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역사산책] (3) 농부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강화도령, 철종이 잠든 서삼릉-예릉을 찾아서 (2019.06.22)

푸레택 2019. 6. 23. 16:35

 

 

 

 

 

 

 

 

 

 

 

 

 

 

 

 

 

 

 

 

 

 

 

 

 

 

 

 

 

 

 

 

 

 

 

 

 

 

 

(3) 연꽃 물결 보경지, 광개토대왕비, 조각공원, 너른마당, 농협대학교

 

고양시 원당동에 위치한 조선왕릉, 서삼릉(西三陵)

희릉(禧陵), 효릉(孝陵), 예릉(睿陵)

소경원(昭慶園), 의령원(懿寧園), 효창원(孝昌園)

 

 ● 농부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강화도령, 철종이 잠든 서삼릉-예릉을 찾아서
오늘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다. 요즈음 날씨가 참 좋다.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도 청명하다. 오늘은 고양시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을 찾았다. 작년에 일산으로 이사 온 후 첫 왕릉 나들이다.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어 길도 익숙하고 산책도 할 겸 3호선 윈흥역에서 내려 도보로 찾아갔다. (삼송역 5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원흥역 6번 출구로 나와서 터널쪽으로 걸어가면 '농협대학교 1km'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한참을 걸어가니 청정지역에 농협대와 농장이 나타난다. 숲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너른마당이 나온다. 카카오지도를 검색해 보니 2.7km 41분 거리로 나오는데 빠르게 걸어서 갔더니 버스 종점까지 30분 만에 도착했다.

너른마당 입구에는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을 느낄 수 있는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imitation)가 우뚝 서 있다. 중국 길림성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같은 크기의 돌을 구해 비문까지 똑같이 본떠 옮겨왔다고 하니 실로 놀랍다. 보경지에는 연꽃이 시원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연못 둘레에는 온갖 동물의 석상과 조각 예술품들이 즐비하다.

너른 마당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니 목가적 풍경이 나타난다. 경주마를 훈련시키고 기수를 교육하는 원당종마목장이다. 하얀 나무울타리 너머 시원스런 초원에 듬성듬성 보이는 말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인 듯 참으로 평화롭다. '1.5km 30분 산책로'라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6월 한달 주말 축제 기간이라 갖가지 체험 부스와 무료 승마 체험장이 열리고 있다. 포토존 너머로 또 하나의 드넓은 목장 초원이 펼쳐진다.

원당종마목장을 나와 오늘의 목적지인 서삼릉으로 들어선다. 서삼릉은 3기의 왕릉과 3기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11대 중종의 왕비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박씨의 능은 효릉,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은 예릉, 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원은 소경원, 추존 장조의 맏아들 의소세손의 원은 의령원, 22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원은 효창원이다, 이 중 효릉과 소경원은 공개 제한으로 들어갈 수 없다.

먼저 종마목장 안에서도 보였던 희릉부터 둘러본다. 희릉은 11대 중종의 왕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조선 왕릉의 주요 상설(象設)에 관한 설명을 읽어 보았다. 왕릉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인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기둥 위에 살을 박아놓은 것이다. 홍살문을 지나서는 향로가 아닌 어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향로(香路)는 제향시 향과 축(祝)을 모신다 하여 붙여졌고 어로(御路)는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자각은 정(丁)자 모양의 건물로 제향을 올리는 곳이고 비각은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세워둔 곳이다.

희릉의 봉분이 너무 높고 깊숙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희릉을 뒤로 하고 예릉으로 느긋한 발걸음을 옮겼다. 예릉은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강화도령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철종 임금, 시골 농사꾼에서 임금이 된 철종 이야기는 영화로 드라마로 숱하게 소개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강화도령이 임금이 된 흥미로운 사실만 기억할 뿐 정작 세도정치의 폐해에 관심 갖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리거나 무식한 사람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놓고 뒤에서 온갖 권력을 휘두르며 부(富)과 명예를 독차지하는 세력들은 조선의 순조, 헌종, 철종 시대 이후 사라진 것일까? 노론(老論)의 후예들이 친일파로 변신하여 여전히 기득권을 움켜쥔 채 개혁과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말인데도 찾는 사람들이 없어 왕릉은 고요하고 호젓하기만 하다. 주위에 빽빽이 늘어선 소나무들만이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능을 지켜본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아는가? 슬픈 운명의 주인공들을. 자고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아는가?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잡초처럼 살다간 수많은 민초(民草)들을.

