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꽃 진 물자리 눈물 포갠 기다림 설렘의 화본역, 그리운 어머니 (2019.07.18)

푸레택 2019. 7. 18. 20:15

 

 

 

 

 

 

 

 

 

 

 

 

 

 

 

● 눈물 포갠 기다림의 화본역, 그리운 어머니

- 유년 시절의 추억... 고향에 찾아와도

 

나는 어릴 적에 고향(故鄕)을 떠나왔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유년(幼年) 시절의 고향은 아주 짧은 몇 분짜리 단편 독립 영화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누나와 나 두 사람이다. 조연으로는 우리 집 소와 이웃집 친구 영근이다.

 

나는 어렸을 적, 잠들기 전에 증조(曾祖)할머니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밤마다 '할매요, 나는 자누매' 이렇게 말하고는 잠을 잤다고 한다. 매일 밤 이렇게 말하고 잠을 잤으니 어머니 기억에 남았으리라.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가 말씀해 주신 가장 어렸을 적 나의 말이고 나의 모습이다.

 

아마도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이었을 게다. 누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서 나무 아래 있는 내게 던져주었다. 어느새 바구니 하나 가득 단감이 담기었다.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던 것 같다. 이웃집 친구 영근이와 나는 둘이서만 노는 것이 심심하여 마을 앞 도랑물을 건너서 누나가 공부하는 학교를 찾아갔다. 누나가 공부하는 교실 운동장 쪽 창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교실 안쪽을 들여다보고 공부하고 있는 누나를 불렀다. 누나가 자기가 입고 간 큰 외투를 내게 건내주었다.

 

어느 해 봄날이었다. 누나와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일손을 돕느라 집에 있는 소를 몰고 뒷산에 올라갔다. 커다란 나무에 소를 묶어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한참을 놀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 소가 사라졌다. 누나와 나는 엉엉 울면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다녔다. 한참을 찾아헤매다 드디어 소를 찾았다. 우리 집 소가 뒷산 너머 낙동강 강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논에서 메뚜기를 잡던 기억하며,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판조, 상조, 춘조 세 고모님들과 함께 살았던 대가족 시골집은 지금도 구석구석까지 그림으로도 그릴 듯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 년 전 어느날, 나는 누나와 반세기도 더 지난 유년(幼年)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누나의 기억이 똑같았다. 비록 누나가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반세기도 더 지난 어린 시절의 추억(追憶)을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기억할 수 있을까?

 

누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冊褓)를 툇마루에 내던지고는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땄다고 했다. 국민학교에 내가 찾아와서 창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서 입고 간 구제품(救濟品) 외투를 주며 집으로 가라 했다. 우리 집 소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는데 한 번은 낙동강 강가에서, 또 한 번은 큰 바위 위에서 찾았다고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평이한 일들은 기억에 오래남아 있을 수 없는데 누나도 나도 그때 그 사건들이 다소 충격적이거나 감탄적인 에피소드들이어서 장기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있게 되었나 보다. 그러나 기억(記憶)은 어느 학자의 말처럼 언제나 재창조되고 재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나의 유년 시절 고향은 짧은 몇 분짜리 단편 영화다. 이야기거리 풍성하고 재미 있는 장편 소설도, 볼거리 많고 화려한 대규모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그 유년의 추억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후 나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사투리를 쓴다고 동네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누부야가 뭐니? 차라리 두부라고 해라'. 나는 친구들이 있으면 누부를 누부라고 부를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고향(故鄕)을 다시 찾았다. 유년 시절 '나는 자누매' 하면 재워주셨던 그 증조할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떠나가신 것이다.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밤새워 달린 중앙선 완행열차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화본역(花本驛)에 도착하였다. 풀잎 이슬을 적셔가며 걸어걸어 효령(孝令)을 찾았다. 기억 저 멀리 계신 증조할머니를 돌아가신 후에야 찾게 되었다.

 

언제였던가 할아버지 모시던 큰고모님댁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어머니는 어느 허름한 집을 가리키며 '이 집이 너가 태어난 집이다.' 하고 말씀해 주셨다. 다행히도 그때까지 내가 태어난 집이 옛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녀온 누나가 책보를 내던지고 올라가서 감을 따주었던 그 감나무가 있던 마당 넖은 시골집은, 누나가 공부하던 국민학교 찾아가던 길에 건넜던 도랑물은 다시 찾을 길이 없었다. 소를 잃어 버린 뒷산도 내 기억 속의 뒷산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나의 외갓집은 산성면(山城面)이다. 어릴 적 가끔 다녀왔다고 하는데 내 유년의 추억 속에는 외갓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으로 훌쩍 자란 어느 날이었던가, 다시 어머니의 고향 내 외갓집을 찾아간 것은.

 

외삼촌과 이모님댁을 찾아 순례(巡禮)했던 그때, 울퉁불퉁 버스길 지나 저수지 너머 산성면 산골 외삼촌댁. '택이 왔나?'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외삼촌. 느지막해서 해 뜨고 빨리 해 넘어가는 첩첩산골 팔공산 자락, 대율(大栗) 한밤마을에 홀로 살아가시던 큰 이모님, 부계면(缶溪面) 구방동에서 누에를 키우시던 작은 이모님,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면 '이렇게 빨리 떠날 거면 다음에는 오지 마라' 하시며 짧은 만남, 긴 이별을 마냥 섭섭해 하시던 정 많으시던 이모님.

