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생각산책] 두 환자 이야기, 어느 우체부와 꽃길, 군인과 전투복 (2019.07.27)

푸레택 2019. 7. 27. 07:07

 

 

 

 

 

 

● 두 환자 이야기

 

중병에 걸린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큰 병원의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병실은 아주 작았고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 환자는 치료 과정으로 오후에 한 시간씩 침대 위에 일어나 앉도록 허락을 받았다. 폐에서 어떤 용액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침대가 창가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 앉을 때마다 바깥 풍경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환자는 하루종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다.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창가 쪽 환자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는 맞은 편 환자에게 바깥 풍경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창을 통해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내다보이는 모양이었다. 호수에는 오리와 백조들이 떠다니고, 아이들이 와서 모이를 던져 주거나 모형배를 띄우며 놀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 나무들 아래를 산책하고, 꽃과 나무들이 주위에 많았다. 이따금 공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무들 너머 저편으로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누워 있는 환자는 창가 쪽 환자가 이 모든 풍경을 설명해 줄 때마다 즐겁게 들었다. 한 아이가 어떻게 해서 호수에 빠질 뻔했는지도 듣었고, 대단히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여름옷을 입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얘기도 들었다. 창가의 환자가 어찌나 생생히 묘사를 잘 하는지 그는 마치 자신이 지금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한 가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왜 창가 쪽에 있는 저 사람만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왜 저 사람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는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는가? 왜 나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창가에 있는 환자에게 질투가 났다. 침대의 위치를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어느날 밤이었다. 그가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데 창가 쪽 환자가 갑자기 기침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버둥거리며 간호사 호출 버튼을 찾는 것이었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당연히 그 환자를 도와 비상벨을 눌러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환자의 숨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도. 아침에 간호사는 창가의 환자가 숨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용히 시신을 치워갔다.

 

적절한 시기가 되자 그는 창가 쪽으로 침대를 옮기고 싶다고 간호사에게 요청했다. 병원 직원들이 와서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 창가 쪽 침대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매만져 주었다. 직원들이 떠나자마자 그는 안간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팔꿈치를 괴고 간신히 상체를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맞은 편 건물의 회색 담벽이 가로막고 있을 뿐었다.

 

● 어느 우체부와 꽃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의 약 50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 해 왔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이 황폐하고 삭막한 길거리를 오가며 남은 인생을 보내겠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길을 오갔는데, 앞으로도 나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량감을 느낀 것이다. 풀,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은 황폐한 거리를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그러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그것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우편 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길섶에 뿌렸다. 그 일은 그가 50여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요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편물을 배달하게 되었다.

 

그가 걸어 지나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고 그 꽃들은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이어 피어주었다. 해마다 이른 봄에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났던 것이다. 그 꽃들을 바라보면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황막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50여 마일의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물 배달을 하는 그의 뒷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길은 자연히 아름다운 꽃길로 소문나서 많은 사람이 지금도 찾고 있다고 한다.

 

* 현실의 어려움을 불평만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 군인과 전투복

 

전쟁 중 어느 부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태양이 불처럼 이글거리는 한낮, 병사들이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비상벨이 울리고 긴급출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전투기가 날고 모래바람이 부는 그 와중에 한 병사의 전투복 상의가 바람에 휩쓸려 바닷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병사가 바다에 뛰어들려 하자 상관이 그의 팔을 잡았습니다.

- 이봐, 무슨 짓인가? 지금 전쟁 중이야.

 

그러나 그는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다. 포탄이 날고 총알이 빗발치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군복은 파도에 휩쓸려 자꾸만 떠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병사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그 옷을 건져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시에 군복 상의 하나가 왜 그리 중요 했을까요? 결국 그는 명령 불복종 죄로 군사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서슬이 시퍼런 법관들이 죄를 물었지만 그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 없이 군복 윗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말했습니다.

 

- 저는 이 옷을 포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어머니의 단 한 장뿐인 사진이 이 옷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술렁이던 법정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고 법관은 예상을 깨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아들이라면 조국을 위해서도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군인일 것이다.

무죄 선고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