예릉 바로 옆쪽에 의령원과 효창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의령원은 사도세자의 맏아들인 의소세손의 원인데, 의소세손은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나 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창원은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 원이다. 문효세자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5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경원을 비롯하여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 소현세자의 두 아들 묘, 후궁들의 묘는 그 땅이 사유지란 이유로 공개를 제한하고 있었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와 더불어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비운(悲運)의 세자라고 한다. 왕이 되지 못한 그러나 여느 왕들보다 훌륭했던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난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의 원인 소경원을 못 본 것이 아쉽다.

최근 몇 년 동안 조선의 왕릉과 원, 묘를 많이 둘러보았다. 구리에 있는 동구릉과 고양에 있는 서오릉, 남양주에 있는 홍릉과 유릉, 사릉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선릉과 정릉, 경기도 화성에 있는 융릉과 건릉, 남양주에 위치한 세조의 능 광릉도 둘러보았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 있는 서울의 태릉과 강릉, 의릉은 아직 탐방을 못했다.

오늘은 서오릉을 찾아 조선왕릉을 유유자적 둘러보았다. 덤으로 원당종마목장에서 목가적 풍경을 보며 산책도 하고 연꽃 넘실대는 보경지(寶慶池)와 조각석상, 광대토대왕비도 보았다. 쾌청한 날씨에 왕릉의 호젓함이 더해져 몸도 마음도 절로 가볍다. 돌아올 때는 종점인 서삼릉·종마목장 입구 정류장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041 A번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는 매 시간 10분과 40분에 삼송역을 향해 출발한다.

 

/ 김영택 2019.06.22 씀

 

● 문화재청 서삼릉 홍보물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 희릉(禧陵)

조선 제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윤씨의 능. 장경왕후(1491-1515)는 윤여필의 딸로, 1506년 중종의 후궁 숙의가 되었다가 다음 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사이에서 1남(인종) 1녀(효헤공주)를 낳았으며, 1515년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25세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년(중총 32)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능침은 병풍석고를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문·무석인, 장명 등 혼유석 등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 예릉(睿陵)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은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의 아들로,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숙황후(순조의 왕비)의 명으로 순조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에 올랐다.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안동 김씨의 세도로 인해 국정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1863년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철인장황후(1837-1878)는 김문근의 딸로 1851년(철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58년(철총 9) 원자를 낳았으나 일찍 죽는 비운을 겪었다.

 

* 효릉(孝陵) (공개제한)

조선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은 중종과 장경왕후 의 아들로, 1520년(중종 15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544년 창경궁 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위 9개월만에 1545년(인종 1) 3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인성왕후(1514-1577)는 박용차의 딸로 1524년에 왕세자빈에 책봉되었고,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1577년(선조 10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릉은 쌍릉의 형식으로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서쪽이 인종, 동쪽이 인성왕후의 능침이다.

 

* 의령원(懿寧園)

추존 장조의 맏아들 의소세손의 원. 의소세손 (1750-1752)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듬해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나, 1752년(영조 28) 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령원은 처음에는 의소묘라고 하였다가 1870년(고종 7)에 의령원이라 하였다. 원은 1949년 서울 북아현동에서 옮겨왔다.

 

* 효창원(孝昌園)

조선 제22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원. 문효세자(1782-1786)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로 1782년에 태어났다. 2년 뒤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정조 10) 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창원은 처음 효창묘라고 하였다가 1870년(고종 7)에 효창원이라 하였다. 원은 1944년 서울 청파동(현 효창공원)에서 옮겨왔다.

 

* 소경원(昭慶園) (공개제한)

조선 제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원. 소현세자 (1612-1645)는 인조와 인열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1612년에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1625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전주로 내려가 민심을 수습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인과 동생(봉림대군, 효종) 및 대신들과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심양에 머무는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외교적 재량권을 행사하였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9년 후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그해 갑자기 병으로 눕게 되어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소경원은 처음 소현묘라 하였다가 1870년(고종 7)에 소경원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