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장날 / 김동인
주룩주룩 비가 오는날
마침 오늘이 장날이야
일손 바쁜 농부에겐
이런 날 장보기 딱 좋지
주머니에 돈은 몇푼 없지만
쏠쏠한 눈구경은 할 수 있어
간만에 이사람 저사람
번잡함도 느껴보고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
잠시 잊고 구경 삼매경
필요한 건 많지만 다는 못 사
어디서 솔솔 나는 통닭 냄새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지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 넣고
돈만 주물럭거리다가
눈에 밟히는 걸 어째
큰맘 먹고 주머니 털었지
통닭 한마리 누런 봉투에 담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탔지
장 구경 하다 보니 점심도 굶고
옷도 젖고 이제야 배가 고파
그래도 통닭 덕분에 어깨가 으쓱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노는 것도 힘이 드네
아빠가 뭐 사 오셨나 하고
아이들 눈이 반짝거려
뒤에 감춘 누런 봉투 얼른 보였지
벌써 냄새맡고 난리들이야
아이들 먹는 거 실컷 구경하고
커다란 사발에 보리밥 한뎅이
물 부어 김치랑 먹으니
세상 꿀맛이네
통닭은 뼈만 남고 맛도 못봤지만
내 얼굴엔 미소만 가득해
아이들 배 부르면 됐지
이게 행복이지
● 용서는 사랑이에요 / 김동인
용서와 사랑은 친구가 맞나요
사랑한다고 말해도
용서가 안 되면 마음 먹먹해지는데
어떻게 해야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랑하는 거라고 느꼈는데
사랑과 용서는 별거중이네요
온전한 용서도 온전한 사랑도
남을 책망할 권리 신이 아닌
나는 없는데 전혀 없는데
내 맘은 용서와 사랑을
그저 덮어두려고 하네요
사랑 없는 용서
용서 없는 사랑
그런 건 없겠죠 그런건 없을 꺼에요
둘은 같은 곳에서 생겨나니깐
● 지금 너와 / 김동인
나른한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싶다
녹녹해진 내 몸을 깨우고
그윽한 향기로 피로를 녹여줄
따듯한 커피 한 잔
그 온기가 온 몸에 퍼질 때
커피 한 모금은
나의 오아시스가 되고
다시 일 할 힘을 준다
그런 커피 한 잔
지금 너와 마시고 싶다
● 마음을 나누어요 / 김동인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 방귀소리도 이쁘게 들리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 발자국 소리도 싫어지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 물 마시는 입도 예뻐 보이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 하품 하는 것도 보기 싫죠
서로 이해하고 조금 양보해 봐요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요
너는 내가 나는 네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어요
생각을 나눌 때 마음이 열리고
마음 열어 놔야 내가 알 수 있죠
너는 내가 나는 네가 되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봐요
나의 컵엔 내 생각만 가득해요
따라버려야 새 물을 담을 수 있죠
서로 비워 봐요 서로 비워 봐요
발자국 소리 하품도 예뻐 보여요
/ 봄비 김정인 2019.08.18(일) 이천에서 보내온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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