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기억 속의 집, 놀이터에 가면, 그 자리 김동인 (2019.09.15)

푸레택 2019. 9. 15. 20:26

 

 

 

 

 

 

 

 

 

 

● 기억 속의 집 / 김동인

 

꼬불꼬불 꼬부랑길 지나고 지나면

논밭 풀내음 짙은 나의 고향집

커다란 밤나무 그 아래 피어있는

나팔꽃 쑥부쟁이 채송화 해바라기

뒷뜰 장독대 나란히 열 맞춰 있네

어릴 적 키우던 똥개 한 마리

매일 보는데도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몸을 비벼대던 내 친구

넖은 마당 장대만 한 빗자루 하나

들고 연신 쓸어대는 아버지 모습

음매 음매 하루종일 씹어대는

우리집 일꾼 누렁소들이 그립다

좁은 방 삼남매 이불 쓰고 놀던 곳

불 집히던 검정 숯댕이 뭉쳐있던

좁은 부엌, 그 낡은 찬장이

눈 감으면 손에 닿을 듯 선명하다

여름이면 구멍난 모기장 하나

그 속에서 온 식구 뒹굴며 자던 곳

나의 긴 머리 땋아주시던 어머니

개구리 뒷다리 연탄불에 구워주시고

메뚜기 잡아 내 손에 꼭 쥐여주시던

아버지 그 젊고 건장했던 아버지

머리가 하얀 눈처럼 되었네

기억 속의 집은 흙이 되어 사라지고

집터에 가만히 서니

그 시절 울고 웃던 소리

귓가에 조용히 들려온다

 

● 놀이터에 가면 / 김동인

 

놀이터에 가면

까르르 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

세상 근심 찌든 어른 웃게 하네요

그네 한 번 밀어주니

나도 한 번 하늘 보고

그네 두 번 밀어주니

바람 소리 느껴져요

그네 세 번 밀어주니

동심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밀다보니 나도 따라 웃지요

놀이터에 가면

나도 어느새 또래 되어 놀지요

 

● 그 자리 / 김동인

 

오늘도 그 자리 쉼없이 비취던 태양

언덕에 올라 지는 석양 바라봅니다

산마루 위로 뉘엿뉘엿 지는 태양

점점 작아지는 태양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 다해 지구를 비춰줍니다

자신을 태워가며 신께 복종합니다

셀 수 없는 세월 그 자리 그 모습으로

태우고 또 태우고 태우고 있는

그 순종 밝은 광채 되어 우린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 소임을 다해가며 붉게 물들인

하늘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소리없이 찾아드는 어둠이

주황빛 하늘마저 천천히 삼켜버리고

이제 태양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묵묵히

순종하며 자신을 태우고 있으리라

 

/ 봄비 김동인 2019.09.15 이천에서 보내온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