 병영의 울타리 안으로 내동댕이쳐진 그들이 수용연대, 훈련소 배출대, 보충대를 차례로 끌려다니면서 그림자처럼 줄기차게 따라볼는 매혹적인 그것을 번번이 떨쳐 버리기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에 진절머리를 느끼다 못해 나중에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누가 접근해 오기만 해도 당장 적의부터 품고 보는 버릇이 생겨 버린 것이다. 도대체 군대란 무엇인가. 유혹으로부터 시작되어 배신의 파멸로 끝나는 것이나 아닌지, 그러나 거기에는 유독 군복만이 설치는 것도 아니었다. 3보충대로 끌려왔을 때는 사복까지 한몫 끼여 날뛰고 있었다. 그들이 민간인인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지만 꼭 사령관을 동생으로 둔 사람들처럼 명당자리라는 걸 주욱 차례로 펼쳐 놓고 임자를 찾는 것이었다. 돈만 내면 당장 가방 속에서 사령관 돗자리라도 내놓을 기세였다.
준학이 별안간 사나이의 손목을 잡아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아니, 여기서 얘기하면 어때서 그래, 신병들이란 이렇게 순진한 데가 있다니까."
돗자리장수는 넉살좋게 지껄이면서 끌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반말로 지껄이는 것이 특색이었다.
“이건 중요한 청이라 그러는 겁니다."
"응, 특무대루다 가고 싶다 이거지, 알았어."
"그기 아이라요, 우린 세 사람이나 대갖고 좀 곤란타 이깁니다."
"셋이면 더 좋지, 세 사람이 합해서 말이야, 도합…"
"그기 아이라 카이 카네. 우린 바로 이 보충대 대장자리를 사고 싶다 아입니까. 그른데 셋이서 같이 그 자리에 올라앉을 순 엄고 해서...
준학은 결국 그에게 이름과 계급과 군번을 적어 주고야 풀려 나왔다. 그가 갑자기 멱살을 잡고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적어도 사복을 하고 영내를 무상출입할 만한 세도가임을 과시했다.
"이 새끼, 이름이 뭐야?"
준학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에 붙은 명찰을 찔러 보였다.
"군번은?" 하고 다시 다그쳤을 때도 그는 똑같이 자기 가슴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사령관의 형은 준학의 인적사항을 수첩에 적어 넣고 나서 단호하게 말했다.
"두고 봐!"
그들이 최전방 전투사단으로 팔린 것이 두고 본 결과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멱살을 잡히고 돌아온 준학도 역시 단호했다.
"저 친구 첩자다, 틀림엄다. 군조직을 그렇게 빠삭하기 알고 있으이 말이다, 앙 그르나?"
그들이 9436부대 수색중대 본부에 도착한 것은 밤 아흡시가 넘어서였다. 차가 울컥 멎어서기 바쁘게 강중사가 회중전등을 번뜩이며 수선을 피웠지만 그들은 꼼짝달싹도 않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노릇이 오금을 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중사가 운전석 뒤창구로 전등을 들이대고 소리질렀다. 그 불빛은 아까와 달리 뿌연 우웃빛이었다. 어느새 회중전등을 딤 라이트로 갈아 끼운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두세 사람이 뛰어오고 있는 듯 요란스럽게 눈 밟는 소리가 들리고 중사가 그예 운전석을 뛰어내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중사가 차 뒤에 나타나기 전에 오리걸음으로 트럭 바닥을 기어나왔다. 그러자 뛰어오는 사병들을 향해 강중사가 소리쳤다.
"이 새끼들 끝까지 속 썩이는데,"
"누구 말입니까?"
"신병놈들 말이야, 자고 있는 모양이야."
그러나 사병들은 더 뭐라고 대꾸를 않고 곧장 차 뒤로 달려들었다. 뒷문의 쇠고리를 뽑아 젖히자 원숭이 형국으로 차 끝에 웅크리고 있는 세 이등병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잠시 말을 잊은 채 세 전입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중사가 회중전등을 들이댈 때까지 그들은 그러고만 있었다. 올려다보이는 이등병들이 무슨 괴물같이 느껴졌던지도 몰랐다. 플래시 불빛이 세 사람을 쓱 핥아 나가는 순간 하나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일어서려고 오금을 펴던 준학이었다.
"저 새끼들 잠에 취해서 저것 봐."
"아닙니다, 오금을 펼 수 없습니다."
민욱은 분노에 찬 어조로 중사의 모략을 가로막으면서 한편으로 준학의 다리를 정신없이 주물렀다. 그러고 나서 셋은 더플백을 안고 앉은 채로 차를 뛰어내렸다. 으스러지는 것 같은 무릎을 싸안고 그들이 땅바닥을 기는 동안 사병들은 차에 실린 1종 보급품을 부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세우고 위태롭게 섰을 때 뭔가 희끗희끗한 것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제법 심하게 눈발이 치고 있는 것을 그들은 그제서야 알았다. 여기가 바로 우여곡절 끝에 찾아든 그들의 유형지(流刑地)인가. 셋은 흐려진 눈으로 눈발 속에 뿌옇게 잠긴 막사들을 올려다보았다. 험상맞은 산을 등에 지고 불빛이 새지 않게 소등(消燈)이 된 막사들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요요한 적막 속에 싸인 외딴집을 보았을 때 같았다고나 할까. 그들은 그것에서 괴롭고 고달픈 자신을 힐끗 비껴 보았다.
