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오늘斷想] 애기똥풀을 사랑한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드리는 기도 / 애기똥풀 안도현, 나태주, 권달웅, 복효근, 김현태 (2019.07.23)

푸레택 2019. 7. 23. 07:47

 

 

 

 

 

 

 

 

 

 

 

 

 

 

 

 

 

 

 

 

● 애기똥풀을 사랑한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드리는 기도

 

 어제가 중복(中伏), 한여름 무더위에 밤잠을 설친다. 새벽 3시쯤 깨어 뒤척이다가 6시도 못 되어 일어났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친구 L은 나이드니 잠이 없어졌다며 3시에 깨어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카톡이 왔다.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든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아름답고 경건(敬虔)하다.

 

 오늘 이 아침은 애기똥풀을 사랑한 시인들의 시(詩)를 찾아 읽으며 마음을 씻어본다.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시들이 참 멋지고 감동적이다. 시인의 감성에 나도 모르게 절로 빠져들어 나도 잠시 시인(詩人)이 되어 본다. 애기똥풀 꽃들이 처마 밑 물받이 홈통 가까이까지 와 피어 있다. 시궁창 물가에 서서도 앙증스레 꽃 피워 문 애기똥풀 보아라 어디 연꽃만이 연꽃이겠느냐. 우리가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작은 씨앗을 심을 테니 사랑아, 너만은 영원(永遠)하라.

 

 '주님, 내게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아름다운 시를 읽고 공감(共感)할 수 있는 감성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내게 멋진 노래 부를 수 있는 음성도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재능도 주시지 않으셨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감동(感動)할 수 있는 마음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내게 멋지게 운동할 수 있는 튼튼한 몸과 소질 주시지 않으셨지만 걷고 뛰고 산책할 수 있는 자유(自由)를 허락해 주심 감사합니다.' 잠을 설친 한여름 아침, 애기똥풀을 사랑한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감사(感謝)의 기도(祈禱)를 드린다.

 

 / 김영택 2019.07.23(화) 아침

 

 ☆ 고교 동창인 친구 K가 '오늘 단상' 글을 읽고 토마스 머튼의 기도문을 보내주었다. 또 조카가 즉흥시라면서 시(詩) 한 편을 보내왔다. 시를 읽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딸아,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 아들아,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 유나 호야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 외로울 땐 시를 쓰렴.

 

 ● † 토마스 머튼의 기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는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당장 제 눈 앞에 있는 길도 보지 못합니다. 저는 그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그 목마름이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그러한 목마름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목마름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제가 당신께 이르는 길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저는 당신께서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보이고, 제가 죽음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는 언제나 당신을 믿고 의탁하겠습니다. 당신이 늘 저와 함께하시니,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홀로 위험에 직면하도록 저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 이름 / 김동인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 뭐니?

너는 이름이 귀엽구나!

이름을 안다는 것

궁금해 한다는 것

이름이 뭘까?

존재감의 실체

살아있다는 외침

이름을 궁금해 한다면

그 존재감을 알고 싶은 것

관심이 있다는 것

 

작은 풀 따위 애기똥풀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

내 세포 하나하나

머리카락까지 다 셀 수 있다는 것

내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

사랑이라는 사실

 

● 나 / 송명희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애기똥풀 / 안도현

 

나 서른 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애기똥풀 2 / 나태주

 

무릎걸음으로

앉은뱅이 걸음으로

애기똥풀 꽃들이 처마 밑

물받이 홈통 가까이까지 와

피어 있다

 

풀꽃 이름

많이 아는 것이

국어 사랑이고

국어 사랑이 나라

사랑이란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애기똥풀 꽃 속에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웃고 계셨다

 

● 애기똥풀꽃 / 권달웅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 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한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혼자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조용해, 저기 사람이 왔어

 

살다보면 삼라만상의 복잡한 일 중

더러운 일 한두 가지가 아닌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처럼

참으로 어려운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의 노란 애기똥풀꽃이 웃었다

 

● 애기똥풀꽃 / 복효근

 

어디 연꽃만이 연꽃이겠느냐

집 뒤꼍 하수로가에

노랗게 핀 애기똥풀꽃 보라

 

어릴적 어머니 말씀

젖 모자라 암죽만 먹고

애기똥풀 노란 꽃잎같이

똥만은 예쁘게 쌌더니라

 

황하의 탁한 물

암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단다

 

그래 잘 먹는 일보다

잘 싸는 일이 중한 거여

이 세상 아기들아

잘 싸는 일이 잘 사는 일

시궁창 물가에 서서도

앙증스레 꽃 피워 문

애기똥풀 보아라

 

어디 연꽃만이 연꽃이겠느냐

 

● 세상이 다 변해도 너만은 변치마라 / 김현태

 

사랑아,

세상이 다 변해도 너만은 변치마라

 

땅이 단풍에 물들고

하늘이 달빛에 그을려도

사랑아, 너만은 늙지마라

 

애기똥풀 핀 들녘에서

너는 바람으로

나는 잎새로

다시 만난다해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사랑아, 너만은 멈추어라

 

우리가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작은 씨앗을 심을 테니

사랑아, 너만은 영원하라

 

● 개심사 애기똥풀 / 황인산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

 

솔밭에서 내려온 멧돼지 일가 헤집는 바람에 설사병이 났다.

 

개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얼굴 마주보며 괴춤만 내리고 쉬를 하고도 있지만

 

무리무리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물찌똥을 누고 있다.

 

사천왕문 추녀 밑에서도 노스님 쉬어 가던 너른 바위 옆에서도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노란 똥물을 갈기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옷 속에 감추고 산문을 두드린다.

 

이 문만 들어서면 아침까지 찌들었던 마음도 애기똥풀 되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산 아래서부터 진달래가 산불을 놓아 젊은 비구니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지가 언제인데

 

절집 위 옹달샘 풀숲까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개심사 해우소는 천 길이나 깊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요동치는 배를 잡고 허리띠를 풀며 뛰어 들어갔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깊이가 몇 길은 되어 보이는데 얼기설기 판자로 바닥만 엮어 놓고 군데군데 구멍만 뚫어 놓았지

 

칸막이가 없다. 엉거주춤 볼일 보던 사람,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어정쩡하다. 몇몇의 눈길이 동지애를 느끼며 같은 자세를

 

취하길 원하였지만 안사부인 볼일 보는 화장실을 열어본 것처럼 놀라 아랫배를 내밀고

 

엉덩이에 댄 두 손에 힘을 주고 나왔다.

 

천 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내 아랫도리 하나로 하늘도, 가냘픈 애기똥에 기댄 마음도 옷을 벗지 못한다.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왕산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옆 칸에서 나오다 눈길 마주친

 

젊은 비구니의 얼굴엔 진달래 산불이 다시 옮아 붙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