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숲길, 고봉누리길과 견달산누리길을 걸으며
오늘은 고양시걷기연맹에서 주관하는 토요일 고양누리길 걷기에 참가하였다. 고양누리길 14개 코스 3분기 3회차로 고봉누리길 일부와 견달산누리길 14.6km을 걷는 코스인데 나로서는 처음 걸어보는 길이다. 집을 나서기 전 날씨 검색을 해보니 북상 중인 태풍(颱風)의 영향으로 비가 조금 내린다는 예보다. 일산동구 식사동(食寺洞)의 미세먼지는 12, 초미세먼지는 1마이크로그램이다. 이렇게 공기가 맑을 수 있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9시 25분쯤 탄현역(炭峴驛) 2번 출구로 나오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집결해 있다. 9시 30분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누리길 걷기를 출발한다. 나누어 준 유인물을 보니 주요 코스는 탄현역-고봉로 삼거리-진밭-안골마을-문봉낚시터-견달산 사격장-청대골 정류장으로 13시 30분까지 4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 봄 한창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4월에 2분기 3회차 고양동누리길과 송강누리길 걷기에 참가하였으니 꼭 석달 만이다. 비가 올듯 말듯 하늘은 흐려있지만 무덥지 않아 걷기에는 참 좋은 날씨다. 바람 따라 전해오는 풀꽃 내음 마시며 숲길을 걷는 것보다 더 좋은 힐링이 있을까? 이에 더해 여기저기 피어난 주변의 풀꽃과 나무와 속삭여 이야기라도 하면 무엇이 더 부러우랴.
한참을 걷다 보니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있는 일본목련을 보인다. 요즈음 일본의 경제 침락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데 일본목련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누구는 일본의 경제 침략을 제2의 임진왜란이라 하고 누구는 위기 때 적과 아군 즉 피아(彼我)가 확연히 구분된다며 토착왜구 친일파 세력을 가려낼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누구는 일본의 경제 침략의 궁극적 목적은 군사 전쟁(戰爭)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숨겨진 야욕을 잘 살펴 큰 그림을 잘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노일본 불매 운동이 불붙었는데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과 슬기로움을 믿어본다.
그런데 식물이 무슨 죄가 있으랴. 일본목련 열매 사진을 찍는데 참가자 한 분이 '무슨 나무냐'고 묻는다. '일본목련이라는 나무에요' 하니 옆에 나이 지긋하신 분이 아니란다. 후박나무라고 정정한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부르는데 진짜 후박나무는 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살아가는 난대성 식물이다.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라고 잘못 알고 있듯이.
오래 전 생태탐사 연수에 참가했을 때 지도교수로 참여하신 강원대 원로 식물분류학(植物分類學)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재래시장에서 꿩의다리를 삼지구엽초(음양곽)로 둔갑시켜 파는 것을 보시고 이건 삼지구엽초가 아니라고 했더니 삼지구엽초가 맞다고 부득부득 우기더라는 얘기를 들려주신 기억이 난다. 모르면서 우기는 건지 속이려고 우기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우기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시장통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원로 식물분류학자도 권위(權威)를 인정받지 못하시고 목소리 큰 사람한테 굴욕을 당하신다.
서울-문산고속도로 공사 구간을 지날 때 흙더미 속에 피어난 생명력(生命力) 강한 끈끈이대나물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또다른 참가자 한 분이 '이 꽃 이름이 뭐냐'고 물으신다. '끈끈이대나물이라는 꽃이에요.' 라고 말했더니 '방금 인터넷으로 확인하신 거죠?' 하신다. 참 당혹스럽다. 그래도 이렇게 묻고 식물에 관심이 있는 분을 만나면 참 반갑다.
요즈음은 모르는 꽃 이름을 알고 싶으면 꽃 이름 알려주는 앱을 휴대폰에 깔고 카메라를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된다. 물론 확률(確率)로 답을 가르쳐 주지만 얼추 비슷하게 맞힌다. 내가 방금 그렇게 꽃 검색을 해서 대답해 준 거 아니냐는 말로 들렸다. 이럴 땐 그저 웃음으로 넘어가는 수 밖에 없다. 꽃 이름이 잘 생각 나지 않거나 전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보면 다중의 지혜(智慧)를 빌리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모야모' 라는 앱이 있다. 권위있는 식물학자도 깜박하거나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야모'는 여러 사람들의 지혜로 답을 얻을 수 있으니 정확도가 거의 100%에 가깝다. 정말 고맙고 유용한 앱이 아닐 수 없다. 후에 쉼터에서 그분과 다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식물에 관심을 가진 선(善)하신 분이다. 어찌 식물 이름을 잘 아느냐 묻기에 어깨 너머로 한 10년 배웠다고 말하며 웃음을 나누었다.
