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소설읽기] 「신열」 이원규 (2019.11.13)

푸레택 2019. 11. 13. 19:53

 

 

 

● 신열 / 이원규

 

나는 집들의 담장 너머 목련이 활짝 펴서 허공에 마치 흰 나비들처럼 떠 있는 삼청공원 기슭의 언덕길을 차를 몰고 달려 올라갔다. 고급 주택가란 으레 그렇지만 화창하고 포근한 늦은 봄의 한낮인데도 넓은 길목에 사람들의 통행이 적었다. 늘씬한 모습의 고급 승용차들이 티끌 하나 없는 잿빛 포장도로 위에 물방개들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기어 변속을 하며 약간 흥분된 가슴을 달래기 위해서 길게 숨을 쉬었다. 이날은 아버지의 육십오 세 생신이었다. 전부터 육십오 세가 되면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여생을 여행이나 하면서 쉬겠노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틀림없이 은퇴와 그에 따른 재산 상속에 대한 말을 하실 것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재물에 대해서는 엄격하여 네 아들에게 재산을 거의 주지 않았다. 넷째인 나도 아버지 덕분에 군대도 피하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지만 45평짜리 아파트 하나밖에 받은 것이 없었다. 오늘 몇 억 원쯤 재산을 준다면 그저 평생을 대학 교수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사업을 하는 형들과 달리 나는 사실 그 정도의 욕심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집은 고갯길의 가장 높은 곳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성벽처럼 웅장한 담벽 앞에 차를 세웠다. 아버지 집은 아버지의 성격처럼 여전히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우리 가족을 맞았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십여 년 전에 헌집 세 채를 사들여 모두 헐어내고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었다. 오백 평이 넘는 대지에 백이십 평짜리 이층 건물이 앉은 이 동네 최고의 저택, 건축회사 회장인 아버지의 신분에 걸맞은 저택이었다.

 

애시당초 높은 언덕을 깊이 깎아 경사를 줄여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직의 절개지가 생겨난 곳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많은 돈을 들여 철근 콘크리트로 축대를 쌓은 뒤 표면에 검정색 고급 벽돌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집과 정원을 꾸민 것이었다. 그래서 길에서 올려다보면 그저 중세 유럽의 성처럼 보일 뿐 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문도 이 벽에 돔형으로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철제 대문을 지나면 마치 중세 수도원의 복도와 같은 계단길을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고, 그것이 끝나면 가슴이 탁 트이도록 넓은 정원과 묵중하게 앉은 저택이 가슴에 안기듯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단 정원으로 올라서면 길목을 달리는 찻소리 따위 잡음이 들리지 않아 서울 4대문 안인데도 매우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대문 밖에 누가 찾아와 소리를 지르더라도 폐쇄회로 카메라와 인터폰을 통하지 않는 한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집 안을 엿보려 해도 정원의 나무 한 그루 볼 수가 없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집이었다. 집이 이런 곳에 비밀의 성채처럼 지어진 것은 무거움과 은밀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자신과 주변 형편에 대하여 약간 결벽증이 있는 편이어서 생신도 가족들끼리만 치르는 것이 관례였다. 아버지만큼 성공했으면 회사의 중역과 간부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대해 파티를 벌일 만도 한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중략)

 

나는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학생들의 구호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가깝게 들려왔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창가로 다가가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짙은 초록의 색깔을 띠고 펼쳐진 잔디와 은행나무 둥치들 사이로 광장 저쪽에서 투구를 쓴 전경들과 학생들이 대회전을 하듯 대치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학생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사불란하게 팔을 치켜올리며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문득 갑자기 나타나서 악연으로 내 발목을 휘감고 나와 아버지와 집안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박성국 노인과 박경재 씨가 학생들의 위에 비쳐졌다. 그들의 말과 밖에서 외치는 저 소리들, 그리고 천벌을 받듯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나는 모든 것들이 같은 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일선상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학생들의 대열에서 전경들을 향해 화염병이 불의 꼬리를 끌며 날아가고 동시에 전경들의 대열에서 폭죽처럼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새까맣게 흩어져 쫓기고 전경들은 물밀듯이 잔디 광장 위로 밀려왔다. 나는 막 바람을 타고 밀려 들어온 최루가스에 손바닥으로 코를 막았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지만 나는 여느 때처럼 창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쏘는 듯한 아픔을 두 눈에 느끼면서도 창가에서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학생 하나가 쫓겨 와서 네 명의 전경으로부터 집중적으로 곤봉 공격을 받고 고꾸라졌다가 끌려가는 모습이었는데 그 학생은 두 팔을 잡힌 채 일어서면서 내가 서 있는 삼층 쪽을 올려다보았다. 기억에 없는 낯선 학생이었고 우연히 삼층 창가에 선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지만 학생의 눈은 최루가스보다도 더 아프게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따가운 눈을 질금거리며 학생이 끌려간 방향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가 맞닥뜨렸던 절망의 벽이 나 자신이 부딪쳐야 하는 숙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기 위해 전화기를 잡았다. (『천사의 날개」, 문학과지성사, 1994)

 

● 분단의 상황, 바다의 삶 / 임진영(문학평론가)

 

이원규 소설의 인물들을 지배하는 시간은 과거의 역사이며, 그것은 대부분 '분단'이 준 기억의 시간이다. 한편, 그들의 삶의 공간은 대부분의 경우, '바다'이다. 이원규의 소설은 '분단의 기억을 되살리기' 혹은 '바다의 삶을 살아내기'라는 두 개의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적 특징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우리의 분단소설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어민들을 다루었다는 공적”을 낳은 것으로 평가(홍정선)되어 왔고, 어떤 면에서는 소재주의적 경향, 혹은 그의 작품을 단조롭게 하는 요소로도 지적(권성우)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바다'와 '분단'이라는 두 단어의 교직이 엮어 내는 우리 시대 삶의 무늬에 대해 그 이상의 평가를 시도해 보려 한다.

