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아버지의 장날, 용서는 사랑이에요, 지금 너와, 마음을 나누어요 김동인 (2019.08.18)

푸레택 2019. 8. 18. 09:54

 

● 아버지의 장날 / 김동인

 

주룩주룩 비가 오는날

마침 오늘이 장날이야

일손 바쁜 농부에겐

이런 날 장보기 딱 좋지

주머니에 돈은 몇푼 없지만

쏠쏠한 눈구경은 할 수 있어

간만에 이사람 저사람

번잡함도 느껴보고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

잠시 잊고 구경 삼매경

필요한 건 많지만 다는 못 사

어디서 솔솔 나는 통닭 냄새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지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 넣고

돈만 주물럭거리다가

눈에 밟히는 걸 어째

큰맘 먹고 주머니 털었지

통닭 한마리 누런 봉투에 담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탔지

장 구경 하다 보니 점심도 굶고

옷도 젖고 이제야 배가 고파

그래도 통닭 덕분에 어깨가 으쓱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노는 것도 힘이 드네

아빠가 뭐 사 오셨나 하고

아이들 눈이 반짝거려

뒤에 감춘 누런 봉투 얼른 보였지

벌써 냄새맡고 난리들이야

아이들 먹는 거 실컷 구경하고

커다란 사발에 보리밥 한뎅이

물 부어 김치랑 먹으니

세상 꿀맛이네

통닭은 뼈만 남고 맛도 못봤지만

내 얼굴엔 미소만 가득해

아이들 배 부르면 됐지

이게 행복이지

 

● 용서는 사랑이에요 / 김동인

 

용서와 사랑은 친구가 맞나요

사랑한다고 말해도

용서가 안 되면 마음 먹먹해지는데

어떻게 해야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랑하는 거라고 느꼈는데

사랑과 용서는 별거중이네요

온전한 용서도 온전한 사랑도

남을 책망할 권리 신이 아닌

나는 없는데 전혀 없는데

내 맘은 용서와 사랑을

그저 덮어두려고 하네요

사랑 없는 용서

용서 없는 사랑

그런 건 없겠죠 그런건 없을 꺼에요

둘은 같은 곳에서 생겨나니깐

 

● 지금 너와 / 김동인

 

나른한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싶다

녹녹해진 내 몸을 깨우고

그윽한 향기로 피로를 녹여줄

따듯한 커피 한 잔

그 온기가 온 몸에 퍼질 때

커피 한 모금은

나의 오아시스가 되고

다시 일 할 힘을 준다

그런 커피 한 잔

지금 너와 마시고 싶다

 

● 마음을 나누어요 / 김동인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 방귀소리도 이쁘게 들리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 발자국 소리도 싫어지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 물 마시는 입도 예뻐 보이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 하품 하는 것도 보기 싫죠

 

서로 이해하고 조금 양보해 봐요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요

너는 내가 나는 네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어요

 

생각을 나눌 때 마음이 열리고

마음 열어 놔야 내가 알 수 있죠

너는 내가 나는 네가 되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봐요

 

나의 컵엔 내 생각만 가득해요

따라버려야 새 물을 담을 수 있죠

서로 비워 봐요 서로 비워 봐요

발자국 소리 하품도 예뻐 보여요

 

/ 봄비 김정인 2019.08.18(일) 이천에서 보내온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