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은퇴 후의 삶, 파랑새는 내 곁에 있다 (2019.07.20)

푸레택 2019. 7. 20. 22:20

 

 

 

 

 

● 은퇴 후의 삶, 파랑새는 내 곁에 있다.

6년 전, 38년 간 머물렀던 교단(敎壇)을 떠나왔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제 명퇴(名退)를 하여 가던 길 멈추어 서니 시간적 여유가 참 많아졌다. 아니 하루종일이 여유 시간이다. 멈춰 서서 둘러보니 그동안 못 보았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발자국마다 눈물이 고인다.

풀꽃이 좋아서 나무가 좋아서 DSLR을 메고 이곳저곳 야생화(野生花) 탐사도 다녀보고, 둘레길과 누리길도 걸어보고 골목길 산책도 해 본다. 옛 성터며 왕릉과 산성, 박물관을 탐방하며 역사(歷史) 공부도 해 보고 소설책이며 과학책, 한국사와 세계사 역사책도 맘껏 읽어본다.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회화도 독학으로 공부해 보고 가끔은 저멀리 바다 건너 여행(旅行)도 떠나본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여 늘 무엇을 배울까 고민한다. 체스는 가는 길만 알고 바둑은 6~7급에 머물러 있으니 다시 도전(挑戰)하기에는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길 것 같아 포기해야겠다.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지만 워낙 악기(樂器)에 소질이 없어 망설여진다. 그래도 하모니카는 다시 도전하면 동요 정도는 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하모니카를 꺼내 놓았다

그렇게 잘 하고 싶어도 잘 치지 못한 운동인 테니스. 나는 테니스에 소질이 없는가 보다 하고 포기했었는데 늦어도 한참 뒤늦게서야 레슨을 받고 비로소 포핸드 백핸드 발리 스트로크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알게 되었다. 테니스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툭하면 허리가 아파오니 뒤늦게 깨우친 테니스마저 화중지병(畵中之餠)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며칠 전 있었던 2019 윔블던 테니스 대회 조코비치와 페더러의 결승전을 찾아보며 거실에서 테니스 라켓을 휘둘러본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야 하며 찾던 어느 날,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글자 캘리그라피. 아, 바로 이거다. 내가 그래도 글씨는 좀 쓸 수 있겠지, 그 옛날 붓글씨도 배우지 않았던가 하고 새 취미 생활을 발견하여 캘리용 붓과 종이를 사 놓았다. 더불어 연필화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겠다.

은퇴 후 내가 가장 즐겨하는 것은 걷기와 산책. 그리고 독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는다. 걸으면 건강(健康)도 얻고, 주위 나무와 꽃들에게서 위로(慰勞)도 받는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운동이다. 골목길을 산책하며 아련한 추억에 잠겨도 보고 산길을 오르며 시름을 잊는다. 말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며 멍한 시간도 가져보고 책(冊) 속에 빠져들어 세상의 번뇌를 잊곤 한다.

은퇴 후 내게 가장 즐거운 일은 손주들 돌보는 일이다. 손주들은 내게 기쁨과 활력을 준다. 손주들 손잡고 낙타 놀이터도 가고, 함께 페파피그(Peppa Pig)와 엄마 까투리 영상을 보고, 슈퍼윙스 그림도 그리면서 기쁨을 느낀다. 할아버지, 안아 주세요. 책 읽어 주세요. 슈퍼윙스 호기 그려 주세요. 손주의 말 한마디가 내 삶의 활력소(活力素)이고 행복(幸福)이다.

은퇴 후 이렇게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관조(觀照)하는 삶을 살고 유유자적(悠悠自適) 취미생활도 하니 현역 시절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때와는 또 다른 사는 맛이 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네 곁에 있다'는 말을 실감(實感)한다. 행복은 찾는 것도 아니고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파랑새는 저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추록]
P.S

내 짐 무겁고 남의 짐이 더 가벼워 보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눈 감고 귀 닫고 살지 않는 이상 어찌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잘 나고 잘 사는 친구들이 어찌 부럽지 않으랴. 그러나 이제사 깨우친다. 보고 듣고 걸어다니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한 일임을 깨닫는다.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작은 것에 만족할 때 행복이 거기에 있음을 느낀다.

어느 시인은 아침 햇살 창가에 먼지를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또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옷의 단추를 잠글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나무는 타고난 자리를 원망하지 않는다. 골짜기에 있다고 자리를 옮기려 하지 않는다. 참나무는 진달래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달래는 참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성인군자가 아닌데 어찌 늘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지나온 삶 속 어리석음과 무지(無知)에 대한 치솟는 회한(悔恨)이 왜 몰려오지 않겠는가? 항상 기뻐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지만 어찌 항상 기뻐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고 나를 분노케 하는 일들에 대해 분노한다. 늘 관조하는 삶만을 살 수가 없다. 마음 낮춰 기도하고,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고, 모든 것 나의 어리석음으로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운명(運命)이거니 생각하며 사는 것일 뿐.

그리고 내겐 늘 왠지 채울 수 없는 2%의 허전한 마음이 있다, 나는 그것을 채우려 블로그에 사진을 찍어 올리고 글을 쓴다. 내가 아직도 현역(現役)이라면 내일 수업을 위해 PPT를 만들고 있을 이 시간. 내가 테니스를 잘 치고 바둑에 심취(心醉)해 있다면, 내가 색소폰을 잘 불고 바이올린을 잘 켤 수 있다면, 내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심금 울리는 시(詩)를 쓸 수 있다면 나는 이 시간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출난 재능이 없는 나는 이 시간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쓴다.

글을 쓰게 하는 힘은 결코 만족하고 행복한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 허전하고 가난한 마음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해서 2% 부족한 마음이 채워지길 바라면서. 먼 훗날 나의 손주 아윤이와 재호가 할아버지가 쓴 글을 보고 힘들고 어려울 때 용기(勇氣)를 갖고 새 힘을 얻기를 바라면서 나는 무딘 글솜씨로나마 글을 쓴다.

/ 김영택 [졸작수필] 2019.07.20(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