 

우리 소설사에서 분단문학과 바다의 관계는 아주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최인훈의 「광장」이나 이문열의 「영웅시대」의 주인공은 바다 한가운데 혹은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이 한다. 그들은 제3국행, 혹은 남한행을 거부하고, 망망한 바다 너머의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좌절의 상황 속에서 죽어 간다. 그들이 바다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분단시대의 질곡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바다'는 분단시대 삶의 자리의 경계, 그 너머에 존재하는 자유의 지평을 보여 주는 상징적 공간이 된다.

 

그에 비해서, 분단문학의 역사 속에서 분단시대의 참혹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역사적 공간이미지는 바다라기보다는 산맥, '골짜기'라고 할 수 있다. 고사목(枯死木)과 진달래로 표상되는 지리산, 김원일의 「겨울골짜기」가 재현해 낸 양민학살의 공간이 바로 '골짜기'이다. 그곳은 이념과 이념의 치열한 대결장이었으며, 이름없는 수많은 이들의 원한과 절규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원규의 소설 중에서는 「깊고 긴 골짜기」가 이 전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은 그러나 현재적 삶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 속에 묻힌 과거의 역사적 공간이다. 그것은 '복원되지 않은' 묻혀진 세계였다가 이제야 새삼 끔찍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깊고 긴 골짜기」에서 그 기억과 역사를 복원시켜 주는 계기가 되는 인물은 주인공의 친구로서, 6. 25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결국 중립국을 선택해 살다가 사십여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인물이다.

 

월남해 살면서 두고 온 가족의 소식을 못내 궁금해 하던 주인공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들 두 사람이 서로 적이 되어 전투를 벌였으며, 결국 그 피비린내나는 격전장에서 적군의 편이었던 동생이 죽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극적 설정은 형제가 남과 북으로 갈리어 싸워야 했던 동족상잔의 상황을 담고 있는 분단문학의 계열 속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깊고 긴 골짜기」의 주인공에게 있어서 역시, 분단의 상혼이 새겨진 '골짜기'는 지금 여기의 일상적 삶의 공간은 아니다. 소설은 어떤 돌연한 계기로 인해 과거의 장소 속으로 찾아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역사의 선연한 핏자국을 확인하게 되는 사건 그 이상을 넘어서서, 어떤 현재적 삶의 전망도 보여 주지 못하는데, 그것은 주인공이 직접 전쟁을 체험한 노인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신열」은 아들 세대가 아버지 세대의 기억-역사적 진실을 복원해 내는 이야기이다. 이념대림 속에서 약삭빠른 변신에 성공한 아버지가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건을 알고,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을 만나게 됨으로써, 아들은 자신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역사니 분단이니 하는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그는 진실을 아는 대가로아버지를 잃는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다시 이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던 그는, 데모를 하다 전경에게 끌려가는 어느 학생의 눈길이 자신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맞닥뜨렸던 절망의 벽이 나 자신 부딪쳐야 할 숙명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소설들에서 작가는 역사적 진실의 복원이라는 분단문학 고유의 전통적인 주제와 관습에 충실하며, 그만큼 그 이상의 진전을 이룩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다시 우리의 원래의 문제제기로 되돌아가 보면, 이원규는 '바다'와 '분단 문제'의 독특한 결합을 통해 분명 분단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 작가이다. 「포구의 황혼」이 바로 그에 값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여기에 분단의 원인이 되었던 이념과 사상의 대립은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만큼의 낙관적 희망을 가능하게 한 데는 바로 1987년 이후의 상황이 작용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와 이원규의 「포구의 황혼」 사이의 거리는 일방적 반공논리의 퇴색과 통일론의 개방이라는 역사적 변화가 낳은 거리이다. 북한문학계에서는 그들의 통일문학의 경향이 이전의 '그리움의 문학'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만남의 문학'으로 변모되었다고 표현한다. 이원규의 소설은 이러한 흐름에 부옹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속에서 분단은 너무나 정서적인 것이고, 육친과 혈연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좌익의 누명을 쓰고 평생 감옥살이를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경우(「신열」)라 하더라도, 문제되는 것은 진실과 배반이라는 윤리의 차원이지 이념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이는 좌익 장기수 문제를 우리 소설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던 김하기의 소설과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이다. 그의 소설 중에서 이념의 문제가 정면으로 조명된 경우는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황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진보적 시각을 온건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작가로 평가되어 온 반면, 한편에서는 그의 역사의식이나 분단 극복의식이 1980년대 진보적 사학계의 일반적 견해, 모범답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그의 소설 속에서 이념이 아직 적절한 형상의 옷을 입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념을 넘어서는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이 분단극복의 전제이며 보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포구의 황혼」이라는 이 평범한 제목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감동은 비상한 수준의 것임에 분명하다. 현재와 회상의 거의 균등한 교직,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리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절정을 조금씩 예비해 가는, 정통적 구성방식에 충실한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아주 작은, 개인사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의 역사와 바다의 공간 속에 열려진 이야기이다.우리는 이만한 소설을 낳은 작가가 앞으로 내놓을 새로운 분단문학을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 기대는 이미 발표된 또 하나의 수작 「천사의 날개」에서 그가 보여 준 역사적 상황 속에 선 인간의 구원이라는 문제의식, 베트남 전쟁 체험의 소중함에 의해 더욱 든든하게 뒷받침 되고 있다.

 

/ 한국소설문학대계(1995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