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지난 5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성북동 역사·문화 탐방길에 나서 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사연이 얽힌 길상사와 소설가 이태준 가옥, 최순우 옛집, 간송미술관, 선잠박물관, 심우장 등을 둘러보았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서울대병원 대한의원 의학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내가 살았던 명륜동도 둘러보고 성북동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얼이 서려 있는 곳, 심우장(尋牛莊)을 다시 찾았다. 언제 찾아가도 이곳은 큰 울림을 준다.
한용운 선생은 1933년 벽산스님으로부터 집터를 기증받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방 두 칸짜리 단출한 집을 지어 심우장으로 이름지었다. '심우(尋牛)'는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10단계의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용운은 이곳 성북동 깊은 산골짜기에 기거하며 '소' 즉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심우' 단계로 돌아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심우장에 들어서니 바로 앞면에 이 심우(尋牛)에 대한 글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질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불교에 무지(無知)한 나로서는 참 알 듯 모를 듯한 말이다.
한용운이 이곳 심우장에서 기거하던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일본 제국주의의 극성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최린과 최남선 등이 친일로 변절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용운은 끝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기거하던 심우장도 민족 자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하였다.
마당 한 쪽에 있는 비석엔 독립운동가 김동삼과 한용운 선생의 인연이 이렇게 적혀 있다. 김동삼(1878-1937)은 만주 지방 항일 무장 투쟁의 지도자로서 대한독립선언과 민족유일당 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그는 1931년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겪다 1937년 4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그의 주검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5일장을 치러주었다. 일제의 엄격한 감시 속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조헌영·조지훈 부자(父子)도 참석하였다.
또한 심우장 안내 소책자엔 김동삼 독립운동가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일송 김동삼은 이회영과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서간도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동삼(金東三)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으나 일본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은 한용운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한용운은 김동삼의 관 위에 앉아서 울부짖고 식음을 폐하며 마지막 화장하던 날 빈 속에 술만 마셨다고 한다. '승무(僧舞)'라는 시로 잘 알려진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김동삼의 장례식에 함께 참여하였는데, 훗날 조지훈은 이때 조문했던 사람이 20명 안팎이었다고 언급하였다.
내가 김동삼 독립운동가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을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해야겠다는 신념에서이다. 내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났다면 과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시고 또 그 후손들은 힘들게 살아가는데 독립운동가와 민초들을 탄압했던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은 오히려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 불합리한 모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제 침략은 많은 사람들을 각성시켰다. 혹독한 일제 강점기 시절 목숨 바쳐 독립 운동을 하신 분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 안 하기, 일본 제품 안 사기 운동, NO 재팬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심우장을 찾아 조용히 만해 한용운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리라.
충남 홍성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生家)가 있고 경기도 광주에는 만해기념관이 있으며 강원도 인제군에는 만해마을이 있다고 한다. 성북동 심우장을 찾아가려면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북정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모티브로 한 비둘기 공원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심우장이 나타난다. 심우장 작은 방에 걸려있는 시(詩) '님의 침묵'을 읊조리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준 만해의 나라 사랑을 되새겨 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김영택 2019.07.25(목)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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