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생각산책] 이등병과 인사계, 금 간 항아리, 간호사와 사과

푸레택 2019. 7. 26. 22:22

 

 

 

 

 

 

 

 

 

 

 

 

● 이야기 세 편

 

1. 이등병과 인사계

 

몹시 추운 겨울날, 막 자대에 배치된 한 이등병이 개울에서 언 손을 녹여 가며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소대장이 안쓰러워하며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 김 이병,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손을 녹이며 빨래를 하도록!

 그 이등병은 소대장의 말을 듣고 취사장에 갔지만, 오히려 취사장 고참은 이등병 주제에 군기가 빠졌다는 핀잔을 하며 기합(얼차려)을 주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와 얼음물에 빨래를 계속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중대장이 지나가면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 김 이병,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서 해라.

 신병은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취사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가 봤자 더 심한 기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인사계 박 상사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 김 이병, 내가 세수 좀 하려고 하니 취사장에 가서 더운물 좀 받아 와!

 이등병은 취사장으로 뛰어가서 취사병에게 박상사의 명령을 전하고 뜨거운 물을 한가득 받아 왔습니다.

 그러자 인사계가 말했습니다.

- 김 이병! 이 뜨거운 물로 언 손을 녹이며 빨래를 하거라. 동상은 피할 수 있을 거야.

 

* 나의 관점에서 일방적인 태도로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줬다고 착각하고 만족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본다. 배고픈 소에게 고기를 주거나 배고픈 사자에게 풀을 주는 것과 같은 단지 나의 입장에서 내 만족감으로 하는 허상의 배려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2. 금간 물 항아리

 

한 아낙이 물지게를 지고 먼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습니다. 양쪽 어깨에 항아리가 하나씩 걸쳐져 있었는데 왼쪽 항아리는 살짝 실금이 간 항아리였습니다. 그래서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항상 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왼쪽 항아리는 금 사이로 물이 흘러내렸고, 오른쪽 항아리의 물은 그대로였습니다. 왼쪽 항아리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낙에게 말했습니다.

 

- 주인님, 저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가서 물이 새는 저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것으로 쓰시지요.

아낙이 빙그레 웃으면서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습니다.

 

-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렇지만 괜찮아. 우리가 지나온 길의 양쪽을 보거라.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른쪽 길은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되었지만, 네가 물을 뿌려준 왼쪽 길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과 생명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잖아.

 

-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고, 나는 그 생명을 보면서 행복하단다. 너는 지금 그대로 네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란다

 

* 사람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며 자신의 조금 부족한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자기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은 금이 간 항아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완벽한 항아리들 때문에 삭막할 때가 더 많다. 약간은 부족해도 너그럽게 허용(許容)하는 것이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드는 배려다.

 

3. 간호사와 사과

 

암(癌) 병동에서 야간 근무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습니다.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호출기로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습니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입원 환자였습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황급히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 한 개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습니다. 그의 옆에선 그를 간병하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 그냥 좀 깎아 줘요.

 

나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얼른 사과를 대충 깎았습니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습니다. 그러자 예쁘게 좀 깎아 달라고 합니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환자가 참 못 마땅했지만,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습니다. 사과의 모양새를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워하는 그를 두고 나는 서둘러 병실을 나왔습니다. 얼마 후,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 간호사님 사실 그 날 새벽에 사과 깎아 주셨을 때 저도 깨어 있었습니다. 그날이 저희들 결혼기념일 이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담은 접시를 주더군요.

 

-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져서 깎아 줄 수가 없어서 간호사님에게 부탁했었던 거랍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남편의 그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그 날 사과 깎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나는 그 새벽, 그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옹색한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는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노라고.

 

*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많다. 살아가면서 매사에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보는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배려(配慮)는 짝’배’, 생각’려’를 합친 단어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을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