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꽃들, 메꽃을 나팔꽃이라 한들, '민들레 홀씨 되어'? (2019.07.01)

푸레택 2019. 7. 1. 15:21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꽃들

 

2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제자가 이제는 결혼하여 네다섯 살 된 딸아이 하나 있는 아빠가 되었다. 어제 동네 산책길에 찍은 '나무풀꽃' 사진을 보내주었더니 오늘 답장 문자가 왔다. '꽃들 이름 하나도 몰랐네요.' 나는 회신 문자를 보내주었다. '지금은 젊으니까... 나이가 50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비로소 꽃이 눈에 들어오고 꽃 이름 알고 싶어하지...' 다시 문자가 왔다. '아이가 꽃 보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아무 대답도 못했어요.ㅋㅋㅋ' 하던 일 잠시 멈추고 아이와 눈높이 맞추면비로소 꽃이 보일거야, 꽃이름 알게 될 거야.

 

나는 문득 한 달 전 운정호수공원 산책길을 떠올렸다. 산책 중 우연히 어느 가족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아이가 하얗게 무더기로 피어난 꽃을 보고 '엄마, 이거 무슨 꽃이야?' 하니, 엄마는 망설임 없이 '그거 민들레꽃일 걸.' 한다. 옆에 있던 아빠가 한 마디 거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이는 꽃이름 하나 알게 되어 기쁜 듯 말한다. '이게 민들레꽃이구나. 민들레꽃!' 나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민들레꽃을 모르는 사람도 있구나. 아니 민들레꽃도 모르는 어른들이 있구나. 개망초꽃이야 모를 수 있겠지만 개망초꽃을 민들레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데 사실 우리가 흔히 보는 민들레는 우리 토종 '민들레'가 아니고 외래종인 '서양민들레'다. 우리 자생 '민들레'는 '서양민들레'에 밀려 보기 힘들어졌다. 이 두 종(種)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80년 대인가 '민들레 홀씨 되어' 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졸지에 민들레는 억울하게도 꽃도 못 피우고 씨앗도 못 맺고 홀씨(胞子)를 퍼뜨려 번식하는 민꽃식물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민들레 홀씨' 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시적 허용이 아니라 분명히 잘못 쓴 대중가요 가사다. 민들레는 꽃(종자)식물 소속이지 민꽃(홀씨)식물 소속이 아니다. 민들레 홀씨라고 말 하는것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기야 나도 젊은 시절엔 꽃 무지렁이였다. 꽃 향기 독하다고만 생각했지, 생강나무 이름도 모르면서. 누가 묻는데 대답을 못해 주었지, 산사나무라고. 스무 살에 광릉 숲에서 은방울꽃, 둥글레 처음 알게 되었지. 원예학 들으면서 프리지어, 군자란, 몬스테라 처음 보았지. 오로지 학점을 따기 위해 달달 외웠던 식물분류학.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풀꽃들, 한 번도 이름 불러본 적 없는 나무들. 꽃차례(花序)는 왜 또 그리도 안 외워지던지. 산방화서, 산형화서, 총상화서, 두상화서, 수상화서, 육수화서, 권산화서, 취산화서, 원추화서, 미상화서, 그리고 유한화서, 무한화서...

 

우리나라에 터잡고 살아가는 자생식물이 4천 종이 넘고, 나무만 해도 1,000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들은 식물분류학자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나무와 풀꽃들, 지나갈 때 나도 한 번 봐 달라고 내 이름도 불러달라고 애원하는 나무와 풀꽃들의 친구가 되면 좋으리. 무더운 여름엔 맑은 계곡물 흐르는 숲을 찾아 풀꽃 속삭임에 귀기울이면 더없이 마음 평안하리라. 나무들 이름 불러주면 어느새 친구 되어 행복하리라. 어느 시인은 서른 다섯에 애기똥풀 처음 알았다고 하고 어느 시인은 오십이 되어서야 개망초꽃 알았다고 했다.

 

나무와 풀꽃이 좋아 벗 삼아 지낸지 40여 년, 지금도 모르는 나무들, 헷갈리는 풀꽃들 너무 많다. 아니 알면 알수록 모르는 나무와 풀꽃들 더 많아진다. 나무 앞에서는 풀꽃 앞에서는 더욱 겸손해질 일이다. 나무와 풀꽃 그리고 숲에게 길을 묻는다.

 

/ 김영택 [졸작수필] 2019.07.01(월) 씀

 

● 호야네 가족의 행복한 꽃나들이

- 메꽃을 나팔꽃이라 한들

 

호야네 가족이 산책을 합니다.

호야: 엄마, 이 꽃 무슨 꽃이야?

엄마: 으음, 그거 민들레꽃일 거야.

아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호야: 민들레꽃 참 예쁘다. 꼭 계란 후라이 같아.

가족들은 행복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개망초꽃이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꽃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개망초꽃을 민들레꽃이라 한들.

