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속의 집 / 김동인
꼬불꼬불 꼬부랑길 지나고 지나면
논밭 풀내음 짙은 나의 고향집
커다란 밤나무 그 아래 피어있는
나팔꽃 쑥부쟁이 채송화 해바라기
뒷뜰 장독대 나란히 열 맞춰 있네
어릴 적 키우던 똥개 한 마리
매일 보는데도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벼대던 내 친구
넖은 마당 장대만 한 빗자루 하나
들고 연신 쓸어대는 아버지 모습
음매 음매 하루종일 씹어대는
우리집 일꾼 누렁소들이 그립다
좁은 방 삼남매 이불 쓰고 놀던 곳
불 집히던 검정 숯댕이 뭉쳐있던
좁은 부엌, 그 낡은 찬장이
눈 감으면 손에 닿을 듯 선명하다
여름이면 구멍난 모기장 하나
그 속에서 온 식구 뒹굴며 자던 곳
나의 긴 머리 땋아주시던 어머니
개구리 뒷다리 연탄불에 구워주시고
메뚜기 잡아 내 손에 꼭 쥐여주시던
아버지 그 젊고 건장했던 아버지
머리가 하얀 눈처럼 되었네
기억 속의 집은 흙이 되어 사라지고
집터에 가만히 서니
그 시절 울고 웃던 소리
귓가에 조용히 들려온다
● 놀이터에 가면 / 김동인
놀이터에 가면
까르르 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
세상 근심 찌든 어른 웃게 하네요
그네 한 번 밀어주니
나도 한 번 하늘 보고
그네 두 번 밀어주니
바람 소리 느껴져요
그네 세 번 밀어주니
동심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밀다보니 나도 따라 웃지요
놀이터에 가면
나도 어느새 또래 되어 놀지요
● 그 자리 / 김동인
오늘도 그 자리 쉼없이 비취던 태양
언덕에 올라 지는 석양 바라봅니다
산마루 위로 뉘엿뉘엿 지는 태양
점점 작아지는 태양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 다해 지구를 비춰줍니다
자신을 태워가며 신께 복종합니다
셀 수 없는 세월 그 자리 그 모습으로
태우고 또 태우고 태우고 있는
그 순종 밝은 광채 되어 우린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 소임을 다해가며 붉게 물들인
하늘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소리없이 찾아드는 어둠이
주황빛 하늘마저 천천히 삼켜버리고
이제 태양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묵묵히
순종하며 자신을 태우고 있으리라
/ 봄비 김동인 2019.09.15 이천에서 보내온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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