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생각산책] 너에게 묻는다, 99의 노예, 사과 한 봉지와 축의금 13,000원 (2019.07.27)

푸레택 2019. 7. 28. 10:21

 

 

 

 

 

 

 

● 너에게 묻는다 / 이철환

 

주문한 설렁탕이 사무실에 배달되자 사무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려고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김 대리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팔을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 왜 거기서 혼자 식사를 하세요? 우리도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하시면 좋잖아요. 어서 이리 앉으세요.

 

김 대리는 도시락을 손에 들고 멋쩍어하는 아주머니를 기어코 자리에 앉혔다.

 

- 아니에요. 저는 그냥 나가서 혼자 먹는 게 편한데...

- 아주머니, 저도 도시락 싸왔어요. 이거 보세요.

 

정이 많은 김 대리는 아주머니의 도시락을 뺏다시피 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의 도시락을 나란히 꺼내 놓았다.

 

- 아니, 왜 이 건물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식사할 곳 하나가 없어!

- 그러게나 말이야.

- 글쎄, 날씨도 추운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식사를 하시려 하잖아.

 

김 대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멀찌감치 듣고만 있던 창수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표시를 했다.

 

아주머니가 싸온 반찬통에는 시들한 김치만 가득했다. 숫기가 없는 아주머니는 자신이 싸온 초라한 반찬이 창피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대리는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해준 김이며 장조림이며 명란젓을 몇 번이고 아주머니에게 권해드렸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머니가 싸온 시들한 김치만 먹었다.

 

- 김치 참 맛있네요, 아주머니.

 

김 대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소리 없이 미소만 지었다. 다른 동료들도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맛나게 먹었지만, 창수는 단 한 조각도 입에 넣지 않았다. 창수는 왠지 그 김치가 불결해 보였다. 워낙에 시들한데다가 김치가 담겨 있던 통은 너무 낡아 군데군데 허옇게 벗겨져 있었고 붉은 물까지 들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창수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근할 때 아내가 보온병에 담아준 율무차를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종이컵에 따르면 두 잔이 나오지만 머그잔에 가득 따라 자신은 먹지 않고 아주머니에게만 주었다.

 

아주머니는 거듭 사양했지만 결국 창수의 성화에 못 이겨 율무차를 마셨다. 대신 창수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네 잔을 뽑아 동료들과 함께 마셨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가 어려웠는지 율무차를 마시는 내내 벽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 정말 맛있게 마셨어요. 근데 제가 다 마셔서 어떻게 하지요?

- 아니에요.

 

아주머니는 창수가 준 율무차를 조금도 남김없이 다 마시고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머그잔을 씻어다 준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날, 7시쯤 집으로 돌아온 창수를 보자마자 그의 아내가 대뜸 물었다.

 

- 아침에 가져간 율무차 드셨어요?

- 그럼.

- 어쩌면 좋아요. 맛이 이상하지 않았나요?

- 왜?

- 아니, 글쎄 율무차에 설탕을 넣는다는 게 맛소금을 넣었지 뭐예요. 저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설탕 통에 맛소금을 담아 놓았더라구요.

 

창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그가 불결하다가고 생각할 때, 아주머니는 소금이 들어 있는 짜디짠 율무차를 마셨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몇 번이이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날 밤 창수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깰 뿐이다.

 

<출처> 연탄길(이철환)

 

● 99의 노예(奴隸) / 모차오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왕이 있었다. 하지만 왕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왕은 주방 근처에서 한 요리사가 행복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채소를 다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왕은 요리사를 불러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 폐하, 저는 말단 요리사에 불과하지만 제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기쁘고 또 늘 즐겁게 해 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많지 않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방 한 칸과 배를 불릴 수 있는 따뜻한 음식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 게다가 가족들은 제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물건을 가져가도 제 가족들은 매우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기쁘고 행복할 수 밖에요.

 

왕은 요리사를 물러가게 하고는 현명하다고 알려진 한 재상을 불러 요리사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재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폐하, 저는 그 요리사가 아직 99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 99의 노예, 그게 무엇인가? 하고 왕이 의아해 하니, 재상은

- 폐하, 99의 노예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가죽 주머니에 금화 99개를 넣어서 요리사의 집 앞에 가져다 두십시오. 라고 했다.

 

그날 저녁 왕은 재상의 말대로 금화 99개가 든 주머니를 요리사의 집 앞에 몰래 가져다 두게 하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요리사는 주머니를 발견했다.그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금화를 세어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금화는 99개였다. 요리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요리사는 혹시나 한 닢을 어딘가에 떨어뜨렸나 싶어 온 집안을 기어다니며 금화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금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생각했다.

 

- 열심히 일해서 금화 100개를 채워야겠다.

 

다음날 아침, 요리사는 그 전날 온 집안을 헤집으며 금화를 찾아 헤매느라 피곤했던 탓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늦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요리사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자신을 깨우지 않아서 금화 한닢을 벌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출근해서 미친듯이 일에 몰두했다. 예전처럼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다. 얼마나 일에 몰입했던지, 왕이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어제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요리사를 보면서 왕은 크게 놀랐다. 금화가 생겼는데, 더 행복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불행해 지다니. 왕이 재상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 폐하, 그 요리사는 이제 99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99의 노예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1을 채워 100을 만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출처> 모차오의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 중에서

 

● 사과 한 봉지와 축의금 13,000원 / 이철환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서 토막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 허위적 올라왔다.

-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며

나타난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통해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만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커 사과장수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우며 번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 먹기 위해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젯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밥그릇에 떠 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축의금 일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어젯 밤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에 서서...

 

<출처> 이철환 '곰보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