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옥수수 이야기 (2019.07.28)

푸레택 2019. 7. 28. 19:51

 

 

 

 

 

 

 

 

 

 

 

 

● 옥수수 이야기

 

며칠 전 아파트 안내 게시판에 당일 수확한 고품질 찰옥수수를 예약 판매한다는 광고지가 붙었다. 우리 집 식구들이 옥수수를 좋아하기에 얼른 세 망을 신청했다. 목요일 저녁, 깜박 잊고 있었는데 옥수수 가져가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부리나케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보니 자그마한 체구에 순박해 보이는 젊은 부부가 허름한 승합차에 옥수수를 싣고 와서 좌판을 벌여 놓았다. 예닐곱 살 된 딸아이도 엄마 곁에 있었다.

 

- 깜박했어요. 마감 시간이 다 됐네요.

- 예약하신 분들이 아직 안 오시네요. 여길 못 찾겠다 하시네요.

- 네 아파트 출입구가 여러 곳이다 보니 그런가 보네요.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더 팔아주고 싶은 마음에 두 망을 추가해 총 다섯 망을 샀다. 일요일 2차 판매 때 또 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내는 한여름 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옥수수를 다듬고 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는 맛이 일품이었다. 물컹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으면서 씹는 느낌과 맛이 독특한 것이 내가 지금껏 먹어 본 옥수수 중 단연 으뜸이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오늘 일요일 오후 시간, 다시 옥수수를 사러 정문으로 갔다.

 

- 안녕하세요? 옥수수 세 망 주세요.

- 그럼 3만원이에요. 꼬마 딸아이가 영특하다.

- 지난번에 오신 분이시네...

- 덤으로 한 망 더 드립니다. 많이 팔아 주셔서...

- 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럼 돈 더 드릴 게요.

내가 돈을 더 드리려 하니 한사코 안 받으신다.

- 많이 사 가셔서 덤으로 드리는 거니까 돈을 더 받을 수 없어요.

- 며칠 전에 사 가실 때 한 망 더 드리려고 뒤쫓아 갔는데 어느새 가버리셔서 못 드렸어요.

 

고된 삶을 살아오셨고 앞으로도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실 분들한테서 내가 덤으로 몇 개도 아니고 한 망을 더 받다니 이러면 안 되는데... 고마운 마음만 가져가고 싶은데 저렇게 한사코 옥수수 한 망을 더 주시고 돈도 안 받으신다. 순간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 직접 농사지으신 건가요?

- 네 우리가 직접 이곳 식사동에서...

 

고맙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것은 나의 결벽증 탓이다. 그냥 고마운 일이거니 생각하고 지나가면 될 것을... 옥수수를 가져다 놓고 잠시 딴 일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판매 마감 시간인 여섯 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벌써 갔으면 어쩌지?' 멀리서 보니 정리하고 있는 듯 했다. 아직 육교 밑에 승합차가 보이고 아이가 옥수수 판매 광고 입간판을 들고 차 쪽으로 걸어간다. 서둘러 빵집에 들어가서 아이가 좋아할 빵 한 상자를 샀다.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니 아저씨가 승합차 문을 닫고 막 출발하려고 한다.

 

- 잠깐만요! 아까 옥수수 고마워서 사 왔어요.

차 안에 있는 아이에게 빵을 건네자 아주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 다음에 또 언제 오시나요? 그때 또 팔아드릴 게요.

- 아, 네네 고맙습니다. 또 다음에 또... 전화 주문하셔도 되고요.

 

옥수수에 사랑을 싣고 살아가는 농군(農軍)의 내일이 희망 가득했으면 좋겠다. 옥수수 농사를 직접 짓고 또 그것을 팔면서 고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부부,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젊은 옥수수 부부 가족이 오늘 저녁 웃음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옥수수에 사랑 실은 차가 빗길 속 멀어져 간다.

 

어느 오후, 식사동 옥수수 농부 부부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 지난 번 빵 잘 먹었어요. 새 품종을 첫 수확해서 맛보시라고 현관문 앞에 놓고 가요'.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옥수수 한 망이 살포시 놓여 있다. 파랑새는 늘 멀리 있지 않고 내 곁 가까이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 김영택 2019.07.28(일) 저녁 (내용 추가 수정)

 

☆ [追錄]

안녕하세요? 빵 잘 먹었습니다.

기회되면 옥수수로 갚겠습니다 ~~^^.

2019.08.03 08:33

 

별 말씀을요. 따뜻한 마음 간직하시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다들 옥수수가 정말 맛있다고 좋아합니다.

다음에 이 근처에 또 오실 때 연락주세요.

무더운 여름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19.08.03 13:43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스위트 콘' 품종을 새로 수확하여

맛보기로 드려요.

옥수수 한 망 아파트 현관 앞에 놓고 갑니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이분들도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인 듯하다.

 

/ 201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