지극히 순간적인 일이었다. 빳빳한 긴장의 고삐가 탁 풀어지면서 느닷없이 콧잔등이 찡해 왔다. 인간이란 때로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감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는 모양이었다. 민욱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새 더 굵어진 눈발이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소리 없이 내려 쌓이고 있었다.
단기 4290년 1월 어느 날. 다음날에야 세 이등병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해낸 이날을 각각 수첩에 적어 넣었다. 이로써 한계 없는 의무만이 강요되는 고달픈 신병생활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착하는 즉시 소대에까지 내려와 버렸으니 말이다. 절대 병력의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던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그들은 본부 내무반은 구경도 못 한 채 그날 밤 안으로 곧장 소대의 일원으로 배치되어 버린 것이다. 전통적인 전입신고가 드디어 끝나자 소대장 정소위는 먹이를 찾아 으르렁대는 고참들 앞에 그들을 하나씩 떼어 주었다. 셋은 흩어져서 각각 1, 2, 3분대에 배치되었고 그러고 나자 정소위는 짤막한 소감을 말했다.
"빵빵 새끼들,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세 사람은 모든 것을 끝낸 뒤 침상(寢床)에 누워 바싹 마른 입 안을 혀로 쓸며 조용히 복창했었다---이제야 살았다.
모든 수속과 절차는 끝난 것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빠른 안정이었다. 특히 단 하루 동안이 그들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접수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탈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 통에 그들은 근거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처음부터 그런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으면서도 탈영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좌절감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생각은 무서운 불안을 몰고 왔으니 말이다. 결국 무슨 일이든지 저지르고 말 것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중략)
민욱은 다시 방바닥을 헤집었다. 경은 이렇게 한 방 가득히 살아있지 않은가. 그가 죽었다고 모함하는 자는 누군가. 그의 무덤을 만들고 돌을 세울 만큼 악의에 찬 석공들은 누군가. 민욱은 종이뭉치를 움켜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그는 깜빡하는 순간에 진짜 경을 만났다. 그는 눈알이 번들번들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 인민복 차림으로 버티어 선 준학을 발견하는 순간 민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준학은 말했다. 너한테 책임을 물으러 왔다,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나, 너는 무엇을 보호했고 무엇에 저항했나, 너는 왜 우리가 심야에나 둘러앉아 목소리를 죽이고 얘기해야 한다고 우길 만큼 겁쟁이냐, 왜 햇볕 아래 드넓은 광야에 나가서 소리치지 못하느냐, 너는 세 사람만 모이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는데 너한테선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경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내 무덤을 파 옮겨라, 나는 안락한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까지 끼고서 죽은 사람들과 함께 누워 있을 수 없다, 나는 등을 떠밀려 벼랑에서 떨어져 죽지 않았느냐. 경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민욱은 그의 주먹을 이마에 맞으며 냅다 고함쳤다.
"넌 죽지 않았어. 이렇게 살아 있잖아, 이렇게, 두 눈을 부릅뜨구 사이공 거리를 쏘다니구 있잖나 말이야."
그러다가 민욱은 스스로 꿈을 잃고 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머리맡에는 아내가 지켜 앉아 있었다. 밤이었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 밖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만 궂으면 으레 그런, 언젠가 술병으로 얻어맞은 어깨뼈 자리가 갑자기 으스러지는 것같이 쑤셨다.
"비 오우?"
"네."
"돌아온 지 오래됐수, 당신?"
"네."
"내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군."
"네, 두세 시간"
"그렇게나 오래?"
"오래가 뭐예요, 난리통을 쳤어요."
사위의 행동이 수상쩍다는 아버지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땐 이미 민욱은 의식을 못 차리고 있었다. 초점 잃은 두 눈을 그대로 뜬 채 방바닥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혼비백산하여 부리나케 의사를 불러 댔으나 진찰조차도 불가능했다. 주인집 남자까지 와서 몸을 결박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제 주사 한 대를 놓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스르르 맥이 풀리고 이내 잠잠해졌다. 잠에 떨어졌던 것이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 왜 그런 짓을"하면서 민욱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추스렸다.
"저 당신한테서 다 들었어요, 윤경 씨가 전사하셨다면서요."
아내는 말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혁 흐느끼기 시작했다. 민욱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아내의 어깨를 지그시 부축해 안았다. 그는 새삼 소리 없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삼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오, 울어선 안 되오. 우린 끝까지 지켜 서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오."
처적처적 내리던 봄날의 밤비는 어느새 굵은 빗방울로 변하여 쉴새없이 창 틈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 신상웅 소설가
▲ 1938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
▲ 1946년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돌아옴
▲ 1947년 단밀국민학교 입학
▲ 1953년 안계중학교 입학
▲ 1956년 대구상업고등학교 입학
▲ 196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1968년 단편 「히포크라테스의 흉상」 당선
▲ 1972년 장편 「심야의 정담」 연재 시작
▲ 1973년 「심야의 정담」으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
[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1995년) 발췌
/ 2020.01.2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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