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푸니쿨리 푸니쿨라' 종례 시간의 추억, 교생 선생님의 편지 (2019.07.11)

푸레택 2019. 7. 11. 10:11

 

 

● '푸니쿨리 푸니쿨라' 종례 시간의 추억, 교생 선생님의 편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학급을 담당하셨던 교생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다. 놀랍게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들이 종례 시간에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부르며 가세 가세! 후렴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혜화동 1번지, 담쟁이덩굴 뻗어 올라가는 빨간 벽돌 건물. 청운의 꿈을 안고 학업에 매진하던 보성(普成)고등학교 1학년 시절, 서울상대 출신으로 사진작가이셨던 홍순태 담임 선생님(멋쟁이 선생님이라 별명이 칠면조)은 매일 종례 시간이면 노래를 한 곡씩 합창하게 했다.

 

어느 가을날, 남자 선생님들과 남학생들뿐인 우리 학교에 놀랍게도 아름다운 여자 교생 선생님(국어)이 한 분 오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교생 선생님이 우리 학급 담임을 맡으셨다는 것. 종례 시간이면 다른 반 친구들이 우리 학급 창가에 모여들었다. 햇병아리 여자 교생 선생님 혼자 들어오신 어느 날 종례 시간, 그날도 우리들은 종례를 마치기 전 합창을 했다. 우리들은 때마침 음악 시간 자칭 '질리' 테너 박일환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나폴리 민요인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를 선곡하여 합창했다.

 

'무서운 불을 뿜는 저기 저 산에 올라가자 올라가자 그곳은 지옥 속에 솟아 있는 곳 무서워라 무서워라'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철없고 짓궂은 우리 고1 개구쟁이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후렴을 끝없이 반복해서 불러댔다. '가세 가세 저기 저곳에, 가세 가세 저기 저곳에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라 모두 타는 차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랫소리가 시간을 멈춘 채 교실 창밖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사귀를 마구 흔들어댔고 여자 교생 선생님의 얼굴은 단풍빛으로 빠알갛게 물들어 갔다.

 

초임 학교 시절, 나도 옛 스승님 닮고 싶어서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신의 애창곡을 선곡하여 노래를 함께 부르게 했다. 하얀 교복을 입은 목련꽃 같은 아이들이 봄꽃 향기 맡으며 합창을 한다. 맑디 맑은 물 흘러가는 소리,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로. 교실 창밖 봉긋한 목련꽃들 교실 안 기웃거리고, 살구꽃잎 하나둘 노래소리 타고 머얼리 흩어진다.

 

꿈꾸던 청춘, 꿈같은 시절은 그렇게 세월과 함께 흘러갔다.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교실에 남겨두고, 유리창 너머 재잘대는 그리움 남겨두고 교단을 떠나왔다. 목련꽃 살구꽃 하얗게 부서지는 봄날이 오면 해맑은 얼굴, 하얀 교복 입은 천사들 반짝이는 별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은행나무 잎새 뚝뚝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까만 교복에 까만 모자 쓴 까까머리 친구들이 부르던 나폴리 민요 노랫소리 낙엽 되어 나풀거리며 아련히 들려온다.

 

이제 칠순이 넘으셨을 교생 선생님은 그날 우리들의 노랫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까? 고교 동창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며 선생님 소식을 알려왔다. 선생님께서는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신 후 박목월 선생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하셨다고 한다. 멋진 시(詩)를 많이 쓰셨을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하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옴직한 사연 하나를 우리 보성고 1학년 5반 학생들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그대로 옮겨본다.

 

김영택에게. (뜻하지 않게 내가 어쩌다 학급 대표) 그간도 안녕하였는지? 21일 간이라는 짧은 時間을 普成에서 보내는 동안 1學年 5班에 몹시도 情을 느꼈지만 실상 아무 것도 전한 것이 없어 섭섭하기만 하구나. 오늘은 벌써 11月의 카렌다를 바꾸어야 하는 날이다. 늦게나마 띄워보는 消息을 이해해 주기 바래. 지금 감빛 저녁이 내리는 時間, 너희들 午後의 窓으로도 차운 공기가 스미겠지? 마침 내 방엔 '후니쿨라'의 울진 노래가 가득 찼다. 꼭 '너'들의 음성처럼 몇 번이고 계속 '가자!'가 되풀이되는 듯 싶다. 行事로 바쁘던 거기도 이제쯤은 몹시 조용하겠지? 모두들 공부에 열중해졌겠지? 담임 선생님께서도 여전히 카메라를 메고 다니시는지? 그럼 늘 곱고, 슬기롭고, 용기있는 너희들이길 손모아 빌며... 안녕을 우리의 것으로 하자. 1968年 11月 1日 이명자(李明子)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진다. 오늘도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그 봄날은 간다. 인생의 봄날은 간다. 화려한 청춘의 봄날은 가고 없지만 그 잔향(殘香)은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장맛비 내리는 이 저녁 또다시 피어오른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의 뜻은? 이태리어로 '케이블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푸니콜라레(Funicolare)'를 어원으로 나폴리 지역 사투리와 줄임말을 결합하여 '케이블카 타고'라는 뜻의 감탄사적 표현이라고 한다.

 

 / 김영택 [졸작수필] 2019.07.11(목)

 

● 추록 [追錄]

 

내가 블로그에 올린 이 글을 읽은 고등학교 친구가 이명자 선생님의 근황을 알 수 있는 블로그를 링크하여 주었다. 그 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선생님은 내가 이 글을 쓰기 몇 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채강 시인으로 살다 가신 이명자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비록 짧은 인연이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주신 이명자 선생님! 시(詩)를 쓰시며 행복하게 사시다가 가셨으리라. '꼭'이라는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좀더 일찍 선생님을 기억해 내고 찾아뵐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달래본다.

 

☆ 시인 이채강, 하늘로 날다 / 남상광

 

본명은 이명자. 1947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 대전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1971년 「원광」「신반야경」 등의 시를 《현대시학》에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신반야경』『별제』『등불소리』 등이 있다. 《문학사상》 편집부장을 역임했고 고려대, 배재대, 대전대 등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호서문학》에 열정을 나눠주시던 선생님께서 허무하게도 하늘로 올랐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 선생님 댁을 찾았던 친구분들이 돌아가신지 시간이 꽤 흐른 그림자를 만나셨다고 한다. 빈 공간에서 아무도 없이 홀로 싸우신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이 부디 슬프지 않게 기억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 2019. 3. 4. 20:07 남상광

 

☆ 꼭 / 이채강 (이명자 선생님 筆名)

 

그대가 날마다 내게로 오고 있다 하여

나는 날마다 그대를 기다렸다

그대는 날마다 나를 만나고 갔지만

나는 한번도 그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대는 날마다 나와 헤어졌지만

나는 한번도 그대와 헤어지지 못했다

내가 그대와 그렇게 한번도 만난 적 없고

한번도 헤어진 적 없다는 건

그대가 나와 그렇게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졌다는 건 참 얼마나 고단한 일이냐

그렇게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지 못한 우리의 나날들은

또 얼마나 가슴 여위던 시간인가

우리 한번은 꼭 만나기로 하자

만나서 꼭 헤어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