가족이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호야네 가족이 또 산책을 나섭니다.

호야: 엄마, 이 꽃 참 예쁘다. 이 꽃 이름이 뭐야?

엄마: 아 그거 모란꽃이야. 정말 예쁘지?

아빠: 당신은 아는 것도 많아. 나는 꽃이름 하나도 몰라.

호야: 나는 꽃이 참 좋아. 예쁘니까.

가족들이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작약꽃이 함박웃음을 터뜨립니다.

꽃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작약꽃을 모란꽃이라 한들.

가족이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유나가 할아버지와 산책을 합니다.

할아버지: 유나야, 이건 강아지풀이야.

유나가 강아지 꼬리 같은 강아지풀을 만져봅니다.

며칠 뒤 유나는 할아버지와 또 산책을 합니다.

할아버지: 유나야, 이거 무슨 풀이지?

유나: 응 그거 멍멍이풀! 멍멍이풀이야!

할아버지와 강아지풀이 하하하 함께 웃습니다.

강아지풀을 멍멍이풀이라 부르면 안 되나요?

꽃이름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우리 가족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메꽃을 나팔꽃이라 한들

갓꽃을 유채꽃이라 한들

수련꽃을 연꽃이라 한들

꽃창포를 붓꽃이라 한들

백목련을 목련이라 한들

살구꽃을 매화꽃이라 한들

꽃다지를 냉이꽃이라 한들

 

철쭉꽃을 진달래꽃이라 한들

접시꽃을 무궁화꽃이라 한들

비비추를 옥잠화꽃이라 한들

꽃무릇을 상사화꽃이라 한들

조팝나무를 싸리꽃이라 한들

불두화꽃을 수국꽃이라 한들

해당화꽃을 찔레꽃이라 한들

 

구절초를 쑥부쟁이꽃이라 한들

큰방가지똥을 엉겅퀴꽃이라 한들

고들빼기꽃을 씀바귀꽃이라 한들

생강나무꽃을 산수유꽃이라 한들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꽃라고 한들

서양민들레꽃을 민들레꽃이라 한들

 

/ 2019.07.01 김영택

 

● [안도현의 발견] 민들레

 

교양수업 시간에 90여 명 학생들에게 물었다. 제비꽃을 아는 사람 손을 들어봐요. 겨우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그러면 민들레꽃을 아는 사람?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손을 들어 그만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민들레가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해진 까닭은 봄철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민들레는 들꽃 중의 들꽃이라 할 만하다.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토종민들레와 외래종 서양민들레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 이번에는 한 명도 없었다. 꽃받침이 꽃을 감싸고 있으면 토종민들레, 뒤로 젖혀져 있으면 외래종 서양민들레지요. 옛 식물도감에 '총포'(總苞)라는 말이 나와 있으면 그건 꽃의 밑동을 싸고 있는 부분을 말합니다. 요즘은 '꽃싸개잎'이라는 예쁜 말로 불러요. 헷갈리면 우선 '꽃받침'으로 기억해둬요. 민들레 덕분에 학생들 앞에서 좀 아는 체했다.

 

민들레는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씨앗이 맺힌다. 솜털이 붙은 낙하산 모양의 씨앗이 하나씩 날아다니니까 사람들은 그걸 '홀씨'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80년대 대중가요가 착각을 부추긴 측면도 강하다. 민들레는 홀씨가 아니다. 홀씨란 홀로 번식할 능력이 있는 생식세포를 말한다. 즉 무성생식을 위한 세포를 포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홀씨다. 암술과 수술이 서로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종족을 퍼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홀씨로 번식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버섯과 고사리가 있다.

 

/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 애기똥풀 /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개망초 / 박준영

 

6,7월 망초꽃

지천으로 피어있다

 

그냥

잡풀이었지

내 눈에 들기 전에

이름도 몰랐으니

 

복판은 한사코 마다하고

길섶에만 피어 있어

눈부시지도 않고

향기롭지도 않고

무엇 하나 내노라 할 게 없이

그냥 서 있는 거다

 

희멀겋게 뽑아 올린 줄기에

너더댓 가지 뻗고

다시 잔가지 서너 개 나뉘더니

가지마다 대여섯 작은 흰 꽃 피운다

 

외로운 건 참을 수 없어

무리로 무리로

종소리 듣고 타고 내린 달빛처럼

허옇게 또 허옇게

내려앉고 내려앉아

잡초마냥 민초마냥

이 강산 여기저기

이렇게도 뒤덮는다

 

이제

그 이름 물어 물어

개망초로 알았지만

마음에 있어야 보인다고

50 평생 살아 처음 보는 꽃의

눈부시지 않은 그 찬란이

알아주지 않는 그 영광이

날 이다지도 뒤흔들어 놓는다

 

6, 7월 개망초꽃

지천으로 피어 있다.

 

● 개망초 꽃 /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