 

이런 날엔 이호우의 '살구꽃 피는 마을'을 읊어본다.

 

살구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십 년 전쯤, 화본을 다시 찾은 적이 있다. 다시 찾은 화본역(花本驛)엔 박해수 시인이 쓴 시비(詩碑)가 반겨주고 급수탑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켜주어 반가웠다.

 

화본역(花本驛) / 박해수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

자다 잠 깬, 꽃물 든 목숨이네

앉은 자리 꽃 진 자리 꽃자리

선 자리 꽃자리 꽃 뿌리 눈물 뿌리

방울새 어디 가서 우나

배꽃, 메밀꽃, 메꽃

배꼽 눈 보이네, 배꼽도 있네

녹물 든 급수탑

억새풀 고개 숙인 목덜미

눈물 포갠 기다림, 설렘

흰 겨울 눈꽃에 젖네

어머니 젖꽃 어머니 젖꽃

젖꽃 실뿌리, 실, 실, 실, 웃는 실뿌리

오솔길, 저녁 낮달로 떴네

어머니 삶 꽃, 젖빛으로 뜬 낮달

산모롱 굽이굽이 돌아

오솔길 따라 꽃 진 길 가네

산모롱 굽이굽이 돌아

돌아누운 낮달 따라 가네

낮달 따라 꽃 따라 가네

 

외삼촌, 이모님들 이제는 모두 먼 길 떠나가시고 꿈길에서나 찾아가야 하는 외갓집. 따뜻한 정 듬뿍 가슴에 안고 살아가던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다. 외롭고 지친 서울 생활 벗어나서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은 고향을 찾아 외삼촌, 이모님 만나셔서 위로 받으시고 그 많은 슬픔과 아픔, 괴롭다 아프다 한 마디 아니 하시고 속으로 속으로만 삭이시며 한없는 눈물 흘리셨을 어머니. 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나는 개망초꽃을 보니 잡초처럼 들꽃처럼 사시다 가신 어머니가 오늘따라 몹시 그립다.

 

/ 김영택 [졸작수필] 2019.07.18(목) 씀

 

● 내 어머니 Mother of Mine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어머니

'내 어머니' 노래를 조용히 욾조려본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 모든 걸 날 위해 내어주고

온갖 고생 하시어서 얼굴엔 주름 가득

철 모르고 뛰놀던 날 눈물과 기도로 키워주신

나의 앞길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었네.

 

그 사랑 갚을 길 없네 어머니 깊은 사랑

하나님 은총 내리소서 나의 사랑 어머니

나도 이제 어른 되어 어머니 사랑 생각하니

눈물이 글썽 흘러내려 가슴이 저려오네.

 

낳으시고 기르시며 손등 야위신 내 어머니

그 모든 슬픔 삼키시어 눈가에 주름이네

마구 놀던 어린 시절 종아리 걷어 꾸짖으사

그 사랑 속에 나의 가슴 정의로 가득 찼네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어머니 그 사랑

주님의 축복 내리시라 사랑 깊은 어머니

어리던 날 푸른 꿈도 그 사랑 속에 익어오고

가녀린 팔뚝엔 자랑스런 새 힘이 자라났네

 

첫 발령 받아 부임한 학교 상도여중(상현중)

어느 해였던가, 교내 합창대회 지정곡이 바로 이 노래였지.

'내 어머니 (Mother of Mine)'

 

낳으시고 기르시며 손등 야위신 내 어머니

그 모든 슬픔 삼키시어 눈가에 주름이네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어머니 그 사랑

주님의 축복 내리시라 사랑 깊은 어머니

지금도 가사를 잊지 않고 다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유튜브를 찾아보니 임웅균 테너가 부른

'내 어머니'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 모는 걸 날 위해 내어주고

온갖 고생하시어서 얼굴엔 주름 가득.

나도 이제 어른 되어 어머니 사랑 생각하니

눈물이 글썽 흘러내려 가슴이 저려오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영국 문화협회에서 세계 비영어권 국가

102개국의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무엇인가’라는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위를 차지한 단어가

바로 'Mother'(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생각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위의 설문 조사 결과 순위에서 몇 번째를 차지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두 번째 아름다운 영어 단어로

'Father'(아버지)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Father'가 아니고 'Passion'(열정)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Smile'(웃음),

네 번째는 'Love'(사랑)가 뽑혔으며

'Father'는 다섯 번째도 열 번째 안에도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간밤에 헛간에 불이 나서 나가 보니 수탉들은 다들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은 까맣게 타죽고

어미 품속의 병아리는 살아 남아있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사실일 것만 같아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

어머니의 그 깊고 깊은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하겠습니까?

 

그래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Mother'(어머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가 봅니다.

 

10위까지의 설문조사 결과를 찾아보니

 

1위는 Mother 어머니

2위는 Passion 열정

3위는 Smile 미소, 웃음

4위는 Love 사랑

5위는 Eternity 영원

 

6위는 Fantastic 환상적

7위는 Destiny 운명

8위는 Freedom 자유

9위는 Liberty 자유, 해방

10위는 Tranquility 평온, 평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