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허리 통증과 '병(病)에게' / 조지훈 병에게 (2019.05.27)

푸레택 2019. 5. 27. 10:55

 

 

 

 

 

 

 

 

 

 

 

 

 

 

 

 

 

 

 

 

● [하루斷想] 허리 통증과 '병(病)에게'

 

갑자기 또 찾아온 허리 통증, 가만가만 바닥을 짚고 책상을 짚고 일어선다. 꾸부정한 내 모습, 내가 봐도 참 우습다. 딸아이는 내게 허리 아픈 게 어디야 한다. 친구 엄마가 갑작스레 찾아온 암(癌)으로 암 병동에 실려가 투병 중에 있으니 그 말 뜻 왜 모르랴. 그렇다, 허리만 아픈 게 어디냐?

 

새로 이사온 동네 일산(一山), 낯선 한의사는 대뜸 한약을 권한다. 내 내장이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이 들었다며 호르몬이 어떻고 자율신경이 어떻고 한다. 내가 수 십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했던 말들이 메아리 되어 들려온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허리 통증으로 하루에 열흘씩 늙어가는 듯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창밖 견달산천에도 모내기 한 논에도 비가 내린다. 내 허리 통증도 이 봄비에 휩쓸려 떠내려갔으면.

 

조지훈 시인의 시(詩) '병(病)에게'를 찾아 읽는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安堵)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生)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조지훈, 병에게)

 

/ 2015.05.27 김영택 씀