오늘 여름 누리길에서는 봄날의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난 나무꽃을 만날 수 없다. 싸리나무와 낭아초 수줍게 꽃을 피우고 밤나무꽃은 어느새 열매로 익어간다. 화단에는 백일홍과 맨드라미꽃 만개(滿開)하고 보랏빛 도라지꽃 곱게 피어난다. 밭에는 아주까리 열매가 익어가고 옥수수도 토실토실 영글어간다.
한여름 온몸 가득 주황빛 꽃 매달고 맘껏 존재감을 뽐내는 나무는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올라가는 능소화다. 짙은 노랑빛 루드베키아도 강렬(强烈)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나는 적당한 키에 까만 주근깨 있는 주홍빛 얼굴, 단아(端雅)하고 멋진 자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매력 만점 참나리에게 이 한여름 포토제닉 대상(大賞)을 안겨주고 싶다.
진밭과 안골마을을 지나고 견달산 사격장을 거쳐 청대골 정류장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나는 한 번도 못 가본 고려 공양왕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더위를 뚫고 한참을 내려와 왕릉골에 이르렀는데 또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단다. 가져간 물통에 물이 한 모금도 남아있지 않고 온다는 비 대신 땀만 흘러내려 아쉽지만 왕이 되기를 싫어했던 고려 마지막 왕, 비운(悲運)의 왕 공양왕(恭讓王)을 찾아뵙는 것은 다음 날로 미루어야 했다. 뇌조리국수집에서 열무냉국수로 늦은 점심을 한 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 걸기 앱을 살펴보니 25,457 걸음, 18.34km를 걸은 것으로 나온다. 에너지 소모는 1,003kcal이다. 오늘 모처럼 고양누리길 걷기에 참가하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봉누리길과 견달산누리길을 걸으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고, 여름 풀꽃과 나무들 만나서 소중한 추억(追憶)을 만드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 김영택 2019.07.20 씀
● 후박나무/ 박상진 (우리나무의 세계2)
- 厚朴, 녹나무과, 학명 Machilus thunbergii
후박나무는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음을 나타낼 때 쓰는 ‘후박하다’에서 연유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까다롭지 않고 잘 자라며, 나무의 바깥 모양이 너그럽고 편안해 보이니 후박한 옛 시골 인심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건강식품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요즈음 약이 되는 후박나무는 수난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한때 숲속의 후박나무는 껍질이 홀랑 벗겨지는 극형을 받고 죽어 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상당수가 후박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제외하면, 큰 후박나무를 구경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도 후박나무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남해안과 섬 지방에 이르는 난대림은 자연 그대로 방치해 두면 결국 후박나무 숲이 되어 버린다. 육지의 숲이 나중에는 참나무나 서어나무 숲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울릉도 주민들은 유명한 호박엿이 옛날에는 ‘후박엿’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후박 껍질을 넣어 약용으로 후박엿을 만들어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박엿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울릉도 후박엿’으로 계속 전해졌다면 울릉도에서 후박나무 구경이 어려울 뻔했으니 호박엿으로 변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후박나무는 남해안, 울릉도, 제주도 및 남쪽 섬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늘푸른 큰 나무다. 아름드리로 자라며 동구 밖 정자나무에서부터 마을 뒷산까지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 중 하나다. 아무리 굵어져도 회갈색의 나무껍질은 흉하게 갈라지지 않고 매끈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아기 손바닥만 한 잎은 짧은 잎자루를 가지며, 두껍고 윤기가 자르르하여 맑은 날에는 햇빛에 반짝인다. 가장자리에 톱니도 없어서 언뜻 보면 감나무 잎처럼 생겼다. 꽃은 원뿔모양으로 잎겨드랑이에 나며, 황록색의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열매가 열리는 대궁은 빨갛게 되며, 굵은 콩알만 한 열매는 다음해 7월에 보랏빛이 조금 섞인 검은빛으로 익는다.
일부 조경업자들이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지금도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알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둘은 전혀 별개의 나무다.
/ Daum